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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신드롬, '유사 파시즘‘ 아닌 진짜 파시즘
[논단] 열정과 광기 속에서 읽은 로버트 팩스턴의 <파시즘>
 
숨인씨
로버트 팩스턴의 <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혁명>을 덮으며 나는 2002년 어느 모임의 송년회를 회상했다. 거기서 만난 한국계 프랑스 대학생 H와의 대화는 대부분 정치비평으로 채워졌다. 마침 그해 한국과 프랑스는 대통령선거를 치렀던 참이었다. H는 프랑스 의회의 극좌 트로츠키주의 정당부터 극우 국민전선에 이르는 정당과 그들 각각의 대선 득표율을 메모지에 적어주었고, 나는 나대로 우편향된 한국 정치지형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어느덧 화제는 프랑스 대선에서 2위를 차지한 극우파 장 마리 르펜으로 옮겨갔다. H가 물었다.
 
"한국에서는 장 마리 르펜의 이미지가 어떻습니까?"  "극우파로 일단 보도됐고. 이미지는 네오-나찌, 네오-파쇼쯤 됩니다."

H는 고개를 젓더니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막혔는지 불한사전을 뒤졌다. 그의 손가락이 ‘일반화하다’라는 말을 가리키고 있었다.
 
"파시즘이란 단어가 너무나 남발되고 있습니다. 르펜은 극우파이지만 파시스트는 아닙니다. 그는 노동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사회주의적 레떼르를 구사하기도 하지요. 그리고 자크 시라크 등 보수주의자들이 르펜과의 작은 간극을 크게 보이게 하려고 그를 파시스트처럼 묘사하기도 합니다."
 
파시즘은 테러독재도, 극단적 자본주의도 아니다
 
H의 말은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다. 르펜은 극우 정치인으로서 사형제의 부활과 불법이민자 강제추방을 선동하는 폭력적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파시스트’라는 딱지를 붙이기에는 부족하다. 그런 의미에서 H의 말은 맞다. 르펜은 실제로 사회주의적 레떼르를 구사하면서 노동계급의 적지 않은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파시스트적이지 않음'의 증거는 되지 않는다. 아니 그것이야말로 르펜이 '파시스트적 극우파'라는 훌륭한 방증이다.
 
분명 파시즘이라는 말은 '일반화'되었고, 그러한 남발의 양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난다. 이것은 본 저서가 겨냥하고 있는 오류들이기도 하다. 첫째는 파시즘을 ‘테러독재’쯤으로 해석하는 견해다. 이것은 전두환 정권 때 쏟아진 ‘파쇼 타도’의 구호에서 잘 나타난다(팩스턴이 한국의 정치사를 연구했다면 더 풍성한 지적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민주화운동세력의 담론과 저항에는 정확하고 치밀한 파시즘 담론이 결여되어 있었다. 파시즘은 극악무도한 독재자에게 붙일 만한 명칭에 다름 아니었다. 다시 말해, 파시즘은 경멸어였고 으르렁말이었다.
 
예컨대 박정희와 전두환의 시대는 파시즘의 시대였는가. 대답은 복잡한 현실을 따를 수밖에 없지만 일단은 '아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옳을 터이다. 이 대답은 박정희와 전두환에 대한 보다 너그러운 평가를 뜻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만큼 파시즘을 둔 수많은 오해에서 당신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박정희의 경우, 개인적으로는 천황제 파시스트였고 그가 구성하려 했던 체제 역시 파시즘 체제였지만, 의도대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3공화국 시절에는 노동정책과 금융정책에도 얼마간 숨통이 트여 있었고, 의회민주주의의 외형도 뭉개지지 않았었다. 유신헌법의 공포 이후에는 조금 더 파시즘 체제에 다가서지만 결정적 요건을 충족하지는 못했다. 제5공화국, 그러니까 전두환시대는 국가에 의한 테러리즘이 위세를 떨쳤으나, 그것은 무식한 군부독재 이상은 아니었다.
 
최근 몇 년동안 유행한 '우리 안의 파시즘', '일상적 파시즘'의 담론도, 파시즘을 폭넓게 정의함으로써 파시즘 아닌 것까지 파시즘으로 규정하는 오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서의 파시즘 역시 일반적인 ‘권위주의’에 가깝다.
 
파시즘 남발의 두 번째 사례는 속류 마르크스주의(자)가 내놓은 견해, 즉 위기에 부닥친 자본주의가 마련한 돌파구라는 이론에서 발견가능하다. 스탈린이 코뮌테른 석상에서 발설하면서 더욱 더 널리 퍼지며 자리매김한 이 견해는 사회주의와 전체주의의 통로를 못 본체하고, 파시즘의 위험을 자본주의에만 떠넘기는 듯하다. 파시즘과 극우파가 다르다는 H의 말은 맞다. 그러나 바로 파시즘과 극우파가 다르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적 레떼르’를 근거로 르펜이 파시스트가 아니라던 H의 말은 틀렸다.
 
