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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쿠데타 뒤 고개든 일본식 한자혼용 세력들
[한글 살리고 빛내기20] 박정희 김종필 등 한글전용으로 만들던 교과서 한자혼용으로 만들다
 
리대로   기사입력  2021/04/09 [23:46]

광복 뒤부터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일본 교육용어, 행정용어, 전문용어들을 일본처럼 한자로 적자는 무리들은 있었다. 그러나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나면서 토박이말을 살려서 우리 한글로 적자는 분위기여서 그들이 드러내놓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정책에 반영되지 못했다. 거기다가 우리말을 한글로 적자는 조선어학회 최현배, 장지영 들이 미국 군정청에 들어가 활동을 하니 더욱 그랬다. 그래서 미국 군정청 문교부에서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교과서를 만들고 공문서도 한글로 적었다. 그런 분위기는 대한민국을 세운 뒤에도 이어져서 공문서는 한글로 적는다는 한글전용법(법률 제 6)도 나오고 교과서를 한글로 만들었다.

 

그런데 19615.16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김종필 군부세력은 한일회담을 강행하면서 1964년부터 초,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일본 한자말을 한자로 쓰겠다고 한 것이다. 일본 식민지 교육을 철저하게 받고 일본식 한자혼용이 길든 이들이 광복 뒤에도 공무원, 교육자, 학자로서 행세를 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가 싫었다. 그래서 미국 군정 때 경성제국대학을 나오고 서울대 교수로 있던 이숭녕과 조윤제, 고려대 총장 현상윤들이 교과서를 한글로 적는 것을 반대했으나 미국 군정 교육정책은 바꾸지 못했다. 그리고 미국 군정에 이어서 대한민국 초기에도 이승만 대통령과 조선어학회 출신 안호상 문교부장관들이 나서서 한글전용 정책을 그대로 이어나갔었다.

 

▲ 1957년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한글전용 적극 추진하겠다는 국무회의를 의결하기도 했다.     © 리대로

 

그런데 일본 식민지 지식인들이 한일협정 체결에 앞장선 친일파 김종필을 배경으로 일본식 한자혼용 정책으로 바꾸게 한 것이다. 건국 초기인 1949년에도 일본 한자혼용에 길든 내무부장관 김효석이 한글전용을 방해해서 한 때 공문서에서 한글전용 시행이 중단되기도 했고, 대학 교재와 전문 서적이 거의 일본 책을 베낀 한자혼용이고 신문이 그대로 일제 강점기처럼 한자혼용이었다. 그래서 한글단체는 꾸준히 우리 토박이말을 살려서 쓰자고 주장하고 정부에 한글전용을 건의했다. 그러던 중 1898년 한글전용 신문인 매일신문을 냈던 이승만 대통령이 1956년 한글날에 한국 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먼저 신문과 잡지가 순 한글로 찍혀 나와야 한다.”는 성명서가 나오니 한글단체는 환영했다. 그에 이어서 1957년에 국무회의에서 한글전용 촉진을 의결하고 국무원 사무처에서 한글전용 실천 요강을 발표한다.

 

▲ 대한민국 초기 한자혼용 조선일보(왼쪽) 대한제국 때인 1898년에 이승만이 주시경과 함께 한글로 만든 첫 일간신문 매일신문(오른쪽). 이승만은 한글전용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리대로

 

이렇게 이승만 정권 때에는 한글을 살리려는 분위기였는데 19604.19혁명과 19615.16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정국이 어지럽게 되니 한자혼용세력이 고개를 들고 새 정부에 한글전용 반대 건의를 하고 군사정권이 그들 손을 들어주어서 1964년부터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점차로 한자말을 한자로 적기로 한 것이었다. 거기다가 이름씨, 그림씨처럼 토박이말 낱말을 쓰는 말본과 명사,형용사처럼 한자말을 쓰는 말본이 있어 혼란스럽다고 명사와 형용사쪽 일본 한자말 말본으로 통일을 한다. 이렇게 교과서가 한자혼용을 하고 말본 용어까지 일본 한자말로 바뀌니 어렵게 자연책에 쓰던 쑥돌, 흰피톨같은 우리말이 화강암, 백혈구같은 일본 한자말로 바뀌고 셈본 책에 쓰던 세모꼴, 세모꼴같은 우리말이 사라지고 삼각형, 사각형으로 바뀐다.

