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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4대 선결조건 본격요구, 盧 '결심' 화답
[한미FTA 역사쓰기5] 美 "낮은 포복 시험부터 통과" 강요, 盧 수용
 
김영국   기사입력  2006/08/02 [16:22]


미국의 '4대 선결조건 해결' 요구 본격화

'한미FTA 사전 실무점검 협의'가 마무리돼 가는 시점에서 미 무역대표부의 로버트 포트먼 대표는 노무현 정부가 스크린쿼터 축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의약품 가격 인하 제도 보류,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 완화 등 한.미 양국간 '4대 통상현안'들을 우선 해결(선결조건)함으로써 먼저 '국내협상 능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한미FTA 협상을 개시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포트먼 미 무역대표는 2005년 6월 20일 워싱턴 미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18차 한ㆍ미 재계회의 개막기념 만찬에서도 기조연설을 통해 "한미FTA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unconceivable) 일이었지만 지금은 양국 모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한ㆍ미간 FTA는 양국 모두에 상당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했다.

포트먼 대표는 그러나 FTA 추진을 위해선 선결과제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아직 우리는 협상 개시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We are not there yet)"고 지적하고 "한ㆍ미간 최우선 과제는 쇠고기시장 재개방과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선결 과제로 한미FTA 체결을 위한 공식 협상에 앞서 미국의 광우병 발견 후 금지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 문제와 스크린 쿼터 축소 문제를 들고, 한국의 외국산 자동차 수입 문제와 의약품 통상 문제도 제기했다.

그는 "한ㆍ미간 FTA에 대한 반대론자들의 목소리가 가끔 매우 크게 들리고 있으나 무역자유화는 극히 중요한 일이므로 반대론자들의 목소리에 파묻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만찬에 참석한 한국측 기업인들에게도 한미FTA 체결을 위해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김현종 통상본부장을 도와달라고 지원사격을 요청했다.


또 21일 총회 본회의에 참석한 홍석현 주미한국대사도 한미FTA에 대한 한국정부의 의지를 보였다.

한국 재벌총수, 홍석현 주미대사 '美 요구에 적극 호응'...그들만의 한미FTA

한편 이날 한·미 재계회의에서 한·미 재계 인사들은 오랜 기간동안 논의해 왔던 한미FTA 협상 개시를 공동으로 촉구했다.

양국 재계 인사들은 또 한미FTA 협상이 가져다 줄 잠재적 이익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키로 하고, 양국 정부가 한미FTA 협상 출범을 위해 미해결된 통상현안에 대해 보다 창조적인 논의를 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회의에는 한국측 위원장인 조석래 효성 회장, 박용오 두산 회장, 조건호 전경련 부회장, 이종희 대한항공 총괄사장 등 한국 대표기업의 CEO급 인사 20여명과 미국측 위원장 권한대행인 윌리엄 로즈 시티그룹 수석부회장, 스티브 반 안델 알티코 회장, 스탠리 게일 게일 회장 등 미국 재계 인사 4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이 회의에는 한국 정부를 대표해 홍석현 주미한국대사가, 미국 정부를 대표해 로버트 포트만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마이클 그린 미 대통령 특별보좌관, 데이빗 샘슨 미 상무부 차관 등이 참석했다.

한.미 양국의 재계 모임. 그 자리에서 미국 무역대표의 4대 선결조건 수용 촉구와 한국 재벌총수들의 화답, 삼성그룹 친인척 홍석현 당시 주미대사의 호응. 왜 한미FTA가 미국과 한국 재벌들에 의한, 그들만을 위한 것인지 선명하게 보여준 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한미FTA 출발부터 잘못된 까닭

한편 한미FTA 반대진영의 이데올로그인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우리 정부의 4대 선결조건 수용과 관련, 2006년 3월 9일 오마이뉴스 기고를 통해 우리 측의 사대주의와 미국의 전략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한국정부가 2006년 2월 21일 '관계부처합동' 명의로 작성한 '한미FTA추진과 협상전망'이라는 문건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05.7월과 9월 통상교섭본부장이 방미하여 미 의회와 업계를 설득하는 등 우리 측이 적극적인 노력을 전개하여 미국과 FTA 체결을 희망한 25개국 중 최우선적으로 미국과 FTA 협상을 하게 된 것"(강조는 원문).

