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을 '빨갱이의 꼭두각시'로 규정한 한나라당 허태열 최고위원의 발언에 대해 민주당이 명백한 '흑색선전'으로 규정하고 허 최고위원의 공개사과를 촉구하고 나섰다.
특히 '문제 발언'의 직접적 당사자인 민주당 뿐 아니라,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등 전통적 진보정당들 조차 한나라당 지도부의 이념 공세를 강도높은 어조로 비판하고 나서, 허 최고위원의 '말 한마디'가 정치권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오고 있는 양상이다.
■ 한나라당의 도 넘어선 발언…허태열 "좌파 꼭두각시", 윤상현 "좀비세력" 민주당 우제창 원내대변인은 16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전날 허 최고위원의 발언을 지적, "케케묵은 색깔론으로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덮으려는 한나라당 허태열 위원장의 망언에 분노를 느낀다"고 날선 비판을 가했다.
우 원내대변인은 "한나라당은 야당에 대한 흑색선전을 즉각 중단하고, 국민과의 소통 단절부터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한나라당 허태열 최고위원 © CBS노컷뉴스 | |
이와 관련, 국회 지방행정체제개편 특별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 전원(오제세, 최규성, 최철국, 박기춘, 우윤근, 백제현, 강운태)은 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허 최고위원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우 원내대변인은 "만약 허태열 위원장의 공개사과가 없을 시에는 특위 회의에 불참 할 것"이라며 "허태열 위원장의 사퇴를 적극 추진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허 최고위원은 15일 오후 한나라당 부산시당이 주최해 부산 해운대구 아르피나에서 열린 국정 보고대회 특강을 통해 "우리가 싸워나가야 할 일은 좌파들의 끈질긴 저항"이라며 "요즘은 좌파라고 하지만 좌파는 빨갱이"라고 잘라 말했다.
나아가 그는 민주당을 직접 거론, "좌파는 80%의 섭섭한 사람을 이용해 끊임없이 세력을 만들고, 이명박 대통령을 흔들고 있다"며 "거기에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게 민주당"이라고 '빨갱이의 꼭두각시'로 규정해 논란을 자초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깔아 놓은 좌파들의 인프라를 걷어내려면 한나라당이 20년간은 집권해야 한다"라고 까지 말하는 등 이념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밖에도 같은날 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 역시 "민주당은 상습적인 국회 파괴행위로 온 국민과 나라에 해만 끼치고 있다"며 "혼란과 갈등을 조장하는 악성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좀비세력"이라고 선을 넘어선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 진보신당 "진보세력이 빨갱이라면, 허태열은 넥타이 맨 스킨헤드"
한편 허 최고위원 발언에 '발끈'한 곳은 '빨갱이의 꼭두각시' 소리를 들은 민주당 뿐 아니라,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등 전통적 진보정당들도 마찬가지.
진보신당 김종철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3공, 5공 때도 아니고 21세기에 집권여당 최고위원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오니 역시 한나라당의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다"고 부적절한 발언이었음을 지적하고 나섰다.
강도높은 어조로 한나라당을 비판한 김 대변인은 "진보세력이 빨갱이고, 민주당이 빨갱이 꼭두각시라면, 허태열 최고위원 스스로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반문한 뒤, "우리가 보기에는 넥타이 맨 스킨헤드에 다름 아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치사상과 이념의 자유가 보장돼 있는 인권 선진국들에선 이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예외 없이 '스킨헤드'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같은 '기준'에서 봤을때 허 최고위원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는 비판인 셈.
■ '자유주의진보연합' 창립?…"진보라는 말 입에도 올리지 말라"
특히 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출범한 '자유주의진보연합'을 거론, "한나라당의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탓인지, 자유주의 진보연합이라는 단체가 출범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소위 좌파진영이 진보를 참칭한다고 주장하고 진보의 적들과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이들을 보며, 진보의 가장 기본적 덕목인 상대방의 사상과 입장,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그 덕목이 없다면 진보라는 말은 입에도 올리지 말아야 한다"며 "허 최고위원과 한나라당이 하루 속히 빨갱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바란다"고 일침을 가했다.
뉴라이트 중심의 '자유주의진보연합' 창립…"종북주의 세력이 혼란의 주범"
실제로 최진학 뉴라이트전국연합 정책실장이 공동대표를 맡은 '자유주의진보연합'(약칭 진보연합)은 이날 오후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출범식을 가졌다.
이들이 내건 기치는 '좌파와 차별화된 진보'. 뉴라이트 계열의 보수진영 인사들이 진보를 표방한 새로운 형태의 시민단체를 결성한 것으로, 향후 전통적 진보계층과의 대립 양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 자유주의진보연합은 16일 조선일보 등 주요일간지에 광고를 싣고 "자유주의가 진정한 진보"라고 주장했다. © <미디어오늘> | |
앞서 이들은 16일 자 <조선>, <중앙>, <동아> 등에 5단 광고를 싣고 "민주당,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전교조, 진보연대가 '진보'냐"고 반문한 뒤, "자유주의가 진정한 진보"라고 자신들의 단체 결성 배경을 우회적으로 거론했다.
진보연합에는 최 공동대표 이외에도 임헌조 전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무처장과 변철환 뉴라이트전국연합 대변인 등 보수성향의 인물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들은 이날 창립선언문에서 "자유를 향한 전진이 진정한 개혁"이라며 "마르크스 레닌주의 등 낡은 사상과 결별하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진보라고 부르는 세력은 진정한 진보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자유와 행복이 넘쳐나는 사회를 만들도록 자유에 역행하는 진보의 적들과 일전을 불사할 것"이라며 "이런 노력이 북한을 해방하고 통일 선진조국을 건설해 낼 거라 확신한다"고 자신감 마저 드러냈다.
이들은 신문 광고를 통해서도 전통적 진보세력을 강력 비판, "김정일 집단의 꼭두각시가 되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부인하는 종북주의 세력, 2007년 대선과 작년 총선 결과에 불복하는 세력들이 바로 용어 혼란을 부추기는 주범"이라고 밝혔다.
또 자신들이 규정한 '진보'의 진정한 의미를 설명이라도 하듯, "대한민국은 심각한 용어혼란에 빠져 있다"며 "이 땅에서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들은 역사 발전을 가로막는 '수구'"라고 까지 힐난했다.
■ 민노 '발끈'…"'자유주의 진보연합'은 죽었다 깨어나도 진보될 수 없어"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국회 정론관에서 브리핑을 갖고 "순간적으로 '자유주의 보수연합'을 잘못 들은게 아닌지 귀를 의심했다"며 "빨갱이라고 핏대 세울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진보진영의 성과 이름을 도용하는 것을 보니, '수구'나 '보수'는 저들도 듣기 싫은 모양"이라고 각을 세웠다.
우 대변인은 "이들은 뉴라이트 출신 인사들이 주축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름을 도용한다고 역사성과 정체성까지 도용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비꼬았다.
또 "'자유주의 진보연합'은 죽었다 깨어난다 해도 진보단체가 될 수 없기에 존재와 욕망의 모순과 갈등이 끝끝내 그들을 괴롭힐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