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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7.11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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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반론에 답한다
논쟁의 생명은 '진실성'이다
 
강준만
진중권에겐 진실성이 없다

『월간 인물과 사상』2002년 6월호에 쓴 나의 <서울시장 선거를 어떻게 볼 것인가?: 진중권의 질문에 답한다>는 글에 대해 진중권이 5월 20일 『오마이뉴스』에 반론을 주었다. 반론에 감사드린다. 독자들께서 이 글을 읽을 때엔 서울시장 선거는 이미 끝이 나 있겠지만, 나는 6월 초의 현재 시점으로 이야기를 하는 걸 이해하여 주시기 바란다. 실감나게 글을 쓰기 위해서다.1)

진중권의 반론에 대한 나의 총평은 "진중권에겐 진실성이 없다"이다. 물론 나는 진중권이 자신의 삶에선 진실한 인간일 거라고 믿는다. 내가 말하는 것은 논쟁에서의 진실성이다. 진중권의 논쟁에서의 진실성 결여는 그의 인간성이 나빠서라기보다는 그의 세계관과 논쟁관의 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과도한 자기 확신과 승부욕도 그의 진실성을 약화시키는 또 다른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진중권은 나의 이런 주장에 대해 펄펄 뛸 것이다. 그는 '이것은 논쟁이 아니다'고 주장할 것이다. '반칙'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해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 진중권의 논쟁관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것이니까 자신의 '게임의 룰'을 내게 강요하지 말기를 바란다.

진중권은 나와의 논쟁에서 소수의 대변자를 자임하지만, 그런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 뿐 그는 진짜 소수에 대해선 모욕을 서슴지 않는다. 진중권은 나와의 논쟁에서 이상을 강조하지만, 그건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 뿐 그는 진짜 이상주의자에 대해선 모욕을 서슴지 않는다. 진중권이 그간 한총련과 사회당에 대해 어떤 모욕을 가해 왔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내 말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반면 나는 내가 부당한 비판을 받지 않는 한 내가 먼저 나서서 소수와 이상주의자를 비판하지 않는 건 물론이거니와 그들의 생각을 존중한다. 마찬가지로 내 생각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바로 진중권과 나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주된 논점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삶들이 진중권과 나 사이의 논쟁을 '소수 대 다수' 및 '이상 대 현실'의 구도로 보고 있다. 이건 크게 잘못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경우가 어디에 있느냐고 흥분할 일은 아니다.

내가 여기서 하자고 하는 말은 진중권의 그러한 모순 및 기만적 수법은 진중권식 논쟁법으론 간파해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나는 그가 원하는 '게임의 룰'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나는 이 글을 통해 진중권의 모순과 기만적 수법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겠다는 건 아니다. 앞으로 그와 싸울 시간은 많다. 나는 이 글에선 주로 그의 반론에 대해서만 답하고 다른 기회들을 이용해 진중권의 참 모습을 차분하게 밝혀 나가도록 하겠다.


'인간에 대한 예의' 없는 진보는 가짜다


진중권은 논쟁을 게임으로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진중권식으로 할 수 있는 논쟁도 있겠지만, 지금 이 논쟁은 그런 식으론 해선 안 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인간이 모든 진실성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화를 내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화를 내면 지는 거다' 라는 식의 게임의 룰 자체가 잘못됐다고 나는 보는 것이다. 구경꾼들이 어떻게 보느냐 하는 건 두 번째 문제다.

진중권은 자신이 내게 처음에 준 글이 "이문옥의 출마라는 계기를 맞아 강준만이 늘 강조해왔던 그 공정성이 실은 이중 잣대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는지 시험해보는 것, 그것이 내 글의 목적이며 논점"이었다고 주장한다. 이 치열한 선거의 계절에, 그것도 『오마이뉴스』에 올린 글에서, '이문옥'이 아니라 '강준만'을 주된 화두로 삼았다니, 그게 말이 되나? 강준만을 이용해 이문옥 선거운동을 하는 게 뭐가 나쁘냐고 향변하는 게 옳지 않을까?

나는 나의 정치적 주장보다는 진중권의 정치적 주장에 더 동의하는 사람일지라도 진중권이 강준만 검증의 방식을 이용해 이문옥 선거운동을 하는 게 진중권이 쓴 글의 목적이었다는 데에 흔쾌히 동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진중권의 이런 점이 진실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진중권이 진정을 나를 검증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면, 자신이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 이문옥의 사이버 대변인을 맡은 이상 서울시장 선거나 끝난 후 다른 기회에 차분하게 문제 제기를 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아니 서울시장 선거 기간 중에 문제 제기를 하더라도 그건 노골적인 이문옥 선거운동의 방식을 취하지 않는 쪽으로 좀더 성의 있게 이루어졌어야 옳았다.

내가 나의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진중권을 그런 식으로 이용한다는 건 나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하는 건 그간 나와 다른 면에선 뜨거운 연대를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진중권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중권에겐 그런 예의가 없다. 그가 자주 강조해온 시민사회의 상식이 없는 것이다.

나는 『노무현과 자존심』에서 진중권이 정치판에 뛰어든 어느 서울대 서클선배와는 정치 이념이 달라 후원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른 선배들로부터 '모진 놈'으로 찍히게 되었다고 토로한 것에 대해 "서울대 출신 가운데 진중권 같은 사람이 조금만 더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 나는 진중권의 그런 엄격한 공사(公私) 구분 의식에 지지와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진중권에겐 브레이크가 없다. 도무지 어디서 멈춰야 할지를 모른다. 그는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예의마저 '공사 구분 의식'으로 이해하는 참으로 별난 의식의 소유자다. 어디 길 가는 사람 붙들고 물어 보자. 내가 말하는 예의 또는 시민사회의 상식이 공사 구분과는 전혀 무관한 것인지 아닌지. 우리는 이념과 도덕을 말하기 이전에 '인간에 대한 예의'만큼은 지켜야 한다. 그런 최소한의 인간적 신뢰 없이 떠드는 진보를 나는 믿지 않는다. 가짜라고 생각한다.


진중권의 디지털식 사고 체계

나는 진중권이 내게 처음에 준 글에 대해선 불만이 없다.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처음엔 다소 불쾌하게 생각했지만 나중엔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런 기회를 이용해 생산적인 논쟁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반론은 내가 기대했던 게 아니었다. 나는 진중권의 질문에 매우 성실하게 답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중권에겐 처음부터 성실성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곧 어떤 주제들에 관한 한 진중권과는 소통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는 쪽으로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게 되었다.

진중권은 지금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가 괜한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 진중권은 언어와 논쟁을 과학, 아니 수학으로 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디지털식이다. 0 아니면 1이다. 그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 다지털식이 아니라 아날로그식으로 이루어진 것에 대해 짜증을 냈다. 내가 자신의 논점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언어를 수학으로 보는 진중권의 논쟁술은 수많은 삶들을 매료시켰다. 그의 그런 논쟁술은 『조선일보』와 그 지지자들과의 싸움에서 단연 빛났다는 걸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그런데 문제는 그가 그 논쟁술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누구와의 싸움이건 『조선일보』를 상대하는 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나는 진중권이 퍼뜨리는 진중권식 논쟁 문화가 『조선일보』와 싸울 때엔 크게 유효했을망정 많은 면에서 상호 연대해야 할 사람들 사이에서 큰 폐해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식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게 아니다. 꼭 아날로그식이 필요한 영역도 있다. 우리의 삶에 딜레마 상황이 얼마나 많은가. 『조선일보』 문제와 달리,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저렇게 볼 수도 있는 이들이 숱하게 많다. 진중권이 그런 일에서조차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디지털식 선택을 하는 그의 신성한 자유다. 그러나 자신의 그런 자유를 앞세워 그런 일을 연속선상의 문제로 이해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을 조롱하거나 욕하는 건 최소한의 시민사회의 상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해선 안 될 일이다.

