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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박권상 투톱 체제의 몰락
개혁의 출발은 강준만을 KBS 신임 사장으로ba.info/css.html'>
 
변희재   기사입력  2002/12/23 [19:53]
김대중 정권은 과연 언제부터 몰락하기 시작했을까? 숨가쁘던 외환위기 국면을 진정시키며 당차게 출발했던 김대중 정권은 현재 초라하게 퇴진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김대중 정권에 대한 평가는 조중동의 영향으로 심각하게 왜곡되어있고 이를 언젠가는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결과만을 놓고 볼 때, 지역감정을 극도로 악화시켰고, 부정부패를 바로잡지 못했으며 정치개혁의 시작도 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몰락한 정권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패의 과정은 노무현 정권도 그대로 밟을 우려가 있다. 최소한 조중동이라는 막강한 반 개혁적 언론이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김대중 정권의 실패를 언론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김 정권은 시작하자마자 예정된 실패의 길로 들어선 거나 마찬가지였다. 경제위기 탓에 처음부터 정권 차원에서 언론개혁을 해내갈 여력이 없었다는 점도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보다는 정권 자체가 이미 언론에 대한 개혁적 마인드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더 바른 지적일 것이다.

{IMAGE2_LEFT}이러한 안일한 문제의식 탓에 1998년 4월 박권상 체제의 KBS를 출발시켰던 것, 여기서부터 김대중 정권의 몰락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전북일보, 영원한 언론인 박권상

KBS 박권상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개혁 프로그램 <이제는 말한다>의 '조선일보'편을 좌초시켰다. 누가 알아서 시킨 것이 아니라 박권상 사장 그 자신이 결정한 것이다. 당시  KBS 노조창립 10주년 행사의 축사에서 “저도 국민의 방송에 일하는 근로자라고 생각한다. 개혁을 성심 성의껏 해보려고 하니 도와달라”고 말한 것은 립서비스에 불과했다. KBS 내에서 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세력을 포용하는데 실패했으니 개혁을 시작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개혁을 위해 부사장으로 내정한 이형모 전 언론노련 위원장의 임명동의안을 KBS 이사회에서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취임한지 두 달도 되지 않아 박권상 사장은 KBS 내의 보수파들에게 역습을 당한 것이다.

그 뒤부터 더 이상 KBS는 개혁에 아무런 힘도 되지 못했다. 오직 전두환 시절의 땡전뉴스처럼 "김대중 대통령은 오늘....."로 시작하는 맥빠진 뉴스만 메인으로 보도하기 바빴을 뿐이다. 김대중 정권 역시 그동안 야당 시절 물어뜯기만 하던 KBS가 땡김대중뉴스로 일관해주니 이에 만족하는 우를 범했다.

KBS 개혁의 좌초는 김대중 정권의 개혁의 좌초를 상징한다. 초반에 긴장감을 조성하여 판을 갈아엎을 생각은 하지 않고, 이 눈치 저 눈치 봐가며 개혁의 폼만 잡다 역공을 당해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서로 너무나도 닮았다.

특히 정권의 말기가 다가오면서 어떻게 해서든 한나라당에 찍히지 않으려 극도로 몸조심을 하더니, 급기야는 심야토론의 길종섭 대기자처럼 대놓고 한나라당에 줄서는 모습도 역력히 드러났다. KBS는 이미 97년 이전의 수준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왜냐하면 김대중 정권이 화끈하게 몰락해주는바람에 반면교사로 삼을 교보재들이 역사에 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KBS 사장 선임 및 개혁이다.

