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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창 감정, 이회창 집권 돕나?
반창 감정 악화에도 이회창 집권 가능성 70% 육박ba.info/css.html'
 
변희재   기사입력  2002/10/21 [11:00]
양자 대결로 압축시킨 반DJ 감정

지난 5년 전 이 맘 때, 새정치 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 신한국당의 이회창 후보, 그리고 국민신당의 이인제 후보는 각각 지지세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IMAGE1_RIGHT} 이회창 후보가 두 아들의 병역 비리 파문으로 10%대의 지지율로 추락하면서 김대중 후보는 일찌감치 40%대 이상의 지지율과 50%대 이상의 당선 가능성을 확보하며 줄곧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이인제 후보 역시 신한국당을 탈당, 국민신당을 창당하여 김대중 후보에 이어 2위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대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11월 이후부터 이인제 후보의 지지표와 그 동안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던 부동표가 서서히 이회창 후보 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당시 11월 17일 자 {중앙일보}의 여론조사 보도에 따르면 이회창 후보는, 11월 6일에 22.1%, 11월 8일에 25.7%, 11월15일에는 28.1%로 상승, 처음으로 이인제 후보(27.9%)를 역전하여 1위 김대중 후보(36.3%)를 바짝 추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회창 후보의 약진으로 대선구도의 판도에 변화가 생기던 바로 그날, {중앙일보}에서는 '가급적 찍지 말아야 할 후보'를 물은 여론조사 결과도 보도했다. 그 결과는 예상대로 김대중(22.1%), 이회창(14.6%), 이인제(12.7%) 순으로 나타났다. 죽어도 김대중만은 안 된다는 반 DJ정서 때문에 언젠가는 영남권의 이회창과 이인제 양쪽 지지자들은 둘 중 한 명을 택해야 하는 시기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결국 이회창 후보가 이인제 후보의 지지율에서 앞선 그날 이후, 당선 가능성에서도 이회창 후보(18.6%)가 이인제 후보(11.6%)를 훨씬 앞서면서 자연스럽게 이회창 후보 쪽으로의 표이동현상이 벌어졌다. 그래서 97년도 대선은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후보 양강의 대결로 압축되었다.

민주당 분열의 명분을 제공한 반창 감정

2002년도 대선은 개혁진영의 후보 단일화 문제가 주요 쟁점이 되면서 87년도 대선과 비교되곤 한다. 그러나 집권당의 당원들이 집권당의 후보에게 사퇴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점, 정국 변화의 주된 명분이 반창 감정이라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97년도 상황과 흡사해 보이는 측면도 있다.

  9월 26일자 {한겨레21}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이 되어선 안 될 사람으로 이회창 후보에 대한 거부율이 무려 31.1%에 이르렀다. 이는 노 후보(12.1%)나 정 의원(7.7%)과는 물론 5년 전의 김대중 거부율과  비교해도 매우 높은 수치이다. 거기다 지역감정에 기댄 반 DJ 감정과는 달리 반창 감정은 아들의 병역비리 파문, 부친의 친일 의혹 그리고 냉전적 대북관 등 개혁과 진보적 관점에서 형성된 반발감이다. 5년 전의 김대중처럼 "도대체 왜 나를 그토록 미워하는가?"라며 호소를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반DJ 감정이 구 여권 층의 보수표 결집의 역할을 한 것과는 달리 반창 감정은 오히려 민주당내 세력의 분열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노무현 후보 측에서는 반노세력이야말로 민주주의의를 무시하며 후보 흔들기를 자행하면서도 반창 연대를 내세워 명분을 쌓는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후보단일화 추진협의회(후단협) 공동회장인 최명헌 의원이"집단적으로 들어가 정 후보를 모시게 될 것"이라며 지지율이 높은 다른 당의 후보를 전격적으로 지지하며 사실상 단일화의 절차를 무시하는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반창 감정의 힘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노무현 후보 측의 생각이다. 이회창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30% 이상의 유권자들이 있는 한 후단협은 절차와 도덕적 결함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자와 시사평론가 중에서도 반창을 중심으로 후보단일화에 힘을 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DJP 연합의 이론적 틀을 제공했던 동국대 정치외교학과의 황태연 교수는 "만약 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진다면 냉전·수구세력은 천재일우의 민족화합과 민족 대도약의 찬스를 다 망치게 될 것이다"며 반창 연대의 손을 들어준다. 또한 시사평론가 박상병씨도 "수구냉전세력으로 볼 수 있는 이회창씨와 대항하기 위하여 평화개혁세력인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정국을 예측하기도 했다.

