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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정권 잡아도 멀쩡하다던 그들이 오나?
[공희준의 일망타진] 정운찬과 SSM, 4대강에 우는 충청 눈물과 영남신당
 
공희준
1. 지난주 중반에 제사를 지내러 공주에 다녀왔다. 아주 어릴 적에 서울에 올라왔으므로 고향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나 감흥은 없다. 그럼에도 갈 때마다 뭐라고 꼭 집어 얘기할 수 없는 묘한 형태의 귀속감이 들곤 한다.
 
큰집은 공주시내에서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20분 정도 가야 하는 곳에 있다. 명색이 면소재지인데 왜 이렇게 동네가 어두운지 의문이었는데 날이 밝으니 의문이 풀렸다. 두 집에 한 집 꼴로 빈집이었던 것이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난 걸로 미루어보아 비운 지 꽤 오래된 듯하다. 주민이 살지 않는 집들의 대문이나 담벼락마다 관공서에서 붙인 경고문이 보인다. 무너질 염려가 있으니 조심해서 지나가라는 내용이다. 면사무소는 물론이고 파출소와 소방서도 있는 동네임에도 이 지경이다.
 
큰집에 도착한 날, 저녁밥을 먹으면서 친척들의 얘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특별히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전형적인 공주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행정수도복합도시, 즉 세종시 건설은 거의 포기한 것 같은 눈치였다. 5년짜리 대통령이 하는 일이 어련하겠느냐는 푸념도 섞여 있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었기 때문에 현지의 민심을 정확히 파악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노릇이다. 도착한 날 밤과, 떠나는 날 낮에 목격한 두 가지 풍경만 선연히 남았다. SSM과 정운찬.
 
공주시내를 차를 타고 지나는데 유난히 크게 반짝거리는 불빛이 눈에 띄었다. 이명박 정권에 들어와 완전히 거덜 난 고장에서 저게 뭘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다름 아닌 기업형 슈퍼마켓 SSM이다. 공주시의 인구와 그곳 SSM의 크기를 머릿속에서 얼핏 대비시키자마자 흔한 말로 모골이 송연해졌다. 별다른 생산시설이 없는 까닭에 자영업자가 대단히 많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소도시에 입주한 SSM은 모든 상권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기존의 유통망을 불가사리 같이 초토화시키기 마련이다. 지역에 있는 자영업자들은 전부 죽으라는 소리다. 무녕왕릉에서 발굴된 정교한 금제장신구를 만들어낸 위대한 백제 장인의 후예들이 지금은 기업형 슈퍼마켓 매장의 계산대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바코드를 긁고 있다.
 
서울로 서둘러 올라가야 했기에 내가 태어났던 공주산성과 맞닿은 동네에는 아쉽게도 들르지 못했다. 어쩌면 안 들른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금강을 파헤치는 포크레인 숫자만 시야에서 더 늘어났을 테니까. 행정수도로 가야 할 포크레인과 불도저들이 전부 이리로 몰려온 모양이다. 공무원도, 중장비 기사도 한국에서는 영혼이 없어야 해먹을 수 있는 직업일 게다. 제정신 가지고는 4대강 사업에 결재권자로도, 현장인력으로도 참여할 수 없는 탓이다.
 
터미널 근처에는 ‘공주 출신’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국무총리 취임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나는 정운찬 씨가 공주를 위해, 충청도를 위해 한 일이 뭔지를 모르겠다. 메이저리그서 뛰고 있는 박찬호와 LPGA에서 활약하는 박세리는 고향의 후배들에게 꾸준히 장학금을 줬다는데. 야구광으로 알려진 정운찬 씨가 좋아하는 구단은 서울에 연고지를 둔 두산 베어스이라고 한다. 그가 충청도팀인 한화 이글스를 응원한다는 소식들 들으셨던 분들은 좀 알려주시라.
 
야구팀조차 서울팀을 선호하는 인물을 단지 공주 태생이라는 이유만으로 환영하는 것이 지역주민들의 총합된 여론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저처럼 쓸개 빠진 현수막이 멀쩡하게 나부끼는 한 고향 뒤통수 쳐서 출세하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충청도에서 끊임없이 나오리라는 점이다.
 
나의 이러한 상념의 근본적 배경을 이루는 것은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넘어갔다는 데 있다. 정권이 바뀌었을 때 일어날 걸로 충분히 예상했던 일들이므로 행정수도 사업의 파탄도, 정운찬의 배신도 충격적 사태라고는 칭할 수가 없다. 정말로 충격적 사태가 있다면 한나라당이 정권 잡아도 나라 망하지 않는다고 큰소리를 뻥뻥 쳤던 작자들이 신당을 창당한다면서 꼴불견을 부리는 모습들이다. 후안무치도 이쯤 되면 예술이다. 어디 노벨 철판상 없나?
 
꼴불견의 중심무대는 또다시 추풍령 남쪽 동네다. 추풍령 이남의 고향사랑은 좌파 신자유주의고, 추풍령 남쪽 이외의 곳에서의 고향사랑은 지역주의라 폄하하는 작자들이 신당의 주류다. 신당을 하건 말건 그건 그들의 자유다. 한데 웬만하면 그들 얼굴을 옛날 신라영토 바깥에선 안 봤으면 좋겠다. 그들이 집권했을 때 대한민국에서는 SSM이란 것이 우후죽순으로 번창했고, 행정수도가 물 건너간 현재 공주에 남은 것은 금강변의 중장비들과 시내의 SSM뿐이다.
 
2. 한나라당이 정권 잡아도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대신에 공주와 같은 지방과 영세 자영업자를 비롯한 서민대중이 쫄딱 망할 따름이다.
 
몇몇 진보언론과 민주당이 1년에 수억 원의 출연료를 버는 유복한 방송인들을 편드는 건 솔직히 역겹다. 본질은 한낱 광대에 불과한 유명 방송인들을 기를 쓰고 자르려고 시도하는 이명박 정권도 한심하지만, 지방과 서민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칠 때는 눈길 한번 안 주던 시건방진 존재가 유수의 진보좌파 매체들과 민주당의 전신이라는 열린우리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2MB는 남대문시장이라도 가건만 그네들은 여전히 방송국 주변을 맴돌면서 카메라만 좇고 있다.
 
더욱이 민주당 대표인 정세균 씨는 과거 산자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누구보다도 충실하게 관철시킨 인사다. 그가 이뤄낸 한미 자유무역협정 덕분에 SSM 따위의 대형 유통자본의 횡포를 규제하기가 더욱더 힘들게 되었다. 이명박 정권 국정지지율 50프로의 밑절미에는 정세균의 민주당 체제로 상징되는 강남좌파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다. 보수인 척하는 인간들과, 진보인 척하는 인간들이 문제다. 진짜 보수는 나라를 생각하고, 가짜 보수는 부자만을 생각한다. 진짜 진보는 민중의 밥그릇을 걱정하고, 가짜 진보는 지식인과 유명인의 밥그릇을 걱정한다.
 
사람은 받았다가 빼앗기면 더 약이 오르는 법이다. 약 오른 충청도 민심에 기름 부으려고 등장한 정운찬 총리와, 한나라당이 정권 잡아도 나라 안 망한다고 호언장담하던 어제일은 깨끗이 잊고서 오늘은 추풍령 남쪽에서 영남신당 호객질에 한창인 정치인들의 앞날에 영광이 함께하기를 바란다.

글쓴이는 시사평론가, <이수만 평전>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09/10/19 [17:59]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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