진중권은 자신이 필요할 대엔 '맥락'을 강조하지만, 그는 대체적으로 맥락에 둔감하다. 수학에서 맥락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는 수학적 텍스트주의자다. 진중권이 나의 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자기 방식대로 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건 나의 책임이 아니다. 시민사회의 상식을 어긴 것은 진중권이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중권이 맥락에 둔감하다는 건 자신이 부메랑을 던졌다는 걸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서도 잘 드러난다. 나는 진중권이 이문옥과 관련된 '시민사회의 상식'을 역설하면서 나를 추궁하는 것에 대해 민주주의의 기본이라 할 '정당 정치' 라고 하는 또 다른 '시민사회의 상식'을 제시했다. 진중권이 강조한 '상식'과 내가 제시한 '상식'은 때로 상충되기도 하는데, 나는 사안에 따라 질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아날로그식 답을 제시했다. 그러나 진중권은 나의 답이 디지털식이 아니기 때문에 논점을 벗어난 답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진중권의 단순함이 부럽긴 하다. 사안을 좁고 작게만 보려는 그의 집중력도 부럽다. 그러나 진중권의 수학을 연장하면 이문옥이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더라도 이문옥을 지지하는 것이 '시민사회의 상식' 이라는 답으로까지 나아가게 된다. 극우라고 해서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지 않는 게 아니잖은가. 아니 파시스트 정당의 후보라도 무방할 것이다. 파시스트는 부정부패 장려하나? 진중권이 문제삼은 "과연 이게 '좌파'의 언어란 말인가?" 라는 나의 발언은 그렇게 이해하면 될 것이다. 내 말은 자기 발목 잡을 일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맥락을 따질 걸 따져라

진중권은 "운동권을 김대중의 밥상 위에 갖다 바친 그 개새끼들"이라든가 "'대동단결' 어쩌구 하며 운동권을 온통 말아 먹고, 그렇게 말아 먹은 진보 역량을 기껏 김대중이한테 갖다 바친 민족 프티 부르조아들" 운운하는 자신의 독설을 내가 인용한 것이 '꽁수'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 말을 하게 된 '맥락'을 강조한다. 나는 여기서도 전혀 진실하지 못한 진중권의 모습을 본다. 차라리 '그땐 상대방이 너무 어이없는 말을 하기에 화가 나서 그랬다' 고 변명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나를 탓한다. 그것도 자신이 조작해 놓은 디지털식으로 말이다. 내가 맥락을 알고서도 그렇게 인용했다면 그건 '고의로 맥락을 은폐'한 나쁜 사람이 되고, 모르게 그렇게 했다면 아주 무책임하고 한심한 사람이 된다. 진중권 만세!

그러나 좋아하지 마시라. 나는 맥락을 충분히 알고 인용한 것이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맥락을 따질 발언이 있고 맥락이 필요 없는 발언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사회'라는 종류의 발언은 맥락을 따져서 살펴보면 단지 '노동자의 권리가 존중되는 사회' 라는 종류의 발언은 맥락을 살펴보면 단지 '노동자의 권리가 존중되는 사회'의 의미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 발언을 물로 늘어지면서 색깔 공세를 취하는 건 온당치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운동권을 김대중의 밥상 위에 갖다 바친 그 개새끼들"이라든가 "'대동단결' 어쩌구 하며 운동권을 온통 말아 먹고, 그렇게 말아 먹은 진보 역량을 기껏 김대중이한테 갖다 바친 민족 프티 부르조아들" 운운하는 발언은 맥락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 발언인 것이다. 상대방이 쓰레기 같은 수준의 말을 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욕설을 퍼부으면 되는 것 아닌가? 왜 거기에 김대중을 끌어다 대나? 그러니까 내 말은 진중권의 머릿속에 평소 김대중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운동권을 김대중의 밥상 위에 갖다 바친 그 개새끼들"에 대한 적개심이 없는데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거다.

진중권이 논쟁을 하는 상대편에 대해 그 어떤 욕설을 해도 좋다. 그러나 진중권이 상대편에게 "애비없는 놈이라 역사 다르구나"라거나 "대학도 못나온 새끼가 까불고 있어"라고 말했다면, 이건 맥락을 따질 필요조차 없는 망언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홧김에 말을 내뱉어도 평소 그런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영예에 대해 책임을 져라

진중권은 이어 "나는 진중권의 그런 독특한 성향으로 보아 진중권이 정형근이나 김용갑보다는 김민석을 더 혐오하거나 증오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데, 과연 내가 잘못 생각한 걸까?"라는 나의 발언을 문제삼는다. 진중권은 이 발언을 "인식공격성 결론'이라고 주장하는데, 나로선 이해하기 어렵다.

민주노동당 기획위원장 이해삼은 민주노동당 정책이론지 『이론과 실천』 2002년 5월호에 쓴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노무현의 긍정성에 비추어 보더라도 구시대와 기회주의적으로 타협해온 동교동계 김민석이 노풍에 편승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분위기이다. 그가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라는 것이 이명박보다도 더 불쾌하다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다."

진중권은 그런 '대부분의 민주노동당 당원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란 말인가? 믿기 어려운 말씀이다.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진중권은 노무현 지지자들의 판단력마저도 '닭대가리', '꼴통' 운운하면서 욕하는 사람인데, 내 발언이 무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인신공격' 운운하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진중권이 민주노동당 기관지인 『진보정치』 5월 13일자에 쓴 글에서 다음과 같은 욕설을 보고 하는 말이다.

"일방적으로 노무현의 이상한 행보를 정당화하는 데에 바빴던 닭대가리들은 일제히 반성을 할 때가 됐다. 아마추어 정치 논리에 입각한 잔머리 대신에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정치 문화가 이 땅에 자리잡기를 기원하며, 노무현의 행태를 일방적으로 두둔하고 정당화하기 바빴던 일부 꼴통들의 반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진중권의 독특한 풍자와 야유를 이해하지만, '닭대가리', '꼴통' 운운하는 험한 말은 좀 자제하는 게 어떨까 한다. 진중권의 글이 민주노동당 기관지에 실렸다는 것도 이해하지만, 민주노동당원들이 진중권의 선동에 영향받아 노무현 지지자들에게 '닭대가리', '꼴통' 운운하는 욕을 해댐으로써 민주노동당을 '한나라당의 2중대'로 부르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염두에 두는 게 어떨까 한다.

진중권은 『진보정치』5월 6일자에 쓴 글에서도 "일부 저급한 민주당 꼴통들" 운운했는데, 익명의 네티즌과의 논쟁 내용을 자신의 근거로 삼는 글쓰기 방식을 재고하는 게 어떨까 한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함부로 내뱉는 익명의 네티즌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그걸 자신의 비판의 논거로 삼는 건 편집인 김대중을 비롯한 『조선일보』사람들이 즐겨 쓰는 수법 아닌가. 진중권마저 그래서야 쓰겠는가.

진중권은 "활자매체도 아니고 온갖 욕설과 비방과 마타도어가 난무하는 인터넷 논전 중에 흘러 나온 말을 끄집어내 상대의 '성향'을 보여 주는 증거로 써먹는 것은 정당한 방식이 아니다" 고 주장하면서 나를 꾸짖는다. 나는 이 발언 또한 전혀 진실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진중권은 익명의 네티즌이 아니다. 자신의 발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유명 논객이다. 많은 사람들이 진중권을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것은 진중권의 초인적인 인터넷 논쟁술 때문이다. 진중권은 자신의 그런 탁월한 능력에 대한 나의 감탄까지 소개하지 않았는가. 나는 그런 능력이 없어 나의 '인터넷 콤플렉스'를 고백하고 그건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말까지 한 바 있다. 사람이 영예를 누리면 누리는 만큼 책임을 져야지 왜 그런 식으로 내빼려 드는가?

나의 '인터넷 콤플렉스'를 조롱하기까지 한 진중권이『조선일보』기자 이한우에 대한 나의 발언을 인용하고 자신이 날 도왔다는 걸 강조하면서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도 전혀 진실하지 못한 자세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령 강준만이 『조선일보』기자를 상대로 '스승의 등 뒤에 칼을 꽂은'이라는 소름끼치는 은유를 사용했을 때, 진중권은 거기서 강준만의 '독특한 성향'을 추론하지 않았다. 외려 강준만의 편에 서서 '나를 고소하라'고 외친 것으로 기억한다.

인용하려면 똑바로 해라. '스승'이 아니라 '자신이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던, 모교의 존경받는 교수'다. 이한우는 재판에서 '모교'라는 표현을 물로 늘어졌지만, 내 뜻은 이한우 자신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데다 자신이 다닌 대학의 유명 교수였으니 최장집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 것 아니냐는 뜻이었다. 잘 알고서도 그런 못된 짓을 저질렀으니 나쁜 인간 아니냐는 게 나의 논점이었던 것이다. 진중권은 지금 누굴 도우려도 하는 건가? 스승이건 누구건 비판할 게 있으면 비판해야지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나는 진중권이 그 발언에서 나의 '독특한 성향'을 추론해주기를 바란다. '야만적인 빨갱이 사냥식 인권 유린에 분노하는 정의로운 다혈질' 정도가 되지 않을까? 설마 아니 '칼잡이 기질'을 추론하진 않으리라 믿는다. 나는 진중권의 '개새끼'라는 발언에서 '개 잡는 사람 기질'을 추론한 적은 없으니 내 말에 동의해 주리라 믿는다.

"운동권을 김대중 밥상 위에 갖다 바친 그 개새끼들" 이라는 발언에서 진중권이 김대중과 김대중 진영에 합류한 운동권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갖고 있다는 걸 추론하는 건 매우 정당한 일이다. 진중권이 반론을 제기하려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그냥 미워하는 정도라고 말한다든가 그래야지, 최장집 사건까지 다시 끄집어내면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온당한가? 그런 진실성 없는 말씀은 삼가야 하리라 믿는다.


'호남 차별 바이러스'에 침을 뱉는다

이문옥이 광주에서 낙선할 걸 '국민 사기극'으로 몰고 가려는 진중권의 시도에 대해 내가 그렇다면 '호남인은 국민 사기극의 주범인가?"라고 물은 것에 대해 진중권은 자신이 '호남 지역차별주의자 비슷한 처지가 되어 버렸다"면서 "앞으로 이런 식으로 호남인의 지역감정을 자극하여 덕을 보려는 정치적 거동은 삼갔으면 한다"고 말한다.2)

나는 여기서 내가 그간 진중권에 대해 간직해오던 신뢰의 한 축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는 걸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 진중권이 겨우 이러 수준의 사람이었단 말인가! 원래 그런 건가, 아니면 정략에 눈이 먼 건가? 그것도 아니면 '완전무결 진중권' 신화 창조를 위한 것인가?

