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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장사꾼들, 조중동만의 안보장사
[논단] 전쟁과 증오 파는 죽음의 장사꾼에 대해 불매운동 시작할 때
 
송준모   기사입력  2006/09/19 [05:30]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전쟁도 훌륭한 이익창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2차 세계대전이 없었다면 대공황을 극복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을 보면 확실히 전쟁의 경제적 이익이 대단하긴 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케인스의 수정자본주의 자체의 위력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말도 된다.
 
그렇다면 천재 케인스보다 똑똑할리 없는 경제관료들이 진치고 있는 이 나라 역시 경제회복의 답은 전쟁밖에 없는 듯 하다. 전쟁을 하려면 상대가 있어야 하는 법. 차근차근 상대를 골라보자.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는 건 자살행위이다. 그럼 북한? 미국도 스탈린 치하의 소련을 무력으로 건드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결국 답이 없는 셈이다. 이제 남은 것은 가만히 앉아서 역사의 종말을 기다리는 것 뿐인가? 하지만 심해의 열수구에도 생물이 존재하듯이 이런 상황에서도 프론티어 정신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낸 회사들이 있다(엄밀히 따지자면 이승만이 개척한 것 같기는 하지만). 바로 소위 조중동으로 불리는 언론사들이다. 이들은 무력을 사용하는 열전(熱戰) 자체를 통한 이익창출이 아닌, 열전에 대한 대중의 공포와 호전성이라는 이중성을 교묘하게 변주하여 연출되는 항구적인 정신적 전쟁 상황을 통한 이익창출을 추구한다.

사실 이것은 매우 남는 장사이다. 굳이 구체적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언제든지 펜 한 자루로 전쟁을 생산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소투입 없는 생산인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안보장사'의 상품은 딱 두 가지 뿐이다. 남침 위협과 미군철수 위협. 모든 것, 심지어 정치사회적 의제까지 남침 위협과 미군 철수 위협으로 환원시키는 그들의 메커니즘 앞에서 우리는 그저 감탄밖에 내뱉을 말이 없다.

이러한 안보장사의 본질은 최근 작전통제권 환수 사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조중동은 12년 전 작전통수권 환수를 열렬하게 환영했었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최근 그들의 논조는 정확히 반대의 극단을 달리고 있다. 지금 정부는 미군 철수를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조중동은 아니나다를까 미군철수 가능성을 들먹이며 정부와 국민을 위협한다. 똑같은 상품을 매번 팔아먹고 있는 것을 보면 가히 독과점시장이라 할만하다.

독과점시장에서 기업의 기술개선이 없듯이 조중동 역시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군사학적 진지함은 가지고 있지 않은것 같다. 12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그 점을 잘 알 수 있다. 남한은 훨씬 강성해졌고 북한은 더욱 빈곤해졌다. 군사적 정당성은 더 이상 기준이 될 수 없다. 판단 기준은 단지 정권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인 것이다.

왕정시대의 소금전매권과 같은 안보전매권을 독재정권으로부터 위임받은 그들은 정권이 바뀌고 나서도 자신들의 독과점권을 자기보호수단 겸 공격수단으로 쓰고 있다. 그리고 과거 안보장사의 품목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결정되었다면 이제는 정권에 대한 증오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 똑같은 발언도 노태우가 하면 자주국방 의지의 표현이고 노무현이 하면 한미동맹 파탄이 되는 현실은 정권에 대한 비정상적 증오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사회가 변하면서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안보장사밖에 없는 이 신문들은(조중동의 거의 모든 사설은 결국 안보문제로 귀결된다) 좌절의 분노를 모두 현 정권에 투사하여 집중 포화를 퍼붓고 있다. 전쟁과 증오를 파는 죽음의 장사꾼이 된 이 신문들이 얼마나 더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안보불안이라는 마약의 약효에 내성이 생길무렵, 국민들의 '안보불감증' 이 궁극에 다다르는 날이 이들의 종말일 것이고 이것은 최후의 심판만큼이나 기약이 없다.
 
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사회 전체에 불을 놓은 이 딜레당트들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행히 증오의 사도들치고 말로가 좋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역사를 보았을때 인류 사회는 전반적으로 건전한 상식을 기반으로 움직인다. 양식은 인류 공통의 것이다. 사회가 더욱 발달하고 사람들의 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자멸을 하든지 내분을 일으키든지 결국 이 증오의 장사꾼들은 사회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들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우리 모두와 후세의 몫이 되겠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들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장사에도 금도가 있는 법이다. 이제 슬슬 안보장사의 한계이익이 감소할 때도 되었다. 증오에 대한 불매운동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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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9/19 [05:3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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