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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관: 언론 자유를 뛰어넘은 언론 사주
[최을영의 시사인물 포커스] 야당지 동아일보, 보수적 색채로 물들여
 
최을영
영욕(榮辱)의 세월
 

2008년 2월 25일 김병관 전 동아일보 회장이 식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동아일보』는 2008년 2월 26일 「기자보다 기자다웠던… 화정 김병관 선생의 큰 삶」이란 기사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배인준 논설주간이 쓴 이 기사는 "그가 민주 언론, 독립 언론의 수호자로 한국 언론계에 남긴 발자취는 쉬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화정 김병관 회장님, 고이 잠드소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자유 언론을 지켜 주소서"라고 끝맺고 있다.1) 
 
이와 달리 『한겨레』의 「'3세 경영체제' 이끌며 영욕의 세월」이란 기사는 김병관이 대표이사가 된 뒤 동아일보의 경영을 안정시켰다는 평가가 많다고 밝힌 뒤 "언론단체 등에선 김 전 회장이 동아일보 '수장'에 오른 뒤 1970년대 박정희 유신정권 체제에 비판적인 '야당지' 이미지가 실종되고 보수적인 색채가 두드러졌다고 지적한다"고 밝혔다.2)
 
보통 부음기사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이든 공과(功過)가 있게 마련이지만, 부음기사는 고인에 대한 예의로 과보다는 공을 더 크게 부각시키게 마련이다. 김병관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한국의 주요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배인준 동아일보 논설주간이 말한 "민주 언론, 독립 언론의 수호자"란 말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 동아일보의 사세를 확장하고, 경영을 안정화시킨 공은 인정하겠으나, 민주 언론, 독립 언론의 수호자라고 칭하기에는 김병관의 지난 궤적이 그리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겨레』의 기사 표제인 '영욕의 세월'이 김병관의 지난 삶과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 사람의 인생이 공으로만 채워질 수도 없는 일이고, 과로만 채워질 리도 만무한 일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가의 장손
 
김병관은 동아일보의 설립자 인촌 김성수의 장손이자 동아일보 전 명예회장인 일민 김상만의 장남으로 1934년 7월 24일에 태어났다. 그는 중앙고를 거쳐 1958년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동아일보의 계열사인 경성방직과 동아제약을 거쳐 34세 때인 1968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게 된다. 이후 관리과장, 광고부장, 판매부장, 광고국 부국장을 거쳤고, 1977년 판매 및 광고국장, 1981년 상무이사, 1983년 전무이사, 1985년 부사장을 거쳐 1987년 발행인, 1989년 3월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1993년 3월부터는 동아일보 대표이사 회장 겸 발행인으로 근무하다 2001년 1월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었다.
 
김병관이 동아일보 발행인이던 1987년 동아일보는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특종 보도하고, 이후 제2창간 선언 등을 통해 매출액이 늘어나는 등 사세를 확장했다. 충정로에 대형 사옥을 건립했고, 광화문에 동아미디어센터를 개설한 것도 김병관이 대표이사로 있던 때였다. 참고로 1995년에 동아일보는 86억 원의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김병관은 1995년에 중국을 방문해 리펑(이붕) 총리와의 단독 회견을 성사시켰고, 1998년에는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김용순 위원장의 초청을 받아 남측 신문 경영인으로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했다. 또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일본 아사히신문, 러시아 이즈베스티야 등의 신문들과 제휴를 맺고 국제적 교류를 확대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1990년 창극 <아리랑>의 러시아 공연을 지원해 1991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동아일보의 소유지분은 해를 거듭할수록 김병관을 비롯한 김씨 일가에게 집중됐다. 1994년에는 김병관 회장(0.87%) 등 김씨 일가가 38.05%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1995년에는 김상만 전 사주 기념재단인 일민문화재단이 일부 주주의 주식을 인수해 전체의 11.74%를 차지함으로써 김씨 일가의 지분은 52.63%로 늘어났다. 그리고 1995년 김병관의 두 아들의 지분은 각각 6.25%·3.90%에 불과했으나 2001년에는 각각 15.61%, 9.37%로 늘어났다. 그리고 김병관의 장남 김재호는 1995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1999년 상무이사로 임명되는 등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게 된다.
 
