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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이제야 딸들을 해방시켰다
[논단] '딸들의 반란'은 서막, 진정한 양성평등이 통하는 세상 만들어야
 
고은광순
조선이 일제에 의해 무너지자, 양반은 어쩔 수 없이 상놈을 해방시켰으나 남자들은 여자, 딸들은 해방시키지 않았다. ‘상놈’이 해방된 지 100년 가까운 세월이 되어서야, 딸들은 돈을 앞에 둔 다툼을 통해 해방이 되었다.
 
일단 대법원의 결정에 브라보!!!
 
지난 수년간 종회회원 확인 청구소송을 하면서 온갖 비난과 욕설,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눈물과 분노와 절망을 쏟아내며 괴로워했던 용인 이씨 사맹공파 여성들, 청송 심씨 혜령공파 여성들에게 커다란 박수를 보낸다.
 
이 판결이 나자 유림들을 비롯해서 일부 마쵸스런 남성들의 분노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고유풍습이었는데 안타깝다’, ‘권리에 따른 책임도 똑 같이 져라’거나 심지어는 자기 집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존속살인이라도 하겠다는 마쵸도 있다. 여자들이 죽은 뒤 제사를 받는 것은 시집에서가 아니었는가며 시집, 친정에서 모두 대접받으려는 거냐고 묻는 이도 있다. 기존의 온갖 관습이 완전 무력화 되었다며 당혹하는 표정들이 역력하다.

원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문화는 중국에서 수입된 것이다. 그것도 스스로 천자(天子/ 하늘의 자식)라 칭하면서 타 부족, 타 혈족과의 차별화를 꾀하며 권력을 독점하고 안전하게 유지하며 세습하기 위한 탐심을 갖고 있던 중국의 황실문화를 모방한 것이었다. 족보를 만들고, 엄숙하고 까다로운 과정을 통해 제사를 지내는 것은 “나는 너희와 다르니 내 혈통, 내 권력을 넘보지 말라”는 의미였고, 그 까다로운 과정을 무당인 유(儒)에게 담당하도록 했다.

이렇게 아들의 아들로 권력과 부가 세습되는 종법(宗法)제는 조선에 수입되어 왕가로부터 양반가로 확산되었으며 일제의 침략을 맞아 양반이 숨죽어 지내는 통에, 혁명을 통해 수평적 권력구조를 성공시키지 못한 중, 하층 대중은 상층의 문화를 그대로 모방함으로써 신분상승을 스스로 도모했다. 그래서 족보가 가장 많이 만들어진 때가  일제 강점기였고, 집집마다 제사가 유행처럼 번지게 된 것이다.
 
(새로운 돈의 배경에 ‘용비어천가’를 집어넣겠다고 하지만 용비어천가는 세종이 학자들을 시켜 자기의 조상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 태조, 태종이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올라갔다며 중국의 천자(天子)의 개념을 흉내 내어 가문의 혈통을 특화 시켜, 고려 왕조를 배신하고 조선 왕조를 세운 선조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도구로 만든 것이다.) 
 
따라서 종법제에 따른 종중, 종친회, 종가의 개념 등은 모두 권력을 독점하고 세습하기 위한 비민주적 제도와 문화 속에서 발생했던 것이며 한국의 경우 대부분의 족보는 일제시대에, 혁명을 도모하지 못한 중, 하층 계급이 그들의 신분을 감추거나 벗어나기 위한 비굴한 도구로 조작, 변조하여 사용한 것이므로 민주주의를 더욱 성숙시켜가야 할 21세기의 한국 사회에는 전혀 어울리거나 필요한 문화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한 줄기 혈통을 강조하다 보니 남자에게만 씨가 있으며 여성은 밭일뿐이라는 거짓을 금과옥조처럼 받들어야 했다. 제례를 ‘가문의 성스러운 의식’으로 규정해 놓고 남자들끼리의  의식을 통해 형제애, 혈족애를 나누어 왔으나 정작 그 성스러운 의식을 준비하기 위해 부엌에서 땀을 흘렸던 사람들, 그 남자들을 낳아 키운 사람은 다른 집안에서 편입되어 온 성과 본이 다른 여성들이었다. 남성중심의 제도와 문화는 여성들을 철저히 도구화하고 소외시켰는데, 그것은 여자여서가 아니라 여자는 안 된다고 정한, 그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 때문이었다.
 
남자만 씨가 있다고 하는 억지. 남자들만 혈통을 이어가고 가문의 영광을 보존한다는 억지. 딸들은 결혼하면 시집에 속하며 출가외인이 된다는 억지. 이것들은 바로 권력을 가진 남자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남자들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남자들이 주도하는 법과 문화는 그러한 ‘권력을 가지 거짓‘에 기초해 있었다. 이제 법이 제 정신을 차리고 그런 제도와 문화가 잘못되었다며 제동을 건 것이다.
 
