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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선일체와 기생.. 30년대 일본잡지가 본 조선
[책동네] 한일비교문화연구센터 연구자 <모던일본과 조선판(1939)> 완역
 
김영조   기사입력  2007/04/13 [11:16]
“어린 학동들이 솔방울을 주워 모아 국방헌금을 낸 이야기, 그날의 끼니도 어려운 과부가 절미(節米)를 하여 위문헌금을 한 이야기, 아무 것도 봉사할 수 없으니 풀을 베어 말의 식량으로라도 헌납하고자 며칠을 걸려 먼 길을 찾아 온 농부의 이야기 등, 이러한 자료를 모으면 막대한 양이 될 것이다.”
 
▲"일본잡지 모던일본과 조선 1939" 책 표지     © 어문학사
위 글은 6ㆍ25전쟁 때 우리나라 국민의 애국정신을 보여준 이야기가 아니다. 1939년 일본 잡지가 조선판 특집을 내면서 실은 글 속에 있는 내용이다. 일본 잡지 “모던일본”은 그렇게 ‘내선일체’를 부르짖었다.
 
이런 내용과 함께 1939년 대 조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책이 출간되었다. ‘한일비교문화연구센터’의 연구자들인 윤소영, 홍선영, 김희정, 박미경 씨 등이 일제강점기 당시에 발행된 일본 잡지 “모던일본”의 조선판 특집을 완역하여 “일본잡지 모던일본과 조선 1939년”이라는 제목으로 어문학사(대표 윤석전)을 통해 내놓은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내선일체(內鮮一體)’를 강조하는 내용들이었다. 이 잡지에는 일본 정치평론가 미라타이 다스오의 “내선일체론”, 조선총독부 학무차관을 지낸 세키야 테이자부로의 “내선일체와 협화사업”,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의 “지원병이 본 조선인”과 편집부가 정리한 것으로 보이는 ‘조선독본’ 등을 주요 꼭지로 내세워 일제의 조선 침략을 미화하고 있는 것이다.
     
▲"경성역 앞에서 황군의 출정을 환영하는 감격에 찬 장면"이란 설명이 붙어있는 사진     © 어문학사
 
또 잡지는 지원병을 자원한 혈서 사진과 ‘황군의 출정을 환영하는 감격에 찬 장면’이라는 제목의 사진들을 붙이고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죽었다는 조선인 학도병에 관한 수필 등을 실어 당시 조선통독부가 ‘내선일체’에 얼마나 광분하고 있었던 지를 실감케 한다.
 
▲"가정 생활을 엿보다" 사진들     © 어문학사
이 잡지에서 ‘내선일체’와 함께 두드러지는 대목은 ‘기생’이다. 차례 다음의 화보면에 여러 쪽에 걸쳐 기생들의 사진이 올려 있는가 하면 12쪽에 걸친 “평양 기생 내지 명사를 이야기 하다.”란 제목의 시시껄렁한 좌담회와 ‘조선독본’ 뒤에 별도의 꼭지로 기생을 다룬 다음 춘향전과 심청전을 올려 조선을 기생의 나라로 오해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사게 만든다.
 
다만, “기생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나?”란 글에서 서화를 비롯하여 가곡, 성악, 시조, 잡가 등의 조선 전통성악과 검무, 승무 등 전통무용이 주된 과목임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꼭지에서도 결론엔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술에 관한 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천성을 지니고 있다.”라고 하여 역시나 하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조금 열린 문틈으로 바느질하는 여인이 보이는 조선 특유의 정경은 그 자체로 '겨울밤의 시다'란 설명이 붙은 그림     © 어문학사
또 하나 이 잡지의 눈에 띄게 강조되는 대목은 조선의 경제이다. 다이아몬드사 주필 노자키 류시치는 ‘조선 공업의 약진’에서 “조선에는 노동력이 저렴하고, 세금이 싸며, 철, 금 등 지하자원과 전력이 풍부하다. 또 공장법이 없지만 ‘공업적인 제조건’이 완비되어 있다.”라고 고 말한다. 한마디로 조선은 수탈의 대상으로 적절한 나라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밖에 이 잡지는 조선의 예술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당시 인기를 끌었던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이태준의 ‘까마귀’, 이광수의 ‘무정’을 싣고 있으며, 주요한의 ‘봉선화’, 모윤숙의 ‘장미’, 김소월의 ‘님의 노래’, 정지용의 ‘백록담’같은 시도 소개하고 있다. 또 김사량의 ‘조선작가를 말한다.’를 통해서 조선의 작가들을 지도를 그려주며, “최승희와 그 외”를 통해 최승희를 비롯한 조선 무용계를 더듬는다.
 
