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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중근과 정명훈, 세상은 좋아지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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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리의 초록공명] 복절에 느낀 단상들,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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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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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기사입력 |
2006/08/16 [1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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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를 맞아 몇 개의 그림들이 서울에서 벌어졌다. 세상은 좋아지고 있는가라는 작은 질문을 가지고 그 단상들이 짧게 머리들을 스쳐간다. 1. 강준만 강준만이 말하는 것을 KBS의 <TV 책을 말하다>에서 처음 보았다. 만약 강준만이 아니었다면 누가 저렇게 무식하게 말을 하나 싶을 정도로 간단한 몇 개의 명제를 가지고 현대사에 도전했던 용감한 사나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객관성" 혹은 요즘 난리치는 "팩트"라는 말을 저널리즘에서는 어떻게 사용하는지 약간 이해할 수 있었는데, 마음이 답답해졌다. 나는 하나의 주장과 또 다른 상반된 주장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역사의 사실에서 객관성이 생격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TV나 신문에서는 양측의 주장을 서로 보여주는 것으로 객관성이 생겨나는 모양이다. 강준만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진화한 것 같지는 않아보이지만, 빽빽하게 정리된 그의 자료실만큼은 역사학자들의 그것만큼 썩이나 멋지게 진화하였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접고, 앞으로 강준만의 연구에 건투를 빌어주고 싶어졌다. 8·15 특집 방송이었다. 2. 하중근 거의 TV나 신문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1,500명의 건설노동자들이 8·15때 억울하게 죽은 하중근 씨의 죽음의 진상이 규명되기 전까지 장례식을 하지 않겠다고 외쳤다. 모두 더워서 마지막 피서를 위해서 어디론가 놀러가는 동안에 서울로 놀러오지 않고 살기 위해서 외치고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그리고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3. 김지하 역시 8.15 특집으로 파키스탄과 몽골을 비롯한 아시아 아이들을 모아놓고 강연을 하고 대답을 하였다. 나는 김지하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지만, 이 상관없음이 앞으로는 더 진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전에 <말>지에 김지하와 바그너를 비교한 적이 있었다. 잘못된 생각이라는 점을 환기하고 약간 얼굴이 벌개졌다. 1년을 지나면서 김지하는 바그너보다는 앙드레 지드에 더 가까워져 있었고,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세계화를 받아들이고, 다만 아시아의 '콘텐츠'로 거기에서 벌어지는 폐해를 극복하자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머지 레토릭들은 물리학에 대한 서술이 '프랙탈'로 바뀌어져 있고, 뉴튼이 프리고진으로 바뀌어져 있고, 사회생물학이 생태학으로 살짝 바뀌어져 있는 것을 제외하면 독일판 괴테나 앙드레 지드의 사회에 대한 발언에서, 그 19세기 전쟁으로 향하는 유럽 공간에서 익히 보던 글들이다. 짧은 순간, 김지하와 이규태 그리고 이어령의 세 사람이 얼굴이 지나갔다. 이어령이나 김지하나 지금 거의 다른 얘기를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지 않은데, 김지하는 이어령보다도 더 노골적으로 대동아공영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이규태의 글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규태는 김지하처럼 뻔뻔하지 않았고, 잘못된 것을 수정하려는 약간의 자세는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일본처럼 대놓고 전쟁을 벌일 수가 없어서 전쟁 얘기만 빠졌지만, 문화 버전의 대동아공영권과 아시아 문화번영 그것도 한국 중심의 아시아 번영론의 얘기는 19세기말 유럽의 지식인들이 썼던 많은 글들에 프로토타입이 보존되어 있다. 시인발 제국주의론을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조금 아팠다. 4. 정명훈 이명박이 가고 오세훈이 왔지만 정명훈은 변한 게 없다. 바스티유에서의 실황공연을 통해서 정명훈을 보던 15년 전 기억이 났다. 그 당시 정경화는 세계 음반시장에서의 유태인의 권력이 얼마나 강한지에 대해서 피력하면서 왜 영국인 후견인이 자신에게 필요한지에 대해서 애기하고 있던 중이었다. 