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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권의 끝과 함께 정치칼럼을 마치며
[김수민의 호모폴리티쿠스] 2월 25일의 단상, 옛 지지자가 책임지는 방법
 
숨인씨
한국의 로이드 조지를 기대했으나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엇갈리는 모습에, 5년 전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나란히 선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5년 전 두 대통령은 ‘부르조아 민주주의의 성숙’을 상징하였다. 그러나 오늘 두 대통령은 ‘시장만능주의 시대’를 상징하고 있다. 재벌의 칼 이명박과 재벌의 방패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은 내가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취임한 대통령이었다. 20대의 1년이 10대의 1년보다 짧은 느낌을 준다는 것은 사람들이 익히 깨닫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5년은 결코 짧지 않았다.
 
  나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 청소년 시절부터 그에 대한 큰 호감을 갖고 있었다. 1997년 대선 당시 이인제를 견제할 목적으로 전술적인 출마 시사 발언을 했을 때, 어쩌면 다음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000년 노사모에 가입했다. 2002년에도 안티조선운동을 지키느라 노사모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해 가을께부터는 개혁국민정당의 당원으로서 틈틈이 활동했다. 2002년 12월 17일, 나는 개혁당사에 있었고 승리자 노무현을 보았다. 개혁당원들에게 배정된 초대권 덕분에 5년 전 오늘, 나는 그의 취임식에 참석했다.
 
  나는 노무현이 한국의 로이드 조지가 되기를 희망했다. 주지하다시피 로이드 조지는 자유당 소속의 영국 총리였다. 좌파는 아니었지만, 영국 복지의 기틀을 닦으며 당대의 진보적 요구를 실현했던 정치인이다. 로이드 조지 이후 자유당은 영국 정치사에서 몰락의 수순을 밟았고, 노동당과 보수당의 좌우 정당구도가 형성되었다. 이 역시 상당 부분 조지의 공헌이 컸다. 
 
  나는 5년 전만 해도 스스로를 중도보수라고 여겼고, 노무현 후보를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다. 그가 1987년 이후 민주 대 반민주, 개혁 대 수구로 이어져 온 점진적 민주화를, 진보 대 보수의 새로운 대결로 바꿔놓는 훌륭한 중도 자유주의자가 되기를 기대했을 뿐이다. 그와 함께 정부로 들어간 이정우, 정태인 등도 한국의 베버리지가 되길 바라마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25일 취임식을 마친 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악수를 나눴다.     © CBS노컷뉴스

트로이의 목마

백기완 선생의 연설에서 무언가 근본적인 변화, 즉 혁명의 냄새를 맡지 않았다면, 노무현 의원의 청문회 활동에서 이 세상의 보다 깊숙한 비밀, 근본적 모순에 대한 폭로를 보지 못했다면 왜 민중이 그토록 환호했겠는가? 그런 폭로와 선동의 능력이 없는 것이 문제이지 우리의 강령이 과격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민중은 보다 ‘과격한’ 전망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김철순 엮음, <사회주의자의 실천 1>, 일빛, 1991, 124쪽.

88년 말 노동법개정투쟁 당시 민주당 당사에서 농성했던 경험을 되새겨보자. 우리의 이익을 직접 대변하는 정당, 우리의 정당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 것인가를 그 당시 실감하지 않았던가? 반면에 대통령 선거투쟁 때 백기완 선생의 연설이 준 감동이나 국회 청문회에서의 노무현 의원의 눈부신 활동이 던진 충격을 상기해 보자. 이렇게 노동자와 민중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앞장서고 거기에 민중의 힘이 가세하는 정치활동은 노동조합운동이 가질 수 없는 또다른 힘으로 노동자와 민중의 지위향상과 정치역량의 성장에 기여할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와 민중의 단결력을 드높이고, 자부심을 일깨울 것이다.
- 위의 책, 134쪽. 


