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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장희빈' 실패는 누구 책임?
공영방송의 외주업체 선정은 언제까지 복마전인가
 
양문석   기사입력  2003/05/01 [01:33]
지난 해 11월 17일 오후 서울 KBS 별관의 한 스튜디오. '장희빈' 세트 촬영이 진행된 이날 현장에는 낯선 소품들이 등장했다. 제작진은 두 칸으로 된 좌훈기(목욕통) 설치 공사에 한창이었고, 한쪽에서는 끈에 꿴 홍시와 향주머니 등을 궁녀의 방 천장에 매달고 있었다. 숙종과 장희빈의 혼욕 장면과 장희빈의 방중술 수련 장면 촬영에 쓰일 물건들이었다. 김혜수는 교수상궁의 지도 아래 홍시를 핥고, 방바닥에 흩뿌려진 팥알을 무릎으로 주워 올렸다.(경향신문 2002년11월20일 인터넷판)

장희빈은 에로사극

홍시 핥아먹기, 무릎으로 팥알 집어 올리기, 배꼽으로 얼음물 받아내기…. 생생한 궁중생활사를 보여주겠다고 호언한 100부작 드라마 장희빈은 궁중생활사가 아니라 궁중방중술을 보여주었다. 이 드라마는 줄거리 전개와 별도로 왕실의 궁중생활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겠다고 밝혀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그러나 왕을 유혹하는 방법, 왕자 낳는 비결 등이 초기에 집중적으로 방영되었고, 또한 장희빈 역을 맡은 김혜수의 노골적인 노출이 잇따라 방영됐고, 숙종역의 전광렬과 혼욕 장면 등이 전파를 탔다.

초반부터 제작사 e스타즈의 대표가 PD를 폭행해서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장희빈은 초반 캐스팅 미스라는 세간의 비난을 의식한 듯 연예 스포츠신문을 모두 동원하여 '에로사극'으로 홍보를 전개했다. 그 덕분인지 초기 20%를 상회하던 시청율이 에로사극 시비가 일고, 벗기기를 자제하면서부터 시청율은 뚝 떨어져, 급기야 2-3월을 접어들자 시청율 한 자리 수를 기록한 후 4월까지 시청율을 회복하지 못하고, 조기종영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속살은 자체제작

'장희빈'은 겉살은 외주제작이나 속살은 자체제작이다. 제작시 KBS의 설비와 장비가 사용된다. 그리고 책임프로듀서 1명과 연출 2명, 조연출 2명중 1명과 다른 스태프 중 대다수가 KBS 직원이다. 저작권 또한 KBS의 소유다. KBS가 외주의무비율을 맞추기 위해서 변칙을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변칙과 반칙은 외주제작의무비율을 맞추려는 방송사들 대부분이 일상적으로 구사하는 수법이다. 외주제작 개념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희빈 외주제작사인 'e스타즈'의 역할은 무엇일까. 연기자 섭외와 제작비집행이 e스타즈가 한 일이다. 외주제작사 중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회사들이 paper company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드라마의 경우 2-3개 정도의 독립제작사만 자체제작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나머지는 자체제작시설이나 장비는 거의 없는 상태에서 연예인 몇 명을 섭외하거나 보유하고 기획서 한 장 달랑 들고 방송사 주요간부와 소위 '쇼부'쳐서 수주한다. 또는 유명 PD 한 두 명 고용했거나 유명 작가 한 사람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외주제작사들이 프로그램을 계약할 때 주요 무기는 연예인 유명 PD 또는 유명 작가 한 두 명이 전부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자본이 풍부한 것도 아니다. 일단 프로그램을 따내면 방송사와 맺은 '계약서' 한 장을 무기로 다시 자본을 유치한다. 손 안대고 코 푸는 식이다.

제작비는 개런티

제작비를 보면, 외주제작사가 방송사로부터 미니시리즈 1회당 6,000만-8,000만원(촬영시설 임대료 등 제외) 정도 받는다. 이 중 주연 한 명의 개런티로 1,000만원에 가까운 돈이 들어간다. 방송사가 자체 제작할 경우 어림도 없는 액수다. SBS 사극 '여인천하'의 강수연이 세웠던 1회당 500만원이라는 신기록은 장희빈의 주연 섭외과정에서 허무하게 무너졌다. 활동 중단 선언과 파혼 등으로 화제를 모은바 있는 심은하의 경우, 'e스타즈'가 장희빈의 주연을 제안하면서 회당 2000만을 제시했다가 거부당하고, 탤런트 김현주에게도 회당 1000만원을 제시했으나 거절당했다는 보도는 결코 허풍이 아니다. 제작비의 대부분의 주요 연기자 개런티로 지출하고 싼값에 방송사의 시설과 장비를 이용하는 외주업체들은 협찬이나 간접광고를 통해서 돈벌이를 한다.

이들의 드라마가 실패하면 협찬금이나 간접광고 수입이 좀 떨어질 뿐 손해보는 것은 없다. 하지만 장희빈에 120억원이라는 거금을 외주업체 e스타즈에 투입한 KBS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책임을 물어야

외주정책이 낳은 사상 최악의 사고 드라마 장희빈. 방송위원회의 일방적인 외주의무비율 올리기와 문화관광부의 '게으르고 고집 센' 관료들이 현장 실사 한번 하지 않고 13년을 한결같이(?) 밀어붙인 외주정책은 그 입안자부터 현재까지 '밀어붙이는' 담당자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 지금까지 KBS는 정년을 보장한 회사이기 때문인지 정책의 실패부터 제작의 실패까지 실질적인 책임소재를 밝히거나 이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마저 그렇게 넘어 가서는 안된다. 정책상의 문제를 정면으로 풀어가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은 채 변칙과 밀실거래로 연예자본 배불리기에 앞장섰던 관련 간부에 대해서 강력히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연줄과 시청율에 현혹된 공영방송사 간부들의 주먹구구식 외주업체 선정은 시청율 경쟁에서마저 참패하고 말았다. 또한 천문학적 제작비 투입으로 인한 손실로 회사의 경영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 그들은 누구인가. 일단 드라마국장, TV제작본부장, 그리고 사장일 터. 지휘계통을 밟아 그 과정을 철저히 조사하고, 최종 책임자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이라도 걸어 손실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 논설위원

* 필자는 언론학 박사로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전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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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5/01 [01:3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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