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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리야르 : '시뮬라시옹'이란 무엇인가
[추모] 시뮬라시옹과 과잉현실, 그리고 미디어의 종언 다룬 석학 타계
 
강준만
* 세계적인 석학 장 보드리야르 교수가 지난 3월 6일 프랑스 파리에서 영면(1929. 6. 20 - 2007. 3.6)했습니다. 후기 구조주의의 세계적 학자이자 쟈크 데리다, 미셀 푸코, 마샬 맥루안 등에게 큰 영향을 끼친 보드리야르 교수에 대해 자세한 해석을 가한 강준만 교수의 글  "보드리야르:'시뮬라시옹'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다시 올립니다-편집자 주

▲Jean Baudrillard

시뮬라시옹과 과잉현실

2002년 9월 방한(訪韓)하여 큰 화제를 불러모은 바 있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1929년생으로 우리 시대의 정보 폭발과 소비문화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사상가이다.

보드리야르 자신은 사회학자가 아니라 형이상학자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를 어떤 범주에 넣는다는 건 어렵거니와 무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텍사스대 철학과 교수 더글라스 켈너는 그를 가리켜 ‘하이테크 사회이론가’ ‘현대 형이상학의 월트 디즈니’라고 불렀는데, 여기엔 다소의 비아냥이 담겨진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풍의 사회 이론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보드리야르의 저서들이 극단적인 반(反)계몽주의(obscurantism), 과장법, 알맹이 없는 현학적 전문용어의 뒤범벅과 횡설수설로 가득 차 있다고 비판하면서 심지어 그를 ‘지적 사기꾼’으로 매도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런 매도는 그만큼 세계 지식계에서 보드리야르가 누리는 인기가 높은 걸 반증해주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대중문화 연구와 관련하여 보드리야르의 주장 가운데 가장 주목할 것은 그의 ‘시뮬라시옹’(simulation; 모사) 개념이다. 발터 벤야민은 기계복제가 미술작품의 아우라(aura)를 파괴했다고 말했지만,1)
1) 아우라는 ‘고유한 분위기’를 말한다. 예술작품이 향유하는 역사적 유일성과 진품성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나 후광 같은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1935년에 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완벽한 복제라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한 가지 요소가 빠져 있다. 그 요소는 시간과 공간에서 예술작품이 갖는 유일무이한 현존성, 다시 말해 예술작품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에서 그 예술작품이 지니는 일회적 현존성이다. ……

복제에서 빠져 있는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현존성을 우리는 분위기 Aura라는 개념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의 Aura이다.”

벤야민은 아우라의 붕괴로 인해 예술의 신비적ㆍ종교적 요소가 제거된 반면, 정치적ㆍ해방적 기능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발터 벤야민, 반성완 편역,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민음사, 1983), 200, 202쪽. 
보드리야르의 주장은 바로 이 원본과 복제의 구분 자체가 소멸했다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그 과정을 시뮬라시옹이라 부른다. 이는 “원천이나 실재 없이 실재적인 것의 모형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 즉 과잉 현실 hyperreal”을 가리키는 것이다.

텔레비전과 삶의 용해

보드리야르는 텔레비전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실재는 외부 세계와의 직접적인 접촉에 의해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텔레비전의 화면을 통해 주어진다. 이야기와 진짜 사건 사이의 경계는 불명확해진다. 이러한 불명료성이 극단에 이를 때에 역사는 그 지시하는 대상을 상실한다. 정보의 과잉생산과 의미의 범람으로 인해 대중은 극단적인 무관심과 침묵의 관성 속에 존재한다.

우리는 텔레비전이 확인해줄 때까지 우리 자신의 지각을 불신한다. 텔레비전이 곧 이 세계인 셈이다. 따라서 인간이 텔레비전을 보는 게 아니라 텔레비전이 인간을 보며, 텔레비전이 삶으로 용해되고 삶이 텔레비전으로 용해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는 게 보드리야르의 주장이다.

존 스토리는 “과잉 현실의 증거는 어디에든 있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자체가 과잉 현실이다”고 규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 텔레비전 연속극의 등장인물에게 편지를 써서 결혼을 청하거나, 그들의 어려움을 동정하거나, 살 곳을 마련해 주겠다거나 아니면 그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어보거나 하는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이다. 텔레비전에서 악역을 맡은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개과천선하지 않으면 큰코다칠 것이라고 경고를 받기 일쑤이다. 텔레비전의 의사, 변호사, 탐정들은 충고와 조언의 요구를 다반사로 받는다.

나는 텔레비전에서 영국 중부 호수 지역의 아름다움에 대해 감탄하는 미국 관광객을 본 적이 있는데, 그는 적당한 칭송의 말을 고르다가 ‘마치 디즈니랜드 같아요’라고 했다. …… 최근 어느 지방의 이태리 레스토랑에 갔을 때, 그 주인은 식당이 진짜 이태리답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영화 『대부』의 주인공 말론 브란도의 사진을 걸어놓고 있었다.”


