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강금실과 오세훈, 이미지의 시대를 넘어서
[문화비평] 근원적인 지적 자극과 성찰의 계기 회복해야 이미지 넘어서
 
권성우   기사입력  2006/04/27 [14:32]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이미지 정치’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강금실 열린우리당 후보의 보라색과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의 녹색으로 상징되는 두 사람의 산뜻하고 세련된 이미지가 정작 후보 개개인의 세계관과 정치적 본질을 희석시키고 이미지 간의 가상 대결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일단 그들이 살아온 길과 정치적 역정, 정책의 합리성 등등의 차이는 토론을 비롯한 여러 가지 기회를 통해 검증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구체적인 검증과 토론이 과연 ‘이미지의 바다’를 넘어 합리적인 선택의 유력한 근거로 작용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의 입장과 논리 이상으로 그들에게 풍기는 모종의 이미지가 득표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래서 그 이미지는 정작 중요하게 취급되어야할 그들의 정책적 차이와 정치적 능력을 부차적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사람의 정치가가 이미지나 평판에서 자유로운 채, 자신만의 철학과 가치를 당당하게 지키기란 참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이미지나 디자인의 중요성은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을 통해서 부각되고 있다. 어떠한 평판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소신껏 추구해왔던 강준만 교수도 최근 ‘디자인, 그것은 종교다’라는 글을 통해 디자인 및 이미지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이미지 중시 풍조는 대학사회에도 급속도로 전파되고 있다. 예를 들어, 수강생들의 발표나 과제에 대한 신랄하고 과감한 비판은 ‘강의평가’라는 제도적 부메랑에 의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학자들 간의 자존심을 건 치열한 논쟁도 점차 줄어가는 추세가 아닌가 생각된다. 다들 자신을 부드러우면서 너그러운, 동시에 학생을 지극히 사랑하는 교수로, 모든 것을 다 수용하는 융통성 있는 학자로, 이 시대의 작품을 애지중지하는 비평가로 자리매김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 지금 이 시대 대학가의 풍경이라고 해도 크게 어폐가 있는 말은 아니리라. 어떤 면에서는 수강생들과 학문적 타자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부드러운 이미지 추구가 이 시대의 대학에서 학문적 野性과 예리한 비판의 목소리를 잦아들게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회고해 보면 지금의 나를 이 정도라도 키운 것은 무엇보다도 대학시절 스승의 준엄하고도 신랄한 비판들이었다. 가끔은 “이 돼지 같은 무식한 녀석들아”라는 식의 원색적인 용어까지도 등장하기도 했던 스승의 날카로운 질타를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다. 때로는 알량한 자존심까지도 시궁창에 처박아야 했던 그 목소리들을 통해 나는 진정으로 내 한계와 무식을 있는 그대로 되돌아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한 스승의 태도는 우리를 지적으로 자극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권성우 숙명여대 국문과 교수     © 교수신문 제공
또한 학문적인 차원에서 내 나름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도 나와 생각이 다른 동료들 간의 신랄한 논쟁을 통해서였다고 기억된다. 때로는 동아리방에서 때로는 술자리에서 벌어졌던, 서로에게 커다란 상처가 되기도 했던 그 엄청난 논쟁들을 통해 비로소 나는 한 사람의 비평가, 학자로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자양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지금 이 시대에 설사 수업내용이 아무리 충실하다고 해도 그 스승처럼 신랄한 비판을 통해 수업을 진행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는 그 수업 및 교수에 대한 찬반 논쟁이 수시로 등장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영상과 이미지에 익숙하고 외모를 중시하는 신세대 대학생들은 여러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에게 비판과 논쟁에 대한 내성이 많이 줄어든 것도 사실일 것이다.
 
나는 지금도 내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에게 가장 근원적인 지적 자극과 성찰의 계기를 어떠한 방식으로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지를 거듭 고민한다. 부드럽고 따뜻한 선생과 엄정하고 냉철한 선생 사이에서.
 
* 필자는 숙명여대 국문학과 교수입니다.
* 본문은 대자보와 기사제휴 협약을 맺은 <교수신문>(www.kyosu.net)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6/04/27 [14:32]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