그런데 이 똑같은 과정을 미국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보도에 따르면 2005년 6월 양국간 검토가 끝난 뒤 무역대표부 대표 로버트 포트만은 "핵심쟁점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실제 협상을 개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김현종 통상장관에게 말했다. 이 쟁점에는 한국의 자동차 및 의약품 수입장벽, 미국산 소고기 수입금지 그리고 외국영화상영을 제한하는 스크린쿼터가 포함된다.(미 의회조사국보고서 29쪽)"

미국은 이 4대 분야에 대한 한국의 조치를 정부의 정치적 능력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간주했다. 이후 "2006년 1월 말, 한국이 4개 부문 모두를 양보한다'는 내용을 제안하였다(미 의회조사국 한미경제관계 보고서, 29쪽). 그 결과는 <한겨레신문>에도 보도됐다.

'관계부처합동' 측은 이를 "한미FTA는 정부가 오랜기간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며 누구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주도적으로 여건을 조성하고 제안해서 성사시킨 것"(강조는 원문)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이는 미국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주도'해서 4대 현안 모두를 내 주었다는 말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미국의 압력 때문이라면 단순히 미국을 비난하면 될 일이지만, 한국정부가 자발적으로 자국민의 건강과 이해에 직결되는 사안을 외국정부에 '팔아' 넘겼다고 한다면 스스로를 이른바 '사대매국' 정권으로 인정한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오히려 솔직하다.

"한미간 경제규모와 의존도상의 불균형을 놓고 볼 때, 대개 미국이 한미 통상협상의 의제를 결정한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래 미국의 불만은 한국의 보건복지부, 식약청 그리고 환경부 등 전통적으로 외국 정부나 기업과 거의 접촉이 없는 '국내용' 관계부처를 겨냥하고 있다. 미국의 대한 전략의 한 요소는 이러한 현안에 한국의 내각이 나서게 만들어, 해당부처에 압력을 행사하게끔 하는 것이었다."(미 의회조사국 보고서, 16쪽)

쉽게 말해 미국의 통상전략은 몇몇 '촌스러운' 부처가 미국의 요구를 듣지 않을 때, 국무회의 전체 안건으로 만든 뒤 해당 부처를 고립시켜 미국의 요구가 관철되게끔 압력을 넣는다는 말이다.

아마 스크린쿼터가 미국의 이런 전략에 말려든 전형적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설사 문화관광부가 진정성을 가지고 쿼터축소에 반대했다 하더라도 이미 국무회의 내에서는 특히 경제부처 연합군의 십자포화 속에서는 '집단이기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미국이 요구한 4대 핵심쟁점은 이렇게 아예 협상테이블에 올라보지도 못한 채 명을 다 하고 만다.}}


☞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쇠고기ㆍ스크린쿼터 해결되면 韓-美 FTA 협상 착수하겠다"(매일경제, 2005.6.21)

☞ "한미 FTA 협상전 쇠고기ㆍ영화개방 진전있어야"(연합, 2005.6.21)

☞ 韓美 재계회의, 한미FTA 협상 출범 촉구(이데일리, 2005.6.22)

☞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 <한미 경제관계: FTA를 위한 협력, 마찰, 전망(2006.2.9)>(프레시안, 2006.3.6)

☞ 이해영 한신대 교수, '한미 FTA 출발부터 잘못된 까닭'(오마이뉴스, 2006.3.9)

☞ 노회찬, "한미FTA는 한미재계와 미국 정부의 압력" 주장(참세상, 2006.7.13)

☞ 미국과 정부 한미FTA 관련 대외비 문서 목록 공개(2006.7.13)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FTA에 대한 미국 여론을 좋게 만들기 위해 2005년 7월과 9월 두 차례나 미 의회를 방문해 15명의 의원을 잇따라 만났다. 김현종 본부장은 한국은 미국과 함께 베트남부터 이라크까지 같이 간 나라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제 경제동맹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이는 한미 군사동맹에 이은 경제동맹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중국측 입장에선 '중국 포위론'으로 해석될 수 있어 중국을 자극할만한 위험한 발언이다. 전형적 친미관료인 김현종 본부장의 사고방식을 드러낸 것으로 보이나 대한민국 외교 관리가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비상식적인 발언이다.