디즈니랜드와 머드

실제로 보드리야르는 디즈니랜드를 과잉 현실의 대표적인 예로 여긴다.

“디즈니랜드는 ‘실제의’ 나라, ‘실제의’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하여 거기 있다(마치 감옥이 사회 전체가 그 평범한 어디서고 감방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거기 있는 것과 약간은 유사하게). 디즈니랜드는 다른 세상을 사실이라고 믿게 하기 위하여 상상적 세계로 제시된다. 그런데 사실은 그곳을 감싸고 있는 로스앤젤레스 전체와 미국도 더 이상 실재가 아니며 파생 실재와 시뮬라시옹 질서에 속한다.”

자연 상태를 변형한 인공적인 체험을 실재와 혼동하는 걸 가리키는 이른바 ‘디즈니랜드 효과’야말로 보드리야르의 주장을 잘 대변해주는 것일 게다. 셰리 터클은 디즈니랜드의 악어 로봇은 모조품인데도 진짜보다 더 진짜같이 보이는 효과를 낸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래는 결코 계산할 수 없다: 인터넷의 경고』라는 책에서 스테펜 탈보트는 교육자들을 인용해 이 효과의 유용성을 설명했다. 수년 동안 아이들을 상대로 ‘자연 프로그램’을 운영해보니 야생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보고였다.

숲속에 사는 동물들은 카메라에 잡힌 것처럼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중간 매개 과정이 없는 직접 경험은 이런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지금도 어린 시절 소녀단을 따라 브루클린 식물원을 갔을 때의 일이 생생하다. 나는 그때 안내원에게 꽃이 피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월트 디즈니에서처럼 저속 촬영한 연속 화면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또 터클은 컴퓨터를 상대로 해서 비디오게임을 즐기고 나면 머드(MUD)2)
2) “MUD는 Multi User Dungeon의 약자이다. 말 그대로 여러 명의 사용자가 모여 함께 던전을 탐험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던전은 지하감옥이라는 의미인데, 게임상에서는 보통 수많은 괴물들이 보물을 지키는 곳으로 묘사되곤 한다.

초창기 머드 게임은 단지 문자로만 구현되어 있었고, 게임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 등을 문장을 통해 파악하는 단조로운 형식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화려한 그래픽을 갖춘 게임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2차원에서 3차원 환경으로 나아가고 있는 추세이다.”

김웅남, <컴퓨터 게임과 가상현실>, 고려대장경연구소 편, 『디지털 시대의 문화변동』(고려대장경연구소, 2001), 95쪽. 
가 훨씬 실감나는 사회로 보이는 것도 비슷한 효과라고 말한다. 그는 머드가 “가상공간이긴 해도 각자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있고 공간도 상대적으로 개방적”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게임 이용자는 비디오게임과 머드 게임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이렇게 비교했다. ‘닌텐도는 한 사람이 네 가지 서로 다른 인물 행세를 해볼 수 있는 좋은 게임입니다. 하지만 똑똑하고 능력 있는 인물처럼 보여도 이 인물들은 결국 당신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로봇입니다.’ 한마디로 가공임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반면 머드에서는 이래라 마라고 지시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머드에 들어가면 활기를 만끽한다고 한다. 참여자 각자가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꾸려간다는 점에서 실제 상황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정보의 폭발과 의미의 내파

보드리야르는 “우리는 시뮬레이션에 들어가기 위해 역사를 탈출했다”고 단언한다. 보드리야르는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맥루한의 말은 메시지의 종언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미디어의 종언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미디어와 실재가 하나로 함몰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보드리야르의 이런 입장은 ‘테크놀로지 허무주의(technological nihilism)’라 부를 만하다.

보드리야르는 정보의 ‘폭발(explosion)’과 의미의 ‘내파(implosion)’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질서의 핵심으로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대중매체가 사회화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을 ‘내파’한다고 본다.

정보는 의사소통을 위한 것인가? 아니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정보는 의사소통을 연출만 하면서 소진되는 것이다. 정보는 의미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연출만 하면서 소진되어 버리는 것이다.

‘내파’는 더 나아가 모든 사회 제도들이 내부에서 폭발하고 무너지고 있다는 것도 의미한다. 이에 대해 미국의 사회학자 스티븐 사이드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근대성은 새로운 분열의 증가(예, 과학은 문학과 철학과 구분된다), 새로운 차이의 형태(예, 사회학이 인류학과 구분되고, 각 학문의 영역에는 전문성이 더욱 세분화된다), 그리고 새로운 문화의 구별(예, 대중문화와 지식인 문화간의 구별)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반대로 탈근대성은 ‘내파’의 과정으로 특징짓는다. 경계는 붕괴된다. 오락과 뉴스를 구분할 수 있는가? …… 제도적 경계는 흐려진다. 대중문화와 고급문화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문화적’ 영역과 ‘사회적’ 영역이 구분될 수 있는 것인가?”


