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라틴 아메리카를 앞마당으로 여겨 남이 함부로 근접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몬로주의(Monroe doctrine)가 그것을 말한다. 1823년 대통령 제임스 몬로가 의회연설을 통해 미국은 유럽을 간섭하지 않을 테니 유럽은 아메리카 대륙을 간섭하지 말라고 선언했다. 이른바 비동맹-비식민-불간섭을 골자로 하는 고립주의 외교노선이다. 1904년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그 개념을 더욱 확장했다.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非아메리카 국가의 개입을 반대하며, 미국은 이 지역 국가에 대해 경제적-군사적으로 개입할 권리를 가졌다는 것이다.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배함에 따라 쿠바가 1902년 독립되었지만 경제적으로는 미국자본에 예속되었다. 국민생활은 더욱 궁핍해졌고 독재정권은 극도로 부패하여 민중봉기가 그치지 않았다. 1959년 카스트로와 체게바라가 주도하는 공산혁명이 성공하자 1962년 소련이 그곳에 미사일을 배치했다. 2차 대전 이후 형성된 미-소의 냉전체제가 핵전쟁 위기로 치닫는 마지막 순간 소련이 미사일을 철수했다. 턱 밑에서 미사일 위기를 겪은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의 공산화 도미노를 막는다며 봉쇄정책을 넘어 반격정책에 나섰다.
미국은 비공산권 전역에 친미정권을 수립으로써 공산주의의 확산을 차단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라틴 아메리카가 첫째 대상이었다. 미국 조지아주 베닝 요새에는 지금은 간판이 바뀐 SOA(The School of the Americas)가 있다. 1946년 설립된 이 전투훈련학교는 라틴 아메리카 군인들을 선발해 자국민을 겨냥하는 반란진압, 저격술, 군사정보, 심리전, 심문술 등을 가르친다. 졸업생이 6만4,000명에 달한다. 귀국 후 군벌을 형성한 그들의 상당수는 쿠데타의 주역이 되어 민간정부를 전복하고 친미군사정권을 수립했다.
군사정권은 미국의 경제-군사원조를 받았지만 합법성-정당성이 결여되어 끊임없는 저항에 부딪쳤다. 반정부세력을 제거하려고 잔혹한 철권통치를 자행했다.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무수하게 고문, 암살, 강간, 실종, 학살로 희생되었던 것이다. 군사정권과 대지주가 결탁함으로써 서민대중은 더욱 빈곤해졌다.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착취가 겹치자 가톨릭 교회가 낮은 곳의 절규에 귀를 기우리기 시작했다. 진보적 신부들이 고통 받는 이들의 곁으로 찾아가서 아픔을 함께 나눔으로써 성직자의 현실참여가 활발해졌고 거기서 해방신학이 태동했다.
해방신학은 1950~1960년대 예수의 가르침을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불평등과 연관해 해석한다.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통해 그리스도 신앙을 보려는 일종의 현실참여 운동이다. 군부의 탄압은 극악해지고 교황청과 교단내의 기득권층이 막스주의 개념을 접목했다며 공산주의자로 매도함으로써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가톨릭 사제들은 군부독재 종식투쟁의 전면에 나섰다. 1980년 3월 엘살바도르에서는 국민의 정신적 지주로 존경받던 대주교 오스카 로메르가 정부군에 의해 사살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한국에서도 가톨릭은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1961년 육군소장 박정희가 반공을 국시로 내세우고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집권 10년이 지나서 1972년 10월 영구집권을 꾀하는 유신체제를 선포했다. 유신철폐를 주장한 주교 지학순을 구속한 것을 계기로 1974년 9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결성되었다. 사제단은 시국미사-선언을 통해 유신체제 종식을 위한 민주화 투쟁의 최선봉에 섰다. 사제단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폭로함으로써 6월항쟁에도 불을 붙였다. 전두환의 군사독재체제를 붕괴시키는 데도 앞장섰던 것이다.
그 사제단이 박정희에 이어 박근혜 정부와도 격돌할 양상이다. 40년만의 대를 이은 충돌이다. 전주교구 사제단이 시국미사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했다. 원로신부 박창신의 말을 트집 잡아 종북몰이가 한창이다. 연평도를 독도와 비유하고 “…하면”이란 가정법을 썼는데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북한을 옹호했다며 규탄을 외친다. 대통령의 ‘불용’, 총리의 ‘응징’에 이어 새누리당이 ‘북한의 지령’까지 들썩이며 총공세를 펴고 보수세력이 가세하는 형국이다. 사제단의 시국미사는 전국적으로 이어질 기세다. 여기에 개신교와 불교 일각에서도 동조하고 있어 다른 종교계로도 번질 조짐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서 빈민사목에 열정을 바쳐온 교황 프란체스코의 권고문이 지난 달 26일 공개됐다. “안온한 성전에만 머무는 고립된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뛰쳐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를 원한다”, "교회는 손에 흙을 묻히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사제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현실에 참여하라는 당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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