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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때는 심상정과 부부관계였습니다”
[왜 심상정인가] 부부로 위장하여 탈출시켜 주었던 심상정 동지의 용기
 
조상호   기사입력  2007/09/07 [11:33]
어떠한 투쟁을 해도 소속 조합원이 가장 힘들고 어려움을 겪어낸다. 또한편 안보이는 곳에서 치열한 이면투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면 가슴 아프고 이기면 다행일뿐 보이지 않는 손들의 헌신은 어느 투쟁에서나 마찬가지이다.

1989. 3.16 서울지하철파업이나 1990년 KBS 파업등이 그러한 투쟁의 일부였고 서.노.협 조직활동가 였던 심상정 동지와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 김승훈 신부님이 그런 분이었다. 세분의 민주노동당 대선 예비 후보중 한분을 선택 하라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고통받는 영혼들이 넘쳐나는 이시대에 누가 우리를 가장 잘 이해하고 대변하고, 만들어갈 사람인지를 고민해 본다.

어쩌다 언론매체에 보도되는 것을 보고 심상정동지의 활동을 알고는 있었지만 18년동안 만난적도 전화 한통화하지 못하였다. 서울지하철 3호선 차량기지에서 검수원으로 일하면서 차륜선반으로 전동차 바퀴깎기와 공구실에서 일하면서 야간근무 끝나면 온몸이 돌멩이를 달아논것 처럼 무겁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살려면 운동을 해야 된다는 동료들의 말대로 북한산,도봉산 가는 것이 나의 가장 큰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전 성남시민회관에서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연설회가 있다는데 머리수를 좀채워 줘야하지 않겠냐는 말을 듣고 그래도 명색이 민주노총 조합원이고 전직 노동조합 임원이었는데 하는정도의 의무감으로 성남시민회관의대선 예비후보 연설회에 참석하였다.

참 말들을 잘하는 것 같았고 노동자, 농민, 서민 비정규조합원들이 금방 잘 살수 있을것 같았다. 권영길은 관제언론 파리특파원을 지냈지만 언론노조위원장과 민주노총위원장,2번의 대통령후보로 나섰던 경륜과 내공이 느껴졌다. 노회찬은 운동학출로 용접공,인민노련등 현장에서 일했고 진보언론의 사장을 역임한 만큼 범여권의 표를 잠식 할만 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심상정은 20여년전의 느낌 그대로 한치의 빈틈이 없고 온몸을 던져서 신들린 듯이 일하며 문제해결의 정답집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것같은 아가씨운동가였는데 중년아줌마 정치인이 된 것을보니 나이는 속일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상정 민노당 대선 예비후보     © 심상정 의원실

세명의 민주노동당 대선 예비 후보중 누가 후보로 정해지더라도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적다고 하는 사람들이 다수인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만 대통령에 노무현이 당선되었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고 정치는 생물이라는 신문기사를 본적이 있다. 850만명의 비정규직 삶을 사시는 분들과 하루에도 수없이 망하는 영세 자영업 사장님들, 농사 지을때 마다 빛잔치하는 농민들이 누구를 찍을까 생각해 보았다. 몇 달만에 4번씩 당을 옮겨서 그나물에 그밥인 여권??, 못사는 사람들은 더욱 못살고 잘사는 사람들만 더 잘살게 할 것같은 재벌기업사장과 광역단체장을 지내고 독재자의 딸이었던 야당의 후보?? 아니면 집권경험은 없지만 넉넉지 못한 살림을 신경써줄 것 같은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후보라면 누가 비정규직 삶을 사는 분들과 농민,서민들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몸으로 체험하였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뒤골땡기는 선택을 안해도 되었으면 좋을것 같은데...
 
1989년 3월 16일에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은 파업투쟁을 시작하였다.
 