 

▲ 문교부가 초.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섞어서 쓴다고 하니 한글단체는 반대운동을 한다.     © 리대로

 

 

그렇게 한글전용 찬성자인 이승만이 밀려나고 일본식 한자혼용 신봉자인 김종필이 정권 실세가 되니 그런 현상이 나온 것이다. 사실 우리말 말본은 주시경이 일제 초기 처음 만들고 일제 강정기인 1929년에 주시경의 제자인 최현배가 주시경 정신을 살려서 이름씨, 그림씨같은 우리말 말본 용어를 이어받아 우리말본이란 문법 교과서를 만들었으며 이 책을 여러 학교에서 교재로 썼다. 그리고 김윤경, 장지영 들이 이름씨, 그림씨처럼 토박이말로 낱말을 만들어서 말본을 만들었고 미국 군정 때에도 거의 그런 문법책으로 교육을 했다. 그런데 광복 뒤 정부에서 검인정교과서 제도를 채택하면서 서울대 이희승, 이숭녕들이 명사, 형용사같은 일본 문법 용어로 교재를 만들고 그의 서울대 제자들이 중, 고등학교 선생이 되어 그 교재를 많이 쓰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 일제강점기 때 최현배가 토박이말을 살려 쓴 우리말본(1929)이 처음 말본이고 그 뒤 대한민국 들어서서 검인정교과서 제도가 나오면서 이희승이 일본 용어를 쓴 교과서가 나와 혼란스럽게 됨.     © 리대로

 

이렇게 되니 교과서도 한자혼용으로 바꾼 5.16 군사정부 문교부에서는 1963년에 학교말본 통일 전문위원회(의장 이희승)를 조직하고 말본 교과서 통일에 나서서 말본을 지은 최현배, 이희승 들 8명과 안 지은 사람 8명을 위원으로 구성했다. 그리고 그들 16명이 투표로 일본식 한자 용어(이희승 주장)를 쓰기로 결정한 것이다. 우리 토박이말을 살린 말본(최현배 지음)을 못 쓰게 하고 일본 문법 용어로 된 교재만 쓰게 한 이 일은 교과서에 한자를 드러내 쓰는 것과 함께 우리말글을 못살게 하는 매우 큰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겨레 운명을 뒤바꿀 중대한 일을 독재 정치인과 친일 학자 몇 사람이 결정하고 강행한 것이다. 그러니 한글이 태어나고 500년 만에 간신히 한글을 쓰는 세상이 되려고 하던 꿈이 사라질 위기를 맞았다.

 

그래서 한글학회와 한글전용촉진회 들 한글단체는 교과서를 한자혼용으로 만들기로 한 정책과 함께 일본식 한자말 문법용어로 쓴 문법책만 쓰게 한 문교부 결정을 반대했지만 군사독재정부와 수많은 친일 세력과 맞서는 일이니 막지 못했다. 광복 뒤 북쪽은 바로 한글전용을 시행했지만 남쪽은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자주 민족세력의 목소리가 커서 친일 반민족세력이 터놓고 정책까지 바꾸지 못했으며 차츰 차츰 한글을 많이 쓰자는 꿈이 있었다. 그런데 친일 군부세력이 정권을 잡으면서 그 분위기가 뒤바뀐 것이다. 한글은 태어날 때도 중국을 섬기는 사대주의 세력 때문에 힘들었는데 500년이 지나서는 친일 반민족세력이 못살게 굴고 있어 한글은 다시 힘들게 되었다. 참으로 기막힌 일이었다. 일제 강점기 목숨까지 바치며 지키고 갈고 닦은 공적이 모두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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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4/09 [23:4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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