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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어야 할 것들이 자꾸 자꾸 생겨난다”
[컬처뉴스가 만난사람] 아홉번째 개인전 <풍경> 연 정인숙 사진가
 
태윤미   기사입력  2007/05/31 [02:22]

우리의 모습을, 이 땅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사진으로 말해 온 정인숙 사진작가가 아홉 번째 개인전 《풍경》(5.30~6.5, 인사아트센터)을 열었다. 십 여 년 간 작업해 온 풍경 사진을 모은 이번 전시에는 작고 소박한 아름다운 우리의 산하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현재 (사)민족사진가협회의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작가를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4년 만에 여는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에 대해 말해달라.

 

작업한 지 벌써 이십 여 년이 넘었다. 작업한 지 오래되서 그런지 개인전을 여는데 떨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동안 찍어 온 풍경 사진을 정리해 보여준 적이 없어서 풍경 사진 중 일부, 그 중에서도 땅과 물에 대한 사진 일부를 정리해서 들고 나왔다.

 

왜 ‘풍경’인가?

 

이번에 발표하는 작품은 도시인들한테 낯설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다니면서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시골에 가기만 하면 지천으로 널려있는 풍경이다. 별로 특별한 풍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뭘 보든지간에 자세히 보려하지 않고 어떻게 보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다. 풍경 속에 앉아 있으면서도 뭔가 보고는 있는데 뭘 보고 있는지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다. 내가 정확히 봤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많은 풍경 중에 내 눈에 들어온 것들, 같이 보고 싶었던 풍경들을 건드린 것이 바로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이다.

 

이번 작품들은 어떻게 찍어진 것들인가?

 

풍경 사진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찍었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의 대부분은 1995년부터 2006년까지 찍은 것들이다. 아무래도 땅과 물을 중심으로 작품을 고르다보니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찍은 사진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풍경 사진들은 오고 가면서 눈에 띄는 대로 찍은 것도 있고, 새만금이나 백령도, 섬진강 등 일부러 찾아가서 찍은 것들도 있다. 섬진강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을 모두 보고 싶어서 찾아 간 곳이다. 지나가면서 이 모습은 지금 이 느낌이 가장 좋은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 곳은 한번에 거쳐 간 곳도 있지만 그래도 최소한 두 번 이상씩은 찾았다.

 

‘땅’과 ‘물’이라면 생명, 열매, 풍요로움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번 작품들은 어딘가 아련하고 쓸쓸하다는 느낌이 더욱 강하다.


사람들에게 추억같은 것, 소홀이 하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고 싶었다. 가령 사람들은 물을 떠올리라고 하면 바다의 파도치는 모습같은 거창한 모습을 상상한다. 하지만 나는 그저 잔잔한, 하지만 많은 것을 속살거리는 그런 잔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한 것이 우리 민족의 정서가 아닐까도 생각한다.


이번 작품을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봐야 하나?


나는 내 작업이 다큐멘터리인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다. 아마도 이번 작업들을 놓고 다큐멘터리 사진이라고 말하면 분명 누군가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그저 보고 느낀 그대로를 찍은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러한 장면들이 사라져 내 사진이 기록으로 남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경우는 의도적으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가 되는 경우다.


사진이라는 작업은 어떤 한가지 주제를 잡아서 단기간내에 찍는 방식이 있는 반면 꾸준히 시간을 두고 계속 찍어나가는 방식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대부분 후자의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풍경 작업은 뭘 찍겠다고 의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작업들을 하면서 그 곳에 우연히 가게 되거나 일부로 갔을 때 눈에 띄게되는 것들을 하나 둘씩 찍었던 것이고, 시간이 쌓여 그것들이 모여 만들어 진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작가의 주관적인 주장이나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작업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파인아트적인 성격이 더 강하지 않나 생각한다. 선배 선생님분들의 생각도 그런 것 같다. 나는 그저 아름다운 것을 본 것이기 때문에 아름답게, 섬세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누구나 사진가’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그것을 즐기고 있다. 그 대부분이 디지털 방식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디지털은 시대적인 흐름이다. 디지털 방식이던 아날로그 방식이던 작업을 하는 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기능적인 부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작업하고 맞으면 된다는 이야기다. 내가 무조건 디지털 방식을 배제하고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 단지 내 작업과는 디지털 방식이 맞지 않는다.


