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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의 쓰나미와 '이명박 쓰나미'의 공통점
장애인 예산은 4대강으로…120분의 공포, 장애인에겐 평생 쓰나미일수도
 
이훈희   기사입력  2009/08/03 [15:22]
어마어마하게 높은 파도가 머리 위를 덮친다. 이 광경에 노인은 망연자실해 달아날 엄두도 내지 못한다. 곧 시체가 물 위를 떠다닌다. 영화 해운대의 섬뜩한 한 장면이다. 

영화는 대마도가 지진으로 침몰하면서 치솟아 오른 쓰나미가 부산을 습격한다는 가상을 전제하고 있다. 때맞춰 좌충우돌하는 인간군상이 진득한 경상도 사투리와 함께 펼쳐지는 이 영화는 문자 그대로 상당히 재미있다. 설경구의 신들린 연기력 또한 120분 내내 볼만하다.

알고 보니 해운대는 12세 이상이라면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어떤 장소에서 관람하느냐의 차이는 있다. 함께 간 장애인 지인, 친구 등 3명은 모두 관람석 제일 뒤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 봐야 했다. 장애인 관람석이 없던 탓이다. 이쯤 되면, 해운대만 재난 영화가 아니라 상영되는 영화관도 재난급이다.  

영화 해운대에 장애인 배우가 없는 진짜 이유

자세히 뜯어보면 해운대에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윤제균 감독의 마인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해운대에 장애인이 입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백사장에 나무판으로 길만 만들어주면 장애인만이 아니라 임산부와 노인도 쉽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걸 행정 관계자만 모른다.

그런데 영화에선 바닷가 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 어디를 봐도 장애인이 안 보인다. 그 이유 또한 부산은 장애인이 이동하기에 아주 불편한 도시라서 아예 외출을 안 하는 수가 많은 데 있다. 
 
▲ 영화 <해운대>의 한 장면.     © <해운대> 공식 홈페이지

예컨대, 2008년도 지하철 엘리베이트 설치율은 부산이 37%로 전국 최하다. 이 때문에 지하철에서 휠체어 안전사고가 빈발해 역무원의 스트레스가 심각하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어쨌든 수많은 남녀노소가 엑스트라로 등장한 이 영화에 오로지 장애인만 빠졌다는 건 재난사고가 비장애인만의 재난인 것으로 잘못 인식되게 한다. 과연 그럴까?

쓰나미 닥치면 장애인은 앉아서 사망, 그러나...

해운대는 2004년에 발생한 인도네시아 대지진에 이은 쓰나미를 배경으로 한다. 30여만명이 사망하고, 500만명의 이재민을 낳은 이 끔찍한 사건은 세계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발생시킨 지진 해일로 기록되었다.

이 와중 한 부족은 바닷물이 빠져나가는 현상이 쓰나미라는 걸 알고 재빨리 산으로 피신해 한 명을 제외한 전원 살아남아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조상 대대로 ‘쓰나미에 대한 경보’가 전해져 내려와 전조 현상을 미리 파악했다는 것. 동물 역시 초감각적으로 일찌감치 숲과 산으로 피신했다는 뒷이야기도 전해졌다.

그렇다면, 산으로 대피하지 못해 사망한 그 한 명은 도대체 누구일까. 장애인이다. 해석해보면, 분초를 다투며 피신해야하는 상황에서 장애를 겪는 사람은 무거운 짐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조상 덕분에 비장애인만 살아남았다.

부산에 실제로 초대형 쓰나미가 닥친다면 장애인의 대부분은 앉은 상태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요행히 운수가 좋아 살아남는 건 상상조차 어렵다. 해운대에선 살아남은 사람들이 높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 헬기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데, 모두 비장애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장애인은 건물 옥상에 자력으로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게 하나 있다. 이 사회가 워낙 폐쇄적이라 다수의 중증 장애인은 물 맑고 공기 좋은 저 높고 깊은 산골의 시설에서 살고 있다는 그것.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는 분의 말을 들어보면, 혈액순환을 위해 가끔 몽둥이 찜질도 해주고, 어떤 곳에선 성 경험이 없는 장애 여성을 위해 강간까지 한다지만 쓰나미가 와도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으니 이를 이 나라 정부의 선견지명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장애인 위한 안전관리 시스템 부재

혹자는 해운대를 보며 공포와 감동을 동시에 받았을지 모른다. 한국 사회에 안전사고나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위기관리 시스템이 있기는 하지만, 거수를 수 없는 자연의 힘 앞에 무력함을 느껴야 하니 이것이 바로 공포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장애인에겐 안전관리 시스템이 아예 없다. 지진, 홍수, 한발, 폭설, 강풍 등 자연재해와 화재, 붕괴, 폭발, 추락 등 인위재난이 매일 장애인의 삶을 유린하고 있지만 그때마다 공수표로 남발되는 대책 수립이 전부다. 매일매일 사고의 위험을 안고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피 말리는 일인지는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른다.

이런 점에서 해운대는 가상의 시나리오이고 120분 동안의 공포이지만, 한국 사회는 장애인에게 평생 동안 해운대일 수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이래 장애인 예산은 4대강 예산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어 이 나라의 복지시스템은 현재 이명박 쓰나미 효과를 톡톡히 맛보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은 서울에서 장애인 자립센터를 운영하는 한 전신마비 장애인이 한 말을 다 같이 음미해보자.

“활동보조인과 함께 지하철을 탔는데 불이 났다는 경보가 울리는 거예요. 사람들은 출구쪽으로 막 뛰어갔지요. 그런데 난 갈 수가 없었지요. 활동보조인 얼굴을 보니 완전히 겁에 질려있더라고요. 날 두고 갈 수도, 함께 갈 수도 없는 처지라서 그런 거지요. 가라고 했어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죽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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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8/03 [15:2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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