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민주화를 가져온 1987년 6월 항쟁이 올해로 20년을 맞았다. 민주화 20년의 세월동안 우리 사회는 제도적 측면에서 많은 변화와 개혁이 있었으며, 발전도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더욱 확고해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새로운 갈등과 문제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6월민주항쟁20주년사업추진위원회’는 이 같은 1987년 이후 이 땅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민주화 20년, 문화 20년을 돌아보는 ‘6월 민주항쟁 20년 기념 대토론회-상상변주곡’을 총 9회에 걸쳐 진행한다. <컬처뉴스>는 ‘상상변주곡’ 전 회를 전한다.
1회 - 민주화 20년, 문화 20년 (도정일 문화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2회 - 우리에게 ‘우리’는 무엇인가(진중권 문화평론가) 3회 - 진보문화운동에 대한 비판적 시선(복거일 소설가) 4회 - 6월 민주항쟁 이후 한국 사회의 내면 풍경(임상수 영화감독) 5회 - 지난 20년의 ‘소설’을 다시 읽는다(심진경 문학평론가) 6회 - 진보 운동과 민족문화 운동의 새로운 모색(김명인 문학평론가) 7회 - 세계화 시대에 구상하는 진보 운동의 문화 전략(조정환 문학평론가) 8회 - 민주화 20년, 철학적 사유의 변화와 모색(이진경 철학자) 9회 - 발제자 8일의 종합 원탁토론 |
‘상상변주곡’ 세 번째 시간(5월 10일)에는 문화미래포럼 대표로 연일 정치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보수지식인 복거일 소설가가 발제자로 나섰다. 그가 맡은 주제는 ‘진보문화운동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라는 주제로 토론회 시작 전부터 그가 어떤 쟁점을 형성할지 기대가 모아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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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 20주년 기념 대토론회 상상변주곡 세번째 장이 5월 10일 열렸다. ©컬처뉴스 |
복 대표는 이날 「6월 혁명 뒤의 한국 문화」라는 발제를 통해 근년에 들어서고 있는 정권을 ‘좌파 정권’이라고 규정하고 “이념적으로 사회주의적 색체가 짙으며 그러한 전체주의적 이상만 가지고 사회의 구성원리에 맞지 않는 정책들을 펼치고 있다”며 문화미래포럼의 일련의 주장으로 운을 뗐다.
발제문에서 펼친 복 대표의 ‘비판적 시선’은 ‘경제’와 ‘시장’의 관점에 근거한 사회 진화론이었다.
그는 “사회의 진화는 경제 분야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며, 사회진화에 있어서 가장 빠른 것은 의도적인 변화보다도 ‘경제’의 성장이 중요하며, 경제 성장 자체가 가장 중요한 변화다”라고 잘라 말했다.
때문에 “이러한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이 중요하며, 이러한 경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시장 경제 체제의 우수성은 바로 거기서 나온다”고 역설했다.
그에 따르면 “그런데 근년에 좌파 정권이 거듭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 구성 원리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에 거스르는 정책들이 시도되고 있으며, “이러한 비효율적인 정책은 정치적 분란과 경제적 혼란을 불러왔으며, 투자의 위축을 부르고 경제 침체의 큰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좌파 정권의 전체주의 체제는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으며, 전체주의가 필연적으로 부르는 개인들의 억압과 사회적 정체는 예술에서 가장 두드러진다”는 것. 또 “이러한 근년에 우리 사회에서 높이 차오른 전체주의 사조는 어쩔 수 없이 우리 문화에 특히 예술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글을 쓰기 시작한 1980년 문학을 예로 들면서 “압제 군부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조직된 이념이 좌파였고, 문학이론은 세계적으로 1930년대 등장했던 사회주의리얼리즘이 사회전반에 대세를 이뤘다”면서 “그러한 사회주의적 이념에서 노동해방문학이란 것이 만들어지고, 이러한 사회주의 예술들은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문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독자의 외면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토론에는 이명원 문학평론가와 고영직 문학평론가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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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에는 이명원 문학평론가와 고영직 문학평론가가 참여했다. ©컬처뉴스 |
발제에 이은 토론에는 이명원 문학평론가와 고영직 문학평론가가 참여했다. 이명원 평론가는 “문화의 자율성에 대한 주장은 경제를 사회 발전의 근본적인 규정력으로 삼는 것에 모순이 있는 것 같다”며 “문화적 자율성이라는 것은 경제와 문화를 기계적으로 연결한다고 해서 보장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시장제일주의의 세계체제 안에서 삶과 문화의 자율성은 더 제약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80년대 문학적 현상과 관련해 “급진화된 노동해방문학이라는 문학적 조류가 나타난 것이 사실이지만 80년대 예술이 일방향으로 한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며 “80년대 문학공간에서 다양한 문학형태들이 공존했으며, 진보진영 문학계열 안에서도 치열한 상호비판이 있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체주의’ 논의와 관련해서는 “전두환과 싸우는 과정에서 사회가 전체주의 성향으로 갔다는 말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은 견해”라고 잘라 말하면서 “전체주의를 얘기한 것은 가상의 적을 상정하고 말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고영직 평론가는 발제자가 ‘미래’를 강조함과 동시에 긍정한 것과 관련해 “지금은 억압의 시대이며, 미래는 자유로운 시대라고 말하는 것은 과거의 기억을 부정하는 이분법적 논리”라며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인데 그렇게 절단해서 볼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또 “대선을 앞두고 정치계에서도 2만 달러 시대, 3만 달러 시대를 부르짖고 있는데, 3만 달러가 사회 전체적인 행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가”라고 물으면서 “밥에 올인하는 사회가 얼마나 각박한 세상인지 성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복 대표는 발제 서두에서 ‘6월 항쟁’의 명칭을 ‘혁명’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는데, 이유는 그것이 “정신과 성과 면에서 보기 드물게 성공적인 혁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6월 혁명은 정신에서 비정상적인 상태를 교정하려는 노력이었으며, 성과에서도 ‘직선제 헌법’의 제정을 목표로 삼았고 그 목표를 성공적으로 이뤄 냈다”며 “그것을 ‘항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성공적 혁명에 대한 정당화되기 어려운 폄하”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서도 이명원 문학평론가는 “헌법체제의 변화를 혁명의 핵심적인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며 “세력교체가 이뤄졌는가하는 측면에서 6월 항쟁 이후에도 쿠테타 세력이 집권하게 됐고 반공주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한국사회 성격자체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는 오히려 “6월 항쟁은 절차적 정당성이 왜곡된 것을 되돌리는 차원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복거일 대표는 “항쟁과 혁명은 분류하는 기준차이이며 많은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혁명이라고 한 것 뿐”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