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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와 이라크파병의 대안, '아우또노미아'
'파병반대'를 위한 정치웹진의 실천적 대안실현을 기대하며
 
황진태   기사입력  2003/09/18 [08:08]

최근 WTO 칸쿤 회의나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에 대한 담론이 따로 노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 글은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서 따로 노는 담론들을 하나의 매듭으로 거듭나게 하고, 눈덩이처럼 커진 매듭을 풀기 위한 실천적 대안과 행동을 정치사이트에 촉구와 설득을 구하기 위해서 알만한 사람은 알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아우또노미아(autonomia, 자율) 사상의 일부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현 학계에서든 시대사조든 포스트 모던이 근대의 대안으로 떠오른 지금. 대안이라 불렸던 포스트 모던에 의한 모든 것들의 해체는 단지 해체로만 끝나고 그 이상의 대안을 마련해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난 80년대 말, 마르크스주의가 동부 유럽과 소련의 해체라는 시대조류에 입다물 수 없었던 상황이 몇 십년도 못 가서 포스트 모던 또한 반성이 시도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대해서 다시 마르크스를 회고하고 반성한 탈마르크스주의의 한 줄기가 바로, 아우또노미아(자율)입니다. 한반도의 분단상황에서 아우또노미아 사상의 도입이 아직은 이른, 탈민족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 의견도 적지 않지만 아우또노미아가 제시하고 있는 전세계적의 연대와 투쟁을 통한 다중들(수동적인 객체를 지칭하는 대중mass과 대조되는 적극적인 주체를 뜻하는 multitude.)의 시야에서 오히려 통일을 위한 노정에 아우또노미아는 긍정적으로 작용 할 거라 봅니다.       

▲ 아우또노미아 책 표지 (조정환 저)
 ©갈무리
지금 여기서 아우또노미아 사상에 대해서 100% 소개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다중, 활력, 리좀 등의 용어에 대해서도 설명은 생략하고, 작금의 화두인 WTO 칸쿤회의와 이라크 파병과 관련된 쓸모 있는 부분 만을 그 동안 국내에 아우또노미아를 소개하고 지속적으로 역서와 저서를 펴고 있는 자율평론(http://jayul.net) 편집인인 조정환 씨의 저서를 통해서 발췌, 소개하고자 합니다.

조정환 씨는 세계체제가 냉전 권력 하의 국가주의적 세계체제와 케인즈 주의에서 초국적 자본 주도의 시장주의적 세계체제와 신자유주의로의 이행과정에서 두 가지 전쟁이 수반된다고 합니다. 이는 WTO에 의한 농업, 노동문제와 이라크 파병 문제가 상호 연동되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전 세계의 노동계급에 대한 화폐적 명령체제의 구축을 위한 계급적 내전, 여기에는 국유산업들을 공공성 동기에서 벗겨내 이윤 동기에 종속시키기 위한 사유화 전쟁,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구축된 노동계급의 정치적 구성을 해체하기 위한 유연화 전쟁이 포함된다. 이른바 ‘재구조화’라고 불리는 이 내전의 결과로 지금 지구상의 무수한 원주민과 노동자들이 추방, 정리해고, 고용불안정, 임금삭감, 노동강도 강화 등을 겪고 있다. 또 하나의 전쟁은 신자유주의화에 장애가 되는 민족국가들과 그 주민에 대한 군사적 전쟁이다. 여기에는 베네수엘라, 북한, 쿠바, 이라크, 이란 등 인민주의적이거나 국가주의적이거나 혹은 근본적인 질서를 통해 초국적 자본의 자유로운 운동에 걸림돌이 되는 국가들에 대한 신자유주의화 전복 전쟁이 포함된다.”

최근의 WTO 칸쿤 각료회의의 결렬은 비록 한국농업경영인 중앙연합회 회장 이경해 씨의 죽음이 계기가 되었기 보다는 이들 제국에 협력내지 공모하는 개도국 헤게모니들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는 게 실질적인 이유였습니다. 그러므로 국제 농민조직인 비아 캄페시나 라파엘 알레그리나 회장이 회의의 결렬 상황에 대해서 “우리는 그것을 예상하고 계획했으며, 이제 그것을 축하한다”고 말한 것은 시기상조입니다.

일본의 극우청년 미시마 유끼오의 할복자살이 숭고보다는 유머로 치환되는 반면 이경해 씨의 자살에서는 시애틀, 퀘백, 제노바로 연이어진 제국에 대한 반세계화 과정에서 희생된 까를로 쥴리아니의 죽음과 동일한 맥락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불거진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 즉, 조정환 씨가 언급했던 “초국적 자본의 자유로운 운동에 걸림돌이 되는 국가들에 대한 신자유주의화 전복 전쟁”에 대해서 지난번의 1차 파병논란과는 달리 이번 이라크 파병에 대한 보수와 집권층의 설익은 당위성조차도 개혁성향의 국민들에게 전혀 먹혀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파병 반대의 명분은 충분합니다. 하지만 명분 하나 만으로 우리 농업을 지키기도 힘들며, 이라크 국민들의 생존을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빈약합니다. 제국의 파상적인 공격에 우리는 글로써 몸으로써 제국에 저항해야 합니다. 농업의 생존성은 현대노조뿐만 수많은 하청기업의 생존성과 직결되며, 제국에 의하여 세계 도처에서 원주민들의 생존성이 짓밟힘과도 연결됩니다. 이는 19세기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제공했던 독일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 류의 민족경제론 안에 갇혀서 `우리 나라`, `우리 농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 농민`, `전세계 노동자`,  `전세계의 전태일들`과 공존을 통한 이들과의 연대와 투쟁이 필요한 것입니다. 바로 ‘반세계화의 세계화’로 말입니다.   

