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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럭 오바마의 힘, 동영상 UCC에서 나왔다
[기획취재] 향후 대선, 뉴미디어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후보가 승리할 것
 
신지연   기사입력  2008/04/02 [16:22]
<대자보>는 한국언론재단의 지원을 받아 'UCC와 인터넷선거'에 관한 기획취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현재 예상을 뒤업고 미 민주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배럭 오바마 후보의 UCC 잔략을 통해 뉴미디어가 미국 대선에 끼친 영향과 관계, 기존 주류 매체와의 관계, 향후 전망을 현지 통신원의 시각으로 분석한 내용을 담았다.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 미국의 한 동영상 공유 사이트 올라 온 게시물이 전 세계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동영상의 제목은 '다르게 투표하라 (Vote Different).'

이 동영상은 영화 글래디에이터로 잘 알려진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이 만든 매킨토시 광고를 합성해 만들어졌는데, 이 광고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을 모티브로 한 것. 사람들의 이성을 감언이설로 마비시키는 빅 브라더를 무너뜨려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 주제가 됐었다.

다르게 투표하라는 빅 브라더를 힐러리 클린턴 의원으로 설정하고, 그를 깨는 진보적 존재의 가슴에 오바마 의원의 대선 마크를 입혔다. 또, 마지막 문구도 "(2008년)1월14일 민주당 경선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왜 2008년이 1984년과 같지 않은 지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원문을 살짝 바꿨다.

이제 제작자가 등장할 차례. 여기서는 본 광고의 애플사 로고 대신, 오바마의 동그라미가 나오고 그 밑에 '배럭오바마닷컴(BarackObama.com)'이 찍혀있다.

UCC, 선거 캠페인의 중요 도구로 등장

소위 힐러리 1984, 또는 안티 힐러리 동영상으로 불렸던 이 동영상을 놓고, 당시 정치 평론가들과 선거 전문가들은 UCC 선거전의 신호탄이라고 촌평한 바 있다. 이들은 화제가 된 동영상이 정치의 세대교체를 요구하는 메시지를 매우 강력하게 전달하고 있다며 UCC가 향후 선거 캠페인에서 매우 중요한 도구로 사용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클린턴 의원은 대중을 정신적으로 억압해 온 구악 정치인, 오바마 의원은 변화를 주도하는 새 시대의 지도자라는 메시지. 이를 전달함에 있어, 네티즌 누구나가 접속해 자유롭게 동영상을 공유할 수 있는 UCC 플랫폼만큼 효과적인 매체는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재미있는 점은 한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이 동영상의 제작자가 오바마 의원 측이 고용한 기획업체의 직원임이 나중에 밝혀지면서 네거티브 캠페인 논란을 일으켰다는 사실. 최종 결과가 어찌되었든 간에, 경선 레이스 준비기간에 사이버 공간에서 히트를 친 이 동영상이 변화를 기치로 든 젊은 오바마 의원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작년 초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던 동영상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부시 대통령이 의회에서 연두교서를 발표하는 도중, 존 맥케인 공화당 의원이 졸고 있는 듯한 모습을 담은 동영상 또한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퍼지면서 수 백만 네티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당시, 생방송으로 전파를 탔던 이 짧은 장면은 부지런한 네티즌들에 의해 선택적으로 캡쳐되고 극적으로 편집되면서, 매케인 의원의 노쇠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한 몫을 했다는 평가다. 비록 원래의 출처는 네티즌에 의해 자체 제작된 UCC가 아니었지만, 매케인 의원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힌 것은 중계 카메라에 잡힌 10초까지 장면이 아니라 사이버 공간을 타고 번진 네티즌들의 작품이었다는 것. 게다가, 이를 유통시킨 매체가 주류 미디어가 아닌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UCC 미디어였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점이다.

▲ 유튜브에 올라온 정치 동영상 UCC     © 유튜브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을 소재로 제작된 UCC 동영상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바마 걸이란 닉네임으로 유명세를 탄 엠버 리 에틴저.

관능적인 미모를 지닌 이 20대 여성은 오바마 의원을 향한 흠모의 정을 표현한 뮤직 비디오 형태의 동영상에 출연,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았다. 조직적인 선거 운동과는 무관하게 제작된 다소 상업적인 동영상이긴 했지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정치인을 주제로 코믹하게 만들어진 이 동영상은 오바마 캠프에서 구축하고자 했던 신선하고 젊은 오바마의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졌다. 게다가, 수많은 네티즌들에게 노출된 오바마를 향한 용비어천가 식 가사는 억 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자연발생적 선전효과를 부여한 것. 결국, 오바마 의원은 누워서 절을 받은 셈이 됐다.  

