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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양당 '공천 내란' 넘어서는 진보의 선택은?
박근혜, 친이세력에 분노와 배신감 토로...한나라 분당 가능성 배제 못해
 
심승우   기사입력  2008/03/07 [19:08]
지난해 8월 22일.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박근혜 전 대표는 경선을 승복하는 연설을 한다. 그러나 당일 3시 50분 경선 최종 결과가 알려지기 직전까지만 해도 박 전 대표는 자신의 패배 사실을 몰랐다. 오히려 오후 2시경 전당대회 행사를 위해 무대 위에 오르기 직전 까지는 승리 가능성이 높다는 측근들의 전언을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7년 8월 22일 한나라당 경선 패배 승복연설의 추억

어쨋든, 박 전 대표는 전당대회 단상위에 오를 당시 경선 승리와 패배의 경우를 대비해 두가지 연설문을 가지고 올라가 담담하게 패배 승복 연설을 한다. 
 
당시 박 전 대표는 "경선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며 경선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잊고.. 백의종군으로 정권 교체 이룩하겠다"고 말해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당시 "이렇게도 지독한 경선은 처음 봤다"는 한나라당 중진 의원의 지적처럼, 경선 과정에서 한나라당 지역조직은 '두나라'로 갈라서왔던 것이 사실. 그만큼 '자리 싸움'이 치열했으며 경선 후 후폭풍과  분열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리라는 관측도 많이 제기되었다. "경선 끝나면 두고 보자"는 험악한 말들이 오가기도 했다.

사실 경선 과정이 이렇게 극한적으로 치달은 것은 연말 대통령 선거 보다도 2008년 총선에 더 큰 관심이 쏠려있었기 때문이다. 원들로서는 공천권을 따내기 위한 줄서기와 충성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쪽으로 줄을 서느냐에 따라 내년에 금뱃지를 달수 있을지 없을지가 원천적으로 판가름날 수 있기 때문.
 
아무리 공천 문화가 달라졌다고는 해도 경선 승리자, 대통령 후보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공천 물갈이의 양태도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권력의 배제논리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이 박 전 대표와 친박세력의 판단인 것 같다.
 
2007년 경선 당시에도 '살생부 시나리오' 떠돌아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 불구하고 경선 후 지금까지 탈당과 분당의 여러 차례 위기 속에서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고수를 선택했다. 특히 지난 1월 이명박 당시 당선인과의 회동 이후, 박 전 대표는 공천 문제에 대해 일절 언급을 자제해 왔다.

많은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겠지만 2004년 탄핵 위기와 2006년 지방선거의 면도날 테러 속에서도 당 대표로서 자신이 지켜온 당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도 상당했으리라. 이 대통령의 모종의 약속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4월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 전 대표는 분노와 배신을 토로하며 칩거에 들어갔다. 경선 과정에서 몸과 마음을 바쳐 자신을 도왔던 측근들이 줄줄이 공천에서 탈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선과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 모두 무난하게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 뱃지를 예약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른바, 경선과정에서 나돌았던 '경선 승리 후 살생부' 파문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이다.

당시 이명박 후보의 최측근이었던 정두언 의원은 이 후보자의 재산 축적에 의혹을 제기한 곽성문 의원을 겨냥해 "공천권 박탈 대상"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실제로 당 안팎에서는 경선이 치열해지면서 '공천 살생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이 후보자의 캠프를 진두지휘했던 중진 의원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줄세우기를 강요하면서 '경선 승리 후 공천 명단'을 뿌리고 다녔다는 것이다.

실제로 6일 발표된 공천 탈락자 명단은, 경선 당시의 살생부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최근 여의도 안팎에 떠돈 살생부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천 탈락 대상 현역 국회의원들의 이름이 적힌 출처를 알 수 없는 명단이 나돌았고, 이 명단에 포함된 경기 지역 의원들이 실제 이날 공천 탈락한 의원들과 거의 일치한 것이다.
 
2008년 3월, 여의도에 떠도는 살생부 명단 그리고 박근혜의 분노

박 전 대표가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는 배경이다. 대표적인 공천 탈락 사례는 단연 한선교 의원이다.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 전 대표의 대변인이자 수행단장을 맡았던 한선교 의원은 윤건영 의원에게 자리를 내줬다. 윤 의원은 비례대표로서 경선 당시 이 대통령의 핵심 경제브레인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한 의원은 당 공천심사위원회가 주관한 두번의 여론조사에서 각각 45.8%, 43.4%를 얻어 18.1%, 13.3%에 그친 윤건영 의원(이명박계)을 압도했지만 공천을 뺏겼다고 울분을 토했다. 한 의원은 자신의 탈락이 정치적 보복이며 박 대표 역시 이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박 전 대표는 한선교 의원의 탈락에 대해 "여론조사 결과로 보거나 의정활동에 하자가 없었음에도 단지 나를 도왔다는 그 이유로 탈락시켰다"며 "이런 것은 '표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분노를 표출했다. 

박 전 대표측 입장에서는 중진 의원(4선)인 이규택 의원의 탈락도 표적공천으로 간주되는 분위기이다. 여주·이천이 지역구인 이 의원은 이범관 변호사에게 밀렸다. 이 변호사는 김대중 정권 시절인 2000년 10월 대검 공안부장으로 있으면서 한나라당 의원 15명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무더기 기소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당내에서는 지나치게 고령(64세)이라는 점도 부적절 요인으로 거로되어온 인물이다.
 
