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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논객과 매체 그리고 시대소리
대안매체와 개혁매체는 결집해서 개혁을 견인하라
 
변희재   기사입력  2003/06/17 [14:27]

 대학 도서관에서 후배가 한국의 개혁매체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사상계], [창작과비평], 의 창간호 머리말을 복사해주었다. 입버릇처럼 [사상계], [창작과비평]읊고 다녔지만 사실 나는 이들 매체의 창간호를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냥 암흑의 시절에 어쩔 수 없이 터져나왔던 목소리를 담아내었던 매체라는 이미지를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90년대 초반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의 사설 PC통시에서도 어쩔 수 없이 터져나왔던 다양한 목소리들이 뒤엉켜 있었다. '뒤엉키다'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어떤 개혁적인 방향성을 향해 목소리들이 모아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익명성과 무한한 스페이스의 자유를 누리며 감히 리얼 스페이스라면 할 수 없었던 말들의 흐름이 넘쳐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분명히 개혁과 진보에 대한 열망은 살아있었다. 그 시절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은 최소한 신문과 방송이 일률적으로 내보낸 콘텐츠에 안주했던 자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을 인터넷 논객 1세대라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1995년 PC통신 하이텔에서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에 관한 글이 연합뉴스나 방송3사보다 더 빨리 올라오면서 PC통신이 하나의 매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김영삼 정부시절인 그때만 해도 정권에서 언론사 보도를 통제할 수 있는 시절이었다. 정권에 불리한 사건이 있었을 때 언론사에서는 보도를 기피했고, PC통신은 언론이 기피하는 주제를 다루는 대안매체로서의 역할을 자신도 모르게 부여받고 있었다.

 같은 해에 사이버 논객들의 글쓰기와 매우 닮아있는 전북대 신방과의 강준만 교수는 [김대중 죽이기]라는 책을 발표했다. 당시에 PC통신의 사이버토론방은 매우 다양한 주제로 네티즌들 간의 공방이 벌어지고 있던 때였다. 그러한 다양한 주제 속에서 '김대중'이라는 우리사회의 개혁의 뜨거운 감자가 사이버 공간에 공식적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97년 대선 때까지 '김대중'은 PC통신 공간의 단골 손님이 되었다.

 그러면서 사이버 공간이 단지 농담따먹기를 하는 곳, 혹은 기존 언론사가 덮어놓은 뉴스 속보를 전하는 곳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대안담론 생산기지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1995년도부터 1997년도까지, 김대중에 대해 가장 풍부한 논의가 이루어졌던 곳은 그 어떤 매체도 아닌 오직 PC통신이었을 정도였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김대중에 대한 공식적인 논의 역시 금기시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역량을 모아 97년도 대선 때, PC통신에서는 대선 후보 김대중의 당선 논리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글들이 상당수 올라왔다. PC통신 하이텔에서는 '김경렬'이라는 스타논객이 김대중론을 이끌기도 했었다. 2002년 대선 때의 노사모와는 비교될 수 없지만, 97 대선 때 역시, 기존 언론에서 소외받은 김대중 후보의 당선에 사이버 논객들의 지원이 큰 역할을 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인터넷 초창기의 대안매체들     ©대자보 자료사진
97대선 이후에도 바로 네티즌들의 이러한 영향력으로 인해, 사이버 매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창간되었다. 그 중에서도 [딴지일보](http://www.ddanzi.com/) 의 성과가 가장 눈부셨다. 어찌보면 [딴지일보]의 성공은 사이버언론의 역할을 확장시켰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결국에는 인터넷 매체는 주류 아래의 B급이라는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부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딴지일보]의 성공을 제대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흔히들 마치 [딴지일보]가 '함다', '슴다'로 이어지는 발랄한 딴지체, 그리고 '졸라', '씨발'로 이어지는 화끈한 욕설로 성공했다고 오해를 한다. 그러나 당시 딴지일보의 필진은 현 편집장인 최내현으로 대표되는 전문논객들이었다. 제도권 매체에서 활동하는 그 어느 논객과 견주어도 대중적 필체와 전문성에서 떨어질 것이 없는 당대의 논객들이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상징적인 글이 바로 '김대충 구라주필의 지좃대로 영문법'이다. 최내현 편집장은 이 글을 통해 [조선일보]의 김대중 전 주필의 영문기사 왜곡번역을, 미국과 영어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통렬히 비판했다.

