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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화가 아니다. 정몽준-이회창 각개격파다
황태연, 강준만, 권혁범의 후보단일화를 보는 시각ba.info/c
 
변희재   기사입력  2002/11/10 [23:44]
{IMAGE1_LEFT}1. 이번 대선에서 평화·개혁세력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이것은 이회창 후보와 그 부인이 열망하듯이 "하늘이 두 쪽이 나더라도 이겨야 한다"는 식의 승리지상주의가 아니다. 평화·개혁세력의 대선 승리는 중차대한 민족사적·세계사적 변화의 시기에 민족화합을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에 영구평화를 정착시키고 이 평화를 바탕으로 반도강국(半島强國)을 건설해 통일비전을 구현할 “중도개혁 정권의 재창출”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진다면 냉전·수구세력은 천재일우의 민족화합과 민족대도약의 찬스를 다 망치게 될 것이다. 다행이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는 “남북평화와 개혁을 통한 민족대도약”의 대국적 관점에서 노선이 일치한다. 양인 간의 구체적 정책 차이는 ‘중도연합’ 개념을 가로막을 만큼 큰 것이 아니다.

2.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특정 후보의 집권을 막겠다는 발상은 결코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는 사고방식은 아니다. 그러한 목적지상주의는 한국정치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절차와 당헌을 쉽사리 뒤집는 정치적 편의주의는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불신만 키운다.
이미 ‘국민경선’을 통해 확정된 대통령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당을 박차고 나가는 정치인들에게 정당은 동창회보다도 못한 조직이 되어 버렸다. 이미 선출된 대선 후보가 널뛰는 지지율에 따라서 후보 단일화 또는 후보 사퇴 압력을 받는 지경에 이른다면 도대체 정당별 대선 후보 선출 행위는 그저 협상 카드용에 불과한 것인가

1번은 10월 24일자 한겨레21에 실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의 황태연 교수의 글. 2번은 11월 11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대전대 정치외교학과의 권혁범 교수의 글이다. 글의 요점만 확인해도 황태연 교수는 노무현 정몽준의 후보단일화에 찬성하고 있고 권혁범 교수는 원칙없는 단일화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더 재미있는 점은 1번의 글을 후단협의 김영배 의원이 썼다 해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이며 2번의 글을 한나라당의 남경필 대변인이 썼다 해도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두 가지의 상반된 다른 명분이 부딪혔을 때 그 명분이 현실 정치판에서 어떻게 악용되는지 후보단일화를 둘러싼 명분투쟁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 마디로 각자의 속마음을 숨긴 채 칼을 뽑아들고 있는 복마전의 형국이다. 누가 진실과 충정을 걸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후보단일화를 주장하던 후단협의 위기의 남자들은 교섭단체 구성이나 신당 창당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지금 이들의 행동을 보면 처음부터 과연 후보단일화에 관심이나 있었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더구나 당의 중진인 박상천 최고의원과 정균환 총무마저 자기 당의 지지율만 조금씩 갉아먹으며 기회를 엿보며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다.

노무현 후보의 지지자들은 지금껏 이러한 이유 때문에 후보단일화에 대해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후단협이나 중도개혁포럼이 주장한 후보단일화는 명분만 후보단일화이지 사실상 노무현 후보의 낙마를 전제로 한 후보단일화였기 때문이다. 황태연 교수의 글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발표되었기 때문에 후단협의 깽판에 힘을 실어주는 셈이었다. 그런데 11월 3일 노무현 후보가 전격적으로 후보단일화를 제안하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의 협상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오히려 노무현 후보가 적극적으로 후보단일화를 주장하고 정몽준 후보는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며 발을 빼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몽준 후보는 처음부터 후단협과 중도개혁포럼을 활용해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을 빼놓고 스스로 사퇴하기만을 기다렸을 거라는 추측도 나온다. 이것이 실패로 돌아가고 오히려 역제의를 받자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다.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 따라 국민통합21의 내분이 더해질 가능성도 높다.