  위의 두 단락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가장 앞서 분투한 진영이 냈던 문건에서 발췌한 것이다. 엮은이 김철순은 인민노련, 한국사회주의노동당의 지도자였던 주대환의 필명이다. 노회찬, 황광우, 조승수, 이재영 등 이 계보를 거친 이들은 진보정당의 건설에 앞장 서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둘 모두 민중정당에 관한 글이며, 노무현은 백기완과 함께 민중정치의 가능성이자 표상으로 묘사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그들이 노무현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보수정당인 통일민주당의 의원에게 내린 평가치고는 매우 후한 느낌이다. 적어도 보수 의회정치로 들여보낸 ‘트로이의 목마’라고 규정한 듯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한국의 로이드 조지가 되기를 바랐지만, 노무현은 수구·보수 진영에서 개혁·진보에 심어놓은 트로이의 목마처럼 처신하였다. 오늘 나는 이명박이 아무 일 하지 않기를 기도하는데, 지난 5년 동안은 예고되지 않은 일에 정신이 없었다. 느닷없이 재신임, 대연정 발언이 터져 나오고, 자유무역협정의 단계를 넘어선 한미FTA를 추진할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노태우와 손잡은 김영삼은 하나회를 숙청했고, 김종필과 어깨를 건 김대중도 6.15 공동선언을 이끌어 냈다. 반면 노무현 정권 5년은 온 국민에게 개혁과 진보에 대한 환멸과 오해를 불러 일으켰고, 꾸준한 보수화에도 불구하고 수구세력의 반노 정서는 더욱 격화되어 이명박을 카드로 한 정권교체가 실현되었다. 노무현은 로이드 조지가 되긴 글러먹었고, 그와 비슷한 예를 빗대기 어려울 만큼, 노무현은 세계정치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을 수행하고 달성하였다.
 
  김규항처럼 노무현은 원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신봉자였고, 그걸 몰랐다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논평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몰랐다는 사람들의 무책임함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노무현이 정치 입문 후 20년동안 겪어온 변화를 상세하게 추측하지 못한다면, 좌든 우든 영영 민주적인 정치 리더쉽을 세우는 일에 실패할 것이다. 연구는 바로 지금부터 시작이다. 
 
“민주노동당 가는 거 아냐?"

노무현 취임식이 있던 날 저녁, 나는 개혁당에서 만난 학생당원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그 자리는 나의 군입대 환송식이었다.
 
  그들은 내가 개혁당을 나간 것이 단지 군 복무 때문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자유주의자이면서도 사민주의로 기울어져 가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앞으로 내가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할지 궁금해 했다. “정치적 고아가 되는 것 아니냐?”는 농 섞인 염려도 있었다. 하기야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런 것 같다. 그 다음에는 누군가 “민주노동당 가는 거 아닌가?”라고 물었다.
 
  “민주노동당에나 가시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어느 경제학자가 개혁당 게시판에서 나에게 한 말이다. 나는 응수했다. “님이야말로 민주당으로 가세요!” 서로에게 뱉은 말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민주당이 쪼개질 때 나는 군대에 있었지만, DJ노믹스의 열렬한 옹호자였던 그가 노무현 및 열린우리당을 따르지 않았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민주노동당에 갈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나마 우파 자유주의자일 적에나 개혁당을 했지, 앞으로 ‘전무후무한 희한한’ 사상을 가진다면 내가 몸담을 만한 정당이 있을까?
 
  그런 나를 민주노동당으로 몰아넣은 것은 노무현 정권이었다. 언젠가 나는 <대자보>에서 노무현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되레 복수를 다짐했던 사연을 털어놓았었다. 주변에 친한 민주노동당원이 많았던 나는 그만, 복수에 눈이 어두워(?) 그 당의 지리멸렬함과 내부 모순을 알고도 입당을 하는 모험을 저지른 것이다.
 
  입대 후 치안현장에서 빈민, 농민들의 삶을 목격하면서 내가 변해 간다는 것을 지인들은 눈치 채고 있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입당에 대해서는 의외라는 반응도 있었다. 리버럴하기 그지없는 내가 ‘운동권 정당’에 들어가서 활동하기 힘들 것이라는 기대였다. 
 
  내가 무슨 대단한 활동을 할 심산으로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진보정치를 지지했고, 진보정당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또 명실상부한 대중정당, 집권이 가능한 수권정당이 되기 위해서 민주노동당은 강도 높은 내부 혁신과 그 성과를 업은 분화가 필요했다. 나는 박수부대의 일원이라는 심정으로 당원이 되었다. 제대 직후 가입하면서부터 황우석사태, 한미FTA 등의 사건이 연달아 터졌고, 나는 노무현 정권 그리고 노빠들과는 화해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서프라이즈>의 김수민은 누구일까?

