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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를 보려다가 말았다
[정문순 칼럼] '몰아주기' 스크린 독점영화, 독립영화 터전 빼앗다
 
정문순

박종필 독립영화 감독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카메라를 지고 세월호 현장을 누볐고 장애인 인권 투쟁 현장을 지키던 그였다. 자본도, 투자사도 없이 홀로 약자들의 삶을 영상에 담는 데 온힘을 바치느라 정작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불사른 삶이었다. 

 

▲ 기억해야 할 현장을 카메라로 누빈 그는 기억되어야 한다. 고 박종필 감독이 참여한 4.16 프로젝트 '기억과 망각' 출처: 박종필 감독 추모 폐이스북     © 정문순

   
투병 중인 독립영화 감독이 박종필 말고도 더 있다고 한다. 젊은 예술인의 타계가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박종필의 죽음은 우리 시대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다.
 
한국영화에서 독립영화의 처지는 판로를 확보하지 못한 친환경 농산물과 닮았다. 생존 환경의 온갖 악조건을 견디고 살아남은 친환경 농산물의 생존 경쟁력은 가격 경쟁력을 동반하지 못한다. 제초제 한 번이면 풀과 벌레들이 몰살되는 깔끔한환경에서 지베렐린을 먹고 자란 과일은 흠집도 없고 우람하고 가격도 싸다. 성장촉진제로 키워진 과일이 시장을 장악할하는 동안 잡초를 뽑고 벌레를 손으로 잡으며 과일을 키운 생산자는 눈물을 흘려야 한다.
 
독립영화는, 대자본이 투자되고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감독이나 배우들이 메가폰을 잡거나 출연한다는 소식에 만들어지기 전부터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만들고 나면 대대적인 광고의 혜택을 입고 상영관을 장악하는 상업영화들과 경쟁해야 한다. 돈이 들어가지 않아 서투른 만듦새가 표 나고, 화려한 볼거리나 재미도 적고, 유명 배우도 나오지 않는 독립영화를 배급해 줄 곳은 거의 없다. 배급사를 찾지 못하면 극장에 걸릴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해마다 나오는 수많은 독립영화가 이런 식으로 사장되고 만다. 독립영화가 극장에 내걸리지 않으니 영화 관객들은 독립영화가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돈이 아낌없이 들어간 영화는 기본적인 만듦새가 보장된다. 투자가 탄탄한 영화는 시나리오만 수십 번 이상 고쳐 쓰고 첨단 영상장비로 촬영하며 편집 작업도 수없이 반복한다. 아무리 잘 찍은 장면도 관객이 재미없겠다 싶으면 편집 과정에서 거침없이 사라진다. 수백억 원을 투자한 투자자의 입장에서 영화에 가장 절실한 것은 작품성이 아니라 투자 금액을 뽑을 수 있는 환금성밖에 없다. 이런 영화와, 궁색한 티가 나는 독립영화를 경쟁시켜도 독립영화는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의 영화 시장 판도는 독립영화가 관객을 만날 기회도 차단한다.
 
독립영화나 투자자의 지원을 받지 못한 영화라도 알려진 작품들이 간혹은 있다.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귀향>은 시민 펀드를 한두 푼 모아 어렵사리 만들어진 영화였다. 독립영화 <지슬>은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한 덕분에 국내에서 상영관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특출 나지 않는 한 대부분의 독립영화들은 극장 근처에도 가보지도 못하고 사라진다.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문화예술인들을 블랙리스트로 만들어 지원을 조직적으로 배제한 정권이 물러갔으니, 이제는 창작의 자유가 생명인 독립영화 제작자들의 삶에도 온기가 생길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되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박종필 들의 삶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1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가 예사로 나오는 한국 영화 시장의 화려함을 떠받치는 독립영화인들의 참담한 처지는 판을 뒤집을 정도의 근본적인 발상 전환이 필요한 일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군함도><택시운전사>는 각각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강제 징용과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루었다. 둘 다 기존 영화에 별로 다룬 적이 없는 소재다. 특히 5.18의 경우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었음에도 좀처럼 정면으로 응시한 영화화가 드물었다. 역사적 의미에 걸맞지 않게 이처럼 푸대접 받는 영화 소재도 없을 정도이다.
 