파시즘의 어원은 파스케스(fascec)로, 그것은 고대 로마의 집정관이 시가행진을 할 때 쓰던 나뭇가지 묶음에 싸인 도끼를 일컫는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파스케스가 1914년 이전에 주로 좌파의 상징물로 쓰였다는 것이다. 이 아이러니를 숙지한다면 파시즘을 추적하는 눈은 훨씬 더 밝아질 수 있다.
 
핵심은 열정과 광기의 대중운동
 
제1차세계대전을 거치며 유럽에서 민족주의의 공간이 넓어지면서 파시즘이 창궐하기에 알맞은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인류의 진보를 성취하는 방법이 기존의 길 바깥에 있다는 문제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19세기에 흐른 피와 땀의 대양을 넘어 20세기의 개막을 맞이한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도 인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 세 가지의 사상과 정파들이 경쟁할 수 있는 무대인 외회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있었다. 독재의 가능성이 절대왕정을 비롯한 ‘위로부터의’ 전통적 권위주의 내지는 극빈수탈독재에서 대중운동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개발독재 내지는 전체주의로 옮겨가는 중이었다.
 
▲ 파시즘은 극악무도한 독재가 아니라, 대중의 열정과 광기가 낳은 근현대적 현상이다. 이것을 착각하는 순간 파시즘의 개념은 현실의 맥락 바깥으로 흩어진다.   

파시즘운동은 묘하게도 생일을 가지고 있다. 1919년 3월 23일 일요일에 밀라노의 상공업연맹회의실에서 퇴역군인과 생디컬리스트, 미래파 지식인들이 “민족주의에 반하는 사회주의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주역은 무솔리니였다. 퇴역군인이야 그렇다 치고, 생디컬리스트와 미래파 지식인들이 파시즘 탄생의 산파였다는 것이 의외스럽다. 의회에서의 정당활동과 집권으로 자본주의를 개량하려고 했던 사회민주주의자들과 달리, 생디컬리스트들은 노동조합에 기반을 두고 거대한 총파업으로 체제를 뒤엎으려고 했다.

자본주의를 대하는 이들의 호전성은 세계대전을 거쳐 애국주의와도 결합하며 ‘국가사회주의’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 미래파 지식인들도 조금 다른 맥락에서 당시의 자본주의 체제가 처한 위기를 겪으며 강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19세기 후반 이탈리아 혁명가들은 ‘파쇼(fascio;묶음)’라는 낱말을 사용했다.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사회에 팽배한 불만과 혁명 분위기를 타기 위하여 ‘파시스모(fascismo)’라는 용어를 고안했던 것이다. 초기 파쇼 세력의 일각을 점하던 순결주의자들은 의회주의를 부정했다. 파시즘을 정당이 아닌 운동으로 구현해야 한다고 확신했고, 자본가와 부르조아 세력을 향한 증오심을 드러냈다. 뿐더러 무솔리니나 히틀러 같은 대표적 파시스트들은 자신과 그 일파를 노동자들의 대변자라고 선전하며 과거의 사회주의자 동지들을 끌어들일 계획을 세웠다. 파시즘은 사회주의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는 했지만, 그 원동력을 철저히 사회주의적 열망에서 빌려온 셈이다. 파시즘은 반사회주의적이면서 동시에 반자본주의적이었다.
 
물론 반자본주의 담론은 순전히 선택적으로 이루어졌다. 파시스트들은 '외국'이나 '적'의 사유재산만을 부정했다. 나찌 독일은 1932년 총선에서 37퍼센트라는 절대적이지 않은 지지율을 기록하지만 점차 절대권력을 확보하는 길에 들어서는데, 그것은 보수엘리트층, 기업인, 종교인들과의 협력으로 얻은 결과였다. 당대의 기득권층은 대중운동으로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준 대가로 파시스트들에게 권력을 내준 것이다.
 
노동계급 역시 자신을 ‘국민’의 일부로 껴안은 파시즘에게 저항하지 않았다. 나찌는 1933년 이후 ‘반사회집단’을 겨냥하여 표면화되고 광범위한 테러를 자행하지만, 이것은 국민에게 불안이 아닌 희망을 주었다. 르네 지라르의 표현에 따르면 ‘속죄양’에 해당할 질적 소수자들은, 고종석이라면 ‘우수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양적 소수자들이기도 했다. 나찌는 공포정책 이외에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분열을 이용해서 노동계급의 무력화시켰고, 약간의 이권제공과 여가선용문화의 선도로 국민들을 노예적 안락함에 빠트렸다.
 
어쨌든 ‘혁명’은 계속되었다. 파시즘은 반자본주의적 강령을 슬며시 접으면서 사회경제적 혁명을 비켜갔고, 대신에 ‘영혼의 혁명’으로 애국심을 고취했다. 파시즘은 제 본연인 뜨거운 대중운동 없이는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러나 때로는 숨을 골라야만 했다. 파시즘을 제멋대로 규명하려는 기존의 학설들을 논파하고 ‘종지부’를 찍어버린 로버트 팩스턴은 이 일련의 과정을 ‘급진화’와 ‘정상화’로 설명한다.
 
