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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2인 3각 '이명박근혜'는 필패 구도
[김수민의 호모 폴리티쿠스] 한나라당은 차라리 홍준표를 내보내라
 
숨인씨
   A가 B앞에서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든다. C와 나눌 몫을 정하면 돈을 주겠다는 조건이 걸린다. ‘독재자 게임’의 시작이다. C가 B에게 5천원이나 6천원을 요구해도 B가 이를 수용하여 만원짜리를 받을 확률은 크다. 하지만 C가 8천원을 부르면 B는 결렬을 선언할 확률이 높다. 20퍼센트의 몫을 챙기는 대신에 2천원조차 마다하는 쪽을 선택하는 셈이다.  .
 
  1987년 후보단일화에 합의하지 않은 댓가로 대통령직을 놓친 김영삼, 김대중은 이후 4, 5천원을 지불하는 일을 피하지 않고 차례로 정권을 잡았다. 결과적으로는 독식이긴 했지만 노무현, 정몽준도 6천원과 4천원을 나눠 가지기로 합의하고 이회창으로부터 만원을 가져왔다. 이들이 성공적으로 ‘독재자 게임’을 통과한 까닭은 무엇보다 그들이 맺은 조합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김대중 총리’ 또는 그 역관계는 불가능했지만, ‘김영삼 대통령-김종필 당수’와 ‘김대중 대통령-김종필 총리’ 그리고 (비록 이뤄지지는 않았으나) ‘노무현 대통령-정몽준 총리’는 자연스럽게 관계자 다수에게 받아들여졌다.
 
  유례없이 많은 후보들이 꿈틀거리는 이번 대선에서는 후보자의 연대가 집권의 필수조건이며 따라서 여러번의 ‘독재자 게임’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당락을 좌우하는 열쇠가 있음은 물론이다. 간극이 크지 않아 무리 없이 지을 수 있는 짝부터 찾아보자. 분명한 이념정당이며 타당과의 사이가 먼 민주노동당이 이를테면 ‘노회찬-심상정’ 러닝메이트를 구성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 아니다.

  현재의 정국에서 상상하기 힘든 조합이긴 하나 ‘강금실-문국현’의 경우도 그럴싸하다. 심상정-노회찬이나 문국현-강금실은 성별과 이미지가 다르면서-그러니까 다른 한편으로는 상호보완적이면서도 최소한 러닝메이트 구성에는 무리가 없을 만큼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는 후보들끼리의 조합이다.
 
  이 러닝 메이트들이 성공할 수 있는 요인은 하나 더 있다. 한쪽은 전반적인 국정을 기획하고 지휘하는 대통령에, 다른 한쪽은 국정을 보다 꼼꼼히 관리하는 총리에 가깝게 느껴진다. 아직까지는 노회찬 대통령-심상정 총리가 심상정 대통령-노회찬 총리보다, 강금실 대통령-문국현 총리가 문국현 대통령-강금실 총리보다 어울려 보이며 현실적인 것 같다. 그래서, 이 조합은 꽤 실현가능성이 있다.
 
   ‘독재자 게임’에 무릎꿇을 한나라당
 
  한나라당은 어떨까? 민심과 당심은 이명박 대통령-박근혜 총리든 박근혜 대통령-이명박 총리든 ‘이명박근혜’의 2인3각을 설정하고 있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두사람의 지지율은 막강한 수준이다. 둘은 나란히 1,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둘의 지지율을 합치면 과반이다. 여론조사의 얄궂은 장난으로 둘이 각자 출마한다는 전제가 깔려도, 한나라당의 집권에는 지장을 주지 않으며 이들의 분열로 다른 후보가 반사이득을 입지 않는다는 결과가 산출된다. 그러나 도리어 ‘독재자 게임’의 마력은 한나라당을 압박하게 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박근혜 총리의 경우부터 따져보자. 위에서 노회찬-심상정이나 강금실-문국현의 예를 통해 살폈듯, 제너럴리스트에 가까운 쪽이 대통령에 어울리고 스페셜리스트에 가까운 이가 총리에 어울린다. 이명박이 진정한 스페셜리스트인지는 차치하더라도 박근혜에게는 스페셜리스트라고 일컬을 만한 지점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더구나 추진력이 강하고 일을 깐깐하게 관리하는 ‘이명박 대통령’ 아래의 총리는, 실세총리나 책임총리보다는 소위 대독총리에 머무르기 십상이다.
 
