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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장관' 힐러리 클린턴의 요란했던 아시아 순방
정치인 출신으로서의 '언행' 논란... 오바마 외교정책 조율에 걸림돌 우려
 
박종률   기사입력  2009/02/22 [13:08]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의 취임 후 첫 아시아 4개국 순방일정이 끝났다. 한마디로 클린턴의, 클린턴에 의한, 클린턴을 위한 순방 그 자체였다.
 
클린턴은 가는 곳 마다 구름 청중을 몰고 다니며 파격(破格)으로 화제를 뿌렸고, '국빈급' 대우를 받으며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한껏 뽐냈다.
 
퍼스트레이디와 연방 상원의원을 거쳐 오바마와 막판까지 대선후보 경쟁을 벌였던 그의 브랜드 파워에 비춰보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방문지는 아시아였지만 마치 세계를 향해 자신의 '파워'를 보여주고, 또 스스로 이를 확인한 1주일이었다.
 
사실 바지를 거의 입지 않는 힐러리 클린턴은 정치적으로 '여성'이 아니다. '슈퍼 장관'으로 불릴 정도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권력분점의 소유자이다.
 
지난해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여성의 정치적 차별을 상징하는 '유리천장(glass ceiling)'을 깨뜨리지는 못했지만 무려 1800만표의 지지를 이끌어 낸 남성보다 오히려 더 남성다운 '정치적 거물'이다.
 
때문에 힐러리 클린턴을 지칭할 때 '그녀'라는 표현보다 '그'라는 말이 더 많이 통용된다. 이 때문일까,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청와대를 예방한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에게 '포옹'으로 환영했지만 이번에 클린턴과의 만남에서는 '악수'로 대신했다.
 
클린턴은 또 이례적으로 이명박 대통령과는 오찬, 아소 다로 일본 총리와는 만찬을 함께 했고, 한.중.일 3국을 방문해서는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선물'을 나눠줬다.
 
클린턴 장관은 "미-일 정상회담은 오는 24일 워싱턴에서 개최되며, 미-중 정상회담은 4월 초 런던 G20 정상회의에서 별도로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공개했다.
 
반면 한-미 정상회담의 날짜는 확정되지 않은 채 "가까운 기간내에 양국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선에서 조율됐다. 
 
특히 클린턴은 한자릿수 지지율로 위기에 몰린 아소 다로 총리를 위해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초청하는 최초의 외국 정상"이라고 치켜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언급은 첫 방문국으로 일본을 선택하며 이른바 '재팬 패싱(미국의 일본 무시)'의 우려를 불식시켰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국무장관으로서 적절한 발언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구도를 언급한 것 또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 언론조차 이 발언에 대해 '초보자의 실수'인지, '신선한 솔직함'인지 의문을 제기했지만 클린턴은 "은둔 왕국의 후계문제를 얘기하는 것을 금기(禁忌)로 생각하지 않으며, 실제 사실을 얘기한 것일 뿐"이라고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
 
그런가 하면 인도네시아에서는 10대 청소년들에게 인기있는 TV쇼에 출연해 격의없는 농담을 주고 받았고, 서울과 도쿄에서는 대학에서 강연했으며, 베이징에서는 교회를 방문하는등 역대 미국 국무장관들의 '외교 행보'와는180도 달라진 '클린턴식 광폭(廣幅) 외교'를 선보였다.
 
클린턴 스스로 부시 행정부의 '하드파워' 외교를 넘어선 '스마트 외교'를 표방했던 만큼 그의 '감성외교', '대중외교'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 방문에서 故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애도를 표하는 발빠른 대처로 한국인들의 민심을 끌어안은 것은 정치인다운 '순발력'을 보여준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오바마 대통령이 중동특사와 아프간-파키스탄 대사의 임명 사실을 발표했던 것과 달리 자신이 직접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특사 임명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치 현직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를 순방한 듯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정치인의 언행'은 자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 외교가에서는 정치인 출신의 클린턴이 김정일 후계구도 발언처럼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의견을 여과없이 발언할 경우 예기치 않은 설화(舌禍)에 휩싸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논란이 일자 미 국무부는 부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클린턴의 발언은 국무부의 의견을 대변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서둘러 진화에 나선 듯한 인상을 남겼다.
 
또 클린턴은 베이징으로 출발하기 전 간담회에서 "중국과 인권문제, 대만-티베트 문제를 다루겠지만 이것이 다른 현안 (기후변화, 글로벌 경제위기, 양국 협력관계 증진)등을 합의하는 데 방해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한 대목도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인권단체들로부터 "미국이 인권을 포기한 것"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오바마 행정부가 이전 부시 행정부와는 다른 직접적인 대화 외교를 표방하고 섰지만 클린턴의 아시아 순방을 계기로 '여성다운' 오바마 대통령과 '남성다운' 클린턴 국무장관의 향후 외교정책 조율여부가 새삼 주목을 받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공식 외유였던 캐나다 방문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클린턴의 '요란했던' 아시아 순방에 사실상 묻혀버렸다.
 
이런 가운데 백악관 재임 시절 클린턴 부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애완 고양이 '삭스'는 지난 2001년 힐러리에게 내쫓김을 당한 뒤 쓸쓸하게 지내다 20일(현지시간) 조용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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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2/22 [13:0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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