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권영길은 지금 자해를 하고 있다
 
변희재   기사입력  2002/12/16 [12:09]
{IMAGE1_RIGHT}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민노당으로 가고 있다

  대선과 관련하여 언젠가 한번은 비판적지지 논의를 해볼 생각이 있었다. 때마침 '월간조선'의 조갑제 사장,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사무총장의 글이 올라오는 바람에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할 기회가 된 것 같다.

"권 찍으면 창 되고 창 찍으면 핵터진다"

아마도 이 문구가 비판적지지 논의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이라는 데 다들 동의하리라 믿는다. 즉 철저히 표를 중심으로 둔 발상이다. 어차피 개혁세력의 표는 한정되어 있는데 그 중 5% 이상을 권영길 후보가 가져가면 간발의 차이로 창이 이긴다는 고전적인 계산법이다. 그리고 증거로는 미국의 대선에서 앨 고어와 랄프 네이더와의 관계를 주로 든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사무총장이 밝힌 통계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TV토론 전후의 지지후보교체 여부를 직접 물은 한 여론조사의 결과는 권영길후보의 지지율 상승분의 43.2%가 이회창 지지자이며, 28.1%가 노무현 지지자이고 28.6%는 부동층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권영길 후보가 이회창 지지자의 표를 가져오므로 권영길 효과는 곧 노무현 상승이라는 새로운 등식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언젠가 월간 인물과사상 게시판에 내가 잘 아는 민주노동당의 당원이 지자체 선거 결과, "한나라당 후보를 찍은 유권자가 비례대표에서 민주노동당을 더 많이 지지했다."라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게시판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다'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나는 그 통계가 맞을 거라 짐작했다. 그 심증을 노회찬 사무총장의 글로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맞다. 민주노동당이 현재와 같은 선거운동 방식을 고수하면 외곽에 있는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표를 긁어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김대중 때리기 전술

민주노동당이 지금껏 보여준 선거전술은 노무현-이회창을 한데 묶는 것과 김대중 정부를 두들겨 패는 것이었다. 특히 이런 전술은 텔레비전 토론회 때 가장 빛을 발휘한다. 권영길 후보는 입을 아플 정도로 "민주당은 어떠떠해서 안 되고, 한나라당은 어떠어떠해서 안 된다."를 기계처럼 반복한다.

그러다 둘 중의 한 쪽의 편을 들 때면 어김없이 "김대중 정권은 역대 최악의 정권입니다."로 시작한다. 한나라당과 함께 김대중 정권 때리기 경쟁을 하는 셈이다. 누가 누가 더 화끈하게 두들겨 패느냐 싸움을 벌인다.

그래서 김대중 정권은 정말 꼴보기 싫은데 이회창의 귀족 성향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류들이 민주노동당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 만큼 권영길 대표의 김대중 정권 때리기는 이회창의 그것을 훨씬 능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권 찍으면 창 되고 창 찍으면 핵터진다"라는 구호는 의미를 상실한다. 중요한 것은 표가 아니고 진실이다.

권영길 후보의 김대중 정권 때리기가 진실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말이다. 우선 "김대중 정권은 역대 최악의 부패정권"이라는 그 말부터 틀렸다.

"3홍 비리와 김현철의 비리는 누가 더 많이 해먹었는지 알 수가 없다."

거짓말이다. 3홍이 아니고 2홍일 뿐이며, 김현철은 해먹은게 문제가 아니라 지위도 없이 국정운영에 간섭했다. 김현철은 IMF 위기를 불러온 한보 비리 사건에 직접 개입했다. 액수는 그야말로 천문학적 단위이다. 김현철이 1000이면 2홍은 1 정도다.

그러나 토론회 때 그런 것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한나라당 성향의 유권자들은 "3홍은 김현철보다 더 많이 쳐먹었다." 이런 화끈한 유언비어 조장에 더 많은 지지를 보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권의 가신들도 온갖 부정부패를 저질러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한나라당 상위 7명의 재산이 700억을 넘는다면서 함께 따라온 민주당 비판이다. 과연 권영길 후보의 이 말은 근거 있는 비판인가? 김대중 정권의 가신이면 누구를 말하고, 그 중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람이 누구인가? 역시 영남권에서 떠도는 유언비어를 그대로 토론장으로 갖고 왔다.

"김대중 정권은 지역차별 인사를 자행하여 지역감정을 조장했다."

이것은 한나라당과 '조선일보' 주장을 검토없이 그대로 인용했다. 나중에 얼마든지 검토가 가능하겠지만 내가 보는 통계에 따르면 최소한 국민의 이해를 구할 수 있을 만큼의 지역안배에 신경을 썼다고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영남의 유권자들에게 이런 신중한 자세가 전혀 먹히지 않는다.

그야말로 "영남의 아들 딸들은 이제 호남의 노예로 살아갈 것이다"라는 말이 득표에 훨씬 더 큰 도움이 된다.