'호남인의 지역감정을 자극하여 덕을 보려는 정치적 거동?' 이게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과거 호남 몰표를 욕하던 호남 차별주의자와 지역감정 양비론자들의 즐겨 내뱉던 18번 구호가 바로 이것이다. 진보? 진중권이 진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단언한다. 이 땅에서 호남인들의 한(恨)을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은 절대 진보일 수 있다. 진보의 개념을 서양에서 배워 온 '기지촌 진보'라면 모를까.(*옮긴이 한마디: 일단 원문대로 옮긴다마는 문맥상 여기서 '진보일 수 있다'는 -->'진부일 수 없다'로 바뀌어야 할 듯 싶다.)

내 물음에 대한 정답은 '아니다'일 것이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던데, 그거 하나 인정하는 게 무어 그리 큰일이란 말인가? 나는 진중권의 조악한 1차원적 논리 구조를 지적하고자 한 것이지 진중권이 호남 차별주의자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었다. 나는 진중권에게 "앞으로 이런 식으로 비호남인의 지역감정을 자극하여 덕을 보려는 정치적 거동은 삼갔으면 한다" 고 말할 뜻이 없다. 그건 전혀 진실되지 못한 자세니까 말이다.

진중권의 이러한 비극은 그의 선거와 정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는 "설사 총선이 대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하더라도 수백 석의 의석 중 괜찮은 후보에게 단 한 석도 양보할 수 없는가?" 라고 붇는다. 진중권이 생각하는 '괜찮은 후보'의 기준이 과연 무엇일까? 그는 모든 유권자들이 다 자기 같은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는 모든 유권자들이 다 자기 같은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경실련 사무총장이었던 서경석의 말도 못 들어 봤나? 우리 같은 먹물들 사이에서 서경석 모르는 사람 누가 있는가? 그러나 서경석은 총선에 출마했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왜?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유권자들이 훨씬 더 많더라는 것이다. 제발 뭘 좀 알고 이야기해라.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진중권이 자기 정당화를 위해 내 주장을 왜곡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문옥의 대변인인 진중권에겐 이문옥이 보석처럼 빛나겠지만 호남당 소속이 아닌 '괜찮은 후보'는 하나 둘이 아니었다. 수십 명이었다. 예컨대, 이문옥과 똑같이 광주 동구에서 출마했다 낙선한 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장 황광우는 이문옥보다 훨씬 더 '괜찮은 후보'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국하고 광주 유권자들이 무소속 후보 이문옥에겐 22731표를 주어 2등으로 만든 반면 당시 민중당 후보 황광우에겐 겨우 1267표를 주어 5등으로 만든 것에 대해 진중권은 무어라고 말하려는가?

내 말은 '단 한 석'을 고르는 옥석 구분이 쉽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호남 유권자들은 투표를 임하기 전에 모두 모여 회의를 한 후에 표를 찍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면 좋겠다. 이른 바 '다원적 무지' 현상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수백 석의 의석 중 괜찮은 후보에게 단 한 석도 양보할 수 없는가?'라는 물음은 선거 메카니즘에 무지한 발언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런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인데, 그렇게 억지를 부리면 어떡하는가?

진중권의 억지엔 끝이 없다. 진중권은 "시민단체 후보(이문옥)에 대한 호남의 지역주의 역사 다수의 폭력"이라고 주장한다. 진중권은 호남 차별주의자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 세상을 자신의 단순한 디지털 논리로만 보는 사람이다. 그렇게 이해하면 된다.

물론 그건 진중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진중권이 강조하는 시민사회의 상식을 믿는 다른 많은 사람들도 호남 차별 문제는 시민사회의 상식만으론 감지해내기 어려운, 역사와 구조의 문제가 있다. 진중권은 아직 그걸 이해하는 수준에까지 이르진 못했다. 아는 그는 어쩌면 영원히 그걸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의 가슴은 너무 메말랐다.

진중권은 자신이 『조선일보』독자마당에서 "전라도를 차별하는 경상도 패권주의자들에게 퍼부은 욕설은 거의 예술의 경지에 도달한 것들"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곧 역사와 구조의 문제까지 꿰뚫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나는 "호남인의 지역감정을 자극하여 덕을 보려는 정치적 거동"이라는 진중권의 발언에 이르러 호남 차별에 관한 한 한국이 참 더러운 나라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진중권 같은 사람마저 그 수준일진대 과연 앞으로 누구에게 기대를 걸 수 있을까? 나는 진중권의 그 발언이 이문열의 '호남의 보수성'을 비판했다가 일부 호남인들로부터 호된 욕을 얻어 먹고 있는 상황에서 진중권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니 그 망할 놈의 '호남 차별 바이러스'를 향해서 확 침을 뱉고 싶어진다.


굳게 닫혀 있는 진중권의 사고 체계

진중권은 '정당 정치' 라고 하는 시민사회의 상식을 조롱한다. 기존의 혐오주의에 편승하겠다는 것이겠지만, 그래서야 쓰겠는가. 그런데, 어떻게 조롱했나? 『노무현과 국민 사기극』을 주로 민주당 지지자들을 위해 썼다는 나의 발언에 대해 그렇다면 책 제목을 『노무현과 민주당 사기극』으로 붙였어야 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그게 바로 디지털식 사고라는 거다. '주로' 라는 말에 주목하시라. 덤으로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무당파들까지 넘어오면 금상첨화지, 그 말에 왜 그렇게 난리를 치나? 난 민주노동당원들은 행여 그 책을 읽지 말라고 경고했다는 걸 밝혀둔다.

외람된 발언일 것이나, 나는 열려 있다. 나는 '정당 정치' 라는 상식과 진중권이 이문옥 예찬을 위해 역설하는 상식 사이의 상호 소통을 인정하면서, 사안별 질적 분석을 주장했다. 반면 진중권의 잣대는 오직 하나이며 굳게 닫혀 있다. 진중권은 내가 '국민 사기극의 주범'으로 주로 '민주당 지지자들'을 지목했기 때문에 그들이 강준만에게 돌을 던져야 할까라고 묻는다. 별 걱정 다한다. '사기'보다 더 나쁜 범죄가 많다는 것만 알아두시면 좋겠다.

아직도 진중권의 논리 구조가 무엇인지 명쾌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이 있을까봐 쉬운 이유를 들어 설명 드려 보겠다. 진중권도 나의 '불특정 다수' 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으니 잘 들어 주시기 바란다.

나는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인들의 '자동차 중독증'을 호되게 비판하는 글을 자주 쓴다. 나는 그 글 읽고 기본 나빴다는 사람 못 봤다. 오히려 내게 감사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물론 '자동차 중독증'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 글을 읽고 느끼는 바가 있어 스스로 알아서 지나친 이용을 자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진중권은 내 글에 감명을 받은 탓인지 내 주장을 직접 운동으로 연결시켜 보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무차별적으로 자동차 운전자만 보면 호통을 쳐대고 심지어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를 내고 다니는 방법까지 쓰는 게 아닌가. 그는 그리고선 나를 찾아와 자신의 행위를 지지하는 글을 써 달라고 요구한다. 나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진중권이 나를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이라고 어찌나 욕을 해대는지 정말 죽을 맛이다.


진중권의 독선과 오만

"나는 민주노동당이 대선과 서울시장 선거에 적극 참여해 민주노동당의 기상을 크게 떨쳐보는 것도 좋겠지만, 비교적 작은 선거에 역량을 집중시켜 확실한 승리를 거둠으로써 서서히 발판을 구축해 나가는 방식도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진중권은 나의 이 발언을 문제삼으면서 "결국 이문옥은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지 말라는 얘기다"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진중권이 닫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은 민주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에 대해 온갖 훈계는 말할 것도 없고 욕설까지 해대면서 민주당 지지자가 민주노동당에 무어라고 선의의 한 마디를 하면 악착같이 나쁜 쪽으로만 해석하는 것, 이거 아주 고약하다. 아주 야비한 독선과 오만이다.

"서울시장 선거의 의미와 여느 중소도시 시장 선거의 의미는 크게 다르다. 물론 대선에 미치는 영향도 크게 다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진중권의 생각이 아니다. 중요한 건 민주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의 생각일 것이다. 그들의 생각을 도덕적 잣대로 비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진중권은 나의 이 발언도 문제삼으면서 나의 "글쓰기에 빨간 불이 들어왔음을 의미한다" 고 말한다. 진중권이 무언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빨간 불'은 이미 7년 전에 들어왔을 것이다. 『김대중 죽이기』에 '빨간 불' 엄청나게 많다. 아마도 불야성(不夜城)을 이루고 있을 게다. 진중권의 논리에 따르자면, 김대중도 대통령에 떨어졌어야 '도덕성의 승리'라는 이야긴데, 그런 도덕은 진중권이나 실컷 가져라.


