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하인즈 워드에게 엄마성 쓰라고 해 봐!
[주장] 외아들 콤플렉스 강화하는 엄마의 희생은 악이다
 
신정모라   기사입력  2006/02/14 [12:00]
최근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부계성씨 강제 조항은 헌법불합치이긴 해도, 부계성씨 제도가 우리 정서에 부합하고 이 조항이 헌법을 어기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을 보였다. 성씨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은 의견이었다.   
 
미국 수퍼볼 스타 하인즈 워드 엄마가 한국출생이라는 것을 이유로 한국 언론들이 흥분하여 이성을 또 잃었다. 그를 한국계라고 부르고 한국인의 피를 받았다고 자랑스러워한다. 정작 한국에선 전통적으로 모계의 피를 인정하지 않았고 지금도 여전하다. 
 
그런 부계중심 사회가 하인즈 워드 때문에 큰 감동을 받아 머리가 확 깨인 모양이다. 모계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나? 호주제 폐지에 힘쓴 사람들을 '살생부' 명부에 기록하여 저주하는 무리들이 인터넷에 버젓이 존재한다. 그런 무리들이 더욱더 하인즈 워드를 한국계라고 하면서 칭송하는 아이러니를 보인다. 
 
하인즈를 한국계라고 하고 싶으면 국내에서 먼저 모계를 인정해야지. 한국 사회에서 엄마의 피를 인정하지 않고 성씨 선택권을 무시한 건 갑자기 싹 잊어버린 모양이다. 하인즈 워드가 엄마를 사랑하여 팔뚝에 한글로 자기 이름을 새겼다고 한다.
 
엄마가 그를 키웠고, 엄마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그토록 엄마를 사랑한다면 왜 하필 하인즈 워드인가, 하인즈 김이 아니고? 기자들은 다음 번에 꼭 한번 물어봐 주길 바란다. 엄마를 사랑한다면 엄마성을 이름에 넣어달라고 말이다. 하인즈 김 워드는 어떤가?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다. 하인즈 엄마, 김영희 씨가 고생한 건 맞다. 그러나 엄마가 싱글맘으로 자식을 키우는데 있어 한국과 미국 중 어느 쪽이 더 고생하는가? 지당 한국 쪽이 10배는 더 고생한다.    
 
엄마 혼자 자식을 키울 수가 없는 사회적 편견과 복지제도의 미흡 때문에 미혼모들이 자기 피덩어리를 버리고 평생 가슴에 멍이 들어 산다. 이혼한 엄마들도 자식 포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지구상에 엄마는 모두 모성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엄마들이 한국에서만 모성 본능을 잃어버린 것인가? 부계중심 한국 사회가 부계성씨 강제조항으로 상징되는 그런 문화로 엄마들에게 모성을 박탈해 왔다. 난자기증재단까지 있으니 말해 무엇하랴!
 
최근까지 난자기증재단을 만들어낸 사회가 어떻게 한 입으로 두말 하냐 부끄럽게. 김영희 씨를 위대한 현모라고 칭송하는 그 부끄러운 입들, 한국사회에서 그렇게 위대한 모성이 부계중심 사상 때문에 자식을 버리는 현상으로 변질되는 것을 변명해 보길 바란다.     
 
자식을 부계 쪽에 넘기고 양육권을 포기한 엄마들은 일단 가슴에 피멍이 든다. 자식을 버린 엄마는 더욱 처참하다. 김영희 씨는 미국 제도하에서 모성을 살릴 수 있기 때문에 아들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영희 씨가 자식을 때려 키운 건 '아동학대죄'에 해당되므로 스스로 반성하고 언론에 자랑할 일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미국에서 자식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고발당하는데, 왜 고발 안 당했는지 참 궁금하다. 미국까지 가서 그런 짓 하지 말자. 
 
솔직히 말해, 하인즈 워드 어머니는 대한민국이 가장 부끄러워해야 하는 한국의 치부를 잘 부각시켜 주었다. 언론은 하인즈 어머니 모델을 통해 대한민국의 인종차별과 아동학대와 가부장제의 불합리성을 한꺼번에 낚아 올리게 되는 성과를 올렸다.  
 
언론이 영웅을 부각시킬 때마다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치부가 속속 드러난다. 박노자의 말처럼 자랑스런 대한민국은 '당신들의 대한민국'인 것이다. 여성과 아동과 혼혈인, 약자, 노동자를 배제한 누구의 대한민국이란 말인가! 
 
