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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단에 표절의 마침표는 없다
[정문순 칼럼] 표절을 부추기는 문단과 반성 없는 작가들이 표절 양산
 
정문순

잊어버릴 새라 몇 년의 시차를 두고 튀어나오는 게 문단의 표절 논란이다. 이인화, 박일문, 신경숙 등 1990년대에 표절 작가의 오명을 쓴 이들이 있었고, 수년 전엔 소설가 권지예의 ‘동인문학상’ 수상작이 그랬다. 이번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사람은 조경란 작가다.  

신인 작가 주이란 씨가 펴낸 소설집 《혀》에는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응모작이라는 동명의 작품이 들어 있다. 작가의 주장을 옮기면, 당시 신춘문예 예심 심사위원이던 조경란 씨가 자신의 응모 작품을 표절하여 지난 해 장편소설로 먼저 출간했다는 것이다. 그 제목 역시 《혀》이다.  

대개 표절 논란은 이미 세상에 나와 있는 작품을 누군가가 베꼈다는 의혹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 경우는 피해자임을 주장한 사람의 작품이 세상의 빛을 보기 전에, 표절 작품으로 지목된 것이 먼저 나왔다는 점에서 누가 누구의 것을 베꼈는지 옥석을 가리기가 쉽지 않게 됐다.  
 

▲ 신인작가 주이란의 '혀'(좌측)와 조경란의 '혀'(우측)    


난점은 하나 더 있다. 문장 베끼기 차원의 표절이라면 두 작품을 서로 대조해보는 것만으로 진실이 쉽게 드러날 수 있지만(그나마 우리 문화계 풍토에서는 그마저 쉽지 않긴 하다), 핵심 소재나 아이디어, 줄거리 등 내용적인 부분이라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주이란 씨의 경우는 여기에 해당한다.  

두 작품이 얼마나 유사한지 살펴보니, 자기 파괴로 이끄는 가학적 욕망으로 사용된 혀의 이미지나, 사람 혀를 잘라 요리한다는 결말에서 주씨의 주장대로 유사한 점이 있다. 또 조경란 씨의 작품 표지에 쓰여 있는, “사랑하는 맛보는, 거짓말하는 혀!”라는 문구는 주이란 씨의 소설 내용을 압축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혀>가 신춘문예에 응모한 주씨의 작품과 동일한지 여부가 규명되지 않으면 논의는 더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신문사에서는 신춘문예 응모작을 보관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라고 한다. (최재봉, < '혀' 표절 논란의 진실은>, 한겨레, 9.19)

표절 진위를 속 시원히 가려내기가 쉽지 않은 까닭인지 이를 보도하는 언론들은 하나같이 양쪽의 주장을 똑같은 크기로 다루며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주이란 씨는 조경란 씨의 작품을 작가의 ‘영혼’을 훔친 파렴치한 행위의 소산으로 주장하고 있고, 그에 반해 조씨는 신인 작가가 사회에 논란을 일으켜 책을 팔아보겠다는 수법일 수 있다며 격분해 하더라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사들이 둘 중 어느 한 쪽이 ‘오버’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감으면서까지 기계적 중립을 지킬 일은 아니라고 본다. 조경란 작가와 해당 출판사가 ‘노이즈 마케팅’ 운운하며 상대방을 공격하는 건 작가로서 치명적일 수 있는 상황에 놓인 처지를 감안하더라도 대응이 지나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표절 시비가 무고한 사람을 터무니없이 흠집 내어 책을 팔아먹으려는 신인 작가의 상술일 수 있다는 판단이 가능하려면 일정한 전제를 거쳐야 할 것이다. 조씨 측은 그런 식으로 해서 책이 잘 팔린 사례가 있고, 상식적으로 볼 때 한국 문단이라는 풍토에서 신인 작가가 아무 근거 없이 등단 10년이 넘은 중견 소설가의 작가적 생명을 벼랑으로 몰 수 있는 주장을 펼치는 게 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판단은 상식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표절을 공론화한 사람에 대한 당사자의 감정적인 비난을 여기서 처음 보는 건 아니다. 그동안 표절 의혹을 받은 작가들의 반응을 거칠게 나눠보면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베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표절이라는 이름 붙이기를 완강히 거부한다. 둘째는 조경란 씨의 경우에서 보듯 표절에 대한 강한 부인과 함께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도덕적으로 공격하기. 셋째는 표절 주장을 전혀 다른 맥락에서 받아 뒤틀어버리기. 반면 표절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경우는 아주 희귀하다. 
 
