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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진보정당 꾸려 능력껏 4월총선 임해야
[김수민의 호모폴리티쿠스] 진보적 유권자들이 지지할 정당이 없는 현실
 
숨인씨
“비대위가 전권을 쥔다, 비례대표 전략공천을 한다, 이런 발상들은 당원직선의 원칙을 버리는 것인데요. 이는 원내정당화의 단초가 아닙니까?”

어느 토론회 자리에서 민주노동당에서 소위 평등파이면서 ‘분당’에 반대하는 ‘쇄신파’인 모 지역위원장에게 질문했다.

“당원직선 원칙을 비례대표 경선에서 고수할 경우 또 정파 선거가 될 것입니다. 그러한 폐해를 자인하고 비대위가 대중들 앞에 비례대표 명단을 내놓겠다는 것입니다.”

그 토론회가 열리기 몇 시간 전 탈당했던 나는 그의 답변으로부터 내가 탈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확인하였다. 심상정 비상대책위가 내놓은 혁신안은 다분히 우회적인, 나아가 기만적인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다. 일심회 사건 관련자들의 제명안은 통과되어야 했지만, 이른바 종북주의 청산이 가결된다면 향후에 찬찬히 진행될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마산 지역의 몇몇 당원들은 종북 청산 등을 두고 당원총투표에 부치자는 성명을 냈지만, 심상정 비대위는 이를 무시하고 당대회 대의원들에게 승인을 요청했다.

심상정 비대위안, 애초에 대안이 아니었다

“당원총투표를 해서 이길 수 있을까요?” 어느 가까운 당원은 이렇게 내게 반문했었다. 역대 당내 선거를 돌아보면 질 것이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그것이 총투표를 기피해야 할 근거는 아니다. 내리 패배를 한 경험이 아파, 이기지 못하면 도전하지 않는다는 나약하고 치졸한 심리. 이것이야말로 자주파와의 동거로 인해 얻은 평등파들의 콤플렉스였고, 심상정 비대위에게 전권을 쥐어주고 혁신을 추동하자는 굴절된 대안을 빚어냈다.

민주노동당의 2.3 당대회는 훌륭한 혁신안이 좌초되면서 생겨난 비극이 아니다. 당내 다수 세력이 그 따위의 혁신안조차 받아들이지 못해 발생한 한편의 희극이었다. 내가 당대회를 일주일 여 앞두고 당을 떠난 것은 혁신안이 통과될 경우에도 잔류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대위에게 잠깐이나마 힘이 부여된 것은 비대위원장이 대선 후보 경선에서 차점자였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 경선에서 차점자가 된 것도 비대위원장이 된 것도 그가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이다. 의원(단) 권력이 혁신을 좌지우지하고 비례대표 상위순번을 몽땅 전략공천하여 찬반 투표에 부치는 당은 대중정당이 아니다. 대중정당이 아닌 당에서 나 같은 일개 평당원은 굳이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
 
▲심상정 대표는 지난3일 임시당대회에서 비대위 혁신안이 부결로 결론나자, 침통한 표정으로 성급히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민주노동당(진보정치 정택용 기자)

한국인들은 생활정치를 구현할 만한 대중정당을 아직 가진 적이 없다. 잠시 활약했던 개혁당은 아마추어리즘을 극복하지 못하고 보수정당의 부침에 휩쓸려 분해되었다. 민주노동당은 활동가와 페이퍼 당원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데 실패하였으며, 기껏 원내정당화가 대안이 될 만큼 운동권동창회 정당으로 전락했다. 오늘 한국정치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수십, 수백만명의 유권자가 당원으로 활동하며 넓고 깊은 정치문화를 생성하느냐, 극소수 ‘선수’들이 운영하는 정당들을 두고 ‘소비자’들이 때에 따라 선택하느냐. 현재로서는 후자의 가능성이 전자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비효율적 조직운영의 발원지로 꼽혀온 지구당을 폐지하기로 했을 때, 유권자 대다수에게 그것은 그저 정치개혁 조치로만 받아들여졌고, 지방자치와 당원민주주의와는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꼼꼼한 검토는 이뤄지지 않았다.  ‘의원 총회’가 사실상 당원 총회나 다름없는 ‘원내정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념과 정책의 결정체인 정당이 대선 후보를 결정한다면서 전 국민에게 참여 기회를 열어버리는 ‘오픈 프라이머리’도, 무원칙이 아니라 개방과 참여민주주의쯤으로 여겨졌다. 

