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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킹 노무현 VS 하이에나 이회창
부산대첩의 날은 밝았다.
 
변희재   기사입력  2002/12/03 [16:00]
{IMAGE1_LEFT} 2000년 4.13 총선을 앞두고 지역감정 문제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전북대 신방과의 강준만 교수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당시는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이 한창 진행중인 시점으로, 낙선자 리스트의 기준으로 지역감정 조장 여부를 넣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옥신각신하던 때였다.

나는 강교수에게 시민단체가 지역감정 조장을 하는 정치인을 화끈하게 잡아줄 것이니 더 이상 지역감정에 의존하는 선거운동은 발붙일 곳이 없지 않겠느냐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강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두고 봐라. '영도다리에 다 빠져죽자.' 이런 저차원적인 수준의 지역감정 발언을 하는 김광일 같은 사람만 걸릴 거다. 훨씬 더 교묘한 방법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후보들은 죄다 당선된다."

실제로 총선시민연대는 지역감정 앞에서 손 한번 쓰지 못했다. 그리고 영도다리에 빠져죽자던 김광일은 낙선했고 '부산 사람들은 영영 호남의 종살이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협박했던 허태열 후보는 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노무현을 여유 있게 제치고 당선되었다. 그리고 부산의 자존심이라는 정형근 의원을 비롯하여 한나라당은 대구-경북, 부산-경남의 의석을 싹쓸이했다. 영남 지역의 지역감정이 최고조로 올랐던 선거였다.

그 뒤로 인터넷에서는 낙선한 노무현 살리기 운동이 벌어지는가 하면, 정형근과 허태열을 당선시킨 부산시민들을 집중 공격하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35% 이상의 부산 사람들이 김대중 이름 걸고 나온 민주당의 노무현을 지지해줬음에도 당선을 시켜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또 한번 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된 것이다. IMF를 불러온 김영삼 정권의 실정 이후 두 번째의 상처였다.

강준만 교수를 비롯하여 지역감정 문제를 다루는 학자들의 의견은 지역감정 문제는 이성적으로만 해결할 수 없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물론 사안에 따라서 옳고 그름을 명확히 가려주는 일도 필요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입힌 상처를 따뜻하게 감싸안을 수 있는 감성적인 포용력도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97년도 대선 때 4수의 야당 후보 김대중에 대해 수십년간 지지를 보내준 호남인들은 선거운동기간 김대중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처음부터 김대중은 호남에 절대로 내려가지 않겠다는 선거운동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아마 외국인이 본다면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자신을 대통령 후보로 네 번씩이나 밀어준 호남사람들에게 인사 한번 하러가지 않은 김대중의 매정함을. 그러나 이런 김대중의 태도를 욕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줄 안다. 왜 그랬는지는 다 아는 이야기니까.

2002년 대선에서도 97년도와 비슷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 역시 호남은 90% 이상의 전폭적인 지지를 부산 출신 노무현 후보에게 보내고 있다.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문제로 노무현 후보가 크게 흔들릴 때도 호남에서만큼은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율의 기반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항상 다른 지역보다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고, 이를 바탕으로 노무현 후보는 후보단일화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노무현 캠프 쪽에서는 선거운동 기간 중에 노무현을 호남으로 보낼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온통 부산과 경남 쪽 스케줄만 빽빽이 잡고 있다.

이것도 외국인이 보면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호남 사람들이나 노무현 지지자들이 이를 비판하지는 않는다. 다 아는 이야기이니까.

최근 노무현 후보는 영남 지역에서 '새끼 사자론'을 들고 나왔다. 어미사자는 죽을 고비를 넘긴 새끼만 키워준다고. 부산에서 세 번 떨어지고, 대통령 후보가 되고 부산에 와서 밀어달라고 호소하다가, 또 다시 중도 낙마할 위기를 겪다가 다시 살아나서 기어코 부산에 돌아온 자신을 이번만큼은 밀어달라고.

민주당 경선 내내 "영남에 내 표 있다."고 오만하다는 비판을 받을 만한 발언을 하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 1차 노풍이 불 때 마치 점령하러 온 사람처럼 당당히 부산에 내려가서,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부산시장 공천권을 줘버리는 무모한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을 더 큰 정치인으로 키우기 위해 부산시민들이 일부러 연이은 낙선을 시켜줬고 그 시련을 견뎌냈으니 대통령 시켜달라는 부산시민들의 모성(?)을 자극하는 발언.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된다. 그런데 이러한 노무현식의 호소가 부산에서 서서히 먹혀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 호남지역 사람들은 물론 그 어느 지역 사람들도 별다른 반감을 갖지 않는다.

오직 한나라당에서만 90% 호남 몰표도 모자라 감히 '부산의 아들'을 자임하느냐며 딴지를 걸고 있지만 노후보는 이에 대해 자신은 '목포의 데릴사위'라며 여유 있게 대응하고 있다.

노무현식의 호소가 통하는 이유는 타 지역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지 않으면서 자신의 지역에 대한 자존심을 세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허태열식의 '부산은 호남의 영원한 종살이를 할 것이다'라는 대 호남 증오심을 이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또한 연설 도중 가끔가다 경상도 사투리를 써가며 부산 및 경남과의 일체감을 강조하는 애드립도 잊지 않는다. 부산-경남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이 김대중에 대한 증오심 하나로 승부하는 이회창 후보로서는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재주이다.

이번 대선은 국가의 영혼을 갉아먹던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증오의 지역주의가 타지역에 대한 이해를 포함하여 자신의 지역의 자존심을 지키는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애정의 지역주로 탈바꿈하는 과정이다.

{IMAGE2_RIGHT}그리고 이러한 증오와 애정이 교차하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부산시민들은 가장 강렬하게 겪고 있을 것이다. 자신들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비슷하게 살아왔으며 비슷한 말투를 쓰는 노무현과 자신들과 다른 모습을 하고, 다르게 살아왔으면 다른 말투를 쓰는 이회창, 이 중 한 명을 택해야 한다. 호남당과 영남당이라는 껍질을 벗겨내고 그 속의 인물을 선택하는 것이다.

노무현 후보는 구태여 다른 지역으로 선거운동을 하러 갈 필요가 없어 보인다. 어차피 껍질을 벗겨내려는 자와 껍질을 입히려는 자와의 싸움은 부산-경남 지역에서 결판난다. 그리고 이것은 지역대결로 인해 잃어버린 한 지역의 자존심을 당당히 되찾는 싸움이며 새끼 사자 노무현과 어미 사자 부산시민들이 함께 해야할 싸움이다.

이회창 후보 휘하의 한나라당 사단 역시 늙고 배고픈 하이에나 무리처럼 이빨을 갈며 부산-경남을 어슬렁거리며 배회하고 있다. 결전의 날은 다가오고 있다.

나 역시 이번 주에 부산에 내려간다. 강화도민인 내가 부산대첩에 참여하려는 것은 아니고 역사의 현장에서 기념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놓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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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12/03 [16:0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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