 [딴지일보]의 논객들의 수준이었다면, 소통과 토론, 그리고 정면에서의 비판이 가능한 비판적 글쓰기를 해도 충분했을 텐데, 다른 방식으로 너무 멀리 나갔던 것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어차피 인터넷 매체가 주류 제도권 언론과 상대해서 시장에서 승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김어준 총재는 '조선일보 사옥을 딴지일보의 화장실로 쓰는 그 날까지'라는 말로 전복의 의지를 꿈꿨으나, 실제로 딴지일보의 사업방향은, 콘텐츠 생산 미디어로서가 아니라 종합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했다. 당시의 딴지일보의 파괴력으로 볼 때, 논객 칼럼 사이트로 집중해서 승부를 던졌더라면, 인터넷 대안언론의 판도 자체가 크게 바뀌었을 거라 짐작해본다.

 [딴지일보]의 창간보다 약간 앞선 1998년 4월 강준만 교수는 [월간인물과사상](http://www.inmul.co.kr/) 창간준비호를 발행한다.

 "도대체 누가 지식인인지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하곤 했습니다. 대학교수, 언론인, 문인들은 무슨 말과 글을 내뱉든 무조건 지식인이고 그런 직업을 갖지 못한 보통사람들은 무슨 말을 하든 지식인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아니 그들에게 공적으로 말할 기회나 주어집니까? 저는 지식인에 대한 기존 정의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저는 모든 독자들께서 "지식인으로서 월간인물과사상에 적극 참여하여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여러분들께선 지식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보통사람들의 논리와 주장이 많은 경우 유명 지식인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낫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인터넷 매체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1998년도 상황에서 이미 월간인물과사상은 지금으로 말하면 논객 사이트와 거의 유사한 포맷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언로의 민주주의라는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발상이었다. 바로 이러한 관점을 공유했던 사이버 논객들이 모여 1999년 1월 23일에, 인터넷 정론지 대자보(http://www.jabo.co.kr)를 창간했다.

 "인터넷 [대자보(大字報)]는 기성언론으로부터 소외받고 선택된 정보만을 주입받던 피동적 언론수용자들에게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고 자신이 직접 참여하는 언론을 제공하는, 문자 그대로의 '대자보'의 역할을 담당할 것임을 분명히 천명하는 바이다."

 창간정신을 보면 월간인물과사상과 거의 일맥상통하고, 대자보 역시 월간인물과사상처럼 기존 제도권 언론이나 지식인들을 적극 비판하며 그들과의 토론과 논쟁을 통해 권력교체에 나설 의지가 있었다. 딴지일보에서는 토론이 불가능했지만 월간인물과사상과 대자보에서는 토론이 가능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의 강준만 교수 고소사건이 발단이 되어 안티조선 우리모두 사이트가 2000년 1월에 오픈하게 된다. 이 사이트는 인터넷상에서의 사이버 논객들부터, 오프라인 매체를 통해 강준만 교수를 지원했던, 홍세화, 진중권, 김정란, 노혜경씨 등등이 참여하면서, 좌우파를 망라한 언론개혁포털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실제로 안티조선 사이트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당시 사이버 여론을 주도했던 월간인물과사상과 대자보 사이트의 클릭수가 줄어드는 역효과도 있었다. 모든 언론개혁 관련 논객과 콘텐츠가 안티조선 우리모두로 몰려든 것이다.

 MBC [100분토론]에 '안티조선'이 토론주제로 오르면서, 안티조선 사이트의 여론 설정 기능은 더욱 더 강화되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기존 매체들도 안티조선의 움직임을 매일 체크해야 될 정도였다. 
 
 
▲안티조선과 관련된 논객들     ©대자보 일러스트
아마도 안티조선 우리모두 사이트(http://neo.urimodu.com/)에 대해서는 따로 글 장문의 글 한 편으로 평가를 해볼 필요가 있으나, 이 글에서는 몇 가지만 짚어보려 한다. 안티조선은 오프라인 매체에서 활동하는 전문논객들과 지식인과 전문적으로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지는 않는 일반 네티즌 논객이 함께 만들어갔다. 이러한 연결고리를 매끄럽게 이어나가지 못한 것이 결정적으로 안티조선의 성장의 한계점이었다. 당시에 사실 상 안티조선의 동력은 온오프를 넘나들었던 안티조선의 전문논객들에게 집중이 되었는데, 그들만의 힘으로 안티조선 우리모두를 대안 미디어로 발전시키기는 무리였던 것이다.

 물론 나는 그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글을 쓰는 논객의 능력과 매체를 운영하는 경영자의 능력이 무척이나 다르고, 이 지점에서부터 언론개혁을 꿈꾸는 논객이라면, 이 다른 두 가지 능력을 모두 소화할 수 있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는 것을 강조할 뿐이다. 안티조선 우리모두의 동력으로 볼 때, 충분히 딴지일보나 월간인물과사상을 넘어서는 대안언론으로 성장할 수 있었음에도,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언론개혁 매체가 아닌 언론개혁 동호회 사이트에 머물렀다고 판단한다.

