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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 즐기면서 '루저 女'에 분노한 남자들
[정문순 칼럼] 시청자 바보로 아는 MB시대 공영방송, 반은 성공 반은 실패
 
정문순   기사입력  2009/11/23 [21:30]
신체적 기능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도 외모가 평균적인 사람들과 다르면 장애인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있다. 저신장인의 경우가 대표적으로 그렇다. 자료를 찾아보니 같은 연령대의 평균 키에서 3% 이내를 의학적으로 저신장으로 분류한다고 되어 있다. 어차피 어떤 집단의 3%는 저신장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는 말인데, 키가 남보다 작다는 것이 곧 장애로 통한다는 것은 키에 대한 사람들의 뒤틀린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 잘 말해준다. 

<미녀들의 수다>는 시청자들로부터 원성과 폐지 압박을 단골로 받아온 프로그램이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막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외국인이라는 타자를 통해 우리를 들여다보자는 프로그램의 애초 기획 의도는 여느 방송에서 보기 힘든 자기성찰적 프로그램에 속했고,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진보적인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져 한때는 시사잡지에서 진지한 비평 대상이 된 적도 있다. 일본인 유학생이 대학 강사에게 성희롱 피해를 당한 사실을 폭로하게 함으로써 일약 사회문제로 부각시킨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애초에도 논란이 있었던 서양 ‘미녀’들을 내세운 선정성 시비가 커지는 쪽으로 본색을 바꾼다는 비판을 듣더니 드디어 대형 사고를 쳤다. 줄을 잇는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그동안 쌓아올린 업보에 대한 자업자득이요,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을 거론한 저신장인 단체의 격분 어린 성명서가 나온 것도 시청자의 따끔한 충고를 외면한 데 대한 응분의 대접이라고 생각되니 통쾌한 마음이 없지는 않다. 
 
▲ 지난9일 KBS 2TV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한 여대생의 '루저' 발언이 방송 이후 3주가 지난 현재까지도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KBS

문제의 발언이 출연자의 본심이냐 아니냐 하는 건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해도 발언자가 공인의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닌 어린 대학생이요, 키 작음이 장애로 통하는 사회에서 그런 생각은 혼자만 욕을 들어야 할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공적인 자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발설하는 건 얼굴 가죽이 여간 두껍지 않으면 감히 할 수 없는 일이다.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나는 속물입니다요.”하고 만인 앞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문제의 핵심은 제작자나 출연자들이 천박한 속물근성에 젖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방송사가 특정 집단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나쁜 발언이 버젓이 전파를 달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방송사가 문제의 발언을 편집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모든 과정에는 방송 제작자의 의도가 개입된 것으로 봐야 한다. 피 말리는 시청률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방송 제작자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나중에 출연자가 대본에 그렇게 돼 있었다고 변명한 것을 보니 나어린 출연자들은 긴장감을 못 이겨 방송의 의도대로 따라갔고, 제작진은 방송의 생리를 모르는 여대생들을 악역으로 내세워 논란을 일으켜보자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외국 여성들의 입으로 한국인 치부를 일깨워주다 아예 한국 젊은 여성의 속물적인 사고방식을 그들 입으로 고백하게 하면 욕은 출연진이 듣고 자신들은 뒤로 빠지고 시청률은 시청률대로 높일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시청자를 바보로 본 것이 문제다. 