  하지만 박근혜가 정계에 입문하면서부터 굵직하게 형성해온 자신의 스케일을 접어두면서까지 과연 ‘대독’에 만족할 수 있을까? 설령 정권 초창기에 침묵의 불가침협정이 맺어지더라도 서로를 권력투쟁의 대상으로 여기는 조건은 변하지 않는다. ‘박근혜 총리’는 차기를 노려야 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후계구도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박근혜 총리와 끊임없이 갈등해야 한다. 총리직이 유력함에도 차기를 보장받을 수 없게 되자 ‘노무현 대통령’을 승인하지 못한 정몽준을 떠올려보라. 이것은 절대 섣부른 관측이 아니다. 
 
  이번엔 박근혜 대통령-이명박 총리. 위의 조합보다는 제너럴리스트 대통령-스페셜리스트 총리, 또는 큼직하고 느슨한 대통령-촘촘하고 부지런한 총리에 가깝다. 하지만 이 조합은 한나라당을 떠받치는 한국의 문화적 보수주의를 거스른다. 이명박이 남자인데다 연상이기 때문이다. 이명박과 주변의 무리, 그리고 그 지지자들은 박근혜를 같잖게 생각할 공산이 크다. 또한 나이 일흔이 넘겨 차기에 도전하는 처지이므로 불안감도 증폭될 것이다.

  현직 경영인 문국현과 달리 정치경력 15년에 이르는 이명박에게는 나이 적은 대통령과 기꺼이 호흡하는 경제인 총리에 머무는 것이 달가울 리도 없다. 이 시스템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 총리에게 예전의 이해찬 총리보다 더 큰 실권을 줘야 유지될 수 있다. 그렇지만 총리의 임기가 보장되지 않고 임명권도 대통령 수중에 있는 한, 박근혜는 느긋하고 이게 싫으면 이명박이 떠나야 하는 법이다.
 
  패자가 4천원을 받아도 자존심에 타격을 받고 실질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5천원씩 나눠 가지는 것조차 힘든 게임에 직면한 이명박과 박근혜는 자연히 만원을 혼자 독차지하려 눈꼴사나운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는 둘이 갈려 따로 나가도 정권이 범여권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니, 이 싸움에 제동을 걸 원동력도 충분하지 않다. ‘독재자 게임’의 딜레마는 이념보다 이익이, 당 전체의 이익보다 자파의 후보자를 더 앞세우는 한국정치가 잉태한 한계이며, 한나라당이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된 필연이다.  
 
   한나라당은 경선 시기 잘못 잡았다
 
  5년동안 이회창에 의지하다 노무현에게 덜미를 잡힌 한나라당은 2004년을 기점으로 ‘복수(複數)의 후보를 양성해 왔다. 타 정당의 공격을 분산시켰고, 각개약진을 통한 쌍끌이가 성과를 거뒀기에 이 전략은 성공적이라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분열의 심화로 인해, 2002년을 피했을지언정, 1997년을 반복하지 않으라는 보장이 없게 되었다. 당원과 지지자들의 여론에 아랑곳없이 이명박과 박근혜는 제로-섬 게임을 넘어 이미 ‘전부 아니면 전무’, 혹은 ‘죽기 아니면 살기’의 쟁투에 접어들었다.
 
  이런 마당에 한나라당이 믿고 의지할 것은 당내 경선의 패배자를 대선에 출마할 수 없도록 묶어둔 선거법 조항인데, 유감스럽게도 한나라당은 경선 시기를 늦춰 잡았다. 경선이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한 후보는 경선불복을 저지르지 않고 일찍 탈당하여 독자출마를 감행할 수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에게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은 반면, 한나라당에게는 풍파를 견딜 시간적 여유가 너무 적다.
 