 안티조선 우리모두는 특정인물이 주인이 되는 사이트가 아니었으므로, 외부 경영자가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니고, 콘텐츠를 채워넣는 대표 논객들이 나서서 책임지고 끌고 나갔어야 했다. 불행하게도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의식이 부족했다. 운영을 해나갈 만한 주체가 없는 사이트는 죽는다. 안티조선의 대표논객이었던 진중권은 안티조선은 친 민주당 네티즌들 때문에 당파성이 드러나 죽었다고 한다. 분명히 외적으로 볼 때, 그런 측면이 있다. 선거 때만 되면 민주당 논객들과 민노당 논객들이 충돌해버리니 사이트의 발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이미 그 이전에, 즉 안티조선 사이트가 출범하자마자, 안티조선 지도부가 사실상 붕괴되었다. 도대체 누가 이 사이트를 끌고 갈 것이며, 어떤 사안이 발생했을 때, 누가 결정을 내려야할지도 몰랐고, 혹시라도 누구 하나가 안타까운 마음에 나서보려면, "너 안티조선으로 떠볼려 그러지?" 이러면서 발목을 잡았댔으니, 결국 그 뒤부터는 아무도 나서지 않는 유령 사이트가 된 것이다.

 특히 진보진영 쪽에서 대안매체만 만들었다 하면, 열 명 이상의 쪽수를 공동대표로 앉히고, 툭하면 책임지는 사람도 없는 위원회부터 만들고 보는 그 관성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의사결정구조를 짜놓고 성공한 매체가 단 한 가지라도 있는지 검토라도 해봤으면 좋겠다. 바로 이 당시까지 대자보, 딴지일보, 안티조선을 인터넷 논객 2세대형 매체라 구분하겠다. 사설 통신망이 아니라 논객 스스로 인터넷에서 매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의지는 있으나, 과연 제도 언론과 맞설 수 있는 매체의 모델이 무엇인지에까지는 고민이 닿지 못했던 시기였다.

 그러다 사실상 안티조선 우리모두 사이트가 분화되면서, 사이버 논객들은 매체에 대한 분명한 관점을 갖게 되었다. 특히 보도 사이트이긴 하지만 오마이뉴스의 약진 또한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첫째,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다 끌어모으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정확히 정치적인 방향성과 당파성을 고려하여 하나의 특화된 매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

 둘째, 여하튼 한 매체를 책임지고 운영할 수 있는 운영주체가 필요하다는 점,

 바로 이 두 가지를 고려하여 오픈한 사이트가 대표적인 칼럼 사이트 서프라이즈(http://www.seoprise.com/)였다. 서프라이즈는 정치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고, 여러 가지 평가를 해볼 수 있으나, 서프라이즈를 직접 운영했던 내가 지금 시기에 이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은 올바른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위에 언급한 대로, 정치적인 당파성을 특화시켰고, 안티조선이나 예전의 대자보와 달리 명확한 운영진이 있었다는 점에서 제 3세대 논객형 사이트라는 구분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2002년 대선 이후, 인터넷 대안매체의 위상은 운영자들이 인식하는 것 이상으로 높아졌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인터넷에 기반한 선거운동을 한 것은 물론, 집권 이후에도 인터넷을 활용한 여론수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과 같은 뉴스 사이트는 제도 언론과 맞설 정도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논객 중심의 칼럼 사이트 역시 그 위상에 걸맞는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기존의 언론에 대한 안티와 비판을 넘어서, 스스로 의제를 설정하고 여론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결론적으로 '전문성'이라는 또 다른 역량이 필요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인터넷 대안언론은 주로, 정치권이 움직이면 비판하고, 조중동이 움직이면 비판했다. 이것 가지고는 안티세력은 될 수 있을망정  권력 해체나 교체 혹은 전복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한다. 개혁진영이 절실히 바라는 일이라면, 개혁진영 스스로 의제를 설정하고 이를 여론화시키고 정책화시킬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단지 매체에 글만 써가지고 가능한 일은 아니다. 논객 스스로 매체 운영의 마인드를 익혀, 다양한 매체들의 특성을 활용하여 연대하며 여론을 끊임없이 넓혀가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 논객들은 단지 글만 써서는 곤란하며, 오프라인 토론회에 나가서, 정책담당자나 수구언론의 기자나 칼럼니스트를 정면에서 논파해낼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전문성'과 연대의식을 갖춘 제 4세대 논객형 인터넷 대안매체가 필요한 것이다.
 