한국의 한부모 엄마들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김영희 씨 같은 경우, 한국에서 살았더라면 아들 찾으려고 애쓸 수 있냐 이거야. 엄마라면 누구나 자식을 보살피고 싶은 게 본능인데 왜 한국에선 버려진 자식들이 많은지? 언론이 그 점을 파헤쳐야지. 미국복지제도에서는 싱글맘으로 사는 것이 엄마 혼자 사는 것보다 낫지. 언론이 그런 차이를 싹 무시한다. 하인즈가 엄마의 정신적 지주이다. 엄마가 아들 때문에 성공한 케이스를 가지고 아들이 엄마 때문에 성공했다고 거꾸로 보도하는 언론. 한국 언론은 진실 바꿔치기 허가증이라도 가지고 있나?"       
 
엄마가 자식을 진정 사랑한다면, 내가 너 때문에 내 인생을 통째로 희생시켰다는 방식으로 살면 안 된다. 엄마는 '나는 내가 진정 원했기 때문에 너를 사랑했고, 너를 사랑한 만큼 내 인생도 그 정도로 사랑했다. 나는 너 때문에 내 인생을 희생한 적이 없었다. 나에게 부담을 느끼지 말고 네 자식과 아내에게 집중해서 자유롭게 살아라' 라면서 자식을 떠나보내는 것이 도리이다.    
 
한국 언론은 이러한 위대한 진짜 모성을 외면하고 사랑이 아닌 집착을 강요하고 있다. 자식에게 한을 심어주고 아들을 마마보이로 만들고, 결혼한 아들의 정신을 지배하여 그들의 진짜 행복을 빼앗는 건 부모의 도리가 아니다.
 
이런 식의 희생은 희생도 아니고 일종의 자가당착 집착병이다. 결혼한 아들은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아내와 자식이어야지,  언론에 '우리 엄마를 가장 사랑해요'라고 말해서 마마보이라는 것을 의심하게 만들거나, 외아들 콤플렉스를 표출하거나 하면 곤란하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6/02/14 [12:00]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ㅋㅋㅋ 2006/06/03 [12:33] 수정 | 삭제
  • 하인즈 워드에게 엄마성 쓰라고 신모라씨가 직접 말해봐!
    결과를 우리모두 공감하게...
  • 시민25 2006/02/15 [20:45] 수정 | 삭제
  • 관련기사 목록을 일별하면
    고운광순/ 대한민국은 이제야 딸들을 해방시켰다.라는 기사가 있다.
    그런데 신정모라는

    "...정작 한국에선 전통적으로 모계의 피를 인정하지 않았고 지금도 여전하다."라고 주장한다.

    공개된 공간에 글을 쓰는 이는 적어도 자신의 주장하는 바나 인용하는 사실이 편협한 관점이나 편견이 되는 건 아닌 지 살펴야 될 것이다.

    여권신장을 위해 애쓰는 고운광순과 신정모라 둘 중 하나는 거짓말쟁이거나 불성실한 글쓰기를 한다고 할 수 있다.

    두 페미니스트중 상충되는 내용의 불성실한 글쓰기는 결국 독자들의 눈을 찌뿌리게 할 것이고 종내에는 거부감을 야기하고야 말 것이다.

    바른 관점으로 쓴 글로는 양성평등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일까?

    지금까지 남성우월적 사회상이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과장하거나 과격한 표현을 선택했다면 결국 여성파워가 남성보다 우월해지면 남성우월적사회상은 저리가라 할 정도의 요상한 사회상이 출현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든다.



  • 눈팅팅 2006/02/15 [14:33] 수정 | 삭제
  • 논지 전개가 좀 거칠지만
    그래도 틀린 말 한 것 같지는 않군요.
    글의 맥락은 다방면에 걸친 한국 사회의 몰염치함과 어처구니 없음을 지적한 것 같은데요.
    저는 수긍이 갑니다.
  • 시민25 2006/02/14 [23:10] 수정 | 삭제
  • 하인즈 워드에게 엄마성 쓰라고 해 봐!

    [주장] 외아들 콤플렉스 강화하는 엄마의 희생은 악이다

    페미니스트 신정모라의 퇴영적 치기

    성씨 선택권이란 무엇일까? 사회적으로는 적어도 주체적이며 합리적 판단능력을 갖추는 나이가 되어서야 성씨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하겠다. 생리적,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나이의 어린이에게 성씨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은 아마 '돼지발에 편자'격이리라.