김대중 정권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노선을 좌파의 입장에서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영남권에서 흘러나오는 유언비어 수준의 비판은 곤란하다.

수도이전 찬성하는 민주노동당, 한나라당을 왕따시켜라

정리해고당 문제 등등 더 따질 것은 많겠지만 역시 최고의 백미는 행정수도 이전 공약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태도이다. 노회찬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서도 역시 의견을 밝혔다.

"행정수도 이전 대상지를 충청도로 못박음으로써 이 공약의 현실성과 도덕성 등 품격은 4류로 전락하고 말았다. 국가적 대사를 지역적 실리문제로 변질시키고 득표활동이라는 1회적 정치행위의 수단으로 격하시킨 결과이다."

행정수도 이전 대상지를 충청도로 못박아선 안 된단다. 이게 말이나 되는 비판인가? 충청도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박정희 시절, 전두환 시절, 김영삼 시절의 연구결과 역시 충청도로 나와있고 실제로 그리로 이전할 구체적인 계획도 나와있다. 노무현 후보는 이를 수용했을 뿐이다.

"행정수도의 이전은 필요하다. 수도권 과밀화 대책도 필요하다. 그러나 수도 이전이 수도권 과밀화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수도권 과밀화가 왜 발생했는가? 그것은 지방에선 교육받고, 취업하고, 문화생활을 누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설사 모든 지방을 다 수도로 만든다고 하더라도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지방을 교육, 취업, 문화에 있어서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야 해결되는 문제다. 지방분권, 균등발전 정책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이 내놓은 지방방분권과 균등발전을 위한 정책이 뭐가 있냐는 이 말이다. 기껏해야 지방세와 국세의 비율을 조정하는 것과 국공립 통폐합을 하겠다는 것밖에 없다. 지금 지방정책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서울의 비대화이다. 더구나 서울은 물질적 그리고 상징적으로 대한민국을 장악했다. 국가원수 대통령이 지방으로 가지 않는 한 그 어떤 기관도 먼저 내려가지 않는다.

실제로 김대중 정권 당시 대기업 본사의 지방이전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실패했다. 기업들의 입장은 "너희가 먼저 내려가." 이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금 인용할 한 문장이 민주노동당의 정확한 입장이 아닐까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현 가능성 없는 즉흥적인 계획의 발표가 아니다."

쉽게 말해 민주노동당은 지방분권을 위한 정책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에 관해서 권영길 대표, 허영구 경제특보, 노회찬 사무총장, 이문옥 전 서울시장 후보의 입장이 다르다.

권영길 대표는 6조 가지고는 이전이 힘들다고 말했다. 그럼 20조를 들이자고 해야한다. 허영구 경제특보는 좁은 땅에서는 수도의 기능을 이전해선 안 된다고 했다. 노회찬 사무총장은 언제 될지도 모를 통일에 대비하여 수도를 옮기자고 주장한다.

이문옥 전 서울시장 후보는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말이 나와서 묻는 바이지만 이문옥 전 서울시장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울 때는 뭐하고 있었던가? 자기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내세운 공약도 모른다는게 말이나 되는가? 지금 민주노동당의 비판 기준이라면 아무런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구호만 외친 이문옥 전 서울시장 후보야말로 즉흥 공약의 장본인 아니던가?

노회찬 사무총장 역시 통일에 대비한 수도 이전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면 노무현의 정략을 비판하는데 골몰할 것이 아니라 아예 수도 이전 자체를 서울붕괴론으로 몰고 가는 한나라당을 왕따시키는게 우선이다. 내 말이 틀렸는가?

민주노동당 10% 정당에 만족하려나?

어차피 이 글의 목적은 행정수도 이전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선거전술에 관한 글이다. 민주노동당은 1, 2차 토론회 결과 권영길 후보의 지지율이 올라건 것에 매우 고무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아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항간에 나도는 소문처럼 10%의 지지율은 아니다. 현재 시점으로 보면 평소 지지율보다 미약할 정도만 올랐을 뿐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토론회 직후에는 지지율이 크게 오르고, 그것도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대거 넘어온다는 것이다. 설사 1주일 뒤에 다시 떨어진다 하더라도 민주노동당 선거대책반은 흥분할 수밖에 없다.

나는 노회찬 사무총장의 글을 보고 민주노동당이 선거전술을 아예 한나라당과 노무현 때리기 경쟁을 펼치려는 것으로 굳히지 않았나 염려스럽다. 그렇게 했을 때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잠시나마 대거 넘어온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선거대책반은 장기적 비전을 보지 않는다. 단기에 지지율이 오르는 전략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이런 선거전술은 민주노동당의 강경파들이 뒤를 받쳐준다. 말이 좋아 강경파들이지 솔직히 말하면 깽판론자들이다. 민주당의 노무현 지지자들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민주노동당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탄의 목소리를 당 내에서 혹은 외곽에서 퍼뜨려댄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진중권이다. 그는 민주노동당을 탈당했지만 여전히 둘 사이에서 기회만 있으면 깽판을 놓는다.

