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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 10년, 강한언론으로 새출발을 기원하며
[회고] 99년 1월 23일 창간, 대자보 10주년 맞은 소회
 
김철관   기사입력  2009/01/23 [11:16]
현재 이명박 보수 정권의 진보진영 탄압이 가속화 된 가운데 진보 정치 웹진 <대자보>가 열 돌을 맞았다.

대자보(jabo.co.kr)는 98년 말 하이텔, 나우누리 등의 개혁적 피씨(PC) 통신 논객들이 모여 99년 1월 23일 창간했다. 이후 정치, 사회, 언론개혁의 기치를 내걸었고 동성애, 장애인, 비정규직 등 사회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다. 대안언론으로서 인터넷언론을 주도해 왔다.

10년을 거치면서 자금압박, 기사탄압, 기자 퇴직 등 여러 차례 어려운 상황이 닥쳤지만 이창은 발행인 겸 편집국장의 뚝심이 슬기롭게 버티는 원동력이 됐다. 그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이미 <대자보>는 문을 닫았을 것이다. 그는 월급 한 푼을 못 받고 10년간 <대자보>에 올인 했다. 그리고 월급 없이도 오직 <대자보>를 위해 10년을 버티었으니 실업자와 다름없었다.

그는 나와 같은 시대 태어나 비슷한 학창시절을 보냈고, 80년 광주 시민항쟁, 박종철과 이한열 열사 등이 군부독재에 항거하다 쓰러져 간 모습을 어렴풋이 지켜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고 공유하는 나의 영원한 동지이고, 가장 편안한 친구이기도 하다.

내가 <대자보> 이 국장과의 첫 만남의 단초는 언론개혁운동이었다. 아마 2000년 초로 기억된다. 안티조선운동의 성지, 옥천에서 그를 첫 대면했다. 그는 그곳에서 누가 무슨 얘기를 하든 서슴지 않고 답변했고, 설명까지 친절히 곁들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를 지금도 '만물박사'라고 부른다. 그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소유한 사람이다. 물론 그는 박사나 다름없다. 모 대학 역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논문만을 남겨둔 채 그냥 박사를 포기했다. 왜냐면 박사라는 자격증보다도 현실적 사회 문제에 눈을 뜨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정치개혁, 사회개혁, 언론개혁 등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바로 인터넷매체 <대자보>를 창간했고 줄곧 올곧게 활동을 전개해 왔다.

지난 2001년 여름으로 기억된다. <대자보> 근처 베이커리에서 빵을 사가지고 을지로에 있던 <대자보>사무실을 찾았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부쩍 거렸다. 문성, 방의천, 장인기, 변희재, 공희준 등 인터넷 <대자보>논객들이 모여서 뭔가를 토론하고 있었다. 당시 조중동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는 노무현 후보에 대한 얘기였다. 이후 그들은 의기투합해 노무현 후보를 제대로 알리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물론 이들의 도움이 당선에 전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일정부분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것은 조중동을 이긴 인터넷언론이었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대자보>는 지난 2000년 3월 낙천낙선을 주도한 '총선시민연대'의 온라인 지원을 위한 '총선정보통신연대'의 결성을 주도했다. 지난 2002년 10월 대선 직전에는 대자보 구성원 일부가 정치웹진 <서프라이즈> 창간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그 시점을 계기로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민중의 소리>, <참세상>, <참말로> 등의 수많은 진보적 인터넷언론이 탄생하기도 했다. 이렇게 <대자보>와 동지적 관점의 인터넷언론이 많이 늘었다. 바로  <대자보>가 인터넷언론의 외연을 넓혀주는 단초 역할을 톡톡히 했기 때문이다.

이후 <대자보>는 인터넷언론 역할이 커지는 상황에서 순수 독립언론의 어려움을 인식, 여러 다양한 사이트와 연대를 통해 '기사와 주장'이 공존하는 새로운 제3세대형 인터넷언론을 구축했다.

그러나 지난 2004년 4ㆍ15 총선 이후 정치, 사회, 언론 등 각 분야에 격렬한 분열과 대립이 발생하면서 우리 사회가 총체적 변혁기에 접어들었고, 인터넷언론 영역도 확장돼 보다 전문화되고 심층적인 분야에 집중할 필요성도 아울러 제기됐다.

이 같은 시대적 흐름 속에 <대자보> 구성원들은 본래의 창간정신으로 되돌아가 우리 사회의 언론과 사회개혁 분야에 집중하면서 보다 특화된 매체로 자리 잡고 '진보와 정론'을 표방하는 인터넷언론의 역할을 다짐했다.

90년대 PC통신시대부터 인터넷 초창기, 그리고 다양한 인터넷매체가 난립하고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언론의 한 축을 담당해온 <대자보>는 앞으로도 진보와 정론의 관점에서 언론개혁 및 우리 사회의 개혁을 위해 네티즌들의 발언대 역할을 할 것이라고 자부한다. 

최근 10년을 버틴 <대자보>가 문을 닫게 됐다는 소문이 들렸다. 하지만 다행히 헛소문이었다. 이창은 국장이 어느 모임에서 <대자보>의 어려운 여건을 농담 삼아 호소한 말 "10년 째 버티었으니 이제 버틸 힘이 없다"가 와전됐기 때문으로 파악됐다. <대자보>의 어려움은 이전 노무현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진보언론의 어려움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자본이 권력의 눈치를 살피느라 진보매체에 광고를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이겨내야 하는 것이 인터넷언론의 책무이다.

어쨌든 지난 2004년 7월 1일 사이버 공간을 통해 <대자보> 제작단의 다짐은 지금도 유효하다. 10돌을 맞아 당시 인터넷 <대자보>가 사이버 공간에 밝혔던 다짐을 되새겨 본다.

"대자보는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입장에서 언론의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 대자보는 우리 사회의 양심세력 및 소수세력의 입장을 적극 옹호한다. 대자보는 네티즌과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진보적 지식인들을 묶어 우리 사회 개혁을 담당할 네트워크 구축에 앞장서며, 자본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다."

오늘(1월 23일) 바로 <대자보>의 10돌이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제대로 된 진보적 인터넷언론의 지평을 열었으면 한다.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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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1/23 [11:1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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