우선 첫째의 경우가 2005년에 일어난 소설가 권지예의 사례다. 권씨의 동인문학상 수상 작품 《꽃게 무덤》에 실린 <봉인>이, 의사이자 작가인 박경철 씨의 글을 허락 없이 베낀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권씨는 작품을 발표할 당시에 박씨의 글이 인터넷에서  출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글인 줄 알았다고 변명함으로써 넘어가려고 했다. 남의 저작을 베낀 건 맞지만 주인이 누군지 몰랐으니 훔친 건 아니라는 주장이다. 
 
당연히 무단 절취에 대한 사죄는 없었고, 권씨는 자신의 미숙함만 인정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베낀 글을 임자 없는 글이라고 깎아내림으로써 표절 시비를 비껴가려고 한 의도가 엿보인다.

주인을 모르는 글이면 글의 임자를 찾는 것이 먼저다. 저자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작품을 발표하고 책을 내는 것이 표절이라는 인식이 권씨에게는 없었다. 마음에 드는 낱말 하나,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 헤아리기 힘든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을 작가가 정작 타인의 노고와 땀이 빚은 저작을 얼마나 하찮게 취급하는지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들과 이 상을 주관한 조선일보도 스스로의 양심을 기만하기로는 작가 못지않았다. 스토리가 구체적인 부분까지 비슷하고 전문가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의료 지식이 등장하는 것도 유사한데다 아예 문장을 거의 통째로 베낀 흔적이 있는데도 두 작품 사이의 유사성이 없다는 것이 박완서, 이청준, 유종호, 이문열 등 문단의 '대가'들이 모인 심사위원단이 내린 결론이었다. 조선일보는 권씨를 옹호하기 위해 의사의 어설픈 자문까지 동원했다. 손상된 문학상의 위신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기회를 그들 스스로 외면해버린 것이다.  

소설가 신경숙은 소극적인 베끼기 인정과 격정적 반발을 모두 보인 경우다. 90년대 문단의 총아로 평가받았던 신씨는 어느 작가보다도 많은 표절 혐의로 구설수에 올랐다. 조심스럽게 의혹이 제기된 것부터 적극적인 주장까지, 거론된 작품만 해도 4편에 이른다. 그녀는 소설 <딸기밭>에서 어느 재미 동포가 사망한 아들의 유고집을 묶어 내면서 서문으로 쓴 글의 일부를 임의로 끼워 넣은 사실이 드러나자, 유족의 상처를 덧나게 할 것 같아 저자의 허락을 구하거나 출처를 밝히지는 않았다고 변명했다. 그것이 표절임을 인정한다는 말은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 소설가 신경숙     © 창작과 비평

신씨는 글을 훔친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자신은 평소에 인터넷에 떠도는 대중가요 가사나 방송 대본, 심지어 독자가 보내온 편지까지 출처를 밝히지 않고 소설에 인용해왔다는 말을 함으로써 남의 저작을 무단으로 가져오는 것에 대한 인식 수준이 어떠한지 드러내주었다. 그러나 그녀로서는 남의 글을 허락 없이 옮긴 사실을 죽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다.  

단편소설 <작별>이, 평론가 박철화의 입에서 마루야마 겐지의 《물의 가족》에 나오는 핵심 소재, 이미지, 문장을 두루 베꼈다는 주장이 나오자 신씨의 반응은 거셌다. 낱낱이 지목된 부분에 대해 반박하기보다 그녀는 사람을 공격하는 쪽을 택했다. 박씨가 처음부터 자신을 모함하려고 작정했다고 하거나 “단세포적인 위험천만한 주장”을 한다는 말로써 상대방의 감정을 자극했다.  

