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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김대중의 외눈박이 시각을 개탄한다
온갖 만행으로 해외로 쫓겨난 이승만이 어떻게 건국의 아버지?
 
조종안   기사입력  2007/05/16 [13:37]
▲    조선일보 고문 김대중 기자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이 주간조선에 특별 기고한 “이런 대통령을…”이란 제목의 글을 읽고 몇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김 고문의 언론인 자질이 의심스럽고 역사를 보는 시각이 외눈박이 같아서이다.

그는 서두에서 “우리는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을 모두 우리의 손으로 뽑았다.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그랬다.”고 말하고 있다. 또 역대 대통령 이름을 순서대로 거명하며 직선이든 간선이든 선거로 뽑았다며 전직 대통령 아홉 명을 뭉뚱그려 엮어 도매금으로 넘기고 있다.

‘깡패를 동원한 사전투표, 서로를 감시하기 위해 3인조 5인조로 엮은 공개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이 난무했던 3·15부정선거를 김 고문은 우리 손으로 뽑은 직선이라고 말하고, 박정희와 전두환의 체육관 선거를 간선으로 적고 있다. 조선일보 사옥 앞을 지나가던 강아지도 웃을 일이다.

김 고문은 그냥 가기가 껄끄러웠는지 “50년 동안 대통령을 뽑는 과정에서 철두철미하게 자발적이고 민주적인 선택권을 행사했는가에 의문이 남는다.”고 말하고 있다. 자의였는지 타의였는지를 가려 적으면 될 것을 의문이라니.. 물타기도 아니고 줄타기도 아니고, 여간 헷갈리는 게 아니다.

“이승만은 독립투사였고 미국의 선택이기도 했지만 대한민국 탄생에 크게 기여한 건국의 ‘아버지 같은 존재..”라는 대목에서는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아버지 자격도, 대통령 자격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승만이 독립운동가들 묘소 참배 막은게 독립투사인가

독립운동의 상징인 임시정부 주석의 묘소를 ‘도둑참배’가 유행할 정도로 참배를 막은 이승만을 어떻게 독립투사라 할 수 있으며, 그곳에 반공탑과 육영수 송덕비를 세운 박정희를 민족의 영도자라 할 수 있겠는가.

김 고문은 윤보선 전 대통령은 국회가 뽑은 대통령이었고 실질적이기보다는 상징성이 강했다며 비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승만 역시 처음엔 국회가 뽑았으니 실질적인 대통령이 아니었다는 얘기가 되고, 체육관 선거로 뽑힌 박정희와 전두한도 그저 상징적일뿐 실질적인 대통령이 아니었어야 한다.
 
▲ 김대중, 이승만은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김 고문은 박정희를 “쿠데타로 집권한 대통령이었고 3선을 연임한 장기집권자였다”며 체육관선거는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가 아니고 국민의 ‘사랑받는 선택’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선거에 의해 선택됐다는 것을 강조하는 걸 보면 쿠데타와 유신독재를 정당화 하려고 애걸복걸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김 고문은 “전두환과 노태우는 변칙적 방법에 의한 ‘원하지 않은 선택’이었다.”며 “그래도 노태우는 마지못해 직선 과정을 밟기라도 했지만 전두환은 ‘장충체육관’ 대통령이었다.”는 데까지만 적고 있다. 웬일인지 광주학살에 대해서는 해명이나 설명 한 마디가 없다.

김 고문은 “김영삼과 김대중은 역대 대통령 중에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에 가장 근접한 대통령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는데, 스스로가 외눈박이 언론인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대목이다.
 
이승만을 건국의아버지로 치켜세운 김대중

김 고문은 마지막에 “과거 대통령은 투사이거나 군인이었다.”며 “이번에는 바라건대 CEO형의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 가족적으로도 우리나라의 평균이거나 그것을 웃도는, 굳이 다른 말로 하면 ‘개천에서 나온 용(龍)’이 아닌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나왔거나 그런 가정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 집안의 어른들을 모셔본, 할아버지 할머니도 모셔본 사람이면 좋겠다...가정도 가져 보고 자식 때문에 골치도 아파보고..”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명박 같은 사람을 뽑자고 권하는 것 같아 대선 이야기는 이만해야겠다.

다만, 독재자 이승만과 박정희를 보는 김 고문의 외눈박이 시각에 부화뇌동하는 누리꾼이 많이 나올 것 같아, 까딱하면 역사가 왜곡될지 모르겠다는 우려에서 몇 가지만 지적하고자한다.

조선일보 김 고문은 백범 김구 선생님과 독립투사들이 안장된 효창원(孝昌園)이 일제강점기에 이어 해방 후 독립선열묘역이 된 뒤에도 이승만과 박정희에 의해 탄압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른다고는 못할 것이다.

왜놈들이 물러간 이후 우리의 정신적 지주였던 ‘효창원선열묘역’을 파헤치고 탄압을 가하는 일이 벌어진 것은 안두희의 흉탄에 돌아가신 김구 선생님이 안장된 뒤부터였다.

김구 선생님을 암살하고, 친일파를 득세시킨 이승만은 국민들이 숭앙하는 효창원이 눈엣가시로 보였을 것이다. 경찰을 동원 참배객들을 길목에부터 막고 불온시하자 줄을 잇던 참배객이 끊기고, 유가족까지 검색 당했으며, ‘백범일지’(白凡逸志)가 불온서적이 될 지경이었으니 당시 사회가 얼마나 어둡고 불안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뿐인가. 효창원을 탄압한 이승만은 독립운동 성지인 탑골공원에 자신의 동상을 세운 데 이어, 남산에는 세계최대 81척 동상을 세우는 이율배반을 보였다. 이처럼 역사에 비극을 장식한 사람이 어떻게 건국의 아버지가 되는 것인지, 김 고문의 시각이 역사왜곡을 밥 먹듯 하는 왜놈들과 너무도 닮지는 않았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만백성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백범의 성장과정과 굴곡의 시대를 알 수 있는 ‘백범일지’를 금서로 지정하고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해외로 쫓겨난 이승만이 어떻게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받아야 하는지 김대중 고문의 외눈박이 시각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원본 기사 보기:http://www.pluskorea.net/sub_read.html?uid=4099(plu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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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5/16 [13:3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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