과연 민주 언론의 수호자인가
 
1991년 9월 6일 김중배 동아일보 전 편집국장은 편집국장 이·취임식 자리에서 "1990년대 들어 언론이 이제 권력보다 더 원천적이고 영구적인 제약 세력인 자본과 힘겨울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 최근 동아가 취한 일련의 인사 조치와 국장 경질 뒤 자유로운 편집을 제약하고 자본의 논리를 강요하는 일명 '보도지침'이란 괴문서가 사내에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밝혔다.3) 또 김중배는 "독재 권력은 망할 수 있으나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는 한 자본의 압력은 당장에 거세되지 않을 것이므로 이것은 영원한 도전이고 원천적인 도전"이라며 "이 도전에 대한 언론인들의 응전은 소주 한잔 먹고 개탄하고 한풀이하고 분노를 토로하는 것만으로 극복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우리가 정말로 고민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4)
 
편집국장으로 임명되어 기자들의 동의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김중배 편집국장은 이 말을 남기고 결국 동아일보를 그만두었다. 김중배가 말한 보도지침이란 괴문서는 편집국장 이·취임식에 앞서 김병관 당시 동아일보 대표이사가 정리해 사내에 배포한 문건을 말한다. 이 문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아가 혹시 사회계층 간 위화감을 조장하고 또 극소수의 반체제 인사들에 의한 체제 성토 광장으로 이용될 소지나 우려를 준다면 이 기회에 제2의 창간의 뜻을 분명히 해야겠다. …… 근래 우리 지면에 특히 서평란(예: 윤정모 책, 폴 바란 책), 난맥 매듭 풀자(안병욱), 자전수필 필자(빈민운동가)의 선택이나 그들 말의 인용 등은 동아를 아끼는 독자의 빈축을 사고 있을 뿐 아니라 동아의 노선을 의심할 정도의 비판이 있음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 체제 부정이나 국민의 위화감 조성에 지면을 할애함은 용납할 수 없다."5)
 
동아일보 기자들이 '보도지침'이라 부른 이 문건은 사주의 전횡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남아 있다. 김중배의 일갈을 듣고 있노라니 앞서 소개한 '민주 언론, 독립 언론의 수호자'란 김병관에 대한 평가가 못내 목에 가시처럼 걸린다.

또한 김병관은 2000년 10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를 비판한 민병욱 논설위원의 칼럼을 삭제하도록 지시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2001년 3월 동아일보를 그만둔 김재홍 전 논설위원은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언론사와 사주는 자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기자와 논설위원은 그렇지 못한 게 우리 언론의 현실이다"라고 말했다.6)
 
2000년 김병관은 뭇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2000년 10월 13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고려대 특강을 저지하는 학생들과 김영삼 사이에서 술에 취해 한바탕 촌극을 펼쳤기 때문이다. 이날 고려대 재단 이사장이자 동아일보사 회장 김병관은 술 냄새를 풍기며 오후 3시께 고려대 정문 앞에 나타나 김영삼과 학생들 사이에서 횡설수설했다. 때로 학생들 대열에 10여 분간 앉아서 피켓을 들고 "김영삼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7) 
 
이 일로 인해 김병관은 2000년 11월 3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으로 남겠다며 사퇴의사를 밝혔다. 김병관은 "회사에 폐를 끼친 사람은 책임져야 하며 회장도 예외가 될 수 없다"며 고대 앞 사태에 대한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8) 그러나 김병관은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면서 장남 김재호를 부사장에 앉히겠다는 뜻도 밝혀 경영권을 장남에게 물려주려는 의도를 내비쳤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시련-세무조사
 
그러나 김병관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1년 2월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2001년 6월 29일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국세청은 동아일보, 조선일보, 국민일보 등 3개 언론사의 사주와 법인을 조세범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 중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은 동아일보 주식을 명의신탁했다가 1998년 주식실명제 전환 기간에 명의신탁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해 아들에게 우회로 증여해 72억 원의 증여세를 내지 않는 등 모두 128억 원의 소득을 탈루한 혐의를 받았다.
 
동아일보는 사주 803억 원, 법인 560억 원, 계열사 289억 원, 광고대행사 등 관련 기업 48억 원 등 모두 1700억 원을 탈루한 혐의로 827억 원을 추징당하게 됐다. 이 중 조세포탈 혐의 금액은 법인 25억 원, 김병관 회장이 128억 원, 김병건 부사장이 125억 원으로 총 278억 원이며, 모두 144억 원의 세금을 추징당하게 됐다. 이는 중앙일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금액이었다.
 
