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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입이나 쳐다보는 인터넷 논객들
신권언유착시대, 정치권에서 벗어나 이슈를 제기해야
 
변희재   기사입력  2003/09/29 [13:57]

안티조선과 노무현을 발굴한 인터넷 논객

나는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 당시 내가 다른 논객들과 함께 운영했던 서프라이즈에 <신 권언유착의 시대, 진중권의 왜곡된 비판>이라는 글을 올렸었다. 88년의 5공비리 청문회 때부터 지지해온 노무현이, 국가 최고의 권력기관 대통령에 오르면서, 과연 개혁적 논객들과 함께 운영하는 사이트의 포지션을 어떤 식으로 잡아야할지, 고민 끝에 쓴 글이었다.

그 글에 '진중권의 왜곡된 비판'이라는 부제는 그가 인터넷에서 줄기차게 친 노무현 논객의 편향성과 종속성을 비판했기에 그에 대한 반론형식을 취하면서 붙인 것이었다. 나는 진중권의 진정성은 전혀 인정하지 않지만 그가 던진 문제의식 만큼은 스스로 성찰해 본 셈이다.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난 지금, 그 문제의식은 더욱 더 깊어갔다. 노무현 정권 탄생 이후에 현실 정치판과 인터넷 정치 논객판의 관계가 너무나 기형적으로 변해버렸다.

▲인터넷논객1세대들은 틈새이슈를 잡아 제기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위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안티조선 운동이다     ©안티조선우리모두홈페이지
내 기준으로 볼 때, 인터넷 1세대 논객들은 제도권에서 이슈가 되지 않는 틈새 이슈를 잡아 제기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러다보니 주로 여성, 군대 등 사회관련 이슈는 거의 100% 인터넷을 통해 제기되고 그 이슈를 제도 언론에서 따라간다. 그 대표적인 이슈가 바로 안티조선 운동이었다. 물론 안티조선 운동의 발상자는 전북대 신문방송학과의 강준만 교수이지만, 안티조선 운동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곳은 인터넷이다. 혹시 진중권 같은 사람이 안티조선 우리모두 사이트에 글을 몇 편 썼는가에 따라 운동참여여부를 판정할까, 미리 말하지만, 대자보, 더럽지, 토로, 등 인터넷 대안매체 창간이야말로 가장 능동적인 안티조선 운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모두에 글 좀 썼으니까 안티조선 운동을 한 것이다라는 단세포적 발상을 하루빨리 버릴 수 있어야 보다 업그레이드 된 안티조선 운동을 지속할 수 있다.

그와 똑같은 측면에서 정치판의 아웃사이더 노무현을 발굴한 곳 역시 인터넷이라 말할 수 있다. 노무현이라는 인물은 조중동을 비롯하여 그 어떤 제도 언론에서도 다루지 않은 철저한 주변 정치인이었다. 특히 조선일보에서는 노무현에 대한 보도 자체를 막아버렸을 정도였다. 이런 노무현이라는 인물의 개혁적 가치를 미리 알아보고 띄운 일을 한 사람들이 바로 인터넷 정치논객이었다.

그래서 안티조선은 노무현과 함께 묶이고, 그 밀접하게 연관된 이슈들, 서울대를 비롯한 학력차별 문제, 지역차별 문제, 방송개혁, 서울중심주의 문제 등등 역시 인터넷 논객들은 제도 언론과 현실 정치권과 상관없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슈들을 끊임없이 개발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제도언론 및 현실정치권과 인터넷 논객들 사이에는 일정한 긴장감이 조성되는 것이고, 인터넷 논객은 현실보다 한두 발짝 더 앞에서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전위부대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인터넷 논객은 노무현에 줄을 댄 게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
대선 전과 비교해서 대선 후의 인터넷 논객 및 인터네 칼럼 사이트의 위상이 높아진 이유도, 노무현이라는 대통령에 줄을 섰기 때문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의제를 대선이라는 기간 동안 노무현이라는 인물과 함께 세상에 던져주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언론으로 말하자면 의제설정 능력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신 권언유착의 시대, 진중권의 왜곡된 비판>이라는 글에서도 이런 주장을 했었다.