당의 문화와 조직뿐이 아니다. 각 정당의 노선도 유권자를 소외시키고 있다. 한나라당의 유령, 실용주의에 대해서는 자질구레한 평가가 필요 없다. 대통합민주신당은 다시 민주당과 통합하여 통합민주당을 차리기로 합의했다. 호남 지역주의로의 회귀이다. 어차피 제1당이 될 수 없음을, 영남에서 의석을 확보하기가 불가능함을 앞으로 더욱 깨달아 간다면 그 경향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수도권 인구의 상당수가 호남 출신자들임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대통합민주당의 신임 대표이자 통합민주당의 초대 대표인 손학규는 ‘제3의 길’을 선언했다. 그것은 그 스스로가 떠벌이는 ‘새로운 진보’가 아니라 ‘진보를 참칭한 보수’와 ‘보수를 참칭한 수구’ 사이의, 어정쩡하고 흐리멍덩한 길일 따름이다. 한나라당은 아마 200석 돌파를 목표로 외치게 될 터이고, 통합민주당은 개헌 저지선을 달라며 소리 지를 것이다. 이렇게 되면 두 당의 목표 의석만 합쳐도 전체 의석수에 맞먹는다.

진보적 유권자들이 지지할 정당이 없는 현실

지난 대선을 전후로 새로 등장한 소수 정당들도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회창과 심대평이 주도할 자유선진당은 과거에 등장했던 김윤환의 민주국민당, 이한동의 하나로국민연합을 방불케 하는 수구보수의 떨거지 집단이다. 문국현의 창조한국당은 심각한 내홍에 빠져 있다. 이번 총선은 지난 대선의 속편이자 에피소드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유권자 다수는 새 집권당에게 표를 던질 것이다. 설사 유권자의 절반가량이 견제심리를 작동시킨다고 해도 그 적지 않은 수가 자유선진당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민주적·개혁적 유권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통합민주당을 찍거나, 로또를 긁는 심정으로 창조한국당을 지지하거나, 기권하게 될 것이다.

4.9 총선에서는 진보정당, 그러니까 민주노동당도 기권 일보직전에 내몰린 국민들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민주노동당 앞에는 가파른 내리막길이 펼쳐져 있다. 2.3 당대회로 인해 그놈의 종북주의는 만천하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북조선 당국과 접촉하는 당직자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치명적이거니와, 주요 활동가들의 정보가 북조선으로 유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당원을 징계하기는커녕 감싸고도는 멍청한 정당임을 버젓이 공표하게 된 것이다. 진보적 개혁적 유권자들이 지지할 정당은 현재로서는 없다.  

어떤 이들은 진보신당 창당의 비전을 물으며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운동권 사투리로 ‘객관 정세’를 이야기한다. 단순히 자주파들과 갈라서는 것 이상으로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로부터 ‘자주파 대 평등파’ 이상의 구도를 보지 못하는 아둔함에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앞서 서술한 각 정당과 한국정치의 현황은 진보정당의 당원이라면 어렵지 않게 파악하고 숙고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이다.

