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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 단일화를 둘러싼 찬반 논리를 점검한다
후보단일화의 역사적 정치적 의미를 생각해야ba.info/css.html'
 
변희재   기사입력  2002/11/21 [22:08]
2002년도의 대선은 이회창 대세론이 줄곧 판을 지배했지만 실상 이회창이 정국변화를 주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대세론이라는 것도 50%에 육박했던 97년도의 김대중의 대세론과 비교하면 매우 초라해 보인다. 그의 대세론은 오직 노풍이나 정풍과 같은 외부 변수 요인이 약했을 때만 존재했을 뿐이다. 대선이 막판에 다다른 지금 시점에서조차 정국의 주된 변수는 이회창이 아니라 노-정 단일화이다.

{IMAGE1_LEFT}노-정 단일화 문제는 현실 정치판을 뒤흔들고 있을 뿐 아니라 노무현 지지자들 내부에서도 매우 다양한 의견이 나올 정도로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특히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쓰는 소위 논객들은 각기 다른 논리와 입장을 개진하며 토론 열기를 더해주고 있다. 노-정 단일화가 2002년 대선의 중차대한 화두로 떠오른 이 시점에서 단일화에 대한 어떠한 의견들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혼란스러운 정국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까 한다.


각각의 입장에 붙인 명칭은 이해하기 쉽게끔 조금 과장하였으니 혹시라도 해당 논객들이 불만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1. 노무현 원리주의자들

노무현이 지금껏 지켜온 소신과 원칙에 후한 점수를 주는 지지자들이다. 노무현이 더 많은 지지자를 끌어 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러한 원칙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과는 성향이 크게 달라 보인다. 기성 정당에 대한 회의주의적 시각을 갖고 있어 민주당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노무현 후보가 2000년 총선 때 부산에서 낙선한 이후 노무현 개인에게 호감을 갖게 된 사람들이 많다. 그러므로 무당파 혹은 민주노동당 지지자들 또한 이러한 부류에 포함된다.

“원칙 때문에 노무현을 지지했는데 노무현을 위해 원칙을 버리란 말인가?”라는 말이 이들의 생각을 대변해준다.

그러므로 이들은 후보단일화에 반대한다. 노무현이 재벌2세 정몽준 후보와 대권을 위해 손을 잡는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의 논리에도 약점은 있다. 그렇다면 과연 3자 대결시 노무현 후보가 집권할 다른 방법이 있냐는 질문에 진작부터 원칙을 지켰으면 무난히 당선되었을 거라는 입증불가능한 답 혹은 “집권만이 능사는 아니다.”라는 허무주의적인 답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이들은 원리원칙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현실 정치인으로서 수많은 타협을 이뤄내야 할 노무현 지지자로서 끝까지 남아있을 가능성은 없다. 마치 비극적 최후를 맞은 지식인인 김구, 혹은 정계은퇴 당시의 김대중 등 현실에서 정치권력을 획득하지 못하고 패배한 정치인들에 대해서 열렬한 애정을 보내는 한국 국민들의 한의 정서와도 닮아 보인다.

다만 노무현 후보 자신이 “단일화란 없다”고 다짐했었기 때문에 이들의 원칙론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2. 노무현 중심주의자들

아마도 노무현 지지자들 중 주력부대를 이루는 사람들이 아닐까 한다. 18일자 동아일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몽준으로 후보 단일화가 되었을 때 노무현 지지자 중 58.1%가 그를 찍겠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므로 이들은 노무현 지지자 중 41.9% 정도를 차지한다고 추측해볼 수도 있다.

숫자 면에서는 아래 설명할 반창연대주의자들보다 적지만 노사모 시절부터 적극적 지지층을 형성하였기에 여론의 파급력에서는 훨씬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

이들은 후보단일화를 단일화로 받아들이지 않고 예비 선거나 플레이오프 정도로 인식한다. 그러므로 만약 노무현 후보가 패했을 경우 노무현 후보의 재기를 위해 힘을 보탤 수는 있을망정 정몽준 후보에 대한 지지는 하지 않을 거라 공언하기도 한다.

마치 노무현 원리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노무현과 정몽준의 거리보다는 정몽준과 이회창의 거리가 훨씬 더 가깝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므로 후보단일화라는 것은 노무현의 당선에 필요한 과정일 뿐 그 이상은 아니라고 여긴다.

그러나 이들은 치명적인 논리적 약점을 지니고 있다. 노무현이 전격 제안한 후보단일화에 찬성을 하면서 노무현이 패한다면 정몽준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것이 정치적 도의에 맞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 중 몇몇은 마치 정몽준으로 단일화가 되었을 시 정몽준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 도덕적이고 원칙적이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이들은 오히려 노무현 원리주의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한다. 후보단일화가 야합이나 다름없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 후보단일화를 지지한다면 정몽준으로 단일화가 되었을 때 그를 지지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합당하다는 것이다.

이들의 공언은 노무현 지지자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면이 있다. 노풍이 불 때만 해도 노무현이 재벌2세 정몽준 후보와 타협을 해야하는 상황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들이 공개적으로 단일후보 정몽준을 지지하지 말자고 선언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러한 서글픈 상황 때문에 노무현 지지자들에게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다만 정몽준으로 후보단일화가 되어 노무현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을 때 이들이 2002 대선을 마냥 외면할 수 있을지는 닥쳐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이들과 유사한 입장을 가졌으면서도 현실정치에 발을 딛고 있는 개혁당의 행보가 관심거리가 될 전망이다.