나를 <서프라이즈>의 논객 김수민 씨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다. 나는 나와 이름이 같은 그 누리꾼의 글을 군 복무 중간에 나온 첫 휴가에서 봤다. 조금 당혹스러웠다. 나도 유명 논객은 아니지만 이곳 <대자보>나 대학매체 <유뉴스>에서 글을 썼고,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이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이따금씩 서프라이즈를 방문할 때면 그의 글은 곧잘 대문에 걸려 있었다.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그와 내가 정치적 입장이 달랐기 때문이다. 만일 2003년 이후 김수민의 이름으로 노무현 정부나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글이 작성되어 올라왔다면, 그것은 나의 글이 아니고 그 김수민 씨나 혹은 또 다른 김수민일 것이다.
 
  그는 또 어디선가 활동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글을 황우석사태 당시에 마지막으로 읽었다. 그는 황우석사태부터 노무현 정권에 대한 지지를 상당히 거두어들인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황우석사태는 노무현 정권이 단순히 우경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쇼비니즘까지 주도하는, 자유주의가 빠진 채 시장주의와 국가주의의 통정이나 꾀하는 정치세력임을 명백하게 증명해버린 계기였다.
 
  그 김수민 씨는 요즘도 글을 쓰고 있을까? 혹은 앞으로 쓰게 될까? 나와는 입장이 얼마나 같고 다를까? 나와 견해가 같아도 곤란하고 달라도 난감하다. 같으면 사람들이 그와 나를 더욱 더 헷갈리기 쉬울 터이다. 독자가 많다면 쉽게 가려지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입장이 다르면 나를 아는 얼마 안 되는 사람조차 오해하게 될 것이다.
 
  <대자보> 독자들 가운데서도 두 사람을 혼동하는 분들이 꽤 많았다. 그러지 않도록 ‘나’에 대해서 조금 밝힌다. 나는 2008년 현재 스물일곱의 대학교 졸업반 학생이고, 경북 출신에 서울에 거주하는 남성 시민이다. 2003년까지 노무현 정권을 지지했지만 그후로는 민주노동당 지지자였고, 지금은 곧 창당될 새로운 진보정당의 지지자이다. 설마 이 모든 신상마저 동명이인인 김수민 씨와 같지는 않겠지?  

노무현에게 배울 것과 배우지 말아야 할 것

노무현 정권기 5년동안 세상이 나아진 것이 있을까? 며칠 전 어느 기사에서 대통령 경호 시에는 규정속도를 지키게 되어있는 탓에, 2003년 5월 택배차량이 대통령의 차를 추월하는 헤프닝이 있었다고 한다. 군사독재 정권의 대통령 차량은 얼마나 속도를 뺐는지는 몰라도, 추월은 물론이고 근처에 차량이 얼씬거리는 것을 놔두지는 않았을 성 싶다. 노무현 정권은 만만한 정권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으로 국회에서 연설할 때, 일어나지도 않고 박수도 치지 않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꽤 많았다. 그동안 세상이 나아졌다면, 그 부분에서 딱 그만큼 나아졌을 것이다.
 
  개혁당 대표 시절 유시민의 호언장담은 맞았다. 대통령이 주는 문화충격이 온 나라에 번지지는 못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분명 문화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언행은 항상 정권의 급소가 되었다. 
 
  그러나 노무현의 문제는 그의 소신과 정책이 잘못된 것이지 언행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었다. 사실 찬찬히 살펴보면 노무현은 차분하게 힘 빼고 발언한 사례가 훨씬 많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로 유명해진 민주평통 발언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그랬다. 가장 비난을 받았던 “대통령 못해먹겠다”도 “아, 정말 대통령 못해먹겠습니다!”가 아니라 “이러다가 대통령을 못해먹겠다는 위기감도 듭니다”를 추린 헤드라인이었다. 활자매체들의 보도가 아니라 동영상으로 접했다면 그다지 욕먹지 않을 일이 숱했다. 황우석을 그토록 지원하면서도 MBC <PD수첩>에는 관용을 베풀고자 했던 것도, 노무현 스타일의 특성상 활자매체는 적으로 돌려도 방송만큼은 우군으로 삼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을까?
 
  조선일보나 한나라당만이 아니라 진보진영에서도 대통령의 언행을 가볍다고 공격했다. 하지만 진보진영은 가벼워져야만 한다. 노무현의 분방한 스타일과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투쟁성을 곱씹어 보아야 한다. 진보진영이야말로 대한민국 주류 사회의 여느 조직들처럼 수직, 상하관계가 공고히 구축되어 있으며, ‘튀는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 고루함에 갇혀 있지 않은가?
 