UCC 현상, 정치운동과 여론형성의 영역 변화시켜

이 동영상은 이후 힐러리 걸, 줄리아니 걸 등의 아류작을 줄줄이 낳으며, 온라인 상에서 뿐 아니라, 주류 미디어를 통해서도 두고두고 회자돼 오고 있다.

이 같은 UCC 현상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인터넷 상에서 유포되는 합성 동영상물이 정치운동과 여론형성의 영역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 대선 운동에서는 수억 달러가 TV광고에 투입되지만, 유권자들에 의해 손수 제작된 동영상의 효과와 비교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 정치 운동의 구조 밖에 존재하던 열정적인 활동가들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이 됐다는 증거가 바로 UCC 동영상이라는 얘기다.

특히, '힐러리 1984'의 출현을 21세기 정치 세대를 대변하는 아이콘의 등장이라고 정의한 정치 연구가 사이먼 로젠버그는 "이제, 누구라도 감성적인 광고를 할 수 있고, 선거운동은 더 이상 통제되지 않는다"며, "위에서 아래로 메시지를 전하는 20세기의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UCC 선거 캠페인'의 등장으로 선거운동이 점점 더 자극적으로 변하게 될 것이며, 이는 말 한마디에서 풍기는 뉘앙스에도 영향을 받는 민감한 대선에 더 많은 이슈를 몰고 올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한다.

실제로, 한 민주당 대선후보의 캠프에서 활동하고 있는 캠페인 프로그램 기획자는 활용할 수 있는 또 다른 매체가 생겼다는 점은 환영할 만하지만, 혹시라도 뭔가 부정적인 UCC가 인터넷 상에 올라와 화제가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매일매일 살얼음 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로젠버그가 말한 더 이상 통제 불가능한 사이버 환경 속에서, 한번 이슈가 된 사건은 치유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유권자들의 표심은 UCC사이트로 대별되는 사이버 공간에서 향방이 갈리는 걸까.

일부 선거 전문가들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잘라 말한다. 최근에 등장한 사용자 손수 제작물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또 하나의 변수로 자리잡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대선 판도를 변화시킬 만큼 위력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공화당 대선 캠페인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한 시민단체 회원은 아직까지 미국 유권자들은 선거를 보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UCC 사이트에 올라오는 게시물들에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미를 위해 UCC 동영상을 즐겨 보는 젊은 층들이 인터넷을 통해 정치나 선거에 관한 관심을 높여나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실제로 투표권을 행사할 때 UCC를 통해 인식된 후보의 이미지가 얼마나 작용할 것인가는 미지수라며 고개를 저었다.      
 
뉴욕에서 독립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20대 비디오 저널리스트의 의견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인들의 평균 인터넷 활용도를 분석해 보면, UCC 동영상을 통한 선거 캠페인 효과의 한계가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고 말문을 연 그는 이번 선거에서 각 후보 진영은 이미지 구축과 구색 맞추기 정도의 수준에서 UCC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권자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클린턴 의원이나 오바마 의원, 에드워즈 전 후보 등이 자체 제작한 동영상이나 가상현실 사이트 등을 통해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지금까지 홈페이지나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네티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해 온 것은 대선후보로서 직접적인 소통을 중시하는 모습을 강조하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하며, 이들이 실제로 노리는 효과는 이 같은 활동이 주류 미디어를 통한 노출로 연동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의 말을 정리해 보자면, UCC를 통한 선거 캠페인이 새로운 영역임에는 틀림 없지만, 아직까지 직접 소통을 위한 매개체로서의 역할보다는 주류 매체에의 노출로 가는 경로의 역할에 한정되어 있고, 유튜브 보다는 CNN이나 폭스TV, 뉴욕타임즈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얘기로 요약된다.

구글의 CEO인 에릭 슈미트는 공식 석상에서 향후 미국 대선에서는 뉴미디어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후보가 승리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2008 대선에서 미국의 유권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작용할 UCC의 영향력은 어떻게 평가 받을 것인지는 조금 더 기다려 봐야 명확하게 알 수 있을 듯하다. 

* 필자는 <온라인비>(http://www.onlinebee.net/) 기자, 미국통신원입니다.
* 본 기획취재는 언론재단의 지원하에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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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4/02 [16:2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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