진중권의 선거운동 방식은 최악(最惡)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이런 가정을 해보자. 민주노동당이 국회의 의석을 몇 개 갖고 있고 서울시내 구청장 자리도 몇 개 차지하고 있다면 어떨까? 물론 나는 그렇지 못한 민주노동당의 현실에 대해 민주노동당에게만 책임을 묻는 건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민주노동당의 그런 현실에 근거하여 민주노동당의 역량을 의심한 나머지 민주노동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매우 낮게 평가해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유권자들을 도덕적으로 탓하는 것도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진중권은 나의 이 발언을 문제삼으면서 "만약 이런 논리라면, 소수정당의 후보는 물론이고 나아가 아예 당의 소속이 없는 무소속 후보들은 영원히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과연 이게 시민사회의 상식에 부합되는가? 라고 개탄한다.

왜 그렇게 생각할까? 나는 '도덕적으로 탓하는 것이 온당치 않다'고 말했을 뿐이다. 낮은 자세로 호소해보라는 대안도 제시하지 않았던가? 진중권이 썩었다고 손가락질하는 보수 정치권의 정치인들을 보라. 그들은 선거에서 진보정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많은 조직과 돈을 활용하면서도 피와 땀과 눈물을 비친다. 심지어 후보의 아내가 목욕탕에 가 유권자들의 때까지 밀어 준다. 나는 그게 잘 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 잘못된 선거 문화를 어떻게 바꿔야 하겠느냐는 독선과 오만으론 안 된다는 것이 나의 뜻이다. 진중권의 선거운동 방식은 내가 보기엔 최악(最惡)이다.

진중권은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려 드는 건 바람하지 않다."는 내 말을 인용한 뒤, "강준만은 이제까지 분명히 도덕적 성토라는 코드에 따라 글을 써 왔"고 반박한다. 맞다. 동의한다. 그러나 진중권은 바로 그 앞에 붙은 내 말은 무시한다. 나는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그 말을 했는데도 말이다.

"'방법으로서의 현실성' 마저 뛰어 넘으려는 사람들의 이상주의는 칭찬받아 마땅할 것이나, 행여 그들이 그런 현실성을 고려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도덕적 잣대로 비판하거나 은연중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려 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왜 진중권은 나의 위와 같은 주장을 그대로 다 인용해놓고서도 '꼬리'만 잘라 비판에 임하는 건가? 진중권의 수학에선 그렇게 해도 되는 건가? 내 말은 누울 자리 보고 발 뻗자는 것이다. 수구기득권을 고수하겠다는 사람과 수구기득권을 깨기 위해 '방법으로서의 현실성'을 고려하겠다는 사람을 똑같이 취급하는 진중권의 자세야말로 진보정당을 죽이는 주범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진중권과 같은 지식인은 하나로 족하다

"지금 우리는 1차원적인 '도덕성 게임'만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현실성'에 대한 고민도 같이 해야 하는 2차 방정식을 풀고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나는 여기서도 진중권이 전혀 진실되지 못하다는 걸 발견하게 되는데, 진중권의 말을 들은 다음에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강준만에게 권고한다. 지식인은 1차 방정식을 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머리가 아픈 존재이다. 그 쉬운 1차 방정식의 해법을 내 놓아도, 워낙 '2차 방정식'이라 주장하는 또 다른 종류의 1차 방정식에 골몰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어느 것이 사회적 상식에 부합하는 것인지 얘기하면 된다. '2차 방정식'이라는 이름의 그 저급한 1차 방정식은 정당의 선거대책반에 맡겨 두자. 걱정하지 말라. 설사 강준만이 '당선 가능성을 보고 찍는 것은 국민 사기극' 이라고 해도 어차피 김민석 찍을 사람들은 지나치게 많다. 강준만이 김대중 하야하라고 한다고 어디 누가 하나 따라서 '김대중 하야하라'고 외치던가? 지식인은 자기 할 일만 하면 된다. 지식인이 특정정당의 선거 전략을 논리적으로 정당화까지 해 줄 필요는 없다. 지식인이 특정정당의 선거 전략을 논리적으로 정당화까지 해 줄 필요는 없다. 지식인은 윤리적인 기준만 세워 주면 된다. 설사 유권자들의 당선가능성이라는 1차 방정식의 마법에 홀려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투표를 하더라도, 적어도 박새 눈물만큼이나마 가책을 느끼게 해 주는 것, 그게 지식인이 할 일이다."

나는 '특정정당 선거대책반' 수준이고 진중권은 진정한 '지식인'인가? 이 게 지금 한국어인가? 아니 진중권은 실제로 이문옥의 선거대책반원이 아닌가. 행여 사회당 후보 원용수가 이문옥보다 더 많은 표를 얻을까봐 두려워 원용수에 대해 '닭짓' 운운하며 부당한 비방을 퍼부은 선거운동 돌격대원이 아니었느냐 이 말이다.

지금 내가 진중권의 개그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반응하는 건 아닌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하긴 나도 어떤 그림이 연상돼 자꾸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억제하기 어렵다. 다소 과정된 비유일망정,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므로 그 그림을 깊이 감상해보자.

한양대 교수 임지현은 '민족주의는 반역'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원칙적으로 그 주장에 동의한다. 궁극적으로 민족주의가 없는 그런 세계를 꿈꾸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세계가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임지현의 주장을 이상적 지침으로 삼아 우리 나라에서도 민족주의의 폐해를 경계하자는 수준에서 이해했고 그 수준에서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대의 진짜 지식인 진중권이 나타났다. 그는 '현실'을 빙자해 '이상'을 곧장 실천에 옮기지 않는 건 '정당 선거대책반'이나 할 일이라고 호통치면서 한국 사회에서 이뤄지는 모든 민족주의적 집회나 단체를 찾아다니며 그들 앞에서 "야, 이 반역자들아. 회개하라"고 외쳐댄다. 그는 월드컵 대회라는 계기를 맞아 '붉은 악마'를 찾아다니면서까지 그 욕을 해댄다.

그런데 진중권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별 호응이 없다. 힘의 열세를 느낀 진중권은 임지현을 이용하기로 결심하고 그에게 왜 자신의 운동에 참여하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글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임지현은 진중권이 강조하는 시민사회의 상식 수준에서 알아듣게 설명하는 답을 주었지만, 진중권은 막무가내다. 진중권은 "월드컵 대회라는 계기를 맞아 임지현이 늘 강조해 왔던 '민족주의 반역론'이 괜히 입에 바린 소리는 아니었는지 시험해보는 것, 그것이 내 글의 목적이며 논점"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진짜 지식인이며, 임지현은 '월드컵 이데올로그' 라고 욕해댄다. 아이고, 진중권과 같은 진짜 지식인은 진중권 하나로 족하겠다!

"나는 진중권에게 묻고 싶다. 지금의 민주노동당에 왕성한 내부 비판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또 민주노동당이 진중권 자신의 위와 같은 비판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가? 진정 '민주노동당의 발전과 승리를 위해 민주노동당에게 고언을 아끼지 않는 악역(惡役)'을 해 볼 생각은 없느냐고 물으니 나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부디 이 말은 '서울 시장 선거에서 손떼라'는 의미가 아니기를 빈다."

진중권은 내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일부로 비켜갔다. 진중권의 주장대로 민주노동당에 내부 비판은 왕성하게 살아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내용이다. 파벌 싸움용 내부 비판은 이미 과잉이다. 흔히들 농담조로 하는 말을 빌리자면, 민주노동당에는 10여 개의 정파가 있지 않은가. 내가 말하는 내부 비판은 그런 게 아니다. 내가 인용했던 진중권 자신의 말을 기억 못하는가? 다시 인용한다.

"가끔 몇몇 '좌파'들의 얘기를 들으며 그 논증 방식이 매우 '신학적'이라 느낀다. 사회주의라는 유토피아의 이상에서 직접 논거를 끄집어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편적 이상에서 연역을 하기에, 그들은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해 이미 준비된 대답을 갖고 있다. 물론 그 대답은 늘 동일하다. 그 대답은 현실이라는 질료의 저항과 싸운 흔적이 없이 너무나 매끈하다. 저항없는 표면을 운행하는 자기부상열차, 물론 그 열차는 결코 현실이라는 지면과 접촉할 일이 없다. 그런데 이러 태도로 과연 구체적인 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장기 게임에서 다른 정치 세력들에게 이길 수 있을까?"

진중권은 위와 같은 자신의 말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날아간다는 걸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딱한 일이다. 진중권의 이무옥을 위한 선거운동은 '사회주의라는 유토피아의 이상'에서 직접 논거를 끄집어내는 게 아니라 '1차원적 도덕주의'라는 이상에 근거하고 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 위와 같은 비판을 받기에 매우 적합하다.