  한나라당은 두 후보 모두 이미 백퍼센트에 가까운 인지도를 확보하고 넉넉한 지지율까지 보유하고 있으므로 유일한 적으로 꼽히는 ‘네거티브 캠페인’이 힘을 못쓰도록 경선을 늦추었겠지만,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학습에서 나온 결론이다. 이회창은 일찍 드러나 노무현에게 진 것이 아니라, 일찍 드러난 덕분에 30% 내외의 여론조사 지지율을 그나마 45% 이상의 선거 득표율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백보양보해 파상적인 검증 공세가 힘을 얻는 데에 본격적인 선거운동 기간은 짧다고 칠 수는 있어도, 2개월 이상의 시간이라면 판세는 얼마든 흔들릴 수 있다. 한나라당에게 필요한 것은 그 판세를 다시 흔들어 손실을 만회할 만한 긴 시간이다. 내가 한나라당 당원이었다면, 경선의 방법을 정리하자는 이야기를 작년에 꺼내며 2007년 봄에, 그러니까 지금쯤 후보를 선출하자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딴에는 걱정이 산더미 같지만 향후 일어날 엄청난 사태를 대비해서 손을 쓰고 있지는 않다. 정객들보다 당원들이, 당원보다 바깥의 열성 지지자들이 더 그렇다. 그들은 여론조사를 과신하고, 선거정국의 역동성을 간과한다. 한나라당이 깨져도 이명박과 박근혜는 당선권이다, 이리저리 아무리 재어도 범여권이 당선될 가망이 없다, 는 관측이 저잣거리를 맴돌고 있다. 한나라당 열성 지지자들의 뇌리는 1997년과 2002년의 악몽에 지배받지만, 그들은 저주를 풀 깜냥이 없다.
 
  어느새 한나라당의 희망봉, 이명박은 눈에 띄게 깎여지고 있다. 이명박에서 이탈한 지지율이 박근혜에게 옮겨 붙지도 않는 듯하다. 이명박 돌풍을 풀무질한 것은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자가 아닌 무당파 유권자나 예전의 노무현 지지자들이다. 이명박이 후보가 되어도 박근혜의 지지자는 그를 찍지만, 박근혜가 후보가 되면 이명박의 지지자가 적이 이탈할 수 있다는 것은 이명박이 한나라당의 본선경쟁력과 외연확장을 제고하기에 걸맞은 카드임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명박의 지지층이 박근혜의 그것보다 허약한 탓에 이명박이 한나라당 후보가 되어도 그를 찍지 않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조성할 뿐이다. 박근혜의 적극적 소수냐, 이명박의 소극적 다수냐. 한나라당은 위험천만한 늪에 빠졌다.
 
  이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에게는 위안거리가 있다. 좀 썩었더라도 국민들이 이해할 것이며 몇퍼센트를 득표할지는 몰라도 마침내 승리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언제부터 ‘무능’의 반대말, ‘유능’의 동의어가 ‘부패’가 되었을까? 한국인은 경제인에게 관대하기 때문에 이명박이 검증을 이겨낼 것이다? ‘이건희 구속’을 반대하는 사람이 현대건설 회장이 아닌 대선 후보에게도 너그러울까. 박정희 대통령 사후에 암울한 세월을 보낸 박근혜에게 약점은 없을 것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차라리 홍준표 내보내 ‘안정적 패배’를
 
  한나라당이 1997년과 2002년의 기억을 넘어서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내부에서 가장 개혁적인 인사를 대표나 대선 후보로 내세우는 것이었다. 한나라당의 오른편이 떨어져 나가 극우정당을 만든다 한들 ‘제2의 민국당’을 면치 못했을 것이고 역으로 개혁적 유권자를 끌어당기는 요인을 제공했을 터이다. 의석과 지지도에서 앞서기만 한다면 강남과 영남에 편포된 수구특권층도 ‘김용갑당’을 버리고 ‘손학규당’에 전략적 지지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5년을 꼬박 허송했다.
 
  이명박, 박근혜는 한나라당을 재앙에 빠트리고도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안정적 패배를 도모하는 편이 낫다. 능동적인 의정활동과 소탈한 모습을 자랑하는 홍준표는 어떨까? 그의 파괴력이 작아서 지더라도, (지난 총선에서 탄핵 역풍을 뚫고 기록한) 35퍼센트 내외의 득표율을 챙기면서, 미래(진화된 보수정당으로서 2012년에 집권!)까지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은 이 말을 약올리기로 받아들이겠지만. 
* 글쓴이는 경북 구미시 시의회 의원(무소속)입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영남지역 최연소(27세) 기초의원에 당선돼 현재 시의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2002년 <대자보> 필진으로 참여한 이래 다년간 정치칼럼 등을 연재해 왔으며,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대자보> 독자들과 만납니다.
기초의원으로서 풀뿌리 정치 현장에서의 경험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블로그 : http://kimsoomin.tistory.com/
 
기사입력: 2007/05/01 [14:39]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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