9월에는 또 김종훈 현 한미FTA 협상 수석대표가 미국측이 요구한 4대 통상 현안의 선결조건 수용 문제로 급거 미국으로 날아갔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9월 11~12일 중남미 해외순방차 코스타리카를 방문하던 중 수행한 김현종 본부장의 보고와 설명을 듣고 한미FTA 추진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이는 앞서 7월과 9월 김 통상교섭조정본부장의 미국 방문이 있었던 데서 알 수 있듯이 한-미간 사전협의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김현종 본부장은 이 과정에 대해 2006년 2월 8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2005년 가을(9월)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수행하면서 '선진형 통상국가로 나가기 위해선 한.미 FTA가 필요하다. 협상 과정에서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보고하자 대통령은 이를 경청한 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추진하자'고 말했다."며 "대통령이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로 가기 위해선 한.미 FTA가 꼭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국가 리더십 차원에서 이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협상도 잘될 것으로 본다. 부처 간 협의에서도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결국 미국 측이 요구한 '낮은 포복(리트머스)' 시험도 통과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처럼 2005년 9월 김현종 본부장이 한미FTA 추진을 놓고 노 대통령 설득에 성공하면서 盧-金 둘만의 핫라인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한미FTA는 노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하에 김현종 본부장이 전권을 휘두르다시피 하면서 2005년 9월 12일 우리 정부(대외경제워원회)의 4대 선결조건 수용 결정과 9월 20일 盧-부시 한.미정상간 전화통화를 거쳐 한 달 후인 10월 말부터 '4대 선결조건 처치(4단계 퍼주기)' 작전에 돌입하는 등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한편 2006년 3월 7일 한겨레신문 보도(한-미 ‘공식개시’ 서둔 이유는)에 따르면, 한 소식통은 2005년 9월 노 대통령의 해외순방 귀국 직후 청와대에서 한덕수 경제부총리, 김현종 본부장,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 ‘협상 추진 전략’을 조율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중대 결정은 관계자들 사이에 ‘함구령’이 내려져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 때만 해도 정부는 2005년 11월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한-미 정상회담을 ‘목표 시한’으로 설정했다는 것. 그러나 아펙정상회의 때까지 미국이 요구한 핵심쟁점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스크린쿼터 일수 대폭 축소 등은 2006년 1월에야 풀렸다. 노 대통령은 2006년 1월 워싱턴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에서의 타결로 시점을 재조정한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9·19공동성명의 동북아 다자안보 추진을 재확인한 2005년 11월 한-미 정상회담의 경주선언, 2006년 1월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에서의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문제 타결, 그리고 2월 한미FTA 협상 개시 등은 하나의 큰 흐름을 갖고 있는 것이다.



☞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말하는 한·미 FTA 협상'(중앙일보,2006.2.8)

☞ 한-미 ‘공식개시’ 서둔 이유는(한겨레 2006.3.7)

☞ 정태인 전 청와대 경제비서관, “한미FTA, 김현종-한덕수-노무현 대통령 셋이 결정”(레디앙, 2006.4.2)  
김현종 본부장과 한덕수 부총리와 대통령이 결정한 겁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면 정문수 보좌관과 점심 먹으면서 한미FTA가 왜 이리 급하게 가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작년 9월 대통령의 코스타리카 순방 때 얘기된 이후 그렇게 됐다고 하더군요.

제가 있던 작년 5월까지, 또 제가 그만 둔 다음에도 9월까지 한미FTA와 관련된 말은 전혀 나온 적이 없었어요. 한미FTA는 최후의 대상이었어요. 동북아위나 자문회의의 전략이란 건 아세안, 일본, 러시아 등과 경제 협력을 우선 확대해서 우리의 중심을 잡은 다음에 중국과 미국을 경쟁시킨다는 거였어요.  


☞ 정태인 전 청와대 경제비서관 증언, '2005년 9월 제5차 대외경제위원회 보고 사항-4대 현안 선결 관련 김종훈 수석대표 급거 미국행' (프레시안, 2006. 4.24)  
  
☞ 한국 정부의 한미FTA 추진 과정(MBC PD수첩 7.4일 방송분 녹취록-참정연, 2006.7.28)      
미국 또한 2005년 6월(한미통상장관회의-2005.6.2)까지만 해도 한미FTA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왜 갑자기 방향을 선회해 한미FTA 협상 개시를 결정했는가. 그것은 바로 그동안 미국이 한국에 끊임없이 요구했던 4가지 문제 즉 자동차, 약 값, 쇠고기, 스크린쿼터 등과 관련 미국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요구한 4가지 선물을 모두 얻은 부시 행정부가 한미FTA에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한미FTA 역사 쓰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필자는 대자보 편집위원, 참여민주주의와 생활정치연대 회원입니다. 한미FTA 관련자료를 더 보실 분들은 참정연 홈페이지를 방문하시길 바랍니다.

 

<대자보> 편집위원. 항상 이 나라 개혁과 진보적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쪽에 서 있고자 하는 평범한 생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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