진중권이 민주노동당에 많은 고언을 하고 있다는 걸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나는 『진보정치』 받아들면 제일 먼저 진중권의 글부터 읽을 만큼 '진중권 마니아'다. 그러니 그 글이 『진보정치』에 실렸다는 걸 굳이 밝힐 필요는 없었거니와 '황당'을 토로할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 문제는 진중권이 하는 비판의 내용이다. 물론 좋은 비판도 꽤 있었다. 그러나 그 '공'을 능가하는 게 진중권의 한총련과 전국연합에 대한 살벌한 적개심 표출이다. 그는 이젠 사회당에 대한 조롱마저 서슴지 않고 있다. 자신이 그런 형태가 민주노동당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진중권에겐 도무지 자기 성찰의 의지나 능력이 없다는 걸 확실하게 확인한 이상, 이제 나는 민주노동당이 진중권에게 고언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진중권은 자기의 편견으로 천하통일을 이루기 위해 민주노동당을 방패 삼아 쓸데없이 많은 적(適)을 만들어내면서 상대편이 약 올라 하는 걸 즐기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진중권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진중권이 민주노동당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건 곤란하다. 민주노동당은 진중권 개인 정당이 아니라 공당이기 때문에 나부터 진중권의 그런 이용에 반대한다는 걸 분명히 밝혀 둔다.


진중권의 '조직 혐오주의'

진중권은 나에게 '민주당 이데올로그' 라는 딱지를 선사한다. 내가 민주당과는 독립된 자세를 유지하면서 민주당의 개혁을 이끌고자 한다는 의미에서의 용어라면 나는 수긍할 수도 있다. 아니 나는 한나라당의 개혁도 원하므로 그 뜻이라면 '한나라당 이데올로그' 라는 딱지도 가능할 게다. 그러나 진중권이 말하는 건 그런 뜻이 아니다. 선거만 하면 미쳐 돌아가는 보수 정치인들이 즐겨 써먹는 수법의 수준에서 한 말이다.

진중권은 내가 '과잉 정치 의식'을 갖고 있다는 말도 여러 번 했는데, 나는 이게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다. 아니 특정정당 당원으로서 그 정당 부총재의 선거운동 대변인을 맡은 진중권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전주에서 살면서 서울 나들이조차 거의 하지 않고 사는 나 같은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이게 말이 되나?

그러나 열낼 일은 아니다. 바로 여기서 진중권의 지독한 독선과 오만이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진중권이 여전히 대학 1학년생의 기분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말해 준다. 나는 지금 감히 그게 문제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정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면서 특정정당 후보의 대변인 노릇을 하려면, "산수를 배울 나이가 있고 미적분을 배울 나이가 있는 법"이라는 레닌의 고언3)을 상기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뿐이다.

민주노동당은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인가? 아니다. 진중권식 정의에 따르자면, 도덕성 운동을 하는 보이스카우트 수준의 결사체다. 생각해보라. 진중권은 사이버 대변인이건 무슨 대변인이건 이문옥의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정치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감히 나에 대해 '민주당 이데올로그' 니 '과잉 정치 의식' 이니 하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바로 이런 멘탈리티가 진보정당 대중화를 가로막는 암적 요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석을 그 수준에서 끝내면 크게 실수하는 거다. 일단 시민사회의 상식 수준에선 그렇게 보는 게 타다하겠지만, 진중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문제는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진중권에게 있다. 진중권의 독특한 '조직 혐오주의'를 이해해야 한다. 나는 그의 '조직 혐오주의'를 존중하지만, 그걸 나에 대한 공격의 근거로 써먹는 것엔 단호히 반대한다.

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장 황광우가 『사회비평』2002년 봄호 좌담회에서 잘 표현했듯이, 진중권은 '천하의 자유자의자'다. 어느 정도인가? 『월간 북 매거진 텍스트』2002년 5월호에서 이루어진 다음과 같은 인터뷰 내용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기자 조은영)당신은 조직에 얽매이는 걸 엄청나게 싫어하는 부류에 속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중략)말하자면, 당원의 면모가 당신을 통해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진중권)우리 집안 가풍이 절대 누구에게 어떤 충고나 조언도 하지 않는 거다. '절대적인 단독자인 나에게 감히?' 이런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중략)사실 정서적으로는 우리 당보다는 '노사모' 사람들이랑 더 잘 맞다 싶기도 하다.......내가 노무현을 지지하니까 당에서는 '민주당원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원칙만 보고 대의를 위해서 민노당 선전 한 마디 안 하고 싸워줬던 거다. 그런데 또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지장을 주니까 이문옥은 서울시장 후보로 안 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 원칙을 들이밀 수 있다. 원칙을 위해서 노무현을 선택한 것이었는데, 노무현을 위해서 원칙을 바꿔야 하겠는가? 어떤 면에서 당의 논리나 정치 논리 같은 거 정말 짜증 난다.

그러다 진중권은 그런 사람이다. 나는 그이 '짜증'을 존중한다. 나는 진중권의 그런 단순함과 순진함이 그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진중권이 자신의 그런 성향과 잣대로 이 세상 모든 걸 다 재단하려는 것만큼은 자제해주면 좋겠다는 것뿐이다.

지구가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생태주의자들의 주장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의 뜻대로 국가 운영을 개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건 우리가 늘 유념해야 할 지표이지 그대로 살지 않는다고 매로 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진중권은 지금 자신이 깊이 개입하지 않는 게 좋을 일에 뛰어들었다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진중권의 '약자 떼쓰기' 수법

"그리고 이문옥의 서울시장 당선 가능성과 민주노동당의 '평소 실력'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시는가?"

나의 이 질문에 대해 진중권은 "소수자일 때는 남에게 '왜 지역차별에 관심을 갖지 않냐' 고 했던 그 사람들이 정작 자기가 다수자가 되었을 때에는 오랫동안 이념적 차별을 받아온 소수자에게 이런 무례한 어법을 구사하는 것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고 말한다. 가령 자신이 "울산에서 민주당이 후보도 못 내는 것은 민주당의 '평소 실력'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시는가?"라고 묻는다면, 내 기분은 어떻겠느냐고 묻는다.

내 기분?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울산에서 민주당이 후보도 못 내는 것은 민주당의 '평소 실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무엇이 '무례한 어법' 이고 무엇이 '슬픈 일'이라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여기에선 진중권이 자신이 완강하게 고수해 온 디지털식 사고 체계를 버리고 '소수자' 운운하면서 전혀 다른 자세를 취하는 건 반가운 일이긴 하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건 그리 아름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학적 분석에 임할 땐 과학적으로 말해야지, 왜 눈물 짜게 만들려는 방법을 쓰는가? 그러나 진중권은 그 정도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급기야 '읍소작전'으로 나아간다. 진중권의 다음과 같은 웅변을 들어 보시라.

"진보정당은 해방 후 50년 동안 엄청난 탄압을 받았다. 조봉암 같은 이는 사형선고를 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후로도 한국에서 진보는 오로지 운동으로만 존재할 수 있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정권하에서도 국가보안법은 퍼렇게 살아 있고, 노동조합은 탄압 받고 있다. 우리 역사 속에서 한국의 진보는 그야말로 '대학살'을 당해 왔다. 대학살을 피해 살아 남아 모진 탄압과 억압과 방해를 뚫고 이만큼 성장해 온 진보정당을 향해 기껏 '평소 실력' 운운하며 비아냥거리는 강준만의 모습에서 나는 차별받는 소수의 대변자에서 갑자기 차별하는 다수의 대변자로 돌변한, 또 하나의 거만한 기득권자를 본다."

내가 왜 진중권에겐 진실성이 없다고 말하는 줄 아는가? 나는 그간 진보정당이 당하는 부당한 차별을 비판하는 글을 써 왔다. 그들의 권익 옹호를 위해 애써 왔다. 진중권은 무시하고 넘어갔지만, 나는 진중권에게 준 답에서도 "민주노동당이 누려 마땅한 '제 몫'을 찾는 걸 방해하는 제도적 장벽들을 민주당이 앞장 서서 적극적으로 혁파하지 않을 경우 민주당에게 혹독한 공격을 퍼붓겠다는 걸 약속"했다. 내가 일부 민주노동당 사람들과 싸웠던 것은 그들의 상호 '선의의 경쟁'을 하겠다는 자세를 취하지 않고 나를 독선과 오만으로 깔아 뭉개려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점에 대해 항변을 한 것이다.

그런데 진중권은 그러한 항변에 대해 "강준만의 모습에서 나는 차별받는 소수의 대변자에서 갑자기 차별하는 다수의 대변자로 돌변한, 또 하나의 거만한 기득권자를 본다" 고 말하니 내가 어찌 진중권이라는 인간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억지를 쓰더라도 최소한의 사실 확인은 해가면서 쓰자. '돌변'이 아니다. 예전부터 그랬다. 내게 있어서 차별받은 소수의 대변자 노릇을 하는 것과 독선과 오만으로 똘똘 뭉쳐 부당한 공격을 감행하면서 소수의 대변자 노릇을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형태를 비판하는 것은 아무런 모순이 안 된다.

어디 민주노동당의 진짜 '평소 실력'을 말해 볼까? 진중권에게 묻겠다. 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 교육부장 장석준이 민준노동당 정책이론지 『이론과 실천』2001년 11월호에 쓴 <대중운동 방식의 광역단체장 선거로 위기를 돌파하자> 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내부 비판을 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진중권보다는 장석준이야말로 진실로 민주노동당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나의 생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울러 그것도 묻고 싶다.