그러나 이런 파문은 매우 늦은 감이 있다. 방송이 용모 가지고 사람 차별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며 여성에 관한 한 아예 노골적인 것이 관행일 정도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미녀’를 내세운 프로그램이 치른 곤욕은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만약 문제의 발언이 남자 입에서 나왔다면 단언하건대 찻잔 속 태풍만큼의 위력도 없었을 것이다. 출연자의 발언이 파장을 일으킨 건 그 폄하 대상이 키 작은 ‘사람’이 아니라 키 작은 ‘남자’였기 때문이다. ‘마녀사냥’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파문이 큰 것은 여자가 감히 남자의 외모를 평가했다는 사실이 남자들 처지에서 불편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방송이 저지른 여성 비하는 일일이 거론하기도 벅찰 정도로 빈번하여 이제 웬만큼은 무딜 정도까지 되었다. 제목부터 ‘미녀’를 내세운데다 노출이 심한 여성들을 눈요기 대상쯤으로 전락시킨 프로그램이 수년째 방송되는 것부터가 여성을 무시하고 희롱한 것이 아닌가. 여자 가슴과 다리를 강조하는 여성차별이 전파를 타는 것은 얼마든지 용인하면서 여자가 남자를 무시한다고 발끈한다면 그만한 자기기만도 드물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오락방송은 숨을 곳도 없이 즉각 패가망신을 당하지만, 비슷한 격의 드라마는 교묘하게만 만들면 그럴 염려가 없다는 점에서 오락프로그램 담당자 처지에서는 드라마 제작자가 부러울 지도 모르겠다. 그 위험성을 따지자면 오락 프로그램보다 드라마가 훨씬 더할 것이다. 방송국 드라마는 그동안 정치 영역의 입김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별로 없다.
 
정권이 바뀌자 어제까지만 해도 고구려와 고려 역사를 다룬 드라마를 봇물 터지듯 만들어내던 방송사가 현 정권, 구체적으로는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과 지근거리에 있는 도시가 수도였던 나라를 드라마에서 호명하고, 난데없이 북한 공작원이 나오는 드라마를 찍어내는 건 속 보이는 일임을 본인들은 모를까. 성대한 문화 발전으로 삼한통일의 밑돌을 놓았다고 평가받는 군주를 역사드라마에서 조명하는 것에서는, 신라의 통일 과정에서 보듯 일방적인 흡수통일에 대한 현 정권의 꿈이 어리비치고 있다고 보면 지나친 해석일까. 
 
이전 정부에서 대북관계의 순항은 사람들에게 평양과 개성을 심리적으로 가깝게 만들어 이들 고도가 주인공이었던 시대를 드라마에 불러내는 상상력은 충분히 가능할 수 있지만, 난데없는 신라와 경주는 도대체 어떤 필연적 근거를 가지고 등장하였는가. 
 
▲ 서울 여의도 KBS 본관     © CBS노컷뉴스

여자가 욕 들어먹을 만한 발언을 하도록 하면 프로그램 인기가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나, 경주를 부각시키면 가까운 포항을 포함하여 경상도를 기반으로 하는 집권 세력에 대한 호감도가 올라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을 보건대, 현 정부 들어 공영방송은 하나같이 시청자를 숫제 바보로 아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어쩌면 ‘루저’ 발언 파동은 이명박 정권 들어 공익성을 소홀히 하고 긴장감을 상실해버린 공영방송의 예고된 사고의 일환일 수도 있다. 정권이 불편해하는 프로그램과 방송인들을 내쫓은 자리에서 방송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질 나쁘고 품위 없는 오락 프로나 부지런히 만드는 것밖에는. 그것도 아니면 권력자에게 부지런히 아부를 떨거나. 
 
방송사의 시청자 바보 만들기는 어느 정도는 성공하고 어느 정도는 실패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제작진이 바뀔 정도로 쑥대밭이 되기도 했지만, 어린 여자를 내세워 여자 욕 먹게 하려는 본래 의도는 마녀사냥을 통해 성공했다. 어린 여성 출연자들에게 분노하는 남자들은 방송이 여성을 향해 무수히 저질렀던 신체 희롱에 그들 스스로 눈감아온 일은 반성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여자만 돌팔매질을 당하고 그만이다.
 
또 집권자의 고향을 시청자들에게 각인시키려는 드라마에 대해 시청자들은 그 의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한편으로는 높은 시청률로 응하면서도 드라마에서 전개되는 서사를 현실 정치에 대한 패러디로 해석하는 등 드라마의 의도에 마냥 순진하게 놀아나지 않는 최소한의 균형감각은 잃지 않고 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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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1/23 [21:3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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