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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보는 10.26, 그리고 김재규 평가
[독자논단] 유신망령이 지배하는 대한민국, 그는 왜 ‘유신의 심장’ 쏘았나
 
각골명심   기사입력  2005/10/26 [14:30]
세계적 역사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E.H Carr)는 말한다.

“사실은 스스로 말하는 게 아니라 역사가가 말을 걸 때만 말한다....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1980년 5월 23일, 광주에서는 독재자 박정희의 또 다른 ‘사생아’들인 소위 신군부가 12.12 쿠데타 후 ’비상계엄전국확대조치’를 발표하고 민주 인사들을 체포 투옥하기 시작하면서 공수부대의 과잉진압에 반발하여 자발적으로 일어난 광주시민들의 역사적 ‘피의 민주항쟁’이 계엄군들의 총칼 앞에서 무참히 살육되고 있었다.

같은 날, 유신독재 18년 그 길고 긴 암흑의 명줄을 단숨에 끊어 놓았던 유신시대 마지막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사형집행 하루를 남겨놓고 마지막 ‘옥중유언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남길 말을 남기고 갈 수 있는 최후의 날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내 소회에 있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제4심은 바로 하늘이 심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변호사도 필요 없고 판사도 필요 없어요…..그런데 내가 여기서 명확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은 하늘의 심판인 제4심에서 나는 이미 이겼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목격했던 민주혁명은 완전히 성공을 했다, 그렇게 해서 자유민주주의가 이 나라에 회복이 되고 그것이 보장되었다는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나의 죽음, 나의 희생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동시에 자유민주주의가 절대 필요하고 자유민주주의는 절대 회복되어야 하겠구나 하는 것을 전체 국민이 아주 확실히 깨닫게 되고 또 그것을 확실히 자기 몸에 다가, 목에, 자기 가슴에다가 못박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될 것입니다…. ”

그러나 과연 이러한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투철한 신념과 자기 희생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가? 아니다. 아직도 ‘유신의 망령’은 서슬 퍼렇게 살아서 끊임없는 반목과 대립을 부추기고 우리 사회의 ‘메인-스트림’을 자부하며, 단순히 이러한 ‘역사에 말을 거는 행위’ 조차 ‘빨갱이’로 몰아 부치며 온갖 자기 기만을 떨고 있다.

 
또한 그의 신념대로 지금 이 나라에 자유민주주의는 회복되고 보장되었지만 그에 대한 일반적 평가는 그의 변호인 이었던 안동일 변호사의 말대로 '배은망덕한 패륜아' 혹은 '대역죄인'으로 비하되었다. 심지어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하여 그의 ‘의거’로 인해서 민주화의 영웅이 되어 온갖 부귀영화를 독식했던 정치인들 조차도 그에 대한 평가에서는 인색하기만 하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서 생각한다 할지라도 그가 그때 ‘유신의 심장’을 쏘았으며 그로 인해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 발짝 성큼 내디딜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단초’가 되었다는 명백한 사실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민중의 힘으로 박정희 정권을 몰아낼 수 있었다던지 혹은 그의 행위로 인해 신군부가 등장하여 군사정권을 연장하게 되었다는, 지극히 역사적 가정에 기초한 우리 안의 편견은 단지 자기합리화와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김재규는 그의 마지막 유언서에서 그가 ‘집권욕’ 때문에 10.26을 저질렀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나는 10.26 혁명을 사실은 1973년 10월, 즉 10월유신이 반포되고 헌법이 반포된 직후에 그 헌법을 보고 그때부터 안되겠다, 이 유신체제는 독재체제인데 이것을 깨야 되겠다고 이미 발상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이후에 나는 네차례에 걸쳐서 여러 번 이 혁명을 구상했었고, 또 이런 물리적인 혁명에 의한 방법이 아닌, 그야말로 박대통령 스스로가 이를 시정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기위해 수백번 건의를 했습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러나 그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내가 백번을 죽어가도, 내가 집권을 하기위해 대통령을 희생시키고 혁명을 했다는 것은, 내가 하늘에 맹세하고 말하건대, 그러한 일이 없습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라는 E.H Carr의 말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며 이제야말로 우리가 자기 성찰을 담아 진실로 사실에 귀 기울이고 역사와 진지하게 대화해야 할 순간임을 강조하며 여기서 마친다. / 독자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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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10/26 [14:3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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