"노동자 당원이 아직도 민주노총 조합원의 1%도 안 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예이다. 그러나, 이것뿐만이 아니다. 이번 재·보선 기간 중에 확인된 것은 더 안 좋은 사실들이다. 우선, 이미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결합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조차 그 참여도가 한 달에 당비 1만 원 내는 것 이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당적 정치 투쟁이라고 했던 이번 재·보선에서 양 선본에 결합한 인원은 하루 40명 선이었다. 4천 당원을 자랑하는 서울시지부뿐만 아니라 경기도지부와 인천시지부까지 뛰어든 게 이 정도였다.......한 마디로 당은 노동자 당원들에게 '진지한' 자기희생과 '신명나는' 참여의 장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광범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당에 대해 소극적인 수준을 떠나 아예 무관심, 아니 더 나아가 소원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자, 이런 문제가 오직 김대중 정권의 악랄한 탄압 때문인가? 민주노동당이 아닌 제3자가 민주노동당의 '평소 실력'을 지적하면 그건 불경한 짓인가? 그렇다면, 내가 묻노니, 민주노동당은 합법적인 공당인가 아니면 비밀결사체인가?

나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진중권이 '약자 떼쓰기' 수법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경험을 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어떤 일로 어떤 사람과 사비가 붙었다. 그 사안에 대해서만 따지면 된다. 그런데 한참 싸우다보면 이런 말이 튀어 나온다. "당신 이런 일 한다고 날 우습게 보는 거야?", "당신 돈 좀 있다고 그러는 거야?"

우리는 그런 '약자 떼쓰기' 심리를 칭찬해줄 수는 없어도 이해랄 수는 있다. 그러나 천하의 논객 진중권까지 그런 수법을 쓰는 건 보기에 영 좋지 않다.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건 진중권식 논쟁법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진중권은 해당 사안에 대해서만 수학적으로 따져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길 가다 만난 사람과 싸우는 건 진중권식 논쟁법으로 대처하는 게 옳은 반면, 복잡한 정치사회적 문제는 그런 식으로 싸우면 안 된다. 강준만식 논쟁법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진중권은 정작 자신의 논쟁법을 써야 할 곳에선 강준만식 논쟁법을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근시안적 당파성 또는 강한 승부욕 때문일 것이다.


진중권은 왜 누워서 침 뱉나?

나는 진중권이 '거만한 기득권자' 운운하는 욕설('개새끼'보다는 이런 게 훨씬 더 무서운 욕설이다)부터 내뱉을 생각을 하지 말고 이 문제를 차분하게 제기했어야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나도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논쟁은 이런 식으로 생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진중권은 무조건 욕부터 하고 보니 정말 죽을 맛이다.

내 주장은 사회개혁을 위해 국회의 의식 하나도 없는 진보정당을 바닥에서부터 키워 가는 것도 좋겠지만, 기존의 민주당을 최대한 활용해 개혁으로 나아가면서 진보정당의 입지를 크게 키워 놓는 방식도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후자의 방식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이다. 예컨대, 세제혁명을 일으켜 기존의 극심한 빈부격차를 확 줄이는 일은 기존 거대 정당을 이용하는 게 훨씬 더 낫다는 것이다. 이런 고민은 진중권이 확신하고 있는 맹목적인 민주당 지지가 아닌 것이다.

그 차이를 자본주의와 진중권이 지지하는 사회민주주의의 차이에 비유해 설명하면 이해가 더 쉽게 되려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우리는 시장을 인정한다. 즉 이윤을, 경쟁을 인정하고 생산 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를 인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 반면 자본주의에선 그것이 "수단이면서 동시에 목적"이다.4)

물론 이러한 차이를 '구차한 변명'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나는 민주당 지지가 수단이냐 목적이냐 하는 건 적어도 진중권의 논지를 반박하는 데엔 매우 유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중권은 이런 말을 하면 민주당이 얼마나 썩은 정당인지에 대해 열변을 토할 것이다. 그러나 진중권은 누군가가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차별성에 대해 말하면 그때는 한나라당이 민주당과 비교하여 얼마나 '괜찮은' 정당인가에 대해 말한다. 그러니까 내 말은 진중권이 오직 민주노동당에 유리한가 불리한가만을 따지는 소아병적인 당파성을 버리고 그런 맥락에서 한나라당을 옹호할 때의 심정으로 민주당을 잘 살펴보라는 말이다. 자꾸 과거 기준으로 따지지 말고 진중권 자신도 예찬한 바 있는 '노풍'의 가능성도 살펴보라는 말이다.

진중권이 자꾸 과거와 현재 기준으로만 민주당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그건 부메랑이 되어 민주노동당에게도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진중권이 강조하는 민주노동당의 밝은 미래가 민주당에게 없으란 법 없지 않은가. 나는 진중권이 괜한 억지 부리지 말고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그렇다면 당신들은 민주당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일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평소 실력'을 지적하는 말에 대해 '거만한 기득권자' 운운하는 폭언은 삼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게 아직 진중권이 민주노동당을 정당으로 보는 게 아니라 보이스카우트 수준의 결사체로 보는 심리 상태를 말해 주는 것인데, 나는 그걸(*-->그런) 유치한 의식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디 물어 보자. 진중권은 자신이 정녕 소수자의 대변자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자기 성질부터 죽이고 정녕 어떻게 하는 것이 그들의 이익 실현에 도움이 될 것인지 그 점에 대해 고민해야 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진중권은 민주노동당이 모든 경우에 소수이기만 한 건지 그 점에 대해 고민해야 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진중권은 민주노동당이 모든 경우에 소수이기만 한 건지 그 점에 대한 성찰도 병행해야 하리라 믿는다. 사회당 기관지위원장 김덕수가 기관지 『사회당』에 쓴 <민주노동당, 돌아오지 못할 강 건너나>라는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는 걸 유념해야 하리라 믿는다.

"우리 당은 애초의 제안에서 한 발 양보하고 민주노동당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20일이 넘도록 아무 답변이 없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이번에도 역시 20일이 넘도록 아무 대답이 없었다. .....우리 당이 3월 18일부터 두 차례나 공문을 보내며 양당 연석회의를 촉구했으나 한 달 반 가까이 아무 대답이 없던 민주노동당이 이문옥 씨의 시장후부 출마를 선언한 후 사회당이 양당간 공조를 거부했다고 말하는 것은 도무지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다. 민주노동당은 처음부터 원칙에 입각한 통합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선거와 득표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물론 진중권이 민주노동당을 책임져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진중권이 "그리고 이문옥의 서울시장 당선 가능성과 민주노동당의 '평소 실력'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시는가?" 라는 나의 발언을 물고 늘어지면서 '거만한 가득권자' 운운하는 건 진중권이 누워서 침 뱉는 것처럼 보여 영 보기에 좋지 않다. 민주노동당은 사회당에 대해 '거만한 기득권자' 행세를 하지 않는단 말인가? 특히 진중권의 사회당 모욕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수준이 아니던가.


거짓말까지 하는 진중권

"진중권에게 묻겠다. 그 여하한 경우를 막론하고 '김대중 광신도'니 '우상'이니 '상처받은 김대중주의자들'이니 하는 표현이 온당한가? 그런 표현을 쓰거나 그런 생각을 하는 민주노동당 사람들이 소수인가?"

나의 그런 질문에 대해 진중권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소수'다. 만약 다수라 생각한다면 증거를 제시하라. 몇 사람의 발언으로 성급하게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은 강준만답지 않은 꽁수다. 굳이 논의를 이런 방향으로 끌고 가면 아마 나보다는 강준만이 해명해야 할 일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불쾌한 얘기는 여기서 접기로 하자. '조선일보 기자가 죽기 바란다'고 했던 단 한 사람의 글을 가지고 칼럼을 써서 안티조선의 부도덕을 추론하던 김대중 주필의 행태와 뭐가 다른가?"

진중권은 진실성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나는 소수냐고 물었을 뿐인데, 그는 '소수'라고 단언한다. 이건 거짓말이다.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이다. 진중권은 무슨 과학적인 여론조사라도 해보았는가? 그리고 자신을 그런 표현을 함부로 쓰는 민주노동당원에 포함시켰는가, 안시켰는가? 내가 앞서도 지적했지만, 그 점에 관한 한 조선일보 김대중의 행태와 비슷한 행태를 갖고 있는 사람은 진중권이지 내가 아니다.


진중권은 거짓말에 재미 붙였나?

"민주당 후보와 지지자들에 대한 민주노동당 사람들의 비판이 한나라당의 그것과 다를 게 없거나 더 모욕적인 것이라면, 민주당 지지자들이 민주노동당을 특별하게 대우해줘야 할 이유도 없는 게 아닐까?

나의 이 질문에 대해 진중권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언제 '민주당 지지자들이 민주노동당을 특별하게 대우해' 줬다는 건지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그 '특별'한 '대우'가 뭘 의미하는가? 강준만이 『노무현과 자존심』에서 한 장을 할애해 특별히 좌파를 비난해 준 것? 앞으로 민주당 지지자들은 민주노동당을 '특별하게 대우' 해주지 말았으면 한다. 그 '특별한 대우' 란 게 불필요한 경멸과 비난뿐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민주노동당에 온갖 욕설을 퍼붓는 네티즌들은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아니라 대부분 민주당 지지자들이다. 이는 얼마든지 수치로 입증 가능한 객관적 사실이다."