내년 3월 박권상 사장과 KBS 이사를 임명하는 방송위원회의 임기가 끝난다. 노무현 정권으로서는 그야말로 호재를 만난 것이다. 정권의 방송 장악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면서도 KBS와 방송위원회의 인적 청산을 과감히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현재 방송위원회는 대통령이 3명, 여당이 3명, 야당이 3명을 선임하여 구성된다. 방송위원회 노조 및 KBS 노조는 아마도 방송위원회의 구성 문제를 비판하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 현재 상태로는 철저히 방송이 정권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도와 형식도 중요하지만 인적 청산도 중요하다. 이미 수십년 간 구태의연한 줄서기에 물들어있는 KBS 내의 간부급 인사들을 그대로 둔 방송의 독립은 수구 방송 하나 더 만들어주는데 기여할 뿐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조선일보>와 를 보자. <조선일보>는 정권과 맞장을 뜰 정도로 가장 완벽하게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이다. <조선일보>는 한나라당 후보에 줄서기를 시도할 정도로 정권을 두려워하지 않는 방송이다. 그래서 <조선일보>와 KBS가 개혁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말인가?

KBS가 공익을 목표로 개혁의 선두에 서기 위해서는 KBS 자체 개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현재의 KBS의 인적 구도 하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길종섭이 대기자로 있는 언론사에서 밑으로부터의 개혁이 가능하겠는가?

방송법 제정은 나중에 하고, 우선 KBS 사장을 하루에 개혁 하나씩 하지 못하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개혁인사로 임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개혁적 사장을 앞세워 KBS 내의 구태의연한 수구세력들을 척결하며 KBS 노조와 함께 KBS를 명실상부한 개혁 방송국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박권상 식으로 민주당에게도 욕먹지 않고 한나라당에게도 욕먹지 않는 둥글이 인사는 안 된다. 수구세력에게 온갖 욕설을 먹어도 단 하나의 개혁이라도 제대로 해보겠다는 투사형 인사가 필요하다. 물론 너무 앞서나가다간 KBS 내의 반발에 부딪혀 개혁이 좌초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차피 박권상 체제에서 배웠듯이 더 이상 나빠질 가능성도 없으니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면 밀어붙일 때는 밀어붙여야 한다.

KBS 제 1TV에서는 매일 같이 PD수첩 류의 개혁적 프로그램을 방송해야 한다. 김대중 정권의 실패를 내용으로 하든 <조선일보>의 패악을 소재로 하든 시청자들이 오다 가다 우연히라도 볼 수 있는 개혁적 프로그램을 줄기차게 방영해야 한다. 어쩌다 한번 하는 것은 개혁이 아니다. 5년 내내 개혁적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를 모아 조중동의 권력과도 맞서 싸울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기껏해야 영양가도 없는 교수들 내세워 토요일 밤에 한번 하고 마는 심야토론 류의 프로그램을 네 다섯 편 이상 편성해야 한다. 그래서 개혁에 관련된 문제라면 매일 같이 토론을 벌여 개혁적 시청자를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것도 토론의 시늉만 내서는 곤란하며, 죽기 살기로 덤비는 토론 논객들의 싸움터로 토론 프로그램의 질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 시청률이 올라가고 시청률이 올라가야 힘이 실린다.

{IMAGE1_RIGHT}제도 개혁도 중요하지만 이 모든 것을 시작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신임 KBS 사장이다. 신임 사장의 임명은 국무총리 임명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의 강준만 교수를 추천하고 싶다. 이제껏 누구보다 더 KBS 개혁과 KBS를 통한 개혁에 관심을 많이 보여왔으며, 개혁성의 강도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물론 강준만 교수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한 관료에 대한 장악력이 모자란 교수 출신이 이를 더 잘해낼지도 모르겠다. 내가 구태여 강준만 교수 이름을 언급한 것은 KBS의 개혁이야말로 노무현 정권의 개혁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사진 : 인물과 사상 독자회원 화덕헌

개혁은 곧 공익이다. 그렇다면 공영방송이라 떠들어댄 KBS가 개혁 방송임을 내세우지 못할 이유는 없다. 좀 하다 때려치우며 체면 유지에 급급했던 박권상 - 김대중 투톱 체제의 족적을 다시 한번 면밀히 검토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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