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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과세 차라리 손대지도 마라
[김영호 칼럼] 무늬만 과세 아닌 종교법인-단체 과세정책 수립해야
 
김영호   기사입력  2013/08/20 [17:59]

나라 살림이 궁핍하면 어느 정권이나 슬그머니 종교 쪽을 넘나보곤 한다. 종교인, 종교법인-단체에 세금을 물려볼까 고개를 돌렸다가 곧 되돌리고 만다. 표를 잃을까 두려워 화들짝 놀라 돌아서는 모습이다. 대통령 선거기간에는 모든 후보들이 본인의 신앙과는 무관하게 조계종 법회에 나란히 참석해 합장하고 대통령이 되어서는 개신교가 주최하는 조찬기도회에 나가 아멘을 말한다. 일부 종파는 특정후보를 지지하라고 외치며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한다. 이것이 이 나라의 정치현실이다. 그 까닭에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정부 차원에서 종교와 관련한 세금문제를 한 번도 구체적으로 논의한 적이 없다.

헌법 38조는 국민개세주의와 공평과세를 선언하고 있다. 어떤 법에도 종교인-종교단체에 대한 비과세 규정이 없다. 신자들을 동원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까닭에 종교가 암묵적으로 비과세 성역으로 자리 잡았다. 그 사이에 종교는 세속화하고 일부 종파는 재정적으로 급팽창하고 있다. 대형교회들은 경쟁적으로 중세 유럽의 웅장한 성전을 닮아가는 모습이다. 대형 사찰들도 신축-증축공사가 한창이다. 또 일부 대형교회는 세습화되고 종교법인을 통한 횡령, 배임, 탈세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종교세 과세가 간헐적으로 거론되곤 했다. 

정부의 종교인 과세방안은 '꼼수’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여 1994년 천주교 주교회의가 사제의 소득세 납부를 결의했다. 개신교에서도 자발적으로 소득세를 납부하는 목회자들이 늘고 있다. 또 소득세 납부방법을 모르는 목회자를 대상으로 소득신고 지원운동을 펴기도 한다. 조계종도 기본적으로 소득세 납부를 찬성하고 있다. 종교인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국민적 정서에 부응하여 종교계가 대체적으로 세금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변화를 감지했던지 작년 3월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 박재완이 4월 총선을 20여일 앞둔 시점에 종교인에 대한 과세문제를 언급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가 세제개편안을 내놓았다. 봉급생활자의 유리지갑만 쥐어짠다는 비판여론이 고조되고 있지만 종교인에 대한 과세방안이 들어있다는 점이 간과되고 있다. 얼핏 보면 진일보한 정책으로 보이나 결론부터 말하면 한마디로 꼼수이다. 이 방안은 종교인에게도 과세함으로써 공평과세를 꾀한다는 명분을 노린 듯하다. 근로소득세를 자진해서 납부하는 종교인들이 늘어나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기타소득세'로 분류한다는 것이다. 기타소득세는 근로소득, 사업소득, 임대소득, 이자-배당소득 이외의 원고료, 인쇄, 자문료, 사례금 등 불규칙적인 소득에 붙는 세금을 말한다.

기타소득으로 분류되면 소득의 80%를 필요경비로 인정해 과세대상에서 빼준다. 나머지20%만 과세대상으로 삼아 주민세를 포함한 22%의 세율을 적용해서 원천징수한다. 이 경우 전체소득의 4.4%만 세금으로 내는 셈이다. 5만원 이하이면 면세혜택을 준다.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면 오히려 환급 받을 수도 있다. 월급생활자와는 달리 1년에 두 번만 세금을 내는 '반기납부특례'의 혜택도 준다. 또 종교단체에서 받는 소득 이외의 근로소득, 퇴직소득, 연금소득 등 다른 소득에는 분리과세의 혜택도 준다. 이미 근로소득세를 납부하는 종교인이라면 세금이 크게 경감될 수 있다. 그나마도 2015년 1월 이후 소득부터 징수하겠다고 한다.

일부 종파, 일부 종교인들이 근로소득세 납부를 거부하고 있다. 종교인의 활동은 '근로'나 '노동'이 아니라 영적이며 종교적인 '봉사'라면서 그 대가로 '사례비'를 받는다고 주장한다. 또 혹자는 신자들이 이미 세금을 낸 돈으로 헌금하니 이중과세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박근혜 정부가 바로 이 소수의 주장에 정치적으로 영합해 근로소득세가 아닌 기타소득세로 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성직자라는 개념은 종교 직무상 신분을 나타내는 용어일 뿐이다. 이중과세라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공무원에 대한 과세도 이중과세라는 논리나 마찬가지다. 종교인이기 이전에 국민이다. 모든 국민은 납세의 의무를 지닌다. 이것은 국세를 내지 않으면 국민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종교인 과세정책 체계적으로 수립해야

전세계에서 종교인에게 과세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한다. 이는 종교계에 대한 국가의 조세권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세제개편안에 들어 있는 과세방안은 종교인에 대한 조세특혜를 제도화할 뿐이다. 또 종교단체에 대한 과세문제는 전혀 언급조차 없다. 차라리 종교인 과세문제는 그냥 둬라. 한번 제도화하면 앞으로 또 수십년간 손을 대지 못한다. 차기 정권에서라도 종교인, 종교법인-단체에 대한 과세정책을 체계적으로 수립하는 것이 옳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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