"논객을 평가할 때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판단을 내렸느냐가 아니다. 그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 진정성이 있는가, 그리고 왜곡과 조작이 있는가, 또한 그 판단의 결과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가, 바로 이런 점들을 따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리고 논객의 글에서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실을 조작한 부분이 발견된다면, 그때야말로 무서운 도덕과 공정의 칼을 휘둘러야 한다. 사소한 왜곡이라도 나오면 바로 시장에서 퇴출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양심을 판단의 기준으로 세운 논객의 공정성이다. 편향된 목적의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기까지 가게 된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바보 노무현이 대통령 노무현이 되어도 내 글의 논조가 크게 바뀌지 않을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권언유착의 시대에 편향된 글을 써나가는 논객으로서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어차피 인터넷 논객들은 노무현에 줄을 선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든 말든, 우리는 우리가 해오던 것을 계속 하면 되는 것이지, 노무현이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해서 갑자기 방향성을 바꿀 이유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가 해오던 것, 그게 무엇인가?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띄우면서 함께 제기해왔던 안티조선, 서울대, 서울중심주의, 지역차별, 반전평화, 남북경협, 방송개혁 등등 묻혀 있는 사회적 이슈를 평소처럼 꾸준히 만들어내는 것 아니던가?

자, 그럼 지난 9개월 간, 과연 우리가 이런 역할을 충실히 해왔는지 성찰해보자. 결론적으로 나는 절망적일 만큼 인터넷 논객들이 본업을 잃고, 청와대와 현실정치판에 덩달아 춤추며 날뛰고 있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대선 전에 비해 월등한 영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지난 9개월 간, 대선 전에 만들었던 이슈를 꾸준히 제기한 것이 단 한 건도 없다.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안티조선이라는 이슈를 만들어냈던 인터넷 논객들이 그때보다 10배 이상의 영향력을 갖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단 하나의 사회적 이슈도 만들어내지 않았던 것이다.

청와대와 정치권에 종속되는 논객들

좋다. 그건 능력이 안 돼서 그렇다고 치자. 내가 더욱 더 심각하게 보고 있는 건, 1차 파병논란, 특검, 신당, 2차 파병논란이 거급되면서 인터넷 논객들이 정치권에 철저히 종속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스스로 이슈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와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마디 하면, 그 말 가지고 비판을 하던지 응원가를 불러대는 일만 지루하게 반복되고 있다. 특히 신당이 추진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더 심화되고 있다.

나는 최근 들어서 도대체 인터넷 논객이 왜 필요한지 회의적인 생각마저 들 때가 많다. 모든 판단을 노무현에게 맡겨두고, 노무현이 판단하면, 북치고 꽹과리 치며 박수치고 응원하면 되는 것이지, 논객 스스로 판단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아무리 정권을 만들었다 스스로 착각하고 있다 해도,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갑갑하기만 하다. 이 정도면 군사정권 시절의 어용기자를 능가하는 어용논객이라 불러도 그리 큰 문제가 될 것 같지가 않다. 스스로 줄을 잘 서서 한 자리 할 수야 있겠지만, 5년이고 10년이고 인터넷 대안언론 키워보겠다는 사람들에게는 막대한 타격만 줄 뿐이다.

물론 나는 논객의 정치권 종속 현상이 이런 질낮은 어용논객들만의 책임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정치권에서 신당논의로 너무 오래 끌고 나가다보니, 논객들 스스로 이미 정치인의 사고에 젖어버린 듯하다. 비판하는 쪽 역시 반대파의 이해관계를 염두에 둔 글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청와대에 충성경쟁을 하고 한쪽에서는 선명성 경쟁을 한다. 그러면서 그 사이에 뼈다귀만 남은 현실정치만 있을 뿐, 정작 중요한 사회적 이슈는 죄다 죽어버린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개혁은 총선 이후에 한다고. 나는 인터넷 논객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쉽게 떠들고 다니는 걸 들을 때마다 역겹기만 하다. 논객이 정치인인가? 총선이 논객과 무슨 상관이 있는데 개혁을 총선 이후로 돌리자는 판단을 내리는가? 지금 인터넷 논객의 지위가 그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혁을 이야기하려 해도 정치권의 입이나 바라보고 있다가, 그들이 먼저 해주면 뒤따라가겠다는 말을 어떻게 그리 당당하게 할 수 있냐는 말이다. 그러다 총선에서 대패하면 개혁이고 뭐고 다 내던져버릴 것 아닌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파병이 논점으로 걸려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이 일찌감치 결정해버려 시작부터 찬반으로 갈려진 1차파병 논란 때와는 달리, 여론을 어떻게 끌고 나가느냐에 따라 파병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럼 인터넷 논객이라면 당연히 매일같이 파병반대와 남북경협을 중심으로 한 평화 이슈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은 친노와 반노, 그런 저차원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문제마저도 정략과 맞물리면서 인터넷 논객들이 전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대선 전이었다면 [파병반대] 이슈가 불같이 올라왔을 텐데 말이다.