진보신당의 대안을 다그쳐 묻는 목소리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난 그들부터가 예의 그 레파토리, “대안 없는 비판을 하지 말라”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대안 없는 비판을 하지 말라”는 “비판”의 “대안”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마주할 때 이렇게 말한다:“대안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처럼 ‘살지 않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강령이나 대중적으로 알려진 정책은 큰 틀에서 진보정당의 원칙을 배신한 적이 없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크고 작은 실천들이 모두 진보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명분을 배반한 그 부분을, 민주노동당 스스로의 혁신으로는 해소할 수 없게 되었고, 진보신당은 필연적이다.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이 애초 천명했던 정책들을 성실히 추구하는 것만으로 첫 번째 단추는 훌륭히 꿸 수 있게 된다.

노회찬, 심상정 의원의 탈당이 가시화되면서 쟁점은 ‘혁신이냐, 신당이냐’에서 ‘총선 대응’으로 옮아가고 있다. 여러 활동가들과 전문가들이 총선에 무리하지 말라는 조언을 하는 가운데 왕왕 총선에 불참해야 한다는 견해도 등장하고, 이것이 마치 현명하고 치밀한 판단인 양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겁과 현명함은, 치밀함과 쪼잔함은 구별되어야 한다.

정당법상 창당준비위를 구성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진보신당은 조속히 창준위를 꾸리고 당원입당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1000명 이상의 당원을 확보하면 광역시·도당을 건설할 수 있으며, 광역시·도당이 5개 이상이면 정당등록이 가능하다. 등록에 필요한 강령은 일단은 느슨한 임시강령 및 선거강령이나 매우 구체적이고도 다양한 기본정책들로 채우는 방법이 있다. 지역구 후보는 무리하지 말고 각 지역당원들의 여력과 의사를 반영하여 확정하고, 비례대표 후보는 한명 공천하는 데 드는 1500만원의 금액을 감안하여 공천하면 된다. 사정과 형편에 맞게, 총선에 참여하면 될 일이다.

진보신당은 사정과 형편 맞게 총선 참여해야

총선 전 정당등록이 불가능해지만 그때는 무소속 후보를 내고 창준위가 지원하는 형식으로 총선을 치르면 그만이다. 민주노동당이 대선 직후 내홍에 휩싸일 적부터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할 각오를 다진 활동가들이 있었다. 노회찬, 심상정도 신당 깃발을 세우지 못할 시에는 무소속으로 나설 것이 아닌가? 무소속으로 나서더라도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을 만인에게 알려야 한다. 그러니 창준위가 반드시 필요하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의 약진을 기대하고 일단은 역량을 아끼고 쌓아두자는 의견도 있다. 의석 확보에 얽매이지 말자는 주장도 뒤따른다. 이는 의회활동 및 중앙정치를 도외시하는 발상이거나, 이기지 못할 선거에는 나서지 말자는 회피의 자세이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인지도를 쌓지 못한 조직은 지역에서도 신뢰를 얻기 어려운 한국적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

득표율과 의석을 떠나 총선은 정당의 색깔을 알리는 축제의 장이다. 민주노동당을 박차고 나온 정치세력들은 초록당, 사회당 등과 만나고, 정당 바깥에서 진보정치에 기대를 보냈던 이들을 규합해야 한다. 그 결과로 정당이든 무소속연대든 만들어 총선에 임해, 새로운 진보정치세력이 갈 길을 제시하고 공모해야 한다. 도전과 경험을 탁상공론으로 좌절시키는 악습은, 속 빈 정세분석과 전략수립만큼이나 진보정당을 갉아먹었다. 그 역사는 민주노동당에서 끝내야 한다.
* 글쓴이는 경북 구미시 시의회 의원(무소속)입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영남지역 최연소(27세) 기초의원에 당선돼 현재 시의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2002년 <대자보> 필진으로 참여한 이래 다년간 정치칼럼 등을 연재해 왔으며,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대자보> 독자들과 만납니다.
기초의원으로서 풀뿌리 정치 현장에서의 경험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블로그 : http://kimsoomin.tistory.com/
 
기사입력: 2008/02/15 [10:53]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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