"민노당, 왜 행정수도 이전에 시큰둥해? 당연하지. 상식적으로 수도 옮기는 데에 6조 밖에 안 든다. 그걸 누가 믿겠니? 그거 정책이 아니라 노무현이 충청도 표 먹을라고 부랴부랴 내놓은 선거전략에 불과하니까. 근데 왜 권영길이 그거 잘하는 짓이라고 입술 서비스를 해줘야 하니? 그러는 노무현은 권영길 위해 뭘 해줬는데?

랄프 네이더가 어쩌구. 얘들,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노무현이 좋으면 너그들은 노무현 찍어. 우리는 권영길이 좋으니 권영길 찍고. 니들 투표용지는 니들 것, 우리 투표용지는 우리 것. 각자 자기 떡 먹으면 되는 거지, 뭐 그리 잔말들이 많은지. 언제 우리가 너그들한테 노무현이 좋아도 조국을 위해 권영길 찍어달라고 하든?

한 표 줍쇼, 한 표 줍쇼.... 옷 잘 차려입은 부자 동네 사람들이 서민들 모여 사는 곳에 와서 앵벌이나 하는 거, 그거 격조에 어울리지 않아요.(서프라이즈 게시판)"

민주노동당원들은 대개 노무현 지지자들 혹은 민주당 지지자들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특히 민주노동당 게시판에서 민주노동당에 막말을 퍼붓는 수많은 네티즌들 중 상당수가 민주당 지지자들이라는 것도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진중권식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이간질에 동조해선 안 된다. 그런 것은 민주노동당의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웹상에서 보이는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은 당원들이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은 그냥 평범한 소시민이다. 민주당이 집권해도 자리 하나 받을 위치에 있지 않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지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에 따라 결정한다.

민주노동당이 자신들의 기준에 맞는 정치적 행위를 해주면 지지를 안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을 진중권식으로 조롱과 배척의 대상으로 본다면 민주노동당은 결국 노회찬 사무총장의 논리대로 한나라당 지지자들을 자신들의 우군으로 삼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야말로 한나라당 2중대를 자인하는 셈이다.

이러면 민주노동당의 미래는 없다. 진보정치란 참여로 이루어진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돼지저금통에 돈이라도 넣어주는 유권자와, 텔레비전 앞에서 시니컬한 반응만을 보이는 정치 허무주의자들 중 누구를 잠재적 지지자로 삼아야 할 것인가?

우연일 가능성도 높지만 이상하게도 2002 대선의 TV토론 직후 여론조사 결과, 부동층이 급격히 늘어난다. 권영길이 이회창 지지성향자와 부동층의 표를 모으는 것과 동시에 부동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사안에 따라 섬세한 판단없는 무차별적 양비론적 논리가 정치 허무주의를 조장한다는 것에 대해서 민주노동당은 반론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정치 허무주의가 극에 달했던 지자체 선거 때 민주노동당이 선전한 것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맞다. 단 민주노동당이 10% 정당만을 목표로 했을 때이다. 민주노동당이 권영길의 공약처럼 집권을 목표로 한다면 그렇게 해선 안 된다. 다시 강조하지만 개혁적 유권자들의 정치적 열망을 죽였을 때 진보정당의 미래는 없다.

문제는 진실과 열망이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민주노동당이 보여준 선거전술은 개혁적 유권자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노무현을 지원하라는 것이 아니라 쟁점 사안에서 최소한의 사실에 근거하여 정확한 판단만 내려달라는 그런 바램조차 들어주지 않는다면 도대체 권영길을 장세동보다 높이 둬야 하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행정수도 이전에 관해서 노무현의 손을 들어주라는 게 아니다. 6조를 들여서라도 옮기겠다는 노무현의 발상이 설사 정략적이라 할지라도, 청와대 하나 옮겼다고 서울시민 다 죽는다 협박하는 이회창의 정략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누가 더 생산적인 정략을 쓰고 있는가? 이 정도의 옳고 그름도 판단할 능력이 안 되는 정당을 어떻게 지지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이대로 가다간 총선 때 큰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민주노동당 내부와 외곽에서 개혁세력을 분열시키는 자들의 달콤한 목소리를 걸러내고, 민주노동당의 길을 굳건히 걸어가길 바란다. 옳은 것은 옳다, 틀린 것은 틀리다, 라는 말만 똑바로 해줘도 민주노동당의 잠재적 지지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말을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것은 민주당을 위한 말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을 위한 말이다. 민주노동당이 성장한다고 해서 내가 손해볼 게 뭐가 있겠는가? 그리고 노회찬 사무총장의 말대로 민주노동당이 한나라당 표를 갉아먹고 있는데 내가 노무현 당선만을 바란다면 뭐하러 이런 충고를 하겠는가?

다시 강조하지만 진실과 열망을 버리고 증오심과 허무주의에 편승해 얻는 표는 독약이다. 지금의 한나라당의 모습이 그것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2/12/16 [12:09]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