 인터넷 논객 사관학교라 할 수 있는 대자보는 뉴스 기능을 강화하여, 기존의 칼럼 사이트에서 보도 사이트의 역할까지 그 폭을 넓혔다. 반면, 이번에 새롭게 오픈한 시대소리는 전문성을 중심으로 한 칼럼 사이트가 될 것임을 선언했다.

 어떻게 보면 노무현 정권의 개혁부진으로 노무현 지지세력들이 분화되어 여러 매체들이 오픈하고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인터넷 대안매체의 발전 흐름으로 볼 때 새로운 매체가 나와줘야 할 시점이다. 이것이 꼭 시대소리만이 담당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각 매체마다 발전전략이 있을 것이고, 서로 간의 연대와 경쟁을 통해 더욱 더 발전된 매체의 모습을 갖출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시기는 매우 중요하다. 어떠한 매체 운영자라 할지라도, 홀로 성공할 수는 없다. 항상 그 앞 세대의 땀과 노력에 기대어 발전하게 되어있다.

 그런 측면에서 간략하게나마 인터넷 논객형 대안매체의 흐름을 살펴본 것이고, 더 나아가, [사상계]와 [창작과 비평]까지도 언급한 것이다.

 통신 사설망에 섹스와 군사 이야기 등을 쓰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던 사이버 논객이 10년이 지나서야 드디어 운동과 개혁적 관점을 명확히 지닌 대안매체의 시대적 논객으로 자리잡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면서 민주화 운동의 흐름과도 연대를 하려 한다. 사이버 논객이 1953년에 창간한 [사상계]에 손잡을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그 측면에서 인터넷 미디어로 새롭게 발전하고 있는 대자보와 제 4세대 논객형 사이트를 지향하는 시대소리는 상호보완적인 연대를 할 것이며, 나 역시 1999년 겨울 대자보를 만들던 초심으로 돌아가 시대소리 운영과 함께, 대자보 칼럼니스트 겸 편집위원으로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대자보와 시대소리는 칼럼과 취재를 바탕으로 공동 기획 및 프로젝트를 함께 할 것이다. 대자보와 시대소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지점은 바로 수많은 대안매체와 개혁매체들이 지향했던 운동의 역사성이다.

 "인간은 인격적성교육에 의하여서만 인격적인 향상이 일어나며, 조화와 통일을 자현케되며, 이와 같은 자현위에 세워진 인간관.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인격적 표현만이 곧 세계인류가 흥하는 바,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사상계] 창간사)"

 "그 출발이야 누가 하든지 막막한 느낌이 앞서기 쉬울 것이다. 먼 길을 어찌 다 가며 도중의 괴로움을 나눠줄 사람은 몇이나 될까? 오직 뜻있는 이를 불러모으고 새로운 재능을 찾음으로써 견딜 수 있을 것이요, 견디는 가운데 기약된 당에 다가서리라 믿는다.(백낙청, [창작과비평] 창간사 중, 1966년 겨울호)

 "바꿀 수 있습니다. 패배주의를 버립시다. 정권교체의 가장 큰 의미는 수십 년 간 우리 국민을 짓눌러 온 패배주의를 버리지 않으시렵니까? 제겐 지식권력을 교체할 수 있는 합법적이면서도 정정당당한 전랴과 전술이 있습니다. 앞으로 그걸 차근차근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속는 셈 치고, 저를 믿어 주십시오. 독자 여러분들의 뜨거운 호응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강준만, [월간인물과사상]창간 준비호, 1998년 4월호)

 "이제 인터넷에 기반한 매체 자체가 하나의 언론이 되었습니다. 나아가 인터넷을 통한 사회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기존언론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에서도 사상적 이념대립과 분열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대자보는 정도언론을 통해 우리 사회의 현안에 대해 네티즌들과 고민을 함께하며 대안을 모색하면서 화합과 통합을 이루는데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이창은, [대자보] 제2창간사, 2003년 6월 10일)

   "[시대소리]는 그런 절절한 심정으로 이곳에 자리를 편다.  당당하면서도 겸손하게, 신랄하면서도 따뜻하게, 치열하면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그런 자세로 임하고자 한다.  작은 시작이지만, 큰 뜻을 품는다.  미약한 능력이나, 함께 하면 마침내 대세가 바뀐다는 신념으로 출발한다.  오늘은 비록 소수이나 내일은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을 꿈꾼다. 모든 병들고 시들어 죽어가는 것들을 살려내는 가슴 아픔으로 우리의 진심을 바치고자 한다.  그러면, 막힌 곳이 어느새 뚫리고 닫힌 것이 기어이 열리며 지금껏 없던 길이 드디어 생겨날 것임을 믿는다. (김민웅, [시대소리] 창간 발제문, 2003년 6월 15일)

시대소리 홈페이지 (http://sidae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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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6/17 [14:2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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