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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 10년, 독립언론의 가시밭길을 돌아보며
[회고] 지난 10년의 연륜과 역량으로 앞으로 10년을 대처할 힘 길러야
 
정문순   기사입력  2009/01/23 [17:28]
나이 먹은 걸 자각하는 게 싫어 언제부터인가 기념일 챙기는 일에 무심해지거나 건성으로 때우는 일이 잦아졌다. 내 생일도 그렇고, 아이 생일도 그렇고……. 지난 해였던가. 까먹고 넘어가던 생일을 일깨워 준 사람은 고향의 어머니였다. 나이 듦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해놓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열 손가락 가득 채우게 된 ‘대자보’의 나이도 여기에 이름 걸친 지 오래 되는 내게는 나이 먹음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개인적 소회다. 강산이 바뀌는 세월 동안 나는 대자보에서 무엇을 했을까.  

감수성이 메말라 남에게 도움을 받아도 좀처럼 고마워할 줄 모르는 나인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자보에 진 빚이 적지 않다. 사회적 발언을 하고 싶어도 발언 공간이 없어 못하는 사람들이 허다한 데 비하면 내게는 입이 가려울 때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대자보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아홉 해 전, 그해 <문예중앙>에 실린 내 소설 평론을 반론한 글이 대자보에 실린 걸 알고 나서 재반박하는 글을 올리면서부터였다. 얼마 뒤에는 자신의 학문적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내게 불이익을 줬던 대학원 교수에 대해 ‘대자보’를 통해 내 입장을 밝힐 수 있었다.  

대자보가 겪어온 굴곡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대자보가 다른 매체와 통합하며 이름을 바꾼 후 나중엔 군식구처럼 소외되어 분리하는 과정에서는 크게 속상했다. 노무현 정부 집권 이후 인터넷 매체들이 정권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이합집산하는 과정에서 수익구조가 없던 대자보로서는 불리한 환경에 직면한 상황이었고, 이때가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고사 위기를 딛고 다시 원래 이름을 회복하고 새 창간을 선언했을 때는 물론 속상함을 다 털어낼 수 있었다.  

합병과 분리 경험을 빼고도 대자보의 이력에 평탄한 날은 별로 없었다. 돈이란 것은 벌고자 하는 자에게 꾀인다. ‘오마이뉴스’처럼 개혁과 상업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중성을 표방했더라면 경영이 조금이라도 수월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사에서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논조를 보이면서 한‧미자유협정 정부 광고를 대문짝만하게 게재하는 이중적 태도는 대자보에서 통하지 않는다. 정치적 행적에서 논란을 빚는 여성 정치인이라면 그걸 빌미 삼아 성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마초주의도 허용하지 않는다.
 
돈 되는 일은 뭐든지 손대고, 성차별적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한 네티즌들의 인기를 끌면 곳간은 채워지겠지만,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대안 언론의 원칙은 양보해야 한다. 대자보는 독립언론의 기치를 버릴 수 없어 변변한 수익 구조도 없이 생쌀을 깨물며 이날까지 왔다.  

2002년 벚꽃이 날리던 봄, 민주당이 전국을 돌며 벌이던 대통령 후보 국민참여 경선은 이름답게 국민들의 인기를 상당히 끌었다. 당시 마산에서 유세가 열렸을 때 대자보의 요청으로 현장을 보러 가면서 국민참여 경선이 폐쇄적인 한국 정당정치에 숨통을 틔우는 것처럼 다가왔던 일은 노무현 정부의 집권 이후 벚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공안통치로 퇴행하는 현 정부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가 되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이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곧장 이어지는 시간은 인터넷 언론의 성장과 위기에 그대로 겹쳐진다. 지난 10년이 인터넷 미디어 환경에 호시절이기는 했다. 그러나 자신이 집권하는 데 인터넷 여론으로부터 크나큰 도움을 받았던 권력은 집권과 동시에 바로 그 인터넷을 두려워하며 인터넷실명제 도입 등 온라인상의 여론 틀어막기를 틈만 나면 시도해왔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아예 굉음을 내며 적진을 진격하듯 밀어붙이고 있는 중이다. 

컴퓨터 보급이 늘고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할 즈음은 당시 갓 출범한 대자보로서 순풍에 돛을 달기 시작할 때였고, 지금은 거대한 역풍을 맞이하고 있다. 첨단 기술이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않으면 얼마든지 독재 정치의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음이 여기서 입증된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에 역행하는 독재 권력의 발호를 막을 힘도 바로 인터넷 언론에서 나온다.
 
오프라인 마인드로 사이버 세상을 통제하겠다는 권력의 발상이, 견고한 댐을 무너뜨리려는 쥐떼의 무모한 짓임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대자보에는 있다. 물론 실무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없는 운영 문제 등 풀지 못한 숙제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지난 10년의 연륜과, 위기를 헤쳐온 역량은 앞으로 10년을 대처할 힘이 되리라고 믿는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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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1/23 [17:2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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