  {조선일보}에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10월 19일)에 따르면 이회창 33.4%, 정몽준 27.0% 노무현 17.1% 로서 3자 대결에서 이회창 후보의 승리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 이렇게 3자 대결에서 계속해서 이회창이 앞서고 통합후보로서 정몽준이 이회창의 지지율을 능가하는 한 반창 연대의 불씨는 대선 막판까지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반창 연대로는 지지받을 수 없다

그러나 반창 연대가 지금의 여론조사 결과를 그대로 보장해줄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21세기 한국연구소 김광식 소장은 "후보단일화를 주장하는 세력 가운데는 단일화의 역사적 정당성보다는 정치적 계산에 따른 행동이 있다는 점은 87년의 순수성과 다른 측면이다"며 반창 연대를 그대로 순수개혁세력의 연대로 볼 수 없다는 뜻을 밝혔고,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전북대 신방과의 강준만 교수 역시 "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의 수평적·평화적 정권교체와' '한나라당 집권 저지'는 결코 같은 무게의 명분이 아니다"며 유권자들이 순수하지 못한 연대에 눈을 감아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반창 연대의 방향, 후보단일화의 여부를 지지율의 추위로 판단한다. 두 달째 지속되고 있는 이회창, 정몽준, 노무현 순의 지지율이 11월 초까지 이어진다면 노무현 후보의 사퇴를 전제로 한 반창 연대의 압력이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경선 후보로 선출된 노무현 후보가 정통 야당의 계승자라는 명분을 놓지 않는 한 막연한 반창 연대를 위한 사퇴 요구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노무현 후보는 10월 20일 개혁 국민정당 창당 발기인 대회에 참석하여 후보 수락 연설을 하며 지지세 확보에 적극 나섰다. 자신의 적극적 지지층이 절차 없는 사퇴압력을 막아줄 수 있다는 자신감도 보인다.

또한 97년도에 {중앙일보}가 이인제 후보를 맹렬히 공격하여 이회창 후보의 손을 들어주었던 전례로 볼 때 이번 대선에서도 조중동의 판단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조중동에서 그 동안 노무현 후보를 공격하던 것만큼 정몽준 후보를 견제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가급적 3자 대결로 대선을 끌고 갈 수 있도록 비판의 수위를 조율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설사 반창 연대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조중동이 개입하여 그 효과를 분쇄할 것이는 의견도 있다. 조중동과 한나라당이 영남고립책이라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반창 연대의 부도덕성을 집중 공격하며 선거판을 지역대결로 뒤바꾸어 오히려 영남권의 결집을 도모, 이회창 후보의 안전한 승리를 꾀한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11월 19일 한국갤럽 조사 결과 단일후보로 나선 정몽준 후보가 40.2%,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가 36.6%로  불과 4% 차이에 불과하다. 역풍이 불면 순식간에 뒤집어질 수 있는 지지율 격차이다.

악화된 반창 감정에도 당선 가능성 높아져

이미 30%에 달한 반창 감정 때문인지 이회창 후보는 집권당의 연이은 실정에도 불구하고 35%의 지지율을 넘지 못하고 있다. 5년 전 40%를 넘나들었던 김대중 후보의 지지율에 비한다면 원내 제 1당의 후보로서는 초라한 성적이다.

이회창 후보는 5년 전 영남권에서 "이인제 찍으면 김대중 된다"로 표출된 반 DJ 감정을 틈타 30% 이상의 격차를 단숨에 따라잡았다. 지금은 반창 감정에 발목이 붙잡혀 있지만 역으로 이를 적절히 활용하여 대선구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 수도 있는 상황이다. 여건에 따라서 반창 연대가 결성된다해도 얼마든지 반DJ 정서를 반창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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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은  92년도부터 뉴DJ플랜이라 불린 이미지 변신책까지 쓰며 어떻게 해서든 반 DJ 감정을 수그러뜨리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97년 대선에서 호남과 충청의 지역연합을 시도하여 집권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반DJ 감정은 지금 더 악화되고 있다.

이회창 후보 역시 이미지 조작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서민적 행보를 계속하며 반창 감정과 한판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그렇게 절실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반창 감정이 악화되어도 이회창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이 더욱 더 늘어 이미 70%를 넘어섰다. 반창 감정으로 3자 대결이 되든 반창 연대를 명분으로 양자 대결이 되든 이회창 후보로서는 별로 손해볼 게 없어 보인다. 반 DJ 감정과 반창 감정의 차이? 바로 영남의 유권자수가 호남의 유권자수보다 3배 이상 많은데 그 비밀이 있는게 아닐까? 반창이 한데 모여봐야 영남의 유권자만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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