▲지난 2월 15일 대학로 반전시위 모습    
©조정환홈페이지
저는 반세계화 운동과 촛불시위 등을 통해서 `역사란 하이애나 같은 거야`라며 냉소주의에 빠진 제 자신에 다시 역사를 긍정하고, 활력을 불어넣게 됩니다. 요즘,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분당 문제로 각각의 정치토론사이트가 이견과 논쟁으로 과열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과열된 이견과 논쟁은 갈등과 반목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이념은 다르더라도 이라크 파병 반대에 대해서는 최소한 ‘상식과 비상식’으로 구별할 줄 아는 논객과 독자들은 일치된 활력으로 승화되고 있습니다. 특히나, 괄목해야 할 점은 타 정치사이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폐쇄성이 짙은 진보누리에서 먼저 `파병반대 연대를 위한 릴레이 제안`을 내놓은 것입니다. 이는 결코 진보든 개혁이든 인터넷이란 싸이버 스페이스의 공간에서 기저에는 ‘열린’주의가 흐르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때마침 인터넷 신문 대자보에서도 진보누리의 제안에 대한 보도를 통해서 연대를 지지한 것으로 생각되어 다행스럽습니다.     

아직 이러한 진보, 개혁 정치사이트들의 연대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형태를 띌 지는 확실치는 않으나 이라크 파병에 대한 토론회와 파병반대에 대한 지속적인 담론생산과 앞에서 조정환 씨가 언급했듯이 제국이 ‘두 가지 전쟁’을 통해서 윈윈(win-win)전략을 구사하듯 이에 대한 다중들의 저항도 노동문제와 파병문제, 농업문제가 각기 분리된 차원에서 논의 될 게 아니라 상호 연동된 문제로 파악하여 담론을 형성해가야 하며 가시적인 실천적 차원에서도 시민운동단체와의 연계를 통한 제 2, 제3의 촛불시위를 지펴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 NGO단체들과의 조우도 필요할 것입니다. 

조정환 씨는 그 동안 국익이란 오아시스에 비판의 맹점이 형성되어, 우리 안에 갇혀진 연대를 넘어서 세계와의 소통과 연대로 확산, 승화시키는 저항과 운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긍정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성적 차원, 감성적 차원, 실천적 차원, 육체적 차원 등 인간성의 모든 차원에서 가시적 형태로, 혹은 비가시적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우리는 차원에서 분리되고 시간적으로 분절되며 공간적으로 분산된 이 다양한 운동들의 소통과 유통에 관심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인터넷이라고 하는 비교적 최근에 발전된 소통과 표현의 공간을 통해 이 운동들의 소통과 유통에 참여하고자 한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활력을 권력에 대항하는 방향에서 표현해 내고자 한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우리는 매스미디어들의 힘에 이해 끊임없이 억눌리고 감추어지며 소멸되는 경향이 있는 전 지국적 활력의 목소리들을 경청하고 조명하고 드러냄으로써 인종, 성, 지역, 국적, 언어, 문화를 넘어서는 광역적 소통의 문화를 만드는 운동 속에 살고자 한다.”

지금의 ‘두 가지 전쟁’에 대한 아우또노미아에 근거하여 대중적이기보다는 학술적인 공간에서 비중을 두고 사유하고 활동했던 조정환 씨가 신간 아우또노미아를 계기로 ‘두 가지 전쟁’에 대한 활발한 대중과의 만남을 기대합니다. 분명 아우또미아 사상은 한국의 해체된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유용합니다.   

끝으로 우리가 제국들만을 위한 ‘세계화의 덫’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 말들의 전쟁 혹 장난으로 저번 1차 파병처럼 그저 제안으로 그칠 게 아니라. 시대소리와 서프라이즈, 진보누리, 동프라이즈, 남프라이즈 등등. 운영진들과 논객들 간의 끊임없이 활발한 상호교류를 시작으로 네트워크화 된 실천적 대안과 행동을 보여주기를 다시 한번 강조하여 촉구합니다. / 객원기자

* 사족 하나 더 보태면. 어제 노무현 대통령이 UN의 논의 결과도 파병결정에 중요한 원인이 될 거라 발언했으나 이 ‘두 가지 전쟁’에서 IMF, WTO, MAI, NATO 등과 함께 UN이 제국의 전위대였다는 것은 한국의 해방공간 당시나 아시아 금융위기를 상기해보면 너무나 뻔한 이치입니다. 자칫 진보-개혁 진영 간의 모처럼 네트워크의 매듭에 미세한 절리(joint)라도 생길 까봐 강조하지만 ‘UN=善’이 아닙니다. 장영달 의원 왜 욕먹을 발언을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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