그날 새벽 1만 2천명의 공권력을 동원하여 불도저를 앞세우고 지랄탄을 쏘며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물리적 침탈을 시작했다. 조합간부 31명을 구속하고 조합원 50명이 중경상을 입고 2천8백여명의 조합원이 경찰에 연행되었다. 공권력에 의해 파업대오를 침탈당했지만 평민당과 민주당으로 거점을 옮겨서 거점투쟁을 계속하였다. 공권력 투입 하겠다고 매일같이 공갈치고 조폭들동원해서 폭력휘두르고,중징계 주겠다고 조합원들 위협하고, 고향의 부모님들까지 동원해서 빨리 직장으로 돌아가라고 하는일이 매일의 일과이었다. 평민당과 민주당에서 14일간의 거점투쟁은 공권력의 집요한 봉쇄작전과 사측과 공권력에서 2번이상 연행자는 무조건 구속시키겠다는 방침, 조합원에 대한 중징계 압력으로 한계상황으로 가고있었다.
 
그때에 14일동안 지하철2선 집행부와 운동단체가 합동 대책회의를 할때 대부분이 회의때에만 참석을 하였는데 단하루도 빠짐없이 책상에서 잠자며 옷에서 식초냄새가 날때까지 헌신했던 심상정 동지의 헌신적 활동에 20여년이 다된 지금도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파업지도부 전원이 구속영장이 집행될 처지이었기에 법적 조치를 받지않고 정상적으로 노동조합을 이끌어갈 3선집행부를 구성할 때 까지가 우리의 몫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심상정동지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대표인 김승훈 신부가 계신 왕십리 성당으로 거점투쟁을 옮기면 공권력 투입을 하지 못할것이란 제안을 하고 김승훈 신부에게 의논을 하러 나갔다. 2선 파업지도부가 개별 산개해서 왕십리 성당으로 집결 하기로 하였다.
 
당시 차량지부장이었던 나는 2주만에 새옷을 갈아입고온 심상정동지가 가져다준 안경과 모자를 쓰고 팔짱을 끼고 공권력의 감시를 피해서 김승훈 신부가 있던 왕십리 성당으로 거점을 옮길 수 있었다. 문영섭 위원장 직무대행을 선임하여 투쟁을 계속할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심상정동지의 정확한 판단력과 거점확보 능력등이 우리 지하철 조합원의 헌신투쟁과 맞물려 정권에 타격을 주는 큰투쟁을 계속할수 있는 힘이되었다.

왕십리 성당으로 거점을 옮겨서도 공권력의 포위와 봉쇄, 계속되는 김승훈 신부에 대한 정권차원의 압력등으로 김승훈 신부 입술이 새카막케 타들어가는 순간이었고 미국의 크리스챤 사이언스 모니터지 동경특파원은 통역을 대동하고 와서 당신들은 노동운동이 아니라 "반군"이라 생각하는데 당신들의 생각은 어떠냐고 묻기도 하였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계속되는 투쟁의 소식을 들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감옥에 갈수 있었다. 공권력 1만2천명투입과 31명 구속, 50명 중경상, 2천8백명의 조합원 연행뒤에도 노태우 군사 정권을 타격하는 승리하는 파업투쟁에는 심상정동지와 김승훈 신부님 등 여러 동지들의 헌신이 있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계신 김승훈 신부님 ! 심상정 동지가 다시 한번 큰일을 하려고 합니다.지켜봐 주십시요 !!!.

2007년 8월 9일 조상호 올림 (원문 : 지하철 노동조합 게시판)

* 조상호(민주노동당 당원)
1989년구속.해고, 2000년 복직
민주노총 공공연맹 중앙위원
제3대 위원장 직무대행, 지하철 해고자 원직복직 투쟁본부 지도위원
서울특별시 투자공사 노조협의회 초대 공동의장
2003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정

* 본문은 심상정 의원실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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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9/07 [11:3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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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태공 2007/09/07 [15:04] 수정 | 삭제
  • 그래도 문국현 부인이 BMW 타고 다닌다는 낚시 기사보다는 훨 낫다. 민노당 당원들의 삶이란 이러게 진정성이 묻어나온다. 범여권이나 문국현이 흉내낼 성질의 것이 아니지... 민노당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