황우석신드롬과 뉴라이트가 파시즘이 아니라면
 
파시즘의 주요 필요조건이 대중운동임을 감안한다면 박정희와 개발독재를 다루는 학자들의 논쟁도 이해하기 쉬운 것이다. 박정희는 무솔리니나 히틀러처럼 좌익의 토양에서 자라난 야심가다. 그는 이미 알려졌듯 좌익운동가의 동생이며 남조선노동당에서 활동했다.

참고로, 박정희에게 영향을 주었던 일본 2.26 쿠데타의 청년장교들은 기타 잇끼(北一輝)라는 이데올로그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는 일본제 파시즘이 유럽제 파시즘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적 요소’들을 충만하게 껴안고 있었다. 이는 청년좌익장교 박정희 뿐만 아니라 우익 독재자 박정희에게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일례로 박정희가 쓴 시 가운데에는 ‘프랑스 시집을 읽는 소녀야/나는 네 고운 손이 밉더라’는 구절이 있다(사회주의 리얼리즘?).
 
사실 박정희시대의 요소들은 어느 것이 파시즘이고 자본주의며 사회주의적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만주국은 소비에트연방의 정책을 모방했고, 박정희가 만주국을 본떴다는 측면을 상기하면, 틀에 박힌 좌우 이데올로기로는 박정희시대나 파시즘의 본질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하지만 박정희시대는 파시즘의 문턱에서 좌절했다. 새마을운동이나 압도적 지지율로 통과된 유신헌법이 그 체제의 파쇼성을 증명하기도 하고, ‘강제적 복종이냐, 자발적 동의냐’는 논쟁을 분만키도 하지만, 유신독재는 체육관에 운집한 특권원로들의 지지를 얻어 탄생되었고, 반대로 국민들은 총선에서 야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주었다. 부산·마산의 대규모항쟁과 정권수뇌부의 내분으로 몰락한 유신독재는 정말이지 파시즘답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던 것이다.
 
1987년 6월항쟁을 관통하며 한국사회는 파시즘체제로 흘러갈 위험을 대부분 덜어냈다. 그러나 오히려 파시즘운동의 조건은 더욱 성숙되었다. 군사정권에 기대어 사회 각 부문에서 전횡을 저지르던 이들은 사회운동의 형식으로 자신의 이해타산을 충족하려 달려들고 있으며, 족벌언론과 독단적 교육세력까지 뛰어든 ‘아래로부터의 흐름’은 민간정부의 기반을 흔들어 놓을 만큼 강력하다. 자유민주주의는 성숙하고 있으나 불황에 부딪힌 사람들은 ‘개혁 없는 개혁피로감’을 앓고 있으며 제 열망을 올인할 대상을 찾아 헤매고 있다.
 
조선일보나 한나라당은 파시스트들인가? 아니다. 이들은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나 히틀러의 독일에서, 파시스트들에게 협력한 ‘보수기득권엘리트층’에 가깝다. 민주정부와 진보진영을 불신하는 국민들은 그들에게도 똑같은 불신을 표출하고 있다. 나는 이 시대 진정한(!) 파시스트 세력으로 ‘뉴라이트’와 ‘황우석 지킴이’들를 꼽는다.
 
자칭 뉴라이트(실은 신극우세력)는 과거에 극단적인 좌파였다는 점에서, ‘보수기득권엘리트’들(실은 구극우세력)에게 권력을 인수받으려 한다는 점에서, 원조 파시스트들과 빼닮았다. 더구나 이들이 주창하는 ‘보수혁명’은 파시즘운동의 핵심철학이었다. 뉴라이트의 주요 인물들은 학생운동의 전력을 오늘에 되살려 파시즘운동을 풀무질하고 있다.
 
황우석 지킴이들의 사상은 명쾌히 분석되지 않는다. 논문조작의 전모가 드러나지 전까지 수구언론은 지지를 아끼지 않았고, 노무현 지지자들의 상당수도 황우석을 옹위했다. 민족해방계열의 어떤 인터넷 언론인은 PD수첩을 ‘사대주의자’라고 비방했다.

이들이 한데 뭉칠 수 있었던 것은, (1차세계대전 직후 이탈리아와 독일을 배회했던) ‘애국주의의 유령’과 ‘새로운 비전을 갈구하는 민중의 뜨거운 열망’ 덕택이었다. 자, 어떤가. 이게 파시즘이 아니라면 무엇이 파시즘인가? 
  
* 2006년 새해 1월 4일 연세대학교에서 <황우석신드롬, 부끄러운 자화상>이라는 주제로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와 민주노동당 한재각 연구원의 강연회가 열렸습니다. 본 기사는 주최측인 연세학술단체협의회(가)가 배포한 자료집에 수록된 서평입니다. 
* 글쓴이는 경북 구미시 시의회 의원(무소속)입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영남지역 최연소(27세) 기초의원에 당선돼 현재 시의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2002년 <대자보> 필진으로 참여한 이래 다년간 정치칼럼 등을 연재해 왔으며,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대자보> 독자들과 만납니다.
기초의원으로서 풀뿌리 정치 현장에서의 경험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블로그 : http://kimsoomin.tistory.com/
 
기사입력: 2006/01/12 [12:11]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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