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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은 기름 아닌 ‘연안특별법’에 먼저 죽었다
[황진태의 녹색칼럼] 환경오염 불러올 연안권특별법 통과시킨 정치인들
 
황진태   기사입력  2007/12/24 [15:47]
1997년 IMF사태 당시 국민들이 외화를 모으겠다며 아등바등 금모으기 운동을 했었던 일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당시 실제 서민들의 장롱 속에 보관되었던 금붙이들이 모여 봤자 일부 계층에서 숨기고 있었던 금괴 하나 보다도 못한 양으로 실제 외화획득효과는 미미했었는데 금모으기 운동의 문제점은 한국의 유난히 잘 뭉치는 공동체 의식에 빌어 국민들에게 IMF국난을 야기한 주요 원인들에 대한 문제적 시선을 금모으기 운동으로 쏠리게 했다는 점이다.
 
서해안 기름유출사고에서 대선후보들을 포함하여 정치인들의 봉사활동 참여가 언론매체에 실린 큼직한 사진들을 통해서 볼 수 있었는데 이들은 단순히 표를 의식한 행동이었을까. 아니면 환경재앙에 대한 진정어린 걱정에서 표출된 행동이었을까. 덧붙여 금모으기 운동에서처럼 자신들이 저지른 반환경적 행태는 감추면서 언론의 스펙터클을 이용한 시선돌리기는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굼뜬 국가조차 없었더라면
 
세계화 담론에서 과대세계화론자들은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의 국가 기능은 '시들고(withering away)', '공동화(空洞化:hollowing out)' 등의 수사법을 유포하면서 조만간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반면 세계화 회의론자들은 오늘날의 세계화란 19세기 말의 무역교류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국가는 불변으로 존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양극단의 주장 사이에서 중도적인 입장의 세계화론자들은 세계화 흐름이 분명 존재함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의 기능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인 재접합(rearticulated), 재편성(reshuffle)이 이루어질 뿐 기본적인 사회인프라구축, 복지체계의 기능은 여전히 중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계화 담론의 양극단의 주장을 지양하고 중도적인 입장을 지향한다면 한미FTA 등의 신자유주의 흐름과 결부된 친시장주의에서도 국가의 기능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국회를 통과한 연안권특별법은 이러한 국가의 기본적인 기능조차도 소멸시켜버리는데 국회의원들이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연안권특별법은 남해안, 동해안, 서해안의 지속 가능한(지속가능이란 단어는 개발을 합리화하는 수사(修辭)로 전락했다!) 지역개발을 도모한다는 취지하에 지역주민의 의사결정과정은 무시하고, 지역정치인들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추진된 법이다.
 
특별법의 제정은 그간 연안관리법, 항만법 등을 통해서 연안을 통합 관리해오던 해양수산부와 환경영향평가, 국립공원의 지정, 관리를 맡아온 환경부의 권한들이 명목상으로는 건설교통부로, 실질적으로는 지자체에 권한이 대폭 이양되어, 사실상의 기존 법체계의 붕괴, 국립공원의 3~40%가 있는 연안의 개발 가능성을 보장하여 생태계 파괴를 용인하게 된다.(연안권 특별법 제3조에는 연안권 발전 종합 계획은 연안권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법령에 따른 계획에 우선한다고 적시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점이 많은 특별법이 통과되자 법학자들이 특별법제정 반대 성명을 내놓고, 환경부에서 조차도 반대의견을 표명한 것은 결코 과잉반응이 아니었다.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제거에 나선 여군들이 힘겨워 하고 있다. 태안 등 연안은 기름유출 등 눈에 보이는 환경피해가 아닌 연안권특별법이라는 악법에 의해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던 것이다.     ©당당뉴스

그런데 이번 기름유출사고에서 정부의 대응이 비록 더디었다고는 하나 과대세계화론자처럼 정부를 축소시켜야한다는 반응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굼뜬' 국가의 기능조차도 작동하지 않았더라면 기름유출사고는 더욱 파국으로 치달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욱 큰 문제는 연안권 특별법이 발효된 이후에 법적 정당성의 문제와 기존 법과 충돌하는 특별법 하에서 개발지향적인 연안권 개발이 가시화되고, 기존의 정부가 맡아오던 관리규제체제들이 완화 혹은 격하됨으로써 이번의 환경재앙에 대한 굼뜬 대응조차도 더욱 느림보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점이 내포된 특별법을 지난 11월에 통과시킨 정치인들이 불과 한 달도 안돼서 서해안 기름유출 정화현장에 참여한 것을 두고서 과연 그들의 행동에 진정성이 있는 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당장 특별법 폐기해야
 
서두에서 금모으기 운동의 동원된 요소가 있음을 지적했지만 이번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현장에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을 자처한 움직임들을 포함하여 아직까지도 건강한 공동체 의식이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국민들이 자신의 일인 듯이 서해안으로 달려갈 정도로 환경의식을 견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정치인들은 매체의 카메라 시선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바로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도 의식해야 하지 않을까.
 
굳이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정치공학적인 소견으로 충고하자면 개발법의 국회 통과 직후 시민단체, 학계에서는 특별법 폐기를 위한 헌법소원을 추진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었다. 성명이 발표된 11월에는 무관심 했었지만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대선 과 상관없이 향후 헌법소원 움직임은 국민들의 관심과 함께 여론의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인들의 '처신'이 어떠해야 할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지 않겠는가. 
 
조절이론의 대표적인 이론가에서 녹색당 정치인으로 변신한 알랭 리피에츠는 생태주의로의 전향 이유로 '생태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여의도의 정치인들에게 이 정도 수준의 생태의식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대선뿐만 아니라 내년 총선까지 자신들의 표심을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연안권 특별법을 폐기해야만 할 것이다.
 
지난 주말에 찾아간 안면도에서 마주친 봉사활동을 하던 초등학생들을 보면서 앞으로 최소 10년 후에 이들이 유권자가 된다면 생태의식이 결여된 정치인들은 더 이상 국회에 발을 들일 수 없을 것을 것이라는 점에서 작지만 밝은 녹색희망을 가져본다. 
 
*본문은 <프레시안>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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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12/24 [15:4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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