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탄핵과 무기력했던 좌빨 "좌빨은 왜 노무현을 추모하지 않나요?"
이 질문이 참 원색적이여서 좋네요.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옛 사실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분명하지 않았던 것들이 분명해진 지금의 상황이 가지는 어느 정도의 결과론적 해석에 대해서도 몇 가지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의 대답이 공염불이 되지 않기 위해 이 정도는 서로 간에 받아들이는 걸로 알겠습니다.
결론으로 아주 급히 내려가보면, 근본적으로 '좌빨'(좌파 빨갱이)은 국가를 부정합니다. 세련되고 정치적으로 건전하게 말하자면, 좌빨은 국가를 넘어서려 합니다. 그것은 국가-권력의 역사가 무엇인가를 좌빨들이 숙고함으로서 얻게 된 결론입니다. 이에 대해서 여러 이론서를 읽는 것은 큰 도움이 되겠지만 조금 힘드시다면 삐딱한 역사책을 읽어봄으로써 가벼이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국가 권력을 통해 인간의 삶이 나아졌는가에 대해 좌빨은 회의적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 현실과 그에 따른 제약을 어떻게 지금의 국가 권력 형태보다 낫게 할 것인가에 대해 좌빨들은 늘 고민하고 행동합니다. 국가 권력이 인간 삶에 제공하는 선택지란 무엇인가의 문제에 있어서 좌빨은 직접행동으로 뱀처럼 교활하게 돌파하고자 합니다. 노무현 추모라는 긴장의 한 축이 여기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충분히 설명되기를 희망합니다.
자, 2004년으로 돌아가보죠. 당시 탄핵이 있었습니다. 대중은 거리로 뛰쳐나갔죠. "조중동을 몰아내자.", "한나라당 폭파하자.", "민주주의 사수하자."가 대중의 주요 요구였습니다. 탄핵이 통과되던 날 바로 사람들은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 모였습니다. 당시 민주당을 사수하며 열린우리당을 비판하던 추미애에게 "추미애 씨XX"이라는 욕을 공개적인 집회 장소의 발언자가 할 정도로 격양되어 있었죠.
이런 분위기는 차츰 수위를 조절하게 되어 주요 타격 지점을 한나라당과 조중동으로 잡고 수비 지점을 민주주의에 두는 구도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대중은 봇물처럼 거리로 분노와 열의를 가지고 뛰어나왔죠. 이를 '즉자적 반응'이라고 하는 고색창연한 수사법도 있습니다.
당시 좌빨들은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어요. 우선 대중들의 분노가 풀릴 지점들이 너무 뻔했기 때문이죠. 곧이어 17대 총선이 있었거든요. 대중과 함께 거리로 나가자니 결국 이는 총선에서 정당정치로의 수렴하는 왜곡 구조가 너무나도 선명했습니다. 그리고 거리로 나가지 않자 하니 한나라당과 조중동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죠. 좌빨들의 이러한 머뭇거림(이를 '대자적 반응'이라고 하는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앞에서 노빠들은 '행동하지 않는', '기회주의적인', '무능력한'이라는 딱지를 좌빨들에게 붙여줍니다. 물론 이 딱지의 참된 주인이 누군지는 머지 않아 가려지게 됩니다.
'화려한 부활' 이후 노무현 정권의 '지지층 배반'어찌 되었건 탄핵 이후 대중은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화끈하게 복권시켜 줍니다. 헌정 이래 최초로 여대야소의 국면, 청와대와 의회를 같은 깃발 아래 있는 정치세력이 잡게 된 것이죠. 그리고 이어지는 행보는 한미FTA, 추가 파병, 4대 개혁입법 무산 등 '삑사리'로 이어집니다. 노태우 시절보다 더 많은 '구속 노동자', 대한민국의 이름 없는 소모품 이주노동자의 인간 유린을 뺄 수 없겠죠. 아, 건국 이래 최대의 부흥집회를 열었던 400조의 부동산 가격 상승과 주식시장 숫자놀음도 잊을 수 없네요. 노무현 정권 아래 새로이 돈 잘 벌고, 등 따숩고, 배부른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그들은 왜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았을까요? 헛웃음이 나옵니다.
