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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기자 양반, 당신들도 노동자요
[양문석 칼럼]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괴물'로 묘사, 그 댓가 부메랑 될 것
 
양문석   기사입력  2007/07/27 [01:24]
기자님들! 당신도 노동자요!
 
정치권에 들어간 운동권 출신이 한국 사회는 엄청나게 많이 바뀌었고, 20년 전 6월항쟁과 비교하면 그들의 주장이 8-90% 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20년 전 7-8월 노동자 대투쟁 때 한국언론은 노동자들을 괴물취급했고, 폭도취급을 마다하지 않았다. 가슴 설레는 1987년. 그로부터 벌써 20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어찌 이리도 한국언론은 노동자 농민에게 각박할까. 아니 어찌 이리도 20년 동안 변함없이 일관성을 유지할까. 반 노동자. 반 농민. 과격. 폭력. 싸우는 이유에 침묵.
 
연세의료원 등 보건의료노조와 이랜드 사태는 이미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리고 금속노조도 이미 한 달 이상의 부분파업 등으로 장기화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이들이 왜 이 시기에 어떤 이유로 싸우는지를 잘 모른다.
 
▲이랜드 등 비정규직 투쟁을 호도하는 조선일보의 사설. 투쟁의 배후에 민(주)노총이 있는 것처럼 만들어 마치 불순세력이 파업을 부추기는 것 처럼 묘사하고 있다.     © 조선일보 7월 23일자 PDF

언론이 말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이 말하는 바, 금속노조의 부분 파업에 현대 완성차 노조가 동참할 인가 말 것인가만 점침으로써, 금속노조가 파업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관심 없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랜드 파업 보도도 마찬가지. 언론의 키워드는 ‘타결전망’뿐, 노-사 양측의 대립, 정부의 직권중재, 강제 해산으로 이어지는 키워드의 나열로 타결가능성과 타결시점만 점친다. 대학로에서 ‘자리’깔고 점 봐주는 ‘도사’처럼 한국 언론의 보도양태는 점쟁이와 다를 바 없다. 
 
▲민주노총이 이랜드 불매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서자 동아일보 등 조중동이 민주노총 때리기에 나섰다. 특히 동아일보는 "아줌마 앞세워 ‘지지’ 구걸"한다는 등 비정규직 문제는 뒷전이고 민주노총 흠집내기에 급급하는 등 악의적 보도를 자행하고 있다.     © 동아일보 7월 23일자 PDF
언론계 일각에서는 ‘일반시민 중심보도’란다. 자신들의 보도가 매장을 이용하는 혹은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의 입장, 혹은 일반 국민의 시각이라고 단정한다. 가당찮다. 그들이 말하는 소비자 일반국민은 누구인가? 이랜드 매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일반국민이 아니라 특별국민인가? 자기들의 매체에서 끊임없이 읊조린 ‘노무현정부 이후 양극화가 심화되었다’고 보도했던 그 양극화의 한 축에 서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바로 그들이다.
 
좀 더 분석적으로 비판하면, 일반시민의 목소리라는 언론매체의 일반시민은 기자가, 데스크가 지명한 사람들에 불과할 뿐이다. 즉 언론이 말하는 일반시민은 기자나 데스크가 지명한 시민이고, 일반시민의 시각은 기자나 데스크의 관념이나 특정계급계층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대변물’이라는 의미다.
 
더 고질적인 문제는 ‘싸우는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는 전통(?)이다. 지난 일주일간 이랜드의 파업보도를 하면서 비정규직 법안의 문제점과 이랜드 노조원의 해고실태 등에 대해 제대로 보도한 주류 언론사는 거의 없다. 공공성 공익성을 존재이유로 설명해 왔던 지상파 방송사에서는 아예 없었다. 다른 매체처럼 ‘과연 노-사간 협상에서 타결될 수 있을 것인가?’, ‘정부가 언제 강제해산할 것인가?’에만 그들의 눈은 고정되어 있었다. 그들의 그 가증스런 눈을 비틀어버리고 싶은 이유다.
 
이랜드 노조의 파업이 지난 금요일 경찰에게 강제해산 되었지만, 비정규직 투쟁, 이랜드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언론이 그들이 지명한 ‘일반시민’을 내세워 강제해산을 거들고, 사태를 장기화시키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결의 당사자들이 오판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언론사 기자도 노동자다. 그들도 언제든지 강제 해고, 대량퇴출의 칼 날 위를 걷고 있는 집단이다. 이들이 알아야 할 게 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는 괴물로 묘사하면 할수록 그 댓가는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사실을. 기자들도 부당한 ‘회장님 사장님의 방침’을 거부하고 투쟁할 위기상황이 심화되고 있는 이 때, 다른 기자들 다른 언론사들이 자신들이 보도했던 것처럼 ‘억울하게 아주 억울하게’ 보도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사회적 외면으로 그들의 상당수는 사회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기자님들이시여! 당신도 노동자임을 잊지 마소서!

* 글쓴이는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입니다.
언론학 박사이며,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과
대자보 논설위원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 : http://yms7227.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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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7/27 [01:2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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