나는 천천히 본다. 그걸 가지고 와 다시 암실에서 현상한 필름을 보면서 그 중에서 또 고르고, 인화 역시 아날로그 방식으로 암실에서 인화지 위에 직접 프린트한다. 프린트 할 때도 마찬가지로 톤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어떤 인화지를 선택해서 어떤 느낌을 보여줄 것인지 등 내 작업은 많은 시간을 요한다. 그러면서 생각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최초에 이것은 이런 느낌이야, 라고 단정지어서 어떤 사진을 한 장 만들었는데, 뒷날 이건 아니야, 라면서 다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한 작업이 마음에 들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또 다시 작업을 한다. 결국 작가의 주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아까 말했듯 어떤 것을 어떤 톤으로, 어떤 느낌으로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작가의 생각말이다. 일단 찍으면 사진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찍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너무도 많다. 물론 찍는 것으로도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낼 수 는 있겠지만 그 장면의 포착이 곧 사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풍경작업 이외에도 분단문제를 건드린 사진이라던가 농촌 노인분들의 얼굴을 찍은 사진 등 많은 작업들을 해왔다. 이전 작업들에 대해 소개 좀 부탁한다.
 


나는 카메라로 할 수 있는 일이면 두루두루하고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업도 해야하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작업도 해야하고, 내가 가진 재주를 가지고 남을 도울 수 있는 작업도 해야하고. 그러다보니 작업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지고 있는 것 같다. ‘불구의 땅’ 같은 경우에는 분단문제를 다룬 작업이다. 이 작업은 1987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해오고 있고 지난 2003년에 책으로 묶었었다. 하지만 당시에 누락된 것도 있고 해서 조금 더 정리를 해야할 것 같다.


또 지역 어르신들의 사진을 찍고 있는 작업도 있는데, 노인분들은 풍경을 찍고 하는 것을 이상하게 보신다. 사진은 사람을 찍는 거라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작업을 위해 지역에 내려갔을 때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오셔서 나 영정사진 없는데 한 장만 찍어주시오, 그려면 그냥 찍어주던게 이 작업의 시작이 되었다. 이제는 아예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어르신 사진을 찍게 됐다. 이 일은 주로 민사협 사업이기도 하지만 주 촬영은 대부분 내가 하고 있다.


1998년 즈음부터 시작한 일이니 벌써 십여 년이 되어가고 있는 작업이다. 굉장히 많은 분들을 찍었는데, 내 목표는 만 명을 찍는 것이다. 지금은 한 4천여 명 정도를 찍었다. 한국인의 모습은 참 많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도시사람과 시골사람의 얼굴이, 젊은이와 노인의 얼굴이,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의 얼굴이 다 다르다. 이 작업은 주로 노인분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한국인의 과거 얼굴의 정형성이랄까, 뭐 그런 것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분들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아, 우리나라 사람이야, 라는 생각이 온다. 

민사협의 원로작가 발굴 활동도 주도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결과물로 『한국사진과 리얼리즘 : 1950~60년대의 사진가들』, 『한국사진의 재발견』등이 출간됐다.


이 작업은 궁극적으로 사진의 역사를 정리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에는 사진 아카이브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몇몇 군데에서 미진하게나마 사진 아카이브가 시작되고는 있지만 대게 보면 어떤 파벌이나 인맥에 의해 특정한 작가들만 자꾸 부각이 되고, 그렇지 않은 작가들은 잊혀지고 사장되고 있다. 하지만 원로 작가들의 작업을 살펴보면 어느 작가든지 한 두 작품씩 좋은 작품들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작업을 누군가는 정리를 해야 하는데, 다시 말해 사진의 역사를 정리해야 하는데 아무도 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사진가의 길을 걷게 되었는가?


나는 대학원 때 사진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하기 직전부터 사진에 빠져 있었다. 그 때는 주로 주말을 이용해서 춤, 연극 등 공연 사진을 찍었었다. 당시에는 그런 것을 찍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공연자들은 본인들의 사진을 갖고 싶어했고, 나는 연습할 대상이 필요했기 때문에 작업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열악한 조명 속에서 움직이는 대상을 찍었기 때문에 그 때 연습이 많이 됐던 것 같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대학로에서 평생의 스승이신 김영수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그 후부터 흑백사진 작업을 본격적으로 배우고 지금까지 오게되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은 이번에 발표하지 않은 나무와 꽃 중심의 풍경 사진을 좀 더 정리해서 내년 4월 쯤 전시를 할 계획이다. 분단 풍경도 더 정리해서 책을 좀 더 보완해야 할 것 같고. 또 노인분들과 더불어 지역주민들도 찍을 계획이다. 결론은 우리 땅 이야기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이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를 사진으로 풀어내고 싶다.

 

그런 작업들을 하면 다른 것들도 계속 옆에서 끊임없이 생겨난다. 이것을 찍어야지, 이것만 찍을거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한가지 일을 하다보니까 그걸 찍으면서 옆에 또 부수적으로 찍어야 될 것들이 나오고 그렇다. 아직은 젊다고 생각하기에 주로 내가 움직여야 하는 작업들을 계속 해 나갈 예정이다.  

 

 


* 본 기사는 민예총 컬처뉴스 (www.culturenews.net) 에서 제공했으며, 본문의 제목은 원제와 조금 다르게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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