표절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게 맞받아치는 건 아무래도 어떤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겁을 줌으로써 상대의 기세를 꺾어놓으려 하거나, 인신공격적인 발언으로 상대방을 건드려 논쟁의 물을 흐리게 하려거나, 아니면 독자에게 지나치게 흥분한 자신을 보여줌으로써 동정을 구하려는 작위적 태도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게 된다. 신경숙이 논리가 아닌 감정적 대응을 한 덕분에 그녀의 의도가 들어맞았음인지 결국 두 사람의 논쟁은 결론 없이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세 번째의 경우는 앞의 두 경우보다 훨씬 더 악의적이고 몰염치한데, 표절 의혹에 대해 자신의 행위가 글 도둑질이 아니라 소설 기법의 일종이라고 발뺌하는 것이 해당된다. 90년대 초의 신세대 작가들은 표절 논란에서도 첨단의 변명을 동원했다. 당시 소설가 이인화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에 대해 작고한 이성욱 평론가가 한국이나 일본 작가들의 작품에서 여러 문장을 절취하여 군데군데 남이 쉽게 눈치 못 치게 삽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그제야 이씨는 원작과 복제품의 구별이 사라진 포스트모던 사회에 걸맞은 ‘혼성모방’(패스티시) 기법을 쓴 것이라고 변명했다. 

몇 년 전에는 자신의 칼럼에서 인기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을 절취한 조선일보 김광일 전 논설위원도 처음에 표절을 시인하지 않고 혼성모방 기법이라고 변명하다 되레 독자들의 분노를 부채질한 적이 있다. 바야흐로 글 도둑질이 소설 기법으로 진화한 첨단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셈이다.  

표절 문제를 전적으로 작가의 양식으로만 돌린다면 무리일 것이다. 표절을 부추기는 주범은 다름 아닌 문단의 낙후성에 있다. 우선 문예지의 청탁은 인기작가에게만 몰린다. 이름을 얻은 작가는 쏟아지는 청탁에 응하는 게 처음엔 좋았겠지만 갈수록 고갈되는 상상력의 샘을 퍼올리느라 피가 마른다. 남의 글을 도둑질해서라도 마감 날짜를 맞추거나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싶은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게 될 때 표절은 마냥 불가능한 일에 머물러 있지 않게 된다.  

그러나 작가들이 표절의 유혹에 휘둘리는 것을 가로막는 장치가 있다면 나쁜 일에 손대는 작가가 쉽게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문단은 표절 시비가 떠올라도 누가 검고 흰지 가리는 데 나설 생각이 없다. 문제의 장본인이 중견 작가라면 더욱 그렇다. 문단은 그런 곳이다. 술자리에서조차 연소한 문인이 등단 시기가 앞선 작가에게 말을 편하게 할 수 없는 곳이다. 서열을 따지기로는 군대 못잖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지만, 문학판에서 한 번 이름을 얻으면 그 후로는 탄탄대로. 별달리 노력하지 않아도 대가 대접이 따라다닌다.  

한국 문단에서 가장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 작가 중 한 사람인 황석영은 근래 들어 전작의 자기 모방에 그치는 평범한 범작을 잇달아 내놓아도 비평가들에게는 무조건 당대 최고의 걸작이요 희대의 문제작이다. 그의 작품이 몇 차례 외국에 소개된 뒤로는 아예 세계적인 작가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황석영 소설에 쏟아지는 평단의 찬사만 보고 있으면 한국 독자들은 세계 최강의 문학을 둔 사람들이다. 

이런 풍토의 문단에서 신출내기 작가가 중견 작가에게 입바른 소리를 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중견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보호막 속에서 작가 윤리에 어긋나는 행태를 경계할 기회를 잃게 되고, 신인 작가는 매장 당할 각오 없이 감히 문단이나 기성 작가에게 쓴 소리를 하지 못한다. 심지어 중견 남자 시인이 술집에서 햇병아리 여성 시인에게 폭언과 성적 모독을 가해도 동료들의 침묵과 옹호 속에 향후 글 쓰는 데 아무 지장을 받지 않는 곳이다.  

이런 문단에 독자들이 등 돌린 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깊이 있는 문학이 성장할 토양은 부실하고, 기껏 문단은 통속적인 감상과 눈물에 호소하는 공지영 유의 소설을 옹호하며 판매고를 올리는 데 열을 올림으로써 이 나라 문학의 수준을 끌어내리고 있다. 작가랍시고 한껏 고상한 포즈를 취하며 삶의 심연을 통찰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상은 평범한 시민 윤리조차 제대로 습득이 돼 있지 않은 사람들이 파다한 곳, 문단을 저들만의 아성으로 내버려 두기에는 문학이 우리네 삶에 기여하는 바가 너무 크다. 자멸을 자초하는 문단의 횡포와 타락에 언제까지나 무관심과 냉소로 대응하는 건 독자들의 몫이 아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08/09/25 [13:37]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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