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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노무현대통령 나와도 적폐 청산될까
[정문순 칼럼] 경제민주주의 억압하기로는 참여정부나 박근혜 다르지 않아
 
정문순   기사입력  2017/03/30 [19:59]

오는 5월 대선의 승자는 역대 대통령 당선자 중 어느 누구보다도 더한 부담을 느낄 것이다. 쫓겨난 전직 대통령이 국민들이 새로 뽑을 나라 수반에게 거는 기대를 한껏 낮추게 했을 법도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무나 대통령으로 뽑아줘도 재벌에게 돈을 뜯어내거나 눈 밖에 난 공무원의 밥줄을 끊거나 국가적 재난 시에 머리 손질을 하거나 행적이 묘연해지는 일만은 하지 않을 것 같지만 그 정도로는 국민들의 성에 안 찬 듯하다. 오히려 이번 대선이야말로 나라 구석구석에 서캐처럼 쌓인 적폐 청산의 호기로 삼자는 목소리가 많다. 바닥을 칠수록 반등의 힘을 기대하기 때문일까.
 
적폐의 항목 중 하나인 정격유착만 보더라도 권력과 재벌의 개미와 꿀 같은 끈끈한 사이를 없애려면 대통령이 몰래 재벌을 안 만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박 씨를 대통령 파면의 주요 사유 중 하나로 내몬 재벌과의 밀실 거래는 재벌 공화국의 한 극단적 모습이며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이 즐겼던 정경유착의 가장 저질적이고 노골적인 양태일 뿐이다. 박 씨와 재벌 총수와의 밀실회동을 통해 정보기관까지 동원하여 정치자금을 요구한 군사정권의 행태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재벌이 일방적인 피해자는 아니었다.
 
헌재는 박 씨가 자기 아버지처럼 대통령 권력으로 죄 없는 재벌을 삥 뜯은 것으로 판단했지만 실상은 상호 이해관계가 맞아 서로 가려운 데를 긁어준 동격의 거래였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재벌이 정치권력보다 우위였다
   
재벌 총수의 처지에서 대통령은 푼돈 몇 푼으로 가능한 민원 해결사였다. 자고로 돈을 준 쪽이 받은 쪽보다 힘에서는 더 윗길에 있는 법이다. 여기에서 비롯된 이득은 재벌 총수가 취한 것이 대통령의 것보다 결코 못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만 봐도 대통령은 직위를 빼앗겼지만 이재용 삼성부회장은 앞으로 나락으로 추락할지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복귀할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정경유착의 뿌리를 뽑는 방법은 대통령과 총수 간의 음습한 주고받기 근절을 넘어서서 재벌 개혁, 대기업에 치우친 경제 탈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근절, 노동자의 회사 경영 참가,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노동자 축소, 노동조합 활성화 등 경제민주화와도 만난다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앞서기 시작한 때는 박 씨가 처음이 아니었다. 재벌에 몸담은 사람들이 주미 대사에 임명되고 청와대에 입성한 것은 노무현 정부 때 활발했다. 참여정부의 경제 정책은 삼성 재벌의 보고서를 베꼈다는 의혹도 받는다. 노무현 정부에서 재벌 인사가 밝은 곳에서 정부 관료로 당당히 임명되었다면 박근혜 정부에서는 음습한 곳에서 정치권력과 재벌이 몰래 유착했다. 노 전 대통령 스스로도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고 자조하지 않았던가.
 
재벌을 떠받드는 경제 정책에 관한 한 노무현 정부와 박근혜 정부 간의 차이는 연착륙이냐 경착륙이냐, 은근한가 유치할 정도로 노골적인가일 뿐이다. 경제 민주주의를 망가뜨리기로는 둘 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실상이나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재벌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전직 대통령에게서 기막혀 하는 사람들이 시장에 항복을 선언한 또다른 전직 대통령에게는 아무 서늘한 느낌이 없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재벌과 친한 정부가 많았는데도 유독 노무현 정부를 걸고넘어지는 이유는 노무현의 후계자를 자처 하는 사람이 현재로서는 대선 배팅 확률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 세상이 확 바뀔 것이라고 꿈꾸는 사람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을 떠올리기 바란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대판 신분제 고착이 언제 본격화했는지, 재벌 자동차 수출 늘리자고 농민 생존권을 넘겨준 한미FTA가 언제 추진되었는지 기억하기 바란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노무현 정부의 각료, 내각, 참모들은 다수가 신자유주의의 신봉자들로 채워졌었다. 
     
다가올 선거를 기대하지 않으니 속이 편하긴 하다. 가슴 졸이며 조마조마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이 나라에 사는 것을 치 떨리게 만드는 차별과 불평등의 근본을 겨냥하는 정치인을 가져보는 것이 아직은 비현실에 가까운 이 현실이 슬프다
 
* 3월 27일 경남도민일보 게재 칼럼을 손본 글입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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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30 [19:5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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