바스티유에서의 정명훈은 젊고, 그야말로 스마트했고, 소위 코스모폴리타니즘에 가까왔다. 지금 대통령인 시락이 파리 시장이던 시절 바스티유를 통해 공화국의 재건 그리고 드골주의의 재건을 외치고 있었는데, 이런 복고풍 이데올로기에 순순히 지휘봉을 들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고, 여기에 부응한 것이 정명훈이었다. 설마 아무리 좋지 않은 소리로 악평을 받는 주빈 메타라고 하지만 시락이 불러서 움직일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 당시의 정명훈의 바스티유는 '젊은 외국인'과의 만남과 음악이라는 보편적 흐름이라는 작은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다. 서울시청 앞에 서 있는 정명훈도 많이 늙었다. 예전에 지나는 길에 몇 번 보았던 그 정명훈 보다도 나이도 많이 들었고, 지휘도 더 정형화되어 있었다. 지휘자라는 직업이 참으로 사회적이고, 동원된 사회적 자원 없이는 오케스트라를 형성하고 움직이기 어렵다. 그래서 실내음악이나 바리톤에 비해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때때로 더 사회적이고, 민감할 수밖에 없나보다. 코리아 판타지의 마지막 부분에 드디어 정명훈이 태극기를 들었다. 뒤로 돌아 관객들을 향하며 태극기를 휘둘렀다. 그리고 잠시 후에 그 손에 들렸던 태극기가 사라졌다. 던졌을까? 혹은 주머니에 넣었을까? 자세히 살펴보니 지휘봉을 든 손바닥으로 태극기를 접어쥐어 들고 있고, 빈 손으로 마지막 피날레를 지휘하고 있었다. 한 손에 지휘봉과 태극기를 동시에 들고 있는 정명훈이 코리아 판타지의 피날레를 향하여 포르테 시모로 질주하는 모습을 정명훈 지휘 역사에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순간 쇼팽이 생각났다. 원래도 건강하지 못한 쇼팽의 피아노 연주는 소리가 작기로 유명했고, 연주회 맨 앞줄이 아니면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게 연주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쇼팽의 피아노 연주가들은 지나칠 정도로 섬세하고 예민한 쇼팽의 곡들을 연주할 때에는 무식하게 꿍꽝거리지 않도록 원 작곡자이며 연주자인 쇼팽의 스타일을 살리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정명훈은 쇼팽과 태극기를 들고 정반대의 음악에 서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작곡된 코리아 판타지와 2006년 서울광장의 8·15 기념식의 정명훈, 그것을 딜타이라면 '맥락'이라고 부를 것 같다. 5. 케인즈 케인즈의 일반이론 24장을 간만에 다시 읽을 기회가 생겼다. 누군가 심각하게 24장의 의미에 대해서 물어봤기 때문에 대답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24장은 케인즈 일반이론의 마지막 결론에 해당하는 장이다. 무역자유화의 상황에서 전쟁이 더 많이 벌어질 것인가 아니면 케인즈식 정부개입이 늘어났을 때 전쟁이 줄어들 것인가? 케인즈는 자유무역을 한다고 해봐야 결국 불충분한 고용의 상태를 감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채울 수 없는 미고용된 경제의 상황을 다른 후진국에 전가하는 것이 현대적 전쟁이라고 이해하고 있고, 힘들여 전쟁을 하지 않더라도 국가의 개입으로 국내에서 완전고용에 도달할 길이 있다면 많은 국가들은 전쟁보다는 보다 평화로운 길을 찾아갈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거시경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만들어낸 그의 일반이론을 끝내고 있다. 이 장에 대해서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은 이유는 이런 케인즈의 바램과는 달리 1929년 대공황 이후로 강화된 국가개입에도 불구하고 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하루 살기가 어려운데, 소위 지도자들은 한국의 영광을 노래하며 얼마나 우리가 자랑스러운 민족이고, 아시아라는 소위 '뉴팜'에서 일구어낼 새로운 경제적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에 대해서 선전하기에 바쁘다. 이 두 가지를 결합시키면 전쟁 밖에는 없을 것 같다.
"작지만 의미 있는 지배자"의 길에 이미 한국은 얹혀있는 것 같다. 이 제국주의의 흐름에 말 맞추어 따라가면 정명훈과 김지하 같은 영광의 길이 열릴 것이다. 못따라 오고 소위 '찌질이'처럼 배고프다고 하고 있으면 어느 가여운 노동자의 죽음처럼 예비된 또 다른 어두운 길이 있다. 독일이나 일본과 같은 '후발산업국가'가 19세기말에 가졌던 문학과 문화와 "이제 3만불"을 외치는 한국의 그것이 그렇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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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8/16 [17:04] ⓒ 대자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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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무 2006/08/17 [00:12]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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