동아일보는 즉각 세무조사를 언론 탄압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겨레 안재승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신문사 사주의 비리와 신문사의 위법 행위를 언론 자유 문제와 연결시키는 것은 억지일 뿐이다. 이런 식의 논리 전개는 신문이 바른 말을 하기 위해서는 신문사 사주와 신문사는 계속 치외법권 지대에서 보호되어야 한다는 논리 전개와 전혀 다를 게 없다. 마찬가지로 정부가 신문사 사주의 비리와 신문사의 위법 행위를 알고도 모르는 체해야만 언론 자유가 보장된 국가라는 논리도 성립될 수 있다. 궤변일 따름이다."9)
 
언론사 세무조사 과정에서 김병관은 큰 상처를 받게 된다. 바로 부인 안경희가 2001년 7월 14일 투신자살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측은 안경희의 죽음에 대해 "안씨는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된 2월 이후 신경쇠약 증세를 보여왔으며, 국세청 고발조치 이후 증세가 급격히 악화했다"고 설명했다.10) 
 
김병관은 2001년 7월 27일 동아일보 명예회장직과 이사직 등 동아일보사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고 이후 2001년 8월 17일 구속 수감됐다가 지병을 이유로 10월 25일 구속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져 석방됐다. 이 사건은 해를 넘겨 2002년 2월 4일 열린 1심 재판에서 김병관에게 징역 3년 6월에 벌금 45억 원의 실형이 선고됐고, 2003년 8월 29일 열린 2심 재판에서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30억 원이 선고됐다. 그리고 2005년 6월 10일 대법원에서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30억 원이라는 원심을 확정했다.
 
기나긴 소송은 끝났지만, 김병관은 벌금을 내지 않아 다시 구설수에 올라야 했다. 2006년 9월 23일 MBC <뉴스데스크>에 바에 따르면 김병관 동아일보 전 명예회장이 30억 원의 벌금형을 받았지만 이 중 24억 원을 납부하지 않았다.11) 한국일보와 국민일보 사주도 벌금을 안 내긴 마찬가지였다.
 
대법원의 원심확정 판결이 있은 지 1년이 지난 2006년 5월 김병관은 식도암 수술을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2008년 2월 25일 세상을 떠나며 영욕의 세월을 마감했다. 
 
* 이 글은 월간 <인물과사상> 2008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
 
 [각주]

1) 배인준, 「기자보다 더 기자다웠던… 화정 김병관 선생의 큰 삶」, 『동아일보』, 2008년 2월 26일, 2면.
2) 김동훈, 「'3세 경영체제' 이끌며 영욕의 세월」, 『한겨레』, 2008년 2월 26일, 29면.
3) 특별취재반, 「언론권력 : 5·6공 왜곡보도」, 『한겨레』, 2001년 4월 7일, 5면.
4) 「사설: 언론과 자본을 다시 생각하자/ 김중배 전 '동아' 편집국장의 선언」, 『한겨레』, 1991년 9월 17일, 2면.
5) 특별취재반, 「언론권력: 5·6공 왜곡보도」, 『한겨레』, 2001년 4월 7일, 5면.
6) 특별취재반, 「언론권력: 제2부 권언유착」, 『한겨레』, 2001년 4월 9일, 1면.
7) 김성완, 「동아일보 김병관 회장 고대 앞 취중행동 파문」, 『미디어오늘』, 2000년 10월 19일(인터넷판).
8) 황방열, 「동아 김병관 회장 사퇴 표명」, 『미디어오늘』, 2000년 11월 9일(인터넷판).
9) 안재승, 「취재파일: 탈법 눈감는 게 언론자유?」, 『한겨레』, 2001년 6월 25일, 7면.
10) 이상헌, 「동아일보 회장 부인 아파트에서 떨어져 사망」, 『한국일보』, 2001년 7월 16일, 31면.
11) 이수강, 「동아·국민·한국일보 사주 '탈세벌금' 미납」, 『미디어오늘』, 2006년 9월 24일(인터넷판). 
기사입력: 2008/04/02 [16:47]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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