그러자 후보단일화에 위협을 느낀 한나라당에서 연일 맹공을 퍼붓는다. 원칙도 없는 야합이며 승리만을 목적으로 한 후보단일화라는 것이다. 박태준, 박근혜부터 민주당과 자민련의 철새정치인들을 모두 받고 있는 한나라당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대단히 우습게 들리지만 문제는 권혁범 교수와 같은 철저한 원칙주의자들이 이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만만치 않다. 물론 권혁범 교수가 한나라당을 지원하기 위해서 그런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노무현 본인 자신, 그리고 그 지지자들이 이제껏 후단협의 흔들기에 대항하기 위해 '정체성이 다른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은 1%도 없다.'는 원칙론을 깨며 후보단일화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명분과 논리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는 뜻으로 권혁범 교수의 주장을 인용했을 뿐이다. 후보단일화 정국을 노무현 측에서 주도하고 있으니 권혁범 교수의 비판은 노무현 쪽으로 향하지 않겠는가? 권혁범 교수의 주장은 2주 전쯤 절차를 무시하고 자당의 후보의 낙마를 시도한 후단협의 행태가 극에 달했을 때 나와야 했었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해서 황태연 교수의 글과 나란히 실렸던 전북대 신방과의 강준만 교수의 글을 섬세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강준만 교수는 후보단일화에 절대 반대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 이유에 대해서 권혁범 교수처럼 원칙만을 강조하지 않았다. 강준만 교수가 10월 24일 당시 후단협 측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지 않은 이유는, 여섯 가지였다.

첫째, 후보단일화의 명분이 단지 반 이회창이라면 97년의 DJP 연합과 달리 유권자들이 눈감아주기 힘들다.
둘째, 후단협이 바라듯이 노무현의 낙마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셋째, 노무현의 지지율은 당개혁을 통해 얼마든지 올릴 수 있다.
넷째, 조중동에 좌우되는 여론조사 결과로 후보단일화를 해선 안 된다.
다섯째, 집권만을 위한 노회한 프로의 수법은 통하지 않는다.
여섯째, 97년 대선의 최대 명분이 정권교체였다면 2002년 대선의 최대 명분은 ‘정치의 재탄생’이다. 민심은 때로 변덕스러울 망정 ‘시대 정신’을 읽는 눈을 갖고 있다. 돈도 구해오지 못해 돈을 전혀 쓰지 않는 노 후보의 ‘무능’을 욕할 게 아니라 그게 바로 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재집권 카드라는 걸 왜 모르는가. 민심은 ‘부패정권 청산’을 넘어서 ‘깨끗한 정권의 탄생’을 원하고 있다. 청산 대상으로 지목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구태의연한 정치공학이 아니라 노무현식 파격과 그 파격에 상응하는 민주당의 환골탈태일 것이다.


정리하면 노무현은 후보사퇴를 할 수 없는 후보이고, 노무현식 파격으로 당을 개혁하여 나가면 얼마든지 집권이 가능하니 미리부터 겁먹고 정몽준으로 돌아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노무현 후보 역시 후보단일화의 명분을 황태연 교수처럼 거국적 거시적으로 잡고 있지 않다. 단지 '정몽준과 맞짱을 뜨겠다.' 정도로 보고 있다. 노무현이 집권을 하기 위해서는 정몽준과 이회창을 모두 이겨야 하는데, 한꺼번에 붙으면 이길 수가 없으니 우선 만만한 정몽준부터 쳐부수고 그 다음에 이회창과 한판 붙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은 일체의 정책협상을 하고 있지 않다. 후보단일화 절차만을 협의할 뿐이다.

이렇게 본다면 후보단일화를 둘러싼 복마전의 실체는 반창연대가 아니라 오히려 친노무연대이다. 노무현식 개혁을 지지했기 때문에 노무현의 낙마를 전제로 한 후보단일화에 반대했던 것이고 노무현식 개혁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정몽준과 맞짱을 뜨는 것을 전제로 한 후보단일화에는 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혹시 정몽준으로 후보단일화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 결과는 민심으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이것이 왜 야합이고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정 원칙을 찾고 싶다면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한 대통령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현 대선구도를 문제삼고 각 후보들에게 헌법을 고치라는 주장을 해야 할 것이다. 결선투표제만 있었더라도 이런 준결승전을 미리 치를 필요가 있겠는가? 물론 97년도에 결선투표제가 있었다면 모르긴 해도 50년만의 수평적 정권교체는 불가능했겠지만 그래도 원칙은 원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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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11/10 [23:4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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