여자들은 친정에 기여한 바가 없다고? 기여도를 따져보자고?
 
출가외인이라고 쫓아내지 않았나? 그리고 다른 집에서 시집온 또 다른 성씨 다른 딸들에게 모든 짐을 지우지 않았나? 입원한 노인들을 찾아오는 것은 딸들이라는데?  그럼 왜 미국에 이민 간 아들은 비행기 타고 와서 돈만 받아 가는데? 왜 기저귀 차고 누워있는 남자아이가 오랫동안 친정부모 병 수발들었던 딸보다 많이 받았는데?
 
각 집마다 이렇게 저렇게 구구한 사연이 있을 수 있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억울한 하소연을 풀어주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이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심과 2심에서 판사들은 딸들에게 “출가한 딸들은 그 집안 식구가 아니니, 돈을 받지 못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하며 위로금으로 천만 원을 주고 받을 것을 권하기도 했다. 그 때 친정부모의 대소변을 받아가며 임종을 지켜봤던 여성이 겪었을 소외감과 분노를 생각해보라.
 
이번 판결을 두고 각 언론은 ‘딸들의 반란이 성공’했다고 요란하지만, 딸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끝내 여성, 딸을 해방시키려 하지 않았을 한국의 법문화는 참으로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다. 반란을 일으켜야만 해방을 선언할 정도로, 두루두루 여론조사를 해 보고서야 딸들의 존재를 인정할 정도로 한국 법조계의 인권의식은 비주체적이며 비상식적이었다.
 
1심, 2심 모두 남자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가, 헌법재판소의 호주제에 대한 위헌성의 지적과 국회에서의 호주제폐지가 있고 나서야 그에 힘입어 비로소 대법원은 딸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반가운 결정이지만, 보수적이고, 소신이 없으며 기회주의적인 법조계 문화에 마냥 감사한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판례변경의 효력범위에 대해 "변경된 판례는 향후 새로이 성립된 관계에만 적용되고 예외적으로 이 사건에 적용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혀 이날 이전의 종친회 운영이나 재산처분 등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고 하니 그들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이것 역시 국민의 한을 풀어주기 보다는 자기들의 편의를 먼저 고려한 권위주의적인 태도로 생각되어 찝찝하기 짝이 없다. 조금 더 융통성을 발휘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그러나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또 남아 있다.
 
대법원은 공동선조의 성과 본을 같이 하는 후손은 성년이 되면 남녀 구별 없이 종원(宗員)이 되어야 한다고 판시했지만 이것은 [성과 본]을 절대 신성한, 고정불변의 것으로 본 것으로 이 역시 양성평등과는 관계가 먼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하면 종중(宗中)이라는 개념 역시 남계혈통만을 중심으로 규정한 것이며 여(모)계혈통을 철저히 부정해야 비로소 성립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양성평등한 새로운 가치를 실현하려고 해도 ‘종중, 종원, 성과 본’과 같이 이미  남성을 중심으로 짜여진 구도 속에서 양성평등을 찾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농경사회에 만들어졌던 제도와 문화는 정보화사회로 넘어가면서 많은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다음과 같이 긍정적으로 변화해갈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이제 비로소 고민해야 할 것이다.
 
@ 매장보다는 화장이 더 많아질 것이며,
@ 시민들은 죽은 자에게 복을 빌기 보다는 시민단체에 돈을 기부하는 것이 살아있는 자들의 행복을 위해 훨씬 생산적이라는 각성을 하게 될 것이며,
@ 토지는 영구히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에 귀속될 수 없다는 생각들이 확산 될 것이며, 
@ 부모 모두에게서 절반씩의 씨앗을 물려받았으므로  한 줄기 혈통이나 한 줄기 가문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으로 자리 잡을 것이며,
@ 모계를 철저히 부정해 온 [성과 본]은 그렇게 성역을 쌓고 보존해야 할, 개인의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내 주는 기호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며,
@ 따라서 [성과 본이 같으므로 피가 같다고 믿어온 남성]들이 유지해온 종중(宗中), 종친회(宗親會), 종원(宗員)이라는 개념이 모두 어덕서니(허깨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출가한 여성은 가족이 아니라는 야멸찬 냉대로부터 비로소 벗어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일이지만, 남녀 모두 전근대를 벗어나 지구촌의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판결이다.
 
종중재산은 우리가 피땀 흘려 모아온 재산이 아니니 불로소득을 취하기보다는 공익을 위해 내어놓겠다고 하는, 그렇게 멋있는 ‘가문’이 많이 생겨나기를 바라면 안 될까?
 
* 필자는양성평등을 실천하는 한의사입니다.
기사입력: 2005/07/22 [15:20]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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