진중권은 여기서 또 거짓말을 하고 있다. '수치로 입증 가능한 객관적 사실'을 내 놓아라. 나는 심증상 "민주노동당에 온갖 욕설을 퍼붓는 네티즌들은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아니라 대부분 민주당 지지자들"이라는 진중권의 주장에 동의할 순 있다. 그러나 민주당 지지다들을 '김대중 광신도' 라는 식으로 모독하는 진중권과 같은 민주노동당원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민주당 지지자들이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은폐해선 안 될 것이다.

어찌됐든 진중권은 나에게 질문 형식으로 자신의 심증을 표현하는 아니라 아예 단언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진중권식으로 말하자면, 앞서 '소수-다수'를 따진 것에 대해서도 '다수' 라는 주장이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나 역시 진중권이 말하는 정도의 '수치로 입증 가능한 객관적 사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과학적인 분석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감히 단언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이하여 진중권은 그런 단언을 함부로 하는 건가?

진중권은 "언제 '민주당 지지자들이 민주노동당을 특별하게 대우해'줬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하는데, 모르는 게 당연하다.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말고 내가 과연 그런 주장을 했는지 글을 다시 읽어 보기 바란다. 내 글조차 제대로 성의 있게 읽지 않았으면서, 다음과 같이 호소를 빙자한 비판을 하는 건 도대체 무슨 경우인가?

"다시 한번 호소한다. 강준만 씨는 앞으로 논의를 이런 방향으로 끌고 가지 말기 바란다. 이는 논점과 전혀 관계없는 사항으로, 그저 양측의 감정만 상하게 할 소모적 논란만 부를 뿐이다."


민주노동당이 '국민에게 저지른 죄악'

"진중권은 지난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이 각기 후보를 낸 걸 호되게 비판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비판의 정신을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적용시킬 생각은 없으신가? ......진중권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국민 사기극' 운운하는 비판을 하기에 앞서 진보정당의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를 위해 뛸 생각은 없는가? 만약 없다면, 진중권 역시 자신이 과거에 했던 비판의 화살을 이번엔 자신이 되받아 마땅하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나의 이 질문에 대해 진중권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강준만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국민 사기극 운운' 한 바 있다. 그런데 그 일을 진중권이 하면 안 된다는 얘기일까? 아니면 '국민 사기극 운운' 할 자격을 얻기 위해 먼저 사회당과의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얘기일까? 그러는 강준만은 민주당 경선에서 개혁파의 후보 단일화를 이룬 다음에 '국민 사기극' 운운했던가? 이해할 수 없다. '후보 단일화'를 위한 노력과 '국민 사기극'에 대한 비판은 논리적으로 독립적인 사항이다. 후자를 하기 위해 굳이 전자부터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진중권은 이미 사회당과의 후보 단일화만이 아니라 아예 통합을 위해 열심히 뛴 바 있다. 그게 작년 연말부터 올 초까지의 얘기. 불행히도 양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또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통합 논의와 후보 단일화는 아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의 쪽글에서 내 발언을 찾아 문제삼을 정도의 열성이라면, 그때 그 발언이 사회당과의 통합론이 오가는 과정에서 나온 것임을 알았을 텐데. 강준만 씨는 맥락 없이 퍼온 글을 읽고 사안을 너무 쉽게 단정하는 것 같다."

진중권의 디지털식 사고 체계가 또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말하는 걸 보라. '논리적으로 독립적인 사항' 이랜다. 물론이다. 그게 바로 논쟁을 수학으로만 보는 진중권 논쟁술의 초대 병폐다. 그리고 그때 그 발언이 사회당과의 통합론이 오가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진중권은 진정 이 발언에 대해 책임질 수 있겠는가? 나는 선거 후에 진중권이 어디에선가 '닭짓' 운운하며 비판한 걸 본 적이 있는데, 지금 그 자료를 찾지 못해 그리 묻는 거다. 나중에라도 내가 그 자료를 찾아내면 어떡하려고 그렇게 큰소리를 치는가?

지난 해 10·25 재·보선에서 구로을과 동대문을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이 각자 후보를 낸 것에 대해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국민 앞에 죄악을 저지른 것' 이라는 반성을 한 바 있다. 자, 만약 어느 민주당 지지자가 그 반성을 걸고 넘어지면서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이 또 한 번 각자 후보를 내는 것은 또 한 번 국민 앞에 죄악을 저지르는 짓이 아니냐며 험하게 추궁을 한다면, 그리고 진중권은 그런 죄악을 앞장 서서 저지르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가한다면, 진중권은 그런 비판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나부터 그런 비판엔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 일이라는 게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중권이 김민석에게 표를 던지겠다는 네티즌들을 향해 '국민 사기극'을 외쳐대고 노무현이 처해 있는 어려움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닭대가리', '꼴통' 운운하는 욕을 퍼부어대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한 번 생각해주기 바란다.


선(善)을 자처하는 진중권의 적반하장(賊反荷杖)

"나는 진보주의자들의 생각을 존중하지만, 멀리 내다보는 '적극적 진보주의'에 앞서 우선 당장 박정희와 전두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된 세력에게 정부와 서울시의 리더십이 넘어가는 걸 못 보겠다는 사람들의 '소극적 진보'도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 발언에 대해 진중권은 때아닌 '한나라당 옹호'를 해댄다. 자신의 정체를 솔직하게 밝혀줘서 고맙긴 하다. 그런데 너무 드러내고 말았다. 안티조선운동의 선봉장이었던 사람이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의 관계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 없다는 듯 말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그런 너그러운 이해심과 아량을 갖고 김민석을 보자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라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진중권의 더욱 큰 문제는 진중권 자신은 선(善)인가? 큰일날 소리다. 나는 민주노동당의 노선에 동의하지 않는다. 진중권은 자신과 민주노동당에 대한 나의 예의를 악용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 대단히 진실되지 못한 수법이다. 나는 '붉은 악마' 앞에서 가서 '반역자들' 이라고 외쳐대는 사람도 선(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진중권의 이런 선악(善惡) 이분법은 도대체 어디에서 연유된 것일까? 이미 충분히 설명했지만, 이 경우 그의 과도한 자기 중심성을 지적할 수 있겠다. 그렇지 않다면, 진중권이 나에게 "정치를 마니교적 선악 이분법을(*이분법으로) 보는 이 과잉 정치 의식을 제발 벗어버리기 바란다" 고 충고하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은 범할 수 없었을 것이라 믿는다.

하긴 진중권은 반론에서 '과잉 정치 의식' 이라는 말을 여러 번 썼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특정정당 후보의 사이버 대변인을 맡아 활동하는 사람이 정치권과는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채로 독립적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하는 사람을 '과잉 정치 의식'으로 몰아 붙이는 이 무모함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자신의 정치적 언행은 '진리 탐구'를 위한 것이고, 남의 정치적 언행은 '저급한 당파성' 의 산물이라는 걸까?

어차피 그렇게 욕을 먹을 거라면, 내가 진짜로 김민석의 선거운동을 위해 나서볼까? 노사모 회원이면서도 이문옥을 지지하겠다는 '과소 정치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애써 볼까? 나는 진중권식으로 욕설과 조롱을 퍼부을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진중권류의 김민석 비판이 얼마나 위험한 '증오와 시기의 수사학'으로 가득 차 있는지 그걸 차분하게 밝힐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그렇게 해도 괜찮을 만큼 적어도 자신의 이미지 관리에 실패해 온 김민석에게도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김민석으로부터 반성문과 서약서를 받아내는 걸 조건으로 하여 김민석에게 표를 몰아주자고 유권자들에게 부드럽게 호소할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 주리라 믿는다. 내가 정말 그렇게 해볼까?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 설사 김민석이 낙선한다 하더라도. 왜? 나는 진중권식의 '과잉 정칙 의식'과 '근시안적 당파성'을 갖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 말마따나 지식인은 자기 할 일만 하면 되며 지식인이 특정정당의 선거 전략을 논리적으로 정당화까지 해 줄 필요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특정정당 후보의 공격적인 선거대책반원이자 선거운동 돌격대원으로 활약한 진중권이 나에 대해 '과잉 정치 의식'을 버려 달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서도 '선거판에 뛰어들면 누구나 미치기 마련' 이라는 세속적 상식으로 이해하고자 애쓸 뿐이다.

그러나 요점 정리는 해두자. 나는 진중권이 사회 참여적 지식인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정치 의식은 아예 없는 반면, 당파적 또는 자기 중심적 정치의식은 과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전자의 정치 의식은 과잉이라는 걸 인정할 수도 있지만, 후자의 정치 의식은 과소라고 생각한다. 물론 진중권이 동의하라고 한 이야기는 아니다. 진중권은 지나친 자기 중심주의와 선거 대책반원으로서의 자기 위상 때문에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모를지도 모른다.


