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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가해자의 언어
[정문순 칼럼] 성(性)인지 감수성 없는 말들, 성폭력의 토양 만들어
 
정문순   기사입력  2018/03/01 [08:58]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SNS나 카카오톡방이 성폭력의 폭로 공간이 되고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 실명을 드러내거나 신원을 짐작할 수 있게 폭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고 장자연처럼 목숨을 끊지 않고는 사실을 입밖에 내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2018년 대한민국의 성폭력 피해자들은 한 검사의 용기를 보며 힘을 얻었다. 이제는 세상에 고발해도 꽃뱀으로 몰리거나 무고죄로 고소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가 이들을 움직였으며, 때가 때인지라 가해 지목자들도 감히 법적인 대응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물론 공개적인 실명 언급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피해자들이 법적인 절차에 호소하기보다 직접적인 폭로를 멈추지 않는 것은, 법이 자신을 돕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법이 자기 편이라면 피해자들은 진작 법대로 했을 것이다. 끊임없는 'ME TOO' 행렬은 여전히 한국 사회가 성폭력 피해자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는 현실을 말해준다. 
 
가해자들도 현실이 여전히 자기 손을 들어줄 수 있음을 기대한 듯하다. 가해자들이 하는, 변명인지 사과인지 해명인지에는 모두 공통점이 있다. “더러운 욕망”(이윤택), “인간적인 욕망에서 벌어진 일”(하용부) 등 성범죄를 남자의 과도한 욕망 탓으로 치부하는 것은 강간 사회의 특징이다. 조재현은 실수라며 두 사람보다 한 단계 더 낮췄다.
 
이들이 뜬구름처럼 실체가 잡히지 않는 변명을 늘어놓거나 자신의 됨됨이를 부정하는 것도 똑같다. “과거의 무지몽매한 생각과 오만하고 추악한 행위들”(이윤택), “제가 잘못 살아온 결과물”(하용부), “죄스러운 말과 행동”(조재현)……. ‘무지’, ‘오만’, ‘추악’, ‘등 가해자들의 입에서 종교재판에 나올 법한 말들이 춤추는 것은 성범죄 혐의를 도덕적인 행실 문제로 바꿔치기함으로써 혐의 인정과 처벌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범죄자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만 책임지면 된다. 피해자들은 그들의 인간성을 통째로 부정하지는 않았다. 가해자를 세상에 고발하면서도 가해자를 일컬어 존칭을 쓴 피해자도 있었다.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주장이 맞나요?”라는 물음에 아휴, 그저 나란 놈 자체가 죄인이요!”라고 대꾸하는 것은 나중을 위한 보험 가입의 성격도 짙다. 납죽 엎드렸다가도 상황이 바뀌면, 자신은 떳떳하지만 도의적 차원에서 사과했을 뿐이라고 말 바꾸는 자들은 얼마나 많은가. 
   
실제로 가해자들이 기대하는 대로 상황의 역전을 노리는 자들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여성단체들이 친정부인사 이윤택과 친해서 비판을 주저했다는 보수언론의 기사는, 미 투 운동을 진보 세력의 분열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타격의 기회로 삼으려는 자들의 속셈을 드러낸다. 이를 걱정한 방송인 김어준 씨는 보수세력이 피해자를 준비해 진보매체에 등장시키고 문재인 정부의 지지자들을 분열시킬수 있다고 예언했다. 예언의 정확도와 무관하게 김 씨의 발언에는 아랫사람을 가르치겠다는 오만함이 넘친다. 피해자를 준비한다는 말에서부터 김 씨의 성인지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거니와, 김 씨의 사고회로에서 성폭력 피해자는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설령 김 씨가 걱정하는 일이 벌어지면 어떤가. 문재인 정부의 지지자 분열과, 피해자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묻고 싶다. 김 씨의 언어는 가해자의 것은 아닐지라도 피해자에게 공감하는 말이라고 볼 수 없다. 김 씨는 피해자들이 미 투 운동을 힘 있게 계속해야 한다고도 했지만, 피해자가 아닌 사람들이 그런 말을 쉽게 내뱉는 것은 주제넘은 요구일 수 있다는 생각은 그의 안중에 없다 
   
미 투 운동을 불붙게 한 동력 중 하나는 피해자끼리의 연대였다. 한 피해자가 가해자를 지목하면 또다른 피해자가 등장함으로써 가해자가 부인하거나 피해자들이 끔찍한 2차피해에 시달리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피해자를 걱정해 주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진영논리나 자기 이익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을 보며 한국 사회의 천박한 젠더 감수성을 확인한다. 이런 토양에서 성폭력이 활개치는 것이다.
 
228일 경남도민일보 게재 칼럼.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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