또 잡지는 ‘조선의 집들’, ‘가정생활을 엿보다’, ‘농촌풍경’ 등의 화보와 ‘험준한 대 금강산’이란 이름으로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며, ‘조선의 예의 범절 여러 가지 축쇄판’이란 제목으로 “맨살을 드러내는 것을 극히 싫어한다. 단순히 맨살을 드러내지 않을 뿐 아니라 노인 등은 실내에서도 관을 벗지 않는 것이 예의이다.” 등의 조선 예절도 소개한다.
 
▲ "조선 명인 백인" 첫 쪽     © 어문학사

▲조선의 풍속천국, 담배를 소재로 한 만화, 생리대 광고 만화     © 어문학사
 
‘조선요리 만드는 법’, 조선 부인복 만드는 법‘도 그림과 함께 상세히 설명하고, ’조선어 빠르고 쉽게 이해하기‘도 보인다. 여기에 현상모집 하여 뽑힌 ’조선 명인 백인‘은 민족지도자 여운형, 조만식 등과 지금 친일인사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들도 망라되어 있다. 그런데 이중 판소리 명창 이동백은 명창으로 소개되었지만 여류명창 박녹주와 이화중선이 기생으로 기록된 점은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은 마음이었다.
 
▲험악한 인상의 군인을 그린 위장약 광고     ©어문학사
마지막으로 눈 여겨 볼 것은 이 잡지에 실린 광고들이다. 결핵ㆍ성병ㆍ소화제 등 약 광고를 보면 건강에 대한 대중의 높은 관심을 알 수 있고, ‘산책의 권유’라는 짧은 만화로 생리대를 광고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띄며, 레코드 라디오 화구 등의 광고를 통해서 당시 식민지 조선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1939년에 펴낸 잡지여서 번역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겠지만 4명의 번역자들은 성실한 자세로 당시의 조선을 풀어냈다. 광고에 쓰인 글들까지 번역해 놓은 것은 물론 책 뒤에는 해제와 친절한 역주까지 붙여놓아 1939년의 잡지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인 것은 칭찬받아 마땅할 것이다.
 
잡지를 번역 출간한 어문학사 윤석전 대표는 이 잡지가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돼 있지만 훼손이 심해 열람할 수 없어서 일본 간사이관의 것을 영인했다며 또 다른 조선판인 1940년 발행분도 출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당시 30만부가 팔린 이 잡지를 읽어 봄으로써 우리는 1939년 당시 식민지 조선의 생활상과 일제의 간악한 내선일체 음모를 짐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던일본 조선판>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연구의 보고
[대담] “모던일본과 조선 1939“ 역자 / 윤소영, 홍선영, 김희정, 박미경
 
▲ <모던일본 조선판>의 번역자들(왼쪽부터 홍선영, 김희정, 박미경, 윤소영) ⓒ김영조
- 이 잡지를 번역한 동기는 무엇인가요?

“홍선영: 우선 1930년대 조선의 문화가 궁금했어요. 예를 들어 1930년대 조선의 ‘모던보이’ ‘모던걸’들은 어떤 책을 읽었을까? 그리고 그들은 어떤 상품 광고를 보고 어떤 음악을 들었으며 어떤 소설을 읽고 어떤 유행을 따랐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거든요. <모던일본 조선판>은 당시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인기리에 읽히던 잡지였으니까요.