대안은 과잉 순응

보드리야르의 세계에서 ‘확실성’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저항은 ‘신기루’요 사회변혁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주의적인 텔레비전의 오락과 정보는 소음과 역정보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해한 보드리야르는 텔레비전 테크놀로지의 확산을 개탄하고 ‘대인커뮤니케이션(interpersonal communication)’의 회복을 열망하였지만 ‘어떻게’를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좌파 이론가들로부터 허무주의자ㆍ비관주의자ㆍ패배주의자ㆍ탈정치주의자로 비판받는 보드리야르에게 있어서 대안은 현실에 ‘과잉 순응’하는 것뿐이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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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합한 전략적 저항은 의미와 발언을 거부하고, 거부와 비수용의 형태 그 자체인 현 시스템의 메커니즘을 ‘과잉 순응적인’ 방식으로 흉내내는 것이다. 이것이 대중의 저항 전략이다. 그것은 거울의 경우처럼 시스템의 논리를 흡수하지는 않으면서 복사하고 의미를 반영시킴으로써 그 논리를 뒤집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야말로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전략이다(만약 이걸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아더 크로커는 그런 견해가 유행, 언어, 라이프스타일 등에서 ‘과잉 순응적’ 시뮬레이션을 시도했던 펑크족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시스템의 시뮬레이션 논리가 뒤집어져 그 시스템을 공격하는 굴절을 가능케 할 것이라는 것이다.

보드리야르가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것도 같은 이치에서다. 그는 페미니스트들이 다이어트, 성형수술 등으로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만드는 걸 비판하는 것도 비판한다. 그는 포르노마저도 여성의 신장된 지위 향상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여성이 남성 권력에 도전해서 이길 수는 없다며 “여성의 힘은 유혹의 힘”이라고 단언한다. 여성은 전투적인 자세를 버리고 남성을 유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모든 힘에 대등하거나 그보다 탁월한 이 유일한 힘을 부인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무분별한 행위”라고 질타한다.

이렇게 말을 막 해대니 보드리야르에게 과격, 극단, 냉소, 허무 등과 같은 딱지들이 따라다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옳고 그른 걸 떠나서 ‘과잉 순응’이 과연 실천 가능한 ‘전략’인지는 따져 보아야 하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사이버 시대의 정보 폭발 현상은 학자들로 하여금 보드리야르의 주장을 더욱 자주 인용케 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참고문헌

Ω셰리 터클, 최유식 옮김, 『스크린 위의 삶: 인터넷과 컴퓨터 시대의 인간』(민음사, 2003),   363∼365쪽.

Ω스티븐 사이드먼, 박창호 옮김, 『지식논쟁: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회이론』(문예출판사,   1999), 342쪽.

Ω장 보드리야르, 하태환 옮김, 『시뮬라시옹』(민음사, 1992), 40, 145쪽.

Ω장 보드리야르, 배영달 편저, <페미니즘에 대한 보드리야르의 도전>, 『보드리야르의 문화읽   기』(백의, 1998), 211∼242쪽.

ΩJean Baudrillard, <The Implosion of Meaning in the Media and the Implosion of the   Social in the Masses>, Kathleen Woodward, ed. 『The Myth of Information:   Technology and Postindustrial Culture』(Madison, WI: Coda Press, 1980), p.148.

ΩKuan-Hsing Chen, <The Masses and the Media: Baudrillard’s Implosive   Postmodernism>, 『Theory, Culture&Society』, 4:1(February 1987), pp.71∼72.

ΩMarjorie Ferguson, <Marshall McLuhan Revisited: 1960s Zeitgeist Victim or Pioneer   Postmodernist?>, 『Media, Culture and Society』, 13(1991), p.84.

ΩDouglas Kellner, <Baudrillard, Semiurgy and Death>, 『Theory, Culture&Society』,   4:1(February 1987), p.134.

ΩArthur Kroker, <Baudrillard’s Marx>, 『Theory, Culture&Society』, 2:3(1985), pp.73∼74.

ΩJohn Storey, 박만준 옮김, 『대중문화와 문화연구』(경문사, 2002), 217쪽.

 
* 본문은 『대중문화의 겉과 속 Ⅱ』(인물과사상사, 2003년 10월)에 발표된 것으로 웹진 <인물과 사상>(www.inmul.co.kr)에서 제공했습니다. 

기사입력: 2005/07/07 [20:28]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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