지금까지 나온 영화 중 5.18 항쟁의 주변이나 후일담이 아닌 당시 현장을 직접 다룬 작품은 <화려한 휴가>가 거의 유일할 것이다. 아우슈비츠의 비극이나 유대인 학살 소재를 마르고 닳도록 반복하는 헐리우드 영화와 비교하면 그 비극보다 결코 덜하지 않는 5.18에 대한 우리 영화계의 대접은 직무유기라는 말을 들어도 족하다. 이러니 <택시운전사>5.18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다는 것만으로도 관람을 해줘야 할 영화일 것이다.
 
한 편의 영화가 움직이는 힘은 막중하다. 역사적 사건을 충실하게 다룬 경우, 반드시 알아야 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역사적 사실을 교육하는 교재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화려한 휴가>는 신군부 계엄군이 국기하강식에서 감격에 겨워 애국가를 부르는 시위대를 향해 집단발포한 만행을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만들었다. <택시운전사>5.18 유공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이름과, 택시 운전사 김사복 씨를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도록 만들어 가고 있다.
 
역사적 사건의 진상을 알렸다는 것 말고도 <택시운전사>는 뛰어난 영화인 듯하다. 지인 중 한 명이 영화 <택시운전사>를 꼭 보라고 권했다. 보면서 펑펑 울었다는 사람들의 반응도 많았다. 방학 중이라서 그런지 이른 상영 시간의 극장 예매율이 무척 높았다. 무작정 영화관에 갔다가 헛걸음할 수 있겠다 싶어서 예매를 시도하다가 결국 마음을 접었다.
 
<택시운전사>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군함도>와 더불어 스크린을 독점했다는 비판을 벗지 못하는 영화다. <군함도>는 상영관 확보 비중이 한때 90%까지 이른 적이 있으며, <택시운전사>70% 정도라고 한다. 눈물의 관객들이 더 늘어날수록 이 수치도 올라갈 것이다. 물론 상영관 독점 70%90%니 하는 수치는 더 이상 놀랍지 않으며, 한두 개 영화가 상영관을 천하통일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두 영화가 전국 극장의 70 ~ 90%를 장악하는 동안 나머지 10 ~ 30%를 놓고 다른 영화들이 출혈에 가까운 다툼을 벌일 것이다. 이 자리에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는 아예 설 자리도 없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하지만 한국 영화의 생태계는 새우 무리에도 낄 수 없는 물고기를 낳는다.
 
나는 <택시운전사>를 보고 싶지만, 그것은 박종필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것 같아 두렵다. 5.18을 다룬 희귀한 영화라는 보물 같은 가치도 스크린 독점 문제와 박종필의 서거를 떠올리면 그 미덕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독립영화 같은 저예산 영화, 상업성과 거리가 먼 예술영화들을 한데 모아 상영하는 전용 상영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사는 지역에서 시내의 대형극장에서 틀지 않는 영화를 상영하는 곳은 차를 타고 한 시간 넘게 가야 한다.
 
돈이 되지 않는 영화를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볼 수 있으려면 전용 상영관의 규모가 커지거나 숫자가 늘어나는 것보다는 일반 상영관에서 일정한 쿼터가 확보되도록 하는 것이 더 현실성이 있다. 지금의 한국 영화 발전도 수십 년 동안 스크린쿼터제를 통해 외국영화의 시장 잠식으로부터 보호받은 바가 컸다.
 
자신의 영화가 관객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거나 독립영화 제작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했다면 영화인 한 사람을 살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멋대로 해본다. 이런 생각이 더 이상 부질없는 일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은 남아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7/08/21 [11:02]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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