인터넷 논객이 제도언론사의 기자들보다 우월한 점은 독립성이다. 조직논리와 상관없이 스스로 양심에 따라서 이슈를 만들어 나간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인터넷 논객들이 청와대와 정치권의 응원부대 역할을 하게 되면, 지금까지 쌓아온 인터넷 논객들의 위상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인터넷 논객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나는 그래서 총선이 더 걱정된다. 총선 때는 또 얼마나 혼탁한 응원전을 벌여댈지, 우려스럽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지 말고, 개혁의 원칙을 세워 정치권이 그 원칙에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그들을 제어하는 본래의 역할을 다시 수행해야 한다. 그러한 원칙 하에서 스스로의 신념에 따라 선택한 당파성에 따라 응원을 해야 현실정치권과는 다른 담론을 생산할 수 있는 법이다. 그렇지 않을 바에야 정치인이 웹사이트 만들어 운영하면 되는 것이지 무엇 때문에 논객 사이트가 필요하겠는가.

신당을 지지하더라도, 신당에 가지 않은 정치인에게 인신공격을 퍼붓는 수준의 글쓰기를 하는 논객은 그야말로 시장에서 퇴출시키고, 정말로 신당이 국민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정책적 방향과 원칙을 제시하는 논객이 새롭게 등장해야 한다. 신당과 민주당 모두에게 제대로 된 정당을 만들게끔 원칙을 제시하고 여론을 압박해나가는 것이 논객이 할 일이지, 대통령과 정치인 뒤에서 응원가나 불러대는 게 논객의 업이 아니란 말이다.

지난 대선이 끝난 직후 97년 대선 때부터 당파성과 공정성에 관한 고민을 했던 강준만 교수는 <결과에 의한 정당화에 반대한다>([월간인물과사상] 2003년 1월호)라는 글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선의의 지식인의 경우 이런 고충이 있다. 모든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이론과 일관된 논리를 세워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네티즌들 가운데엔 웬만한 유명 지식인들보다 탁월한 지적 능력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매우 많지만, 그들은 비교적 그런 부담에서는 자유롭다.
 지식인의 그런 성향이 늘 옳다거나 더 정당하다는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니다. 지식인들의 어쩔 수 없는 한계는 피차 인정하자는 것이다. '대접'과 '존경'을 받기 위해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원칙을 역설하는 지식인들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자기 내면의 신념 체계에 충실하면서 '원칙'과 '현실' 사이의 조화를 기하고자 애쓰는 지식인들도 있다."

나는 인터넷 칼럼 사이트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실명을 걸고 글을 쓰는 논객들은 앞으로 이러한 고민들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정치인을 공중에 붕붕 띄우다가, 자기 편에 붙지 않았다고 온갖 인신공격을 퍼붓는 작태, 과연 조폭언론, 아니 현실조폭보다 인터넷 논객이 낫다는 근거를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최소한의 자신의 신념에 바탕을 둔 양심의 원칙과 일관성, 과연 정말 이런 것들이 있었던가? 인터넷 9년차 논객이 느끼기에 지금 정치판과 함께 논객판이 덩달아 줄서기에 흔들리며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알아두기 바란다.

* 필자는 시대소리(http://www.sidaesori.com/) 운영위원입니다. 대자보와 시대소리는 연대 매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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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9/29 [13:5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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