3. 반창연대주의자

정몽준의 지지율이 노무현을 앞지를 때부터 힘을 얻은 사람들이다. 물론 여기서는 후단협 같은 현실정치인들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의 주장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니 이들의 입장도 논리적으로만 검토하면 될 것이다.

이들은 이회창은 악의 축이며 이회창 집권 저지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개혁방법이라 인식한다. 그러므로 노무현의 집권이 불가능할 경우 정몽준의 집권만으로도 충분히 개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찌감치 후보단일화를 주장했기 때문에 다른 노무현 지지자들과 비교해서 논리적으로 우위를 보이고 있다. 또한 정몽준으로 단일화되었을 경우에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면 된다. 노무현 원리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역시 원리원칙에도 매우 충실한 것이다. 반창연대주의라는 원칙을 시종일관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적인 야합이라고 공격받는 후보단일화 그 자체에 대해서도 이들은 공격적인 반격을 가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50% 이상의 지지를 얻어 집권할 가능성이 없다면 다른 노선을 추구하는 정당과 정책연합을 도모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특히 연정이 비일비재한 내각제를 택한 국가의 예를 생각해본다면 이들의 주장엔 타당성이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은 노무현 원리주의자들과 중심주의자들 모두를 공격할 논거를 갖고 있다. 혼자서 집권할 만한 지지를 얻지 못하면 당선을 포기해야 한다는 원리주의는 원칙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독재적 마인드라 비판하고, 정몽준으로 단일화되면 기권하겠다는 중심주의자들은 그런 발상이야말로 단일화 정신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라 비판한다.

특히 정몽준 지지자들이 노무현 단일화시 노무현을 지지하는 비율이 턱없이 낮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힘을 받는다. 대놓고 단일후보를 부정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실제로 노무현으로 후보단일화가 되었을 때 정몽준 지지자들의 다수가 이회창으로 돌아서면 이들을 무슨 수로 설득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너무나 막연한 예측을 전제로 논리를 주장했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정몽준과 노무현의 지지율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민주당의 탈당사태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반창연대를 외친다면 결국 노무현 낙마를 전제로 한 단일화에 찬성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과연 이런 식의 단일화도 원칙이라 인정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만 안티조선 '우리모두'의 논객인 skyang의 경우는 어차피 이번 대선은 궁극적으로 노무현과 이회창의 양자 대결로 압축될 것이니 정몽준은 단일화의 대상으로 활용만 하면 된다는 입장을 일찌감치 밝혔다. 그의 예지력은 매우 뛰어나다 할 수 있으나 인터넷의 한 구석에서 주장할 수 있는 담론으로서의 가치는 있으되,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이런 주장을 중심에 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IMAGE2_RIGHT}즉, 낙마하지 않기 위해서 노무현이 “단일화 가능성은 1%도 없다”라는 주장을 했다면 그때는 노무현의 지지율 상승을 위해 힘을 모으는 것이 지지자로의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그런 태도로부터 상승한 지지율이 지금의 단일화 논의를 가능케 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물론 소수의 주장으로서는 분명히 가치 있는 예견이라는 점은 변함 없다.

이 세 가지의 논리들 사이에 존재하는 의견들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노무현 중심주의와 반창연대주의자들 중간 정도의 스펙트럼에 위치하지 않을까 한다.

정치적 선택의 문제에서 어느 것이 옳다고 확신하기는 힘들다. 한 번의 정치적 선택은 1년 뒤, 5년 뒤, 10년 뒤에야 비로소 그 파급효과를 절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했으면 좋겠다. 어차피 각 정당으로부터 감투를 쓰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해당 후보측으로부터 밥 한끼도 얻어먹지 않은 사람들끼리 논쟁과 토론을 한다면 어떤 주장을 하든 최소한 그 사람의 양심에 따른 판단이라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리원칙을 주장하는 사람이 더 깨끗하고 현실적 정치를 고려하는 사람이 타락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원리원칙은 오히려 논객으로서의 독립성과 더 깊은 연관이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다. 독립된 개인 논객이 각자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자신의 모든 양심과 모든 진실을 걸고 주장한다면 그것이 설사 다른 의견이라 할지라도 도덕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제대로 된 논쟁을 하겠다면 자신들의 판단이 가져올 정치개혁적 성과를 들어주는 것이 훨씬 나아 보인다. 즉 노무현 원리주의자들이라면 노무현이 단일화를 거부하며 독자행보를 하다 이회창이 당선되었을 때, 노무현의 선택이 왜 한국정치의 진보에 도움이 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노선이 다르면 홀로 가는 것이 원칙이라는 말은 별다른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또한 노무현 중심주의자들이라면 정몽준으로 단일화되었을 때 기권을 하는 것이 어째서 한국정치의 발전을 앞당기는지 차분히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냥 “내가 싫으니까!”라는 답은 성숙한 유권자로서의 태도는 아니다.

최소한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끼리 모였다면 서로의 존재는 인정하면서 도덕적 우월감은 버리고 누가 더 나은 방법을 고려하고 있는지 마음껏 토론해보자. 대통령 선거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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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11/21 [22:0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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