  단 노무현에게 피해의식은 배우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삼성이 강하고 한나라당이 버티고 있다 한들 현직 대통령은 강자의 위치에 있음에도, 노무현은 끝까지 아웃사이더라는 자의식을 버리지 않았다. 자신보다 더 약한 이들을 대변하지 않고 그들을 거꾸로 인사이더로 취급했다. 박정희와 이문열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홀로코스트의 악몽을 들먹이면서 팔레스타인을 탄압하기 바쁜 이스라엘의 모습을 상기하자. 독재와 폭압은 주류의 거만보다는 ‘고난받는 피해자’들의 손에서 시작되어 끝나곤 한다.
 
  몇 번 이 지면에서도 지적했지만 이명박 정권이 실패하면서 전직 대통령인 노무현에게 다시 스포트라이트가 돌아갈 개연성이 크다. 그것은 친노세력이 현실 정치에서 재도약할 기회가 돌아온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노무현은 유시민을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은 듯하다. 유시민에게도 문화적인 센스와 독특한 스타일이 있다. 이들을 꺾는 것은 결국 진보정당일 터이며, 그래야만 한다. 지켜야 할 것은 원칙과 강령일 뿐, 조직행동이라는 미명의 집단주의가 아니다. 튀는 사람에 대한 눈총을 거두고, 명분을 벗어나는 행위는 견제하더라도 바람직한 순발력은 격려하는 문화가 정착될 때, 진보진영은 도약할 것이다. 
 
칼럼 연재를 마치며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인터넷신문 등에 글을 올렸다. 그러다가 별안간 웹 칼럼니스트가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원래 정치 칼럼을 그리 오랫동안 쓰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5년 전 지지했던 노무현 정권에 의해, 노동자 농민들이 죽어가면서 나는 뒤치닥거리 삼아 글을 썼을 뿐이다. 이 정권이 파탄나면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노무현을 지지할 적부터 했다. 나는 이 지면에서 독자들과 약속을 하였고, 이제는 지켜려고 한다. 세상에 비정치적인 것이 어딨겠느냐만 어떤 당이 어떻니, 정치인 누구가 어떻니, 하는 칼럼을 그만 쓰기로 했다. 아주 이따금씩 새로운 진보정당의 당원게시판 같은 곳에서 발언하기는 할 테지만.
 
나는 운동가나 정치인을 지망하는 사람이 아니고, 칼럼니스트라는 호사를 누릴 의사도 역량도 없다. 여기 <대자보>만 해도 좋은 글이 늘 올라온다. 요즘은 나만의 아이디어라고 여겼던 것이 누군가가 이미 발설했거나 나아가 이미 실행하고 있는 풍경을 곧잘 목격한다. 내가 홀로 특별히 이야기할 것은 거의 없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세울 만한 성과는 없지만 내 깜냥을 훨씬 초과하는, 능력의 250%에 가깝게 정치 참여를 했다. 근래 들어서는 글도 꾸역꾸역 썼다. 이 글도 마찬가지다. 파르르 방전신호가 들어왔다. 
 
  나의 행동이 필요한 일이 있을 것이다. 사립대학의 전횡이나 기울어진 역사, 잘못된 관습에 저항하는 일을 조금 더 하고 싶다. 마음은 이미 학교를 떠났지만 그것들이 내가 관심이 있는 일이며, 어느 정도는 나에게 해결의 실마리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인원이 다수가 되면 절대 직책을 맞지 않을 것이다. 가시덤불에 부닥치면 앞장을 서고 꽃길에 이르면 대열을 이탈하는 것이 나의 소박한 이상이다. 
 
  굳건한 이념이나 능란한 전략보다 내게 더 필요했던 것은 낯짝이나, 내가 지지했던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고 난 뒤 나는 면목이 없었다. 나는 최장집, 고종석, 정태인 등과도 다르다. 내가 책임을 지는 방법은 무능한 사람답게 글을 그만 쓰는 일이다.
 
  노무현 정권 5년동안 다치고 쓰러지고 돌아가신 분들과 그 가족들을 비롯한 그간의 모든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 글쓴이는 경북 구미시 시의회 의원(무소속)입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영남지역 최연소(27세) 기초의원에 당선돼 현재 시의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2002년 <대자보> 필진으로 참여한 이래 다년간 정치칼럼 등을 연재해 왔으며,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대자보> 독자들과 만납니다.
기초의원으로서 풀뿌리 정치 현장에서의 경험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블로그 : http://kimsoomin.tistory.com/
 
기사입력: 2008/02/26 [17:26]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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