    인간의 역사를 관조하면 명백하게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면이 있다. 소박하게 군거생활에서 모계중심사회 부계중심사회형태로 변화를 겪었다고 한다. 이른 바 우리나 우리 선조가 거부감없이 쓰고 있는 성씨는 역사적실존의 열매이다. 오늘 날에도 여권이 남권보다 강한 공동체 - 존재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 외에는 부계성씨를 쓰는 것은 세계적추세이다. 그리고 이 부계성씨제도라는 사회상은 경제활동이나 성(sex:성별)적 헤게모니등을 반영하는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남성들은 부모 중 어느 분의 성씨를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라고 생각하지만 여성들은 다른 심리를 갖고 있는 모양이다. 최근 사이버에서 부모의 성씨를 병기하는 이름을 종종 발견한다. 이런 표기상의 변화는 아마 여권의 사회적 신장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징후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부성과 모성을 병기하여 쓰는 것이 정말 양성평등에 보탬이 되거나 합리적일까?
    예를 들어 에서 신정은 어떻게 구성된 걸까? 추측컨대 신은 부친 정은 모친의 성씨일 것이다. 이른 껍대기(형식)만의 평등을 주목하여 관철한다면 때로는 라고 바꿔 부르지는 않는 것일까? 이 신정이라는 성씨는 2대째로 내려가면 아마도 네자의 성씨로 변해야 할 것이다. 두자의 성씨를 고집한다면 필연적으로 부모의 성씨중 하나는 버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남녀평등주의자로서 능력이 미친다면 과거로 추급하여 남녀평등이 구현된 분묘형태로 재편하는 시도도 나올 듯 싶다.

    신정모라라는 엿장수의 가위질
    아래 문장을 들여다 보자. "미국 수퍼볼 스타 하인즈 워드 엄마가 한국출생이라는 것을 이유로 ...그를 한국계라고 부르고 한국인의 피를 받았다고 자랑스러워한다. 정작 한국에선 전통적으로 모계의 피를 인정하지 않았고 지금도 여전하다...그런 부계중심 사회가 하인즈 워드 때문에 큰 감동을 받아 머리가 확 깨인 모양이다. 모계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나? 호주제 폐지에 힘쓴 사람들을 '살생부' 명부에 기록하여 저주하는 무리들이 인터넷에 버젓이 존재한다. 그런 무리들이 더욱더 하인즈 워드를 한국계라고 하면서 칭송하는 아이러니를 보인다."

    신정모라가 표현한 내용을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
    1. 수퍼볼 스타 하인즈 워드 모친이 한국출생이다.
    2. 하인즈워드는 한국계이다.
    3. 한국은 전통적으로 모계의 피를 인정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4. 호주제폐지에 힘쓴사람을 저주하는 무리들이 하인즈 워드를 한국계라고 하면서 칭송한다.

    위에서 1과 2는 사실이다.
    3.은 신정모라라는 이름을 보며 과연 그런가라는 의심이 드는 엉성한 주장이다.
    4.는 호주제폐지에 힘쓴 사람을 저주하는 무리들과 하인즈워드를 칭송하는 사람들이 관련이 있다라고 단정하는 신정모라의 주관적판단으로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필자는 하인즈워드가 스타덤에 오른 것을 기뻐하지만 호주제폐지에 힘쓴 사람을 저주하지는 않는다.

    또 들여다 보도록 하자
    "하인즈 워드가 엄마를 사랑하여 팔뚝에 한글로 자기 이름을 새겼다고 한다....엄마가 그를 키웠고, 엄마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그토록 엄마를 사랑한다면 왜 하필 하인즈 워드인가, 하인즈 김이 아니고? 기자들은 다음 번에 꼭 한번 물어봐 주길 바란다. 엄마를 사랑한다면 엄마성을 이름에 넣어달라고 말이다. 하인즈 김 워드는 어떤가?"

    위 문단은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전제로 해서야 가능한 표현이다.
    신정모라가 아닌 '신모라'라고 쓰면 신(부친성씨라 추정함)씨성의 부친만을 사랑하는 것이다.
    신정모라가 아닌 '정모라'라고 쓰면 정(모친성씨라 추정함)씨성의 모친만을 사랑하는 것이다.
    신정모라라고 쓰기 전의 '신모라'는 엄마를 사랑하지 않고 아빠만 사랑하는 철부지였다.

    이런 전제를 토대로 한 문단이 제대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요상한 글을 거리낌없이 실어주는 대자보 편집진의 선구안이 경이롭다. 필자의 문제의식이 이상한 걸까?

    "...이런 식의 희생은 희생도 아니고 일종의 자가당착 집착병이다. 결혼한 아들은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아내와 자식이어야지, 언론에 '우리 엄마를 가장 사랑해요'라고 말해서 마마보이라는 것을 의심하게 만들거나, 외아들 콤플렉스를 표출하거나 하면 곤란하다."

    "결혼한 아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아내와 자식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만약 "'우리 엄마를 가장 사랑해요'라고 말하면 외아들 콤플렉스를 표출하는 것이거나 마마보이일지도 모른다"는 신정모라의 주장은 또 어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아내와 자식이어야지 그 안에 는 끼어들어서는 문제가 있다는 사고방식이야말로 돼지발톱 어긋나는 것처럼 황당한 발상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