다시 말해서 이 잡지는 1930년대 조선의 대중문화를 잘 드러내주고 그래서 60여년이 지난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역사적인 상상력을 불어넣어주는 그런 책이라 여겨져서 번역을 하게 됐습니다.”


- 당대의 모더니즘을 소개하는 대중적인 교양잡지인데도 정치적인 글이 많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광고나 사진, 수필 등에도 교묘하게 내선일체를 선전하는 내용이 많다는 생각입니다. 잡지사가 조선판을 낸 실제 의도가 혹시 “내선일체”를 홍보하는데 있는 것이 아닐까요?

“윤소영: 물론 이 잡지에는 전시체제라는 시국에 편승하는 국책 기사도 다수 포함되어 있어요. 일본 지식인들의 천편일률적인 조선인식도 엿보이구요. 당연히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전체적인 시각이 ‘내선일체’를 벗어나지 못한 부분도 있구요.

그러나 그런 정치적인 의도 외에도 ‘엽서회답 조선과 나(379쪽)’를 보면, 당시 조선에서 살아간 조선인과 일본인의 일상의 모습, 그리고 일본 지식인이 조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 또 김래성의 ‘종로의 범종’이나 김진섭의 ‘선술집에 대하여’, 이헌구의 ‘짧은 여행, 작은 느낌’ 등은 경성의 일상생활을 스케치하는 듯이 그려내고 있어서 당시의 생활상을 손에 잡힐 듯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잡지의 독특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30만부가 매진된 이 잡지가 희귀본이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홍선영: 이 잡지가 1930년대에는 베스트셀러였을지 모르지만 그 때는 가치 있고 귀중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 시대를 풍미하는 유행가들처럼 대개 대중문화라는 것은 동시대에는 너무나 흔한 존재라서 그대로 소비되어 버리고 나면 도서관이나 자료실에 잘 정돈되거나 수집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따라서 종종 이런 유의 잡지들이 오히려 독자가 소수인 학술잡지들보다 희귀해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모던일본> 역시 일본에서 흔한 잡지였지만 지금은 쉽게 구해볼 수 있는 책이 아니거든요. 특히 <조선판>은 아주 희귀하다고 합니다. 저희들이 이 자료를 처음 접한 것도 일본인 개인 수집가의 집에서 우연히 발견했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많이 팔린 잡지여도 나중에 잊히는 잡지도 있거든요.“


- 번역하면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꼭지는?

“김희정: <모던일본 조선판>은 조선에 관한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여러 분야에 걸쳐서 우리의 지적 호기심과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어요. 그래서 한 꼭지 한 꼭지 설렘을 가지고 번역을 해 나갔고,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하거나 하면 앞을 다투어 책을 들고 뛰어와서 같이 배를 잡고 웃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이 <모던일본 조선판>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연구의 보고(寶庫)라고 봅니다.

그러나 어떤 해석을 위한 자료로서보다는 단순한 부분들이 오히려 인상에 남았어요. 예를 들어 지금 봐도 재미있는 복덕방, 조선박식대학, 콩트, 삽화, 조선의 수수께끼, 뭐든지 ASK US들이 그렇지요. 모던일본사 쪽에서는 지면의 짜투리를 이용한 조선의 토막상식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왠지 그 속에 시국적 분위기를 뛰어넘는 인간적인 즐거움이 녹아있음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또 잡지를 통해 통신판매를 하는 모습도 오늘날 인터넷 쇼핑을 연상시켜서 재미있었어요.“


- 한일비교문화연구센터를 소개해 주십시오.

“박미경: 2003년 9월에 학술진흥재단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처음 만난 4명의 인문학 연구자가 주축이 되어 만든 연구공동체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 사상, 문화, 예술 분야를 넘나들며 한일 문화에 관한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여 번역, 소개하는 일, 월례 연구세미나 운영, 공동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김영조

※ 누리집(홈페이지) http://hanbim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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