박 전 대표는 공천 탈락 후 이규택 의원을 만나 "미안하다. 내가 힘이 없어서 이렇게 됐다"고 위로하며 "이명박 대통령과 만났을 때 `우리를 믿으라'고 해서 신뢰를 했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배신감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선 당시 중립을 지켰지만 비교적 박 전 대표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고조흥(포천 연천) 의원은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비서실 기획부실장을 지냈던 김영우씨에게 지역구를 뺏겼다. 김씨는 류우익 대통령 실장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자의 핵심 공약을 다듬기도 했다. 지역신문에는 2월 28일 이 지역에서 류 실장과 김씨가 회동을 한 것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친박의원들 "개혁공천을 빙자한  숙청"...분당 가능성 배제 못해
 
비록 공천 탈락 명단이 친이-친박의 비율이 엇비슷하다고 해도 친박의원들로서는 자파의 핵심 의원들의 상당수가 탈락한 반면, 친이 의원들의 경우 주변부에 있거나 비중있는 인사들이 아니라는 점에 모종의 음모를 의심하고 있다. 친박의원들로서는 사실상 '개혁적인 중립 공천'을 빙자한 '피의 숙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경선이나 대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도왔던 핵심인물들은 거의 공천을 받았다. 최측근인 이재오, 정두언, 주호영, 고흥길, 박찬숙, 임태희, 김기현 등이 무난하게 공천을 받았다. 아울러 이 대통령의 경제브레인인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서울시청팀의 좌장격인 백성운 인수위 행정실장, 이 대통령 수행단장을 맡았던 정태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김효재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 진성호 전 선대위 미디어팀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 전 대표의 텃밭이나 다름없는 영남권 공천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친박 의원들이 대거 몰려있는 영남에서 대폭 물갈이가 이루어질 경우 박 전 대표 및 친박 세력으로서는 탈당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당내에서는 영남 의원 중 50% 이상까지도 물갈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박 전 대표가 6일 저녁 부터 칩거에 들어간 것도 영남권 공천을 놓고 당 지도부와 친이세력을 압박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되고 있다. 사실상, 분당에 앞선 최후통첩인 것이다.

분열의 시대, 백가쟁명의 총선 정치학

"경선 끝나면 두고 보자"며 공공연하게 적개심이 표출되던 한나라당 경선의 험악한 분위기가 다시 재현되고 있다. 의원들의 금뱃지가 걸린 첨예한 문제인 이상, 공천 갈등은 더욱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 상황이 악화될 경우, 영남 공천 향배에 따라 한나라당의 분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설사 당내 첨예한 대립이 완화된다고 하더라도 그 후유증은 총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공천에서 탈락한 의원들의 지역세력이 원활하게 움직일 것이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경선에서 박 전 대표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영남 지역을 포함한 지지자들이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무조건 지지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박 전 대표가 칩거에 들어간 직후, 그의 지지자들이 재결집하고 있다는분석도 나오고 있다.
 
만에 하나 분당이 현실화될 경우 한나라당으로서는 정말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압도적인 승리가 확실시되던 총선 판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선 후 90%까지 치달았던 이 대통령의 지지율 조차 '부자 내각, 비리 내각' 파문에 휩싸인 상황이다. 온갖 악재가 동시에 터지고 있는 양상인 것이다.

더구나 이미 통합민주당측이 무게감 있는 중진 의원을 대거 포함하여 비리 전력자 11명의 공천을 탈락시키면서 `개혁공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데 비해 한나라당은 금뱃지 경쟁으로 인한 내홍 이미지가 부각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한나라당 내에서는 여론 변화가 심상치 않은 것으로 파악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물론 분당으로 치달을 경우 총선 지형은 예측 불허로 빠질 가능성도 높다.

물론 민주당의 공천 후유증도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 공천 탈락자들이 연이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보수 양당의 분열이 이념과 노선의 선명성을 주창하며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한 진보신당과 민노당의 총선 득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진보정당으로서는 보수세력의 밥그릇 싸움에 신물이 난 유권자들을 얼마나 끌어모을 수 있을지에 달려있다. 비록 많은 후보를 당선시키지는 못할 지라도, 지난 총선에서 보여주었던 비례대표의 의석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 1%의 지지율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최근 맞대결 지역구를 조정하는 등 '공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종의 선거연합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등 전략적 유연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연대 움직임은 보수 양당의 내분 및 분열의 잇점을 진보세력이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전략인 동시에 진보세력의 분열로 보수세력이 어부지리를 얻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들의 유연한 전략적 연대가 어떤 성과를 맺을지도 이번 총선의 또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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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3/07 [19:0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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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렉스 2008/03/08 [14:31] 수정 | 삭제
  • 칼자루는 이미 MB가 쥐고 있다.

    BBK 동영상 발표후 바로 MB를 버렸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역시 MB가 될 경우 받을 보복, 또 정동영이 될 경우 받게될 비난에 대해
    고민을 했을 것이고, 그래서 일단 현상유지로 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죽는 길이었던 것을 정녕 몰랐던 것이다.

    공천 건으로 분당이 되면 박근혜 개인이나 영남 중진들이 살아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한신" 처럼 죽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