지구가 진중권을 중심으로 돌아야 하나?

진중권의 자기 중심주의는 이제 '신학'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들어야 할 얘기를 하라"는 프리드리히 실러의 말을 인용한 후에 그간 강준만의 장기로 알려져 왔던 신파를 연출한다. 진중권의 신파를 보니 나도 앞으론 그런 신파를 두 번 다시 하지 말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된다. 어디 진중권의 신파를 감상해보자.

"이것이 또한 얼떨결에 이런 글쓰기를 하게 된 글쟁이로서 나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글은 공적인 무기다. 내가 소수정당의 후보를 지지하고 나서면 내 말이 옳아서가 아니라 내 말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내 글을 읽어주었던 수많은 독자들이 내 곁을 떠날 것이다. 이미 수많은 독자들이 내게 적대감을 표시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외려 어떤 홀가분함을 느낀다. 내 글이 옳아서가 아니라 자기의 정치적 입맛에 맞아서 읽은 독자들이 있다면, 그것은 내각 곡학(曲學)은 하지 않았어도 본의 아니게 결과적으로 아세(阿世, 세상에 아첨)를 해왔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아마도 글이 『오마이뉴스』오르면 또 다시 그 밑에 원한에 가득 찬 험악한 답글들이 줄줄이 올라올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하는 말에 환호성을 지르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이게 시민의 상식인가? 나는 내 양심에 따라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가 아니라 그들의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말을 해 줄 의무가 있다고 느낀다. 별로 근거도 없고 정확하지도 않은 괴상한 3류 정치적 예측의 기계에 내 자신을 걸어 놓기보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먼저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라는 동양의 지혜에 따라 행동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인터넷 공간에서 체면과 위신을 포기하고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원칙이며, 이것이 사이버 공간에서 온갖 상처를 받으며 몸을 망가뜨려야 하는 말의 검객이 자기를 배려하는 방식이다."

엘리트주의는 진중권이나 나나 둘 다 저지르고 있는 짓이다. 비판적 글쓰기의 속성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그러나 비판적 글쓰기 논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기 도취'다. 나 역시 그것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 늘 경계하고 있다.
그런데 진중권의 '자기 도취'는 중증이다. 위 글은 정말이지 읽기에 민망하다. 꼭 야음을 틈타 붙잡는 처자식 뿌리치고 상하이(上海)로 떠나는 독립투사 같지 않은가. 그런 비장미에 도취되기 이전에 '민주당 광신도' 운운하며 상대편에게 욕설을 퍼붓는 자신의 행태에 대한 자기 성찰을 먼저 해보면 안 되는 걸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하는 말에 환호성을 지르던 바로 그 사람들이 이젠 자신을 비판하고 있다면서 "이게 시민의 상식인가?"라고 물으니, 나로선 이 지구가 꼭 진중권을 중심으로 돌아야만 되는 거냐고 묻고 싶다. 말이라는 게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인데, 상대편 약 올리고 모욕하는 식으로 제압하려는 자신의 논쟁술에 더 큰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볼 뜻은 없는지 다시 묻고 싶다.

나도 일부 네티즌들로부터 진중권 못지 않게 두들겨 맞고 있지만, 나는 그런 엄살 부릴 생각 전혀 없다. 누가 옳건 그르건 남을 욕하는 만큼 내가 욕먹는 건 당연하다는 자세를 갖고 있다. 진중권은 왕자병을 버려야 할 것이다.


고민 좀 하면서 살자

언젠가 어떤 진중권 지지자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강준만의 글은 뻔하기 때문에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는 반면 진중권의 글은 워낙 내공이 깊어 새록새록 깊은 맛과 멋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나는 그 주장에 동의를 표했다. 사실이 그렇다. 나는 지난 십수 년간 똑같은 주제를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말해 오고 있다. 나의 독자들이 질리는 건 당연하다.

지금 내가 나의 겸손을 과시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진중권의 진실성 결여를 한 번 더 비판하기 위해서다. 진중권은 나의 글을 잘 읽지 않는다. 아마 자신의 독자처럼 '뻔하다' 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진중권이 나의 글을 일부러 챙겨 읽는다면 절대 이번의 반론 같은 글은 나올 수가 없게 돼 있다.

반면 나는 진중권의 거의 모든 글을 열심히 탐독하고 있다. 그의 인터넷 글쓰기마저도 가급적 다 챙겨 읽으려고 무진 애쓰고 있다. 나는 진중권이 나를 아는 것보다는 내가 진중권을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진중권을 어떤 면에선 '천재'로 생각하기 때문에 진중권이 내가 하는 노력의 반의 반만 하고서도 나보다 훨씬 더 탁월한 통찰력을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체를 바라 보는 총체적 안목에 있어선 진중권도 평범한 지식인이거나 그 이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사실 이런 말은 할 필요도 없다. 진중권은 내 글을 읽어도 매우 심각한 오독(誤讀)을 밥 먹듯이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두 건이 아니다. 그 누구건, 아무리 진중권과 뜨거운 연대를 해온 사람이라도, 일단 진중권과 논쟁을 붙게 되면, 그 사람은 『조선일보』수준으로 격하된다. '완전무결 진중권' 신화창조를 위한 제물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진중권의 이런 점이 무섭다.

이건 나에게도 해당되는 소리지만, 나는 진중권이 부디 겸손해지기를 바란다. 물론 진중권은 자신의 삶에선 더할 나위 없이 겸손한 사람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문제는 논쟁에서의 겸손이다. 상대편에게서도 배울 게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진중권은 일단 논쟁에 돌입하면 피도 눈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총체적 사고를 거부하는 '논쟁 기계'로 돌변한다. 사이버 세계 밖에서 진중권의 개구쟁이 같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진중권이여, 이 세상은 당신의 그 조잡한 수학만으론 풀리지 않는다.

나는 만약 '노풍'이 실패로 돌아가고 민주당의 환골탈태가 영영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인하대 교수 김진석처럼, 노선엔 동의하지 않지만 한국정치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 전략적으로 진보정당을 지지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고민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한다면, 아마도 제17대 총선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나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할 사람들이 매우 많으리라 믿는다. 만약 내가 진보정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하게 되면 나는 제일 먼저 진중권처럼 민주노동당을 망치는 사람들의 소아병적 행태의 정체를 폭로하고 공격하는 데에 앞장 서 민주노동당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에 일조할 것임을 미리 밝혀 둔다.

내 글 가운데 진중권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짜증나게 할 대목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해서 될 말이 있고 해선 안 될 말이 있다. 진중권은 내게 해선 안 될 말을 너무 많이 했다. 나는 고민하면서 그 글을 썼다. 진중권은 고민했는가? 진중권에겐 고민이 없다. 그는 기계적으로 그 글을 썼다. 진중권 스스로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인터넷에서 한 말들을 보고 재삼 확인한 것이니 남의 뚜껑 열어본다고 화내진 마시기 바란다.

나의 고민은 이런 것들이다. 나는 과연 진정한 '독립적 지식인'으로서의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 나의 판단에 오류가 있을 경우, 그건 어떻게 할 것인가? 나의 아름답지 못한 과거에 비추어 지금 내가 이렇게 큰소리치고 살아도 되는 건가? 나는 지금 너무 '인정 투쟁' 욕구에 함몰돼 있는 건 아닌가?

나는 그 누구건 나의 그런 문제를 지적해주면 고민해보고 타당하다면 수긍하고 필요하다면 사과할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사과'를 가장 많이 한 지식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경솔한 지식인'으로 욕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지식인의 아집(我執)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잘 아는 사람들에겐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부디 진중권이 '완전무결 진중권' 신화를 창조하기 위한 과욕을 버려 주길 촉구한다.


*주석

1)『한겨레』의 <왜냐면>에서 이루어진 진중권과의 논쟁에 관한 글은 7월 초순에 나올 단행본 『인물과 사상 23』에 싣도록 하겠다. 아울러, 전혀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진중권에 대한 훨씬 더 진실된 자세를 보여준 『오마이뉴스』기자 이장춘의 반론에 대한 답도 『인물과 사상 23』에서 드리도록 하겠다.

2)원문에는 '정치적 기동'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말이 안 될 건 없으나 아무래도 '정치적 거동'의 뜻으로 쓴 것 같아 '정치적 거동'으로 받아 들이고자 한다. 설사 그게 아니라 해도 내게 무슨 나쁜 뜻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이해하시리라 맏는다.

3)이건 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장 황광우가 민주노동당 정책이론지인『이론과 실천』에 쓴 글에서 이른바 '좌익 소아병'을 비판하면서 인용한 걸 내가 재인용한 것이다. 황광우, <소부르주아지의 정치적 특성: 반대와 의존, 관념적 파격>,『이론과 실천』, 2002년 2월, 97쪽

4)이는 한신대 교수 박영호의 설명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사회과학 포럼 토론: 사회민주주의는 한국 사회 진보의 대안이 될 수 없는가?>,『동향과 전망』, 제 46호(2000년 가을), 136쪽에 실려 있습니다.

* 본문은 [월간 인물과 사상] 2002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기사입력: 2002/07/19 [16:51]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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