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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 크레딧, 칭찬만 할 수 없는 이유
[새사연의 눈] 아름다운 취지마저 검증된 금융 비즈니스 모델로 전락
 
새사연   기사입력  2007/08/13 [11:49]
‘빈곤층을 위한 소액 신용대출’로 풀이되는 마이크로 크레딧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 사업의 원조격인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의 유누스 총재가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도 계기로 작용했다. 지난달에는 하나은행과 희망제작소가 공동으로 금융소외계층에 대한 창업과 경영을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이미 보건복지부는 자활공동체를 대상으로 매년 20억 원의 창업자금을 사회연대은행 등을 통해 마이크로 크레딧 방식으로 대여해오고 있으며 지난 19일 국무회의에서는 마이크로 크레딧 지원에 필요한 세부사항을 규정한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시행령을 의결했다.

삼백만 원으로 자활의 기적을 창조하자?

시민단체와 은행, 정부에까지 번지고 있는 마이크로 크레딧(micro credit). 그러나 매크로(macro)하게 관찰하면 이 유행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껄끄러운 돌출점이 속속 눈에 띈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과 설립자인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가 1976년 단돈 수십 달러를 빈곤한 이웃 주민들에게 조건 없이 빌려준 것이 마이크로 크레딧(소액대출)의 효시. 이후 마이크로 크레딧은 방글라데시뿐 아니라 세계 100여개 국가로 널리 퍼져 제도권 금융에서 소외된 저소득층, 신용 불량자, 빈곤층을 위한 대안금융으로서 위상을 확립했다     © 새사연

삼십년간 빈민 600만 명에게 52억 달러를 대출해 상환율이 99%에 이르고, 대출자 가운데 반 이상이 가난에서 벗어났다는 그라민은행의 신화에 자극받아 국내에도 2000년부터 ‘신나는 조합’, ‘사회연대은행’, ‘아름다운 세상 기금’ 등이 활동을 시작했지만 1인당 대출 금액이 너무 작아 빈곤층 자활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이마저도 재원 부족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그라민은행의 평균 대출액은 200달러.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2004년 1인당 GDP 400달러를 간신히 넘긴 방글라데시 국민에게는 연간 소득의 절반에 해당한다. 농사를 지으려 해도 종자 살 돈조차 없는 극빈층에게 이 돈은 어렵게나마 자활을 꾀해볼 수단이다.

▲지난달에는 하나은행-희망제작소가 공동으로 마이크로크 크레딧 사업을 본격화하는 한편, 국내 여러 단체들의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 새사연
그러나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운위하는 한국의 사정은 전혀 다르다. 예컨대, ‘신나는 조합’의 초기 1인당 대출액은 300만 원 정도다. 이 종잣돈으로 우리나라에서 빈곤층이 할 수 있는 자활사업은 무엇이 있을까. 물론 사업 초기이고 아직 우리 실정에 맞는 프로그램 개발이 덜 되어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 때문에 하나은행-희망제작소의 경우 1인당 대출금을 5000만 원에서 3억 원까지 지급할 예정이라고는 하나 300억 원의 기금으로 수혜를 받을 대상자는 너무도 제한적이다.

한국의 빈곤층에게 신용대출(크레딧)보다 우선적인 것은 안정적인 일자리다. 괜찮은 일자리가 해마다 줄어드는 상황, 넘쳐나는 자영업을 효율적으로 지원할 제도적 대책이 정부의 우선 임무일 터인데 민간의 호의와 동정에 기초한 마이크로 크레딧 유행에 편승해 대단한 사회 안전망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빈곤층에서 틈새 시장을 발견한 금융자본

이 유행에 한술 더 뜨는 것이 금융기관들이다. 높은 대출금 회수율과 수익률을 지켜본 금융자본이 마이크로 크레딧을 블루오션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라틴 아메리카 지역 마이크로 크레딧 기관들의 경우 국제 수준 은행의 2-3배를 초월하는 수익을 올리고 있다. 사채보다는 조금 싸고 일반 대출상품에 비해 높은 이자 정책 그리고 지역사회를 떠날 수 없는 빈곤층의 특성을 겨냥한 공동책임과 지속적 상환 관리라는 소액대출 특유의 영업 모델에 관심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제 금융 그룹인 시티그룹은 아예 소비자 금융 부문에 마이크로 파이낸스 전담 부서를 신설하여 선진 금융 기법에 마이크로 크레딧 기법을 결합하려 하고 있다. 다른 나라 사례 탓할 일도 아니다. 얼마 전 한국은행은 국내은행의 아시아 신흥 시장 진출을 위해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으로 평판을 높인 뒤 장기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구축하라’는 권고를 담은 보고서를 냈다. 말하자면 마이크로 크레딧을 위장 친선 사절단으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시티그룹은 최근 4년간 세계 150개국의 마이크로 크레딧 기관에 1천만 달러를 기부했다며 친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금액은 100여 국가에 3000개 이상의 지점을 두고 자산 9000억 달러를 운용하는 시티그룹 규모에 비추면 백사장의 모래 한 알이다. 계열사인 한국시티은행이 올해 1/4분기 한국에서만 올린 당기순이익(1,385억 원)에도 턱없이 못 미친다.

은행, 사채와 마이크로 크레딧의 순환구조

얼마 전 신한은행이 국내 사채 시장 1위인 일본계 대부업체 아프로 금융그룹(국내 영업 브랜드 ‘러시앤캐시’)에 수백억 원을 대출해준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은행 자금이 대부업체로 흐른다. 대부업체의 고리 사채는 은행 접근권이 차단된 빈곤층에게 치유불능의 병을 안긴다. 은행은 이들에게 소액 신용대출이라는 진통제 한방을 처방한다. 병 주고 약 주는 순환구조다.

마이크로 크레딧, 그 아름다운 취지마저 금융자본의 촉수에 걸리는 순간 자본 해외 진출의 전초부대, 빈곤층의 최저 생계비마저 이자로 빨아들이는 검증된 금융 비즈니스 모델로 전락하는 세상이다.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이 광풍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 / 정희용 (새사연 미디어센터장)

* 본문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연>(http://eplatform.or.kr/)이 발행하는 'R통신 48호' 이슈해설을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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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8/13 [11:4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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