"조중동과 한나라당 때문에 뜻을 펼치기 힘들다."가 위의 반론에 대한 재반론의 주요 골자였습니다. 정말 그랬을까요?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의 여대야소 국면이었습니다. 반대는 한나라당과 조중동에 더 심해졌죠. 한나라당은 결국 차떼기당이 뽀록나고 조중동은 그거 땜질하느라 신문인쇄 롤러에 물집 잡힐 때였습니다. 그러나 4대 개혁입법은 걸레가 되었고, 국가보안법은 아직도 존속합니다. 밀어붙였어야죠. 그 힘이 노무현의 정치적 죽음과 부활의 위대한 서사 끝에 온 것이라면 흥분해 날뛰지 말고 밀어붙였어야죠. 너무 무능했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우리는 한나라당처럼 강압적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우리는 민주주의적 원칙을 지킨다."가 무능론에 대한 주요 반론입니다. 근데 민주주의가 뭔데요? 민주주의는 인민에 의한 통치 아닙니까? 대의민주주의는 인민이 직접 통치하기 힘들고 쪽수도 많아서 여러 문제가 있으니 몇몇 사람에게 권한을 집중해서 효율적으로 통치하자는 것이잖아요. 그렇게 대한민국 국민이 국회와 청와대에 자신들의 권리를 보내줬다면,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은 '의무'입니다. 국민의 의지가 당신들을 임명한 건데 한나라당과 조중동에게 어떤 정당성이 있다고 판단했는지 아직도 의문입니다.
대화와 합의로 이끌어 가는 것은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할 때의 일이죠. 대화와 합의는 민주주의의 최대 원칙이지 최소 원칙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지금도 맨날 한나라당에 떡실신 당하고 국민에게 굽신하며 징징대고 있죠.
진중권의 이중적인 '노비어천가'2009년입니다. "노무현 정권의 무능이 결국 이명박을 당선시켰다." 이게 몇 달 전의 언론의 주요 논조였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사망 이후 언론은 죄다 노무현 빨아제끼기에 바쁩니다. 벌써 몇몇은 입술이 퉁퉁합니다. 유명 만화가들은 열심히 노무현 얼굴 누가 누가 잘 그리나 테스트하고 자빠졌습니다.
볼 만하다고 믿었던 <프레시안>은 연일 노비어천가에 "누가 누가 노짱 죽음 많이 안 다룬대요~♡"라며 네티즌에게 굽신대며 고자질하기 급급합니다.
진중권은 정몽헌 씨가 추락사할 때는 "명예 때문에 자살하는 거잖아요. 자살하는 경우 자기 명예가 부당하게 구겨졌을 때 하는 건데 그게 위선이죠. 한마디로 그렇게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런 일 안해요."라고 하더니, 노무현에 이르러 "가신 분의 명복을 빕니다. 다른 건 몰라도, 당신은 내가 만나본 정치인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분이었다. 참으려고 하는데 눈물이 흐른다."라고 하네요. 시간의 흐름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운 미학의 오딧세이! 진중권이 사람 되었네요.
그런데 내용을 한 꺼풀 더 들춰봅시다. 노무현은 매력적이야, 노무현은 서민적이야, 노무현은 타협을 안 해, 노무현은 아버지 같아, 노무현은 자상해, 노무현은 푸근해... 네. 맞습니다. 맞고요. 노무현은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요? 그게 우리가 그를 선택한 정치와 무슨 상관인가요?
그 수많은 웹툰, 기사, 논평, 회고 속에서 노무현이 어떠한 정책을 펼쳤으며 그것이 지금도 우리의 삶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내용이 있던가요? 그의 인성과 성품과 의지가 아닌, 그가 정치로서 행한 바를 묻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중은 노무현의 매력과 성품에 기대하며 투표한 것이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에게 기대하고 투표를 한 것이니까요. 어디에나 공허한 인성(人性)에 기반한 지저분한 품성론만이 나올 뿐 정책과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유시민의 노란 넥타이 '낚시질'그리고 연일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해 말합니다. 이번 마이크는 민주투사이시고 훌륭한 책의 저자이신 노무현 정권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있더군요. 그분은 한미FTA 의약 분야 협상할 동안 낚시를 즐기며(네. 정말로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국민의 생명권을 미끼로 FTA 대어를 낚는 재미에 푹 빠졌었죠. 그러던 사람이 이제 샛노란 넥타이와 노란 풍선을 들어보자고 다시 한번 낚시질에 나섰습니다. 직접 종이 위에 글을 쓰고 스캐닝을 떠서 포토샾으로 리사이징을 한 다음 사이트에 올리는 능력은 있을지언정 정치와 행정을 할 능력은 하나도 없으면서 말이죠.
'민주주의적 가치'를 외칠려면 불편함과 어려움을 감수하고서라도 그것이 관철되게끔 만들어야죠. 그의 어처구니없는 백바지와 샛노란 몸 차림새 어디에서 민주주의적 가치가 실현되었나요? 노무현 정권은 스스로의 무능을 정책과 행정조직 장악이라는 실력으로 극복하는 것이 아닌, '대통령 중임제', '대연정' 등의 꼼수로 비비적대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이 죽고 다시 사람들이 모입니다. 사람들은 작년의 촛불을 떠올립니다. 질문의 대답자인 저는 2004년의 탄핵을 떠올립니다. 아마 추모와 촛불의 기묘한 2인3각 경기가 펼쳐질 것입니다. 물론 지금의 추도 분위기 속에서도 노빠의 귀환을 우려하는 유의미한 규모의 목소리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마이크를 잡고 있는 것은 봉하마을 식구들입니다. 이명박 정권 이후 자리에서 죄다 물러나 실업률에 한몫하고 있는 그들이 마이크를 쥐어잡고 이번 주말을 어떻게 취업박람회로 만들지 궁금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이미 서울역 광장에서 사자후를 보여주셨으니 죄다 취업원서 쑤셔 넣겠죠.
