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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을 잘아는 학자라면 옛책 국역에 힘써라
[한글 살리고 빛내기58] 으뜸 한문학자 청명 임창순 선생, 한글전용 주장한 지식인
 
리대로   기사입력  2022/11/30 [00:45]

199610월 경기도 마석에서 태동고전연구소를 차리고 한문학자를 키우고 있는 청명 임창순 선생을 찾아가 뵈었다. 청명 선생은 이우성 선생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한문을 가장 많이 아는 분이지만 우리 국민 말글살이는 한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한글전용을 주장하는 분이다. 그래서 찾아뵙고 어떻게 하면 한글을 못살게 구는 자들을 혼내주고 한글을 지키고 빛낼 수 있을지 여쭈어보고 힘을 얻으려는 길이었다. 그날따라 가을비가 내리고 처음 가는 길이라 힘들었지만 찾아가니 선생님께서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그 때 청명 선생과 함께 두 시간이 넘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많은 감명을 받았고 매우 뜻깊었다.

 

▲ 1996년 한글날을 지난 가을 한문 전문가를 키우는 임창순(왼쪽)선생을 찾아 뵌 이대로(오른쪽)  © 리대로


그날 나는 대학생 때부터 한글운동을 함께 한 서울대국어운동학생회 초대 회장 이봉원 뜻벗과 함께 갔다. 우리가 1967년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고 박정희 정부에 한글전용 정책을 펴게 한 이야기를 하고 한문학자이면서 한글전용을 찬성하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1990년대 들어서 일본처럼 한자혼용 하자는 이들이 정치인과 언론까지 나서서 간신히 살아나는 한글을 짓밟고 있는데 한글학회 힘만으로는 막을 길이 없다는 말씀을 드리니 청명 선생은 한자를 많이 아는 학자라면 한자로 쓰인 옛 책들을 빨리 국역을 하고, 정부는 그들을 도와주어야 하는데 답답한 일이다.”라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힘을 내라고 하셨다. 이 분은 일본 식민지 학교교육을 받지 않고 서당에서 한문 공부만 했지만 한문이 한글보다 좋지 않은 글자라는 것을 깨달은 분이었다.

 

그런데 삼국시대부터 오랫동안 한자로 말글살이를 했기에 한글이 태어나기 전에는 옛 책과 문서가 모두 한문이고 한글이 태어난 뒤에도 한문을 섬겼기에 공문서와 개인 책까지도 거의 한문이었다. 그런데 그 한문은 일생동안 한자를 공부한 청명 선생도 읽기가 쉽지 않기에 빨리 전문가를 양성해서 국역을 해 일반인들도 조상들의 삶과 숨결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깨달았다. 그런데 정부와 학자들이 그 일을 안 하니 청명 선생은 제 돈으로 장학금까지 주면서 한문 전문가를 키우고 있었다. 일반인이 그 한문을 읽을 정도로 한문을 알려면 거의 일생을 한자공부를 해야 하는 데 그것은 불합리할 뿐만 아니라 낭비이며 나라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계에서 가장 배우고 쓰기 쉬운 우리 한글을 빛나지 않게 하는 것이기에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국역 전문가를 키워놓지 않으면 한문으로 된 옛 책들이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고 보아서다.

 

▲ 한겨레신문과 여러 신문에 보도된 글에서 임창순 선생이 훌륭한 분임을 알고 찾아가 뵈었다.  © 리대로


나는 이런 청명 선생을 보면서 앞으로 셈틀로 한글을 쓰는 전자통신시대가 올 것인데 정부와 학자들은 그 시대를 대비하지 않고 그에 거스르는 한자혼용 정책을 펴는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제 돈을 들여서 셈틀 정보통신 전문가를 키우려고 애쓴 공병우 박사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분에게 공병우 박사를 모시고 한글기계화운동을 한 이야기와 함께 그분이 돌아가시면서 시신까지도 의대생들 연구에 활용하라고 기증하시는 것을 보면서 공 박사를 우러러본다는 말씀도 드린 일이 있다. 그런데 청명 선생도 우리가 만난 두 해 뒤인 1998년에 국역을 하는 재단을 만들고, 그 다음 해에 돌아가시면서 모든 재산을 재단에 기증했다고 한다.

 

나는 그날 청명 선생을 보면서 한문을 많이 알면서도 토박이말을 살려서 쓰고 씨ᄋᆞᆯ이라는 우리말도 만들어 쓴 다석 유영모 선생과 공병우 박사 삶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세 분은 나라에서 온갖 특혜를 받고 있으면서 국민들에게 한자 고통을 주고 한글을 빛나지 못하게 하는 서울대 국문과 이희승 교수와 그 제자들, 서울대 총장을 지낸 권이혁 학술원장과 조순 전 한국은행 총재, 정치인 김종필, 정약용이 한문으로 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국회의원 이름패라도 한자로 써야한다던 14대 국회 박석무 의원들이 떠오르면서 이들과는 근본부터 다른 훌륭한 분들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국어독립운동을 하면서 청명 선생과 다석 선생, 공병우 박사 정신과 삶을 거울삼아 내 마음과 몸을 바로 세우며 살고 있다.

 

▲ 1996년 태동고전연구소에서 만나 국어정책을 걱정했던 이봉원, 임창순, 이대로. 청명 선생은 우리가 만난 3년 뒤에 돌아가셨지만 그 분 삶과 정신은 내 국어운동 길잡이가 되고 있다.  © 리대로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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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11/30 [00:4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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