무능하고 분파적인 '노빠의 귀환'문제는 취업원서를 받아줄 선거가 꽤 멀다는 것입니다. 지방선거가 1년 후이고, 총선은 지금 이등병이 제대해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제 다시 카메라 앞에 얼굴도장 찍고 분위기 만들면서 움직이겠죠.
"민주주의 사수하자.", "조중동이 죽였다.", "이명박은 물러나라." 네. 저도 참 좋아라 합니다. 하지만 노빠들의 복권은 정말 싫습니다. 거리에 나가는 대중의 액션이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무능력하고 분파적이고 자기 잘난 맛에 살아 온 이들을 강화해주는 것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하지만 추도식을 하루 앞둔 지금, "추모만 하세요.", "추도식 끝나면 끝입니다."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것들은 청와대에 있는 설치류들과 그것 들에 접붙어 있는 기생충들 뿐입니다.
좌빨들은 마음이 아픕니다. 전 지구적으로 한계상황에 직면해 대중이 거리로 나오는 오늘의 현실에 그렇게도 고민했다고 하면서 대답을 해주지 못해 스스로의 머리를 찧습니다. 그렇다고 그저 멍하니 있어야 할까요? 누구도 아니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멍하니 있기 싫다고 움찔움찔거리다가 '노무현 기생파'에게 사회적 힘들의 방향을 돌리게끔 하는 역할을 하기도 싫은 것입니다.
'좌절한 2004년'의 기억이 불편할 뿐좌빨은 노무현을 추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추모라는 행위의 효과를 보려 하는 것입니다. 왜냐구요? 지금까지 설명했잖아요. 2004년 말이죠.
물론 또 좌빨을 까는 이들은 그러겠죠. "좌빨들은 언제나 그래." 그리곤 의기양양하겠죠. "우리들만큼 민주화에 피 흘리고 땀 흘린 세대가 어디 있는가? 우리는 온몸을 바치고 죽고 다치면서도 민주주의를 사수했다." 네. 그래서 보상 받으셨잖아요. 정권도 잡아보고, 자제분들 해외 유학도 보내고, 적절히 아파트도 장만하고, 검사 친구, 의사 친구에 대기업 부장 하고 있잖아요.
이후의 세대들에게는 무기력하고, 연대의식도 없고, 사회의식도 없고, 공부도 안 한다고 딱지 붙이고, 윗 세대들에게는 권위적이고, 촌스럽고, 전쟁세대라고 딱지 붙였잖아요. 그 딱지 죄다 긁어모아 자살률 세계 최강 남한반도 골목대장 했잖아요. 정치적으로 무능하고 내용 없는 이상에 사로잡혀 있던 그들이 말이죠.
그럼 좌빨들은 뭐하냐구요? 용산 지키고, 국보법에 털리고, 부당 노동계약·해고에 맞서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할려고 오늘도 대가리 박고 있죠. 티도 안 나요. 안 보여요.
'소인배를 미워하기 위해 시체를 들썩이다'자, 그들이 복귀하고 지금의 이 상황에서 무엇을 쥐려 할까요? 주어진 권력을 만인을 위해 선용하는 능력 하나 없이 대중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막걸리를 목에 부으며 아침이슬을 부르던 그 감수성으로 웹 상의 타이핑보다 손글씨가 더 정감 있다고 계산하여 호소문을 올리는, 철저히 옛 성공모델을 못 버리는 그들이 말이죠. 우리가 살아나가야 할 공동체에 대한 그림 없이 -죽음을 슬퍼하는 소소한 윤리적 보상이 삶의 위대한 가치가 되는 그림 말고- 그들이 돌아와서 얼굴을 들이민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감성의 정치이건 감동의 정치이건 나발이건, 무능과 분열과 혼돈으로 점철된 영욕의 5년을 잊지 못해 침 흘리며 '소인배를 미워하기 위해 시체를 들썩이는' 짓거리는 도저히 못 봐주겠습니다. 그건 정치인이 아닌 '인간 노무현'에 대한 예의도 아닙니다. 날 좋다고 꿀을 맛보려는 흰개미처럼 땅 위로 나옵니다. '자숙하고 반성하지 않는다.'며 전두환을 향하던 그들의 손가